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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 훌륭하다 화학도놈들
hangul/hangeul 표기에 대해서는 ‘'한글'의 로마자 표기 및 외국어 표기에 대해’ 섹션 참고

1 개요[편집]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바로 이 문자.

이 문자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 문서는 오늘날의 일본어처럼 한자구결자 등으로 쓰여졌거나 알파벳으로 쓰였을 확률이 높다.

한민족이 지켜 온 최고의 유산 중 하나

한글은 쓰거나 읽는 문자이고, 한국말, 한국어는 말하거나 듣는 언어이다. 둘을 동일시하거나 혼동하지 말자.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신 분이지, 한국말을 만드신 분이 아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한국말은 있었다. 이런 혼동의 배면에는 '글'이라는 한국말이 '글'이라는 본래의 뜻(생각이나 뜻 따위를 적은 것)외에도 '글자'(말을 적는 부호)라는 뜻으로도 쓰기 때문이다. '한글'이란 말자체는 직역하면 '한의 글'(韓文, Korean Writing)과 '한의 글씨'(韓字, Korean alphabet) 둘 모두를 포괄한다.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이 1443년에 창제, 1446년에 반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세종대왕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 반포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란 이름이었고, 같은 이름을 가진 매뉴얼 비슷한 걸 만들었다.

한국어 사용자가 아랍어를 쓴 글을 보면 글자라기보다 무슨 줄 하나 꼬불꼬불하게 휘갈겨 놓고 점 몇 개 근처에 찍은 낙서처럼 보이듯,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글이 기하학에나 나올 법한 도형으로 보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ㅇ이나 ㅁ은 동그라미 네모고 요즘은 안 쓰지만 세모(ㅿ, 'ʝ̃'발음으로 추정되기도 하고 'z'발음일 것이라고도 하는 등 이설이 있다)도 있고 죄다 반듯반듯 각지고 그래서 그런 듯하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한글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 동그라미, 네모 같은 도형이 진짜 글자냐며 신기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 것 같다. 비정상회담 16회에서도 패널들이 이 얘기를 한 바 있다. 여담으로 만약 외국인들의 눈에 한글이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체감하는 방법이 있다. 한글이 쓰여진 사진을 좌우반전 시켜보자. 우리가 아랍 문자나 타이 문자를 좌우반전 시켜서 본다고 해도 별 차이를 못느끼는거와 같은 이치. 나의 한글은 이렇지 않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근대 기능주의 디자인의 명제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문자.

한글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흔히 "짧은 시간안에 몇몇의 학자들이 조직적으로 연구하여 만들어낸 지구상에 유례를 찾기 힘든 문자", "단순하고 체계적이며 과학적 조합원리를 가지고 있는 문자", "그러면서도 천지인 삼재라는 한국인의 우주론을 구상화시킨 문자", "천재 세종대왕의 업적" 등등이 따라붙는다.

2 발음[편집]

현대 한국어의 발음을 기준으로 한다.

2.1 자음[편집]

문자 이름 초성 발음 종성 발음
기역 연구개 파열음([[k]]~[[ɡ]]) 무성 연구개 불파음([[k̚]])
쌍기역 무성 연구개 파열음([[k͈]]) 무성 연구개 불파음([[k̚]])
니은 치경 비음([[n]]), 치경구개 비음([[ȵ]]) 치경 비음([[n]])
디귿 치경 파열음([[t]]~[[d]]) 무성 치경 불파음([[t̚]])
쌍디귿 무성 치경 파열음([[t͈]]) 없음
리을 치경 탄음([[ɾ]]) 설측 접근음([[l]]), 치경구개 설측 접근음([[ȴ]])
미음 양순 비음([[m]]) 양순 비음([[m]])
비읍 양순 파열음([[p]]~[[b]]) 무성 양순 불파음([[p̚]])
쌍비읍 무성 양순 파열음([[p͈]]) 없음
시옷 무성 치경 마찰음([[sʰ]]), 무성 치경구개 마찰음([[ɕʰ]]) 무성 치경 불파음([[t̚]])
쌍시옷 무성 치경 마찰음([[s͈]]), 무성 치경구개 마찰음([[ɕ͈]]) 무성 치경 불파음([[t̚]])
이응 없음[1] 연구개 비음([[ŋ]])
지읒 치경구개 파찰음([[t͡ɕ]]~[[d͡ʑ]]) 무성 치경 불파음([[t̚]])
쌍지읒 무성 치경구개 파찰음([[t͈͡ɕ]]) 없음
치읓 무성 치경구개 파찰음([[t͡ɕʰ]]) 무성 치경 불파음([[t̚]])
키읔 무성 연구개 파열음([[kʰ]]) 무성 연구개 불파음([[k̚]])
티읕 무성 치경 파열음([[tʰ]]) 무성 치경 불파음([[t̚]])
피읖 무성 양순 파열음([[pʰ]]) 무성 양순 불파음([[p̚]])
히읗 무성 성문 마찰접근음([[h]]), 유성 성문 마찰접근음([[ɦ]]),
무성 경구개 마찰음([[ç]]~[[ʝ]]), 무성 연구개 마찰음([[x]])
무성 치경 불파음([[t̚]])

2.2 모음[편집]

문자 이름 규범 발음[2] 현실 발음[3] 이표기
표준 발음 허용 발음
중설 근저모음 [[ɐ]] 전설 비원순 저모음 [[a]]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ɛ]] 전설 비원순 중모음 [[e̞]]
경구개 접근음 + 중설 근저모음 [[jɐ]] 경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저모음 [[ja]]
경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jɛ]] 경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모음 [[je̞]]
후설 비원순 중저모음 [[ʌ]] (장음일 때) 중설 중모음 [[əː]]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e]] 전설 비원순 중모음 [[e̞]]
경구개 접근음 + 후설 비원순 중저모음 [[jʌ]],
후설 비원순 중저모음 [[ʌ]][4]
(장음일 때) 경구개 접근음 + 중설 중모음 [[jəː]]
경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je]]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e]][5] 경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모음 [[je̞]],
전설 비원순 중모음 [[e̞]][6]
후설 원순 중고모음 [[o]]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중설 근저모음 [[wɐ]]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저모음 [[wa]]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저모음 [[wɛ]]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모음 [[we̞]]
전설 원순 중고모음 [[ø]]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we]]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모음 [[we̞]]
경구개 접근음 + 후설 원순 중고모음 [[jo]]
후설 원순 고모음 [[u]]
양순 연구개 접근음 + 후설 비원순 중저모음 [[wʌ]] (장음일 때)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중설 중모음 [[wəː]]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we]]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중모음 [[we̞]]
전설 원순 고모음, [[y]] 양순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고모음 [[wi]]
경구개 접근음 + 후설 원순 고모음 [[ju]]
후설 비원순 고모음 [[ɯ]] 중설 비원순 고모음 [[ɨ]]
후설 비원순 고모음 + 경구개 접근음 [[ɯj]],
전설 비원순 고모음 [[i]][7]
전설 비원순 고모음 [[i]][8]
전설 비원순 중고모음 [[e]][9]
전설 비원순 중모음 [[e̞]][10] 연구개 접근음 + 전설 비원순 고모음 [[ɰi]],
후설 비원순 고모음 + 전설 비원순 고모음 [[ɯi]]
전설 비원순 고모음 [[i]]

3 역사[편집]

3.1 제작자는 누구인가?[편집]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집현전 학자들이 다 만들고 세종대왕은 이라는 이유로 상사가 프로젝트에 이름 걸치듯이 자기 이름으로 배포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종대왕 본인이 직계가족들과 함께 작업했거나 어쩌면 정말 혼자서 비밀리에 만든 프로젝트였다.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다. 명심하자. 어제(御製)다. 임금이 직접 만들었든 누굴 시켜서 만들었든 상당히 참견을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말씀 되시겠다. 그리고 당시의 여러 정황상 세종이 혼자서 만든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훈민정음 창제를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자료 수집량이 개인이 하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단 세종이 주도하면서 신하들에게 자료 수집 등 보조하게 하는 형식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제자 시켜서 자료 수집해 오는 것처럼) 최소한 소수정예 인원이 참여하는 비공식 프로젝트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최일선 실무자로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은 분명하다. 직계가족들이 관여했을 거라는 것도 가정일 뿐, 확실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의 확실한 참여 기록이 없다는 것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일부러 밝히는 경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의도적으로 은닉하였더라도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명백한 참여 증거들이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아직까지도 한글의 제작자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지닌 무수한 추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일단이 아래이다.

세조 6년 5월 28일 기사에 예조에서 《훈민정음》·《동국정운》·《홍무정운》을 문과 초장에서 강할 것등을 아뢰어 따르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선왕(先王)께서 손수 지으신 책이요, 《동국정운(東國正韻)》·《홍무정운(洪武正韻)》도 모두 선왕께서 찬정(撰定)하신 책이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조 7년 7월 18일 기사에 수레·벽돌의 사용, 당나귀·양의 목축 등 중국의 문물에 대한 홍양호의 상소문이 실려 있는데 이 상소에서도 오직 우리 세종대왕께서 하늘이 낸 예지(睿智)로 혼자서 신기(神機)를 운용(運用)하여 창조(創造)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은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어라, 이거…

단, 죽산 안씨 족보에는 세종대왕의 둘째 공주가 대군들이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잘하여 노비 수백을 상으로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게 기록된 이유는 그 공주가 죽산 안씨 가문으로 출가했기 때문. 족보에 실렸다는 이 내용은 문제가 많다. 상으로 노비 수백을 내릴 정도라면 개국공신, 반정공신 급 정도는 돼야 받을까 말까 한 비현실적으로 큰 상이다. 왕실의 재산에 타격을 줄 정도다. 이 정도의 큰 상을 받을 정도면 실록에 실리지 않을 수 없으며, 세종대왕의 정치 스타일 상 이렇게 상을 남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다. 사실 여부가 의심스럽고, 사실에 들어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후대에 어떤 이유에선지 엄청난 왜곡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거기에 성삼문이 쓴 직해동자습 서문에서 훈민정음은 세종과 문종의 작품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리고 수양대군이 석보상절을 편찬한 것이라거나 운회를 정리하는데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참여한 것을 보면 이 세 명은 적어도 창제 이후의 검증 작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실록의 관련 내용 참고). 집현전 학자들은 이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 정황상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가 온전히 비밀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창제 과정에서도 집현전 학자들이 보조 연구원의 형태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주도적인 역할은 어디까지나 세종대왕이다. 집현전 학자들은 나중에 훈민정음을 가지고 한자음을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물론 소장파만. 나름대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반대하다가 세종에게 열심히 까이는 역할을 맡았다(?).

세종 본인이 언어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어렸을 때부터 학식이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수준은 집현전 학자들의 수준을 능가하며, 학자들과의 토론에서도 지지 않았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제작에 절대적으로 반대했다(신숙주 등의 소장학파들은 예외).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훈민정음의 보급을 국가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계획으로 확대하려는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최만리, 정창손을 필두로 한 일부, 하지만 집현전의 중심에 서 있는 대세급의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세종은 이들을 불러 "늬들 운서[11]가 뭔지 아냐? 사성 칠음(성조 4개 + 초성 분류 7가지)에 자모가 몇 개 있는지나 알아? 내가 아니면 누가 운서를 바로잡겠냐?"라며 신랄하게 이들의 주장을 비판했으며 특히 정창손에게는 "에라이 쓸모없는 선비놈아!"라고 제대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 단, 세종실록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면 정창손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반대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삼강행실도 간행사업이 쓸모 없는 일이었다는 비판을 대놓고 한 것까지 더해져서 세종의 노여움을 더 크게 산 것으로 보인다(조선왕조실록 해당 기사).

훈민정음의 제작에 관해 또 다른 설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신미대사[12]가 훈민정음 창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신미대사는 범어[13] 의 전문가로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세종대왕이 업무로 바쁜 와중에 어린 자식들만 데리고 아무런 전문가의 도움 없이 훈민정음을 만들 수는 없는데 유학자들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했다는 점에서 숨겨진 전문가가 있을 것이라는 점,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세종대왕이 처음으로 이 새로운 체계를 바탕으로 지은 글 세 편(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중 두 편(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이 불교에 관한 것이라는 점 등을 든다. 이들은 억불숭유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에서 승려가 국정에 중요한 역할 하였다는 것을 실록을 비롯한 공식 기록에 남길 수가 없어서 세종대왕의 단독작업으로 모든 공식문서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밖에도 훈민정음 서문이 불교와 연관 깊은 수인 108자[14]라는 점 등도 든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언어학적 능력과 기획력+신미대사의 전문가로서의 도움+자식들의 도움+집현전 학자들의 (약소한) 도움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주장이 학계에서 그리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는 듯하니 참고만 할 것.

연산군 시절에 연산군의 악행을 힐난하는 투서가 나돌았었는데, 그것이 한글로 쓰여 있었다. 연산군이 그걸 구실로 한글 교습을 중단시키고 구결들도 모조리 수거해 불사르며 한글 말살(?)을 시도했지만 곧 흐지부지되었다. 얼마 뒤에 나온 흥청의 음악 교본도 한글로 쓰여 있었다. 이때가 한글 반포로부터 대략 60여 년이 지난 시점인데, 이 시절에 이미 우리말을 표기할 문자로 한글이 완전히 정착해 있었던 듯하다.

3.2 한글의 호칭 변화[편집]

이때까지는 이 새로운 문자에 대해 임금인 세종대왕이나 신하들은 모두 이 글을 훈민정음, 혹은 정음 등으로 불렀고 이후 언문(諺文), 언서, 반절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 외에 암클(암컷(…)이 쓰는 글), 중글(중, 즉 승려들이 쓰는 글. 정작 승려들은 불경 때문에 한문에 빠삭했다), 상말글(상놈들이 말하는 것을 적는 글 혹은 상스러운 말을 적는 글)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다만 한글이 이렇게 천시받는 상황이 바로 세종이 의도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 정도까지 천시되지 않았다면 앞서 말한 '왕이 직접 만든 문자' 버프에다가 양반들 한문 공부에도 한글이 무지막지하게 도움을 주는 점이 겹쳐 한글마저 양반이 차지하려 했을 것이고 그러면 향촌 사회에서 한글에 대해서 일종의 정보통제를 실시했을 거라는 것. 이렇게 밑바닥까지 천시되었기 때문에 양반이 다루는 학문 체계에서 열외되었고 그에 의해 서민들에게 잘 퍼졌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훈민정음에 적힌 세종이 직접 만든 서체는 (이른바 교양 있는 양반들의 필기구인) 으로 적히기 매우 힘든 형태였고, 서민들이 부지깽이나 나무막대기 등등으로 대충 끄적이는 형태로 필기해야 제대로 필기할 수 있는 형태였다.

아무래도 조선 시대의 상류 사회에서는 한글의 대우가 박했으나 서포 김만중이 국서(國書)라고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세간의 인식이 아주 푸대접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후의 조선 왕들 본인부터가 왕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도 한글로 썼고, 실생활에서도 한글을 사용했다. 왕족과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당시 상류층들이 서로에게 보낸 편지나 메모 같은 것이 많이 남아 있으며 한글 소설은 양반들 사이에서도 읽혔다. 물론 사회 하류층도 계속해서 애용했다. 그러다가 근대화 과정, 특히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주체적인 문자라는 의미를 주기 위해 국문(國文)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한글이라는 호칭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이다. 대개는 주시경이 이 호칭을 정립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으며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1913)의 끝에 횡서(橫書)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고 한다. 이 호칭이 일반화된 것은 1928년 조선어학회가 1926년에 제정했던 가갸날(훈민정음 반포 기념일.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이라 고쳐 부르면서이다.

3.3 한글의 글자 수 변화[편집]

  • 훈민정음 창제 시 초성 17자, 중성 11자, 종성 부용 초성(단 8종성가족용)에 의해 28자. 순경음 비읍(ㅸ)과 지금의 된소리인 전탁자, 거듭 적은 글자들은 인정되지 않는다. 거기에 초출, 재출자를 제외한 합용자 18자(, , ㆇ, ㆊ, ㆎ, , , , , , ㆉ, , ㆌ, , , , ㆈ, ㆋ)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에서는 여린히읗(ㆆ)이 글자에서 완전히 탈락해 있다. 그래서 모두 27자.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완전히 포기한 듯. 그리고 이때 현대까지 쓰일 자모의 명칭과 배열 순서가 정해졌다. 그 전에는 자음은 ㄱㅋㆁ(옛이응);ㄴㄷㅌ;ㅁㅂㅍ;ㅅㅈㅊ;ㅇㆆ(여린히읗)ㅎ;ㄹㅿ(반치음) 순서로, 모음은 ㆍ(아래아),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순이었다. 근데 오히려 이쪽이 지금 쓰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지 않나?
  •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모두 24자. 빠진 것은 모음에서는 ㆍ(아래아. 단 제주 방언에는 아래아의 음가가 변화된 형태로 아직도 남아 있다), 자음에서는 ㆆ(여린히읗), ㆁ(옛이응), ㅿ(반치음)이 탈락한 결과. 이 중에서 옛이응은 IPA 표기상 [[ŋ]]의 음가를 갖는 글자로, 발음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글자는 ㅇ에 흡수되었다.
  • 소멸한 4개의 낱자 중 ㆆ(여린히읗)이 가장 먼저 소멸하였고 그 다음은 ㅿ(반치음), 또 그 다음은 ㆁ(옛이응)이 소멸하였으며 ㆍ(아래아)가 가장 마지막에 소멸하였다. 이 순서를 '10원(ㆆ)을 가지고 산(ㅿ)으로 올라가 사과(ㆁ)를 사 먹으니 씨(ㆍ)만 남더라'로 많이 외운다.

3.4 한글을 이용한 한국어, 외래어, 외국어 표기의 역사[편집]

한글에 관한 세종대왕의 야망(?)은 상당히 원대한 것으로, 세종대왕은 당대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그리고 운서 등에서 다루는 고전 중국어 발음과 대응되는 이상적인 한국 한자음을 표기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이 '짐승의 소리'와 같은 동물이 내는 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까지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당시 음운론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를 나타내는 표기법(이라기보다는 발음 기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한국어 표기 실험은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한글 언해 문헌을 통해 이루어졌다.

문제는 원대한 목표와는 달리 입수할 수 있었던 자료가 부족하거나 부실했다는 점이다.

중국어 표준 발음의 표기는 명나라의 국정 발음 사전인 홍무정운에 훈민정음으로 발음 표기를 추가한 홍무정운역훈을 통해 하려고 했다. 문제는, 원본인 홍무정운에 실린 발음 자체가 당시 중국어의 실제 발음이 아니라 고전 중국어 발음과 당시 중국 각 지역의 발음을 절충한 어중간하고 비현실적인 발음이었다는 것. 그래서 홍무정운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죽도 밥도 아닌 발음이라고 까였다. 카피는 잘 했는데 원본 자체가 부실했던 것.

동국정운은 훈민정음으로 이상적인 한국 한자음, 즉 이상적인 외래어 표기를 하기 위한 지침서로, 세종이 벌인 희대의 덕후질이다. 그러나 현실 한자음(= 외래어 통용 발음)과의 차이가 너무 컸고 동국정운식 표기를 익히기도 어려워 사대부층에서도 동국정운식 표기를 포기, 결국 흑역사가 되었다.

의 경우, 고전 중국어의 발음에서는 받침에 오는 ㄹ이 없고 그 음이 에 가깝다는 것을 표기하기 위해 한국 한자음의 유음인 ㄹ의 발음이 흘러가는 것을 막는 역할, 즉 안울림소리인 입성을 표기하는 보조 기호의 용도와 중고음(고대 한자음)에서 영모(影母, 성문 파열음)를 표기하는 용도로[15]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 중국어에서도 이미 ㆆ와 ㅇ는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 당시 한국어의 현실 한자음에는 초성 ㆆ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표기 방법 때문에 결국 1527년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가차없이 ㆆ이 삭제되고 만다. 물론 그 전에 – 1465년에 간행된 <원각경언해>에서부터 쓰이지 않았다 – 없어진 셈이지만 확실히 삭제된 것으로 표기된 것은 이게 처음이라… 비슷한 시기(보통 15세기 중엽, 세조 대로 추정한다)에 실전된 순경음 비읍(ㅸ)과는 달리 그 흔적도 남기지 않은 소멸이었다. 반치음(ㅿ)은 16세기까지도 여전히 각종 표기에 활발히 사용되지만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 정도에 사실상 표기에서 사라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래어 표기법을 널리 보급하는 일은 국가의 힘으로도 어려운 듯.

동국정운식 표기를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중국어의 치음 표기를 위해 왼쪽과 오른쪽 길이가 짧은 ㅅ, ㅈ 등을 만든 것은 외래어 표기할 때에 f나 v는 중요한 발음이니까 별도의 글자를 만들고 정확하게 발음해 주자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입성을 표기하기 위해 '이영보래'의 규정을 도입한 것은 girl의 rl은 우리말로는 정확하게 하기 힘들지만 gull이라는 단어와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걸'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거을'로 표기하고 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겠다.

나중에는 조선에서 주변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펴낸 교재의 발음 표기에 이를 사용하여,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소리에 대응하는 표기법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우리들은 세종대왕이 만든 형태 그 자체가 아니라 주시경의 영향하에 조선어학회에 의해 완성된 한국어 표기법, 즉 20세기의 국어학자들이 현대 한국어 표기에 더 최적화해서 만든 – 현대 한국어의 말소리에 대응되면서 동시에 말소리 그 자체보다는 형태소의 일관성을 좀 더 잘 보여 주는(이른바 끊어적기, 분철) – 한글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한국어는 말소리 자체에 글자가 그대로 대응되게 구현하는 것형태소(의미의 기본 단위)의 형태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다른 언어들보다 꽤 어렵게 되어 있다.

장사꾼왠지 갓길에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궂은 날씨에 상관없이 굳이 그 자리에서만 "떡 . 오늘 갓 만듦. 맛있는지 맛없는지 직접 확인하시오."라는 간판을 세워 두고 떡을 파는데, 불법 영업이라서 단속반이 좌판을 들어내려 하면 웃통을 벗어 문신을 드러내며 저항하곤 해서 단속의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하 내용 없음. 보고 끝.

현재도 한글 표기 규정에 예외나 불규칙적인 측면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예: 두음 법칙, 겹받침) 다 한글이 아닌 한국어 탓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정작 현대 한글로는 모든 현대 한국어에 존재하는 음소를 표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귀었다', '바뀌었다' 등의 단어를 빨리 발음할 때 한 음절로 줄어들어서 나는 ㅟ+ㅓ 발음 등이 있다. 하지만 한글에, 심지어는 옛한글에마저 ㅟ와 ㅓ의 합자는 없다. 참고로 예전에는 이 문장에서 가 이중 모음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사실 ㅟ는 원칙적으로 전설 원순 고모음([[y]])을 나타내는 모음자로, 단모음이다. 단지 이중 모음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심지어 아나운서마저도!) 국립국어원마저 포기하고 이중 모음식 발음 [[wi]]도 허용된 것뿐이다.

또 남부 사투리나 강원도 사투리에 존재하는 ㅣ+ㅡ 발음도 한글로는 표기가 안 된다. 이런……. 한글 우월론자들은 이런 것, 혹은 외국어 발음 또한 옛 훈민정음식 표기를 하면 모두 표기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무리다. 해례본의 이론에 따라 새로 자모를 만들고 보조 기호도 새로 만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발음 습관이 굳어져서 올바른 음가를 발음하지 못한다(거기에다가 외국어를 표기하는 데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 가며 굳이 새로 자모를 만들어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사대강처럼 유형의 건축물들을 짓는 것도 하니고 추상적 기호를 만드는 건데 과연 사회적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까? 비용보단 사람의 두뇌가 필요할 듯). 한국어도 바뀌어 음운 체계가 바뀌는데, 세종이라고 해도 그 모든 미래까지 예측하여 문자를 만들기란 예언자가 아닌 한 불가능하다. 훈민정음은 어디까지나 세종 당시의 조선말(과 세종 당시의 중국어 표기)만을 염두에 둔 글자라, 모든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저 억지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에서 모든 언어와 발음을 표기하는 문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영어 사전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국제음성기호를 들 수 있겠다.
한국인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 띄어쓰기

그런데 문제는 한글로 모든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현재 존재하는(또는 창제당시 존재했던) 한글의 자모로써만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어서 여기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만). 한글은 시스템 자체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가면서 기본글자와 음성학적으로 연관된 소리들을 점점 확장해가며 표기한다(예: ㄱ → ㅋ, ㅅ → ㅿ → ㅈ → ㅊ, ㅇ → ㆆ → ㅎ) 따라서 원리대로라면 기본글자들을 체계적으로 조합하여 인간의 발성 거의 모두를 망라하여 형상화시킬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형상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기본글자와 전혀 다른 발음체계가 인류의 혀에 등장할 경우). 물론 그렇게 따지면 새로운 문자 계속 만들어내면 되니까 이 세상 모든 문자가 못 할 것이 무엇이냐 하겠지만(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단순히 새로운 부호,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이 부호는 어떤 발음으로 하자고 약속하는 차원을 한글은 이미 넘어섰다는 데에 있다. 알파벳의 지(G)와 케이(K)는 형태상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한글은 ㄱ에 획을 하나 더하면 ㅋ이 된다. 또한 ㄷ에 획을 하나 더하면 ㅌ이 된다. 물론 'g'발음과 'k'발음, 그리고 'd'발음과 't'발음은 음성학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발음이다. 외계인이 알파벳을 본다면 전혀 모를 가능성이 많지만, 만약 외계인이 한글을 본다면 그 불필요한 장식 없는 단순함과 놀라운 체계성으로 인해 어느 정도 발음을 유추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아항 ㅇ과 ㆆ은 ㅎ은 똑같은 동그라미에 다른 하나는 위에 선을 하나, 다른 하나는 위에 선을 둘 그었네? 그렇담 ㅇ이 기본발음이고 ㆆ은 그보다 조금 센 발음, ㅎ은 그보다 더 센 발음일 수도 있겠군. 그러고보니 ㅇ은 구멍이나 대롱(pipe)처럼 생겼는데 혹시 목구멍소리(throat sounds)를 상징적으로 그린 것 아닐까? 지구 육지생명체들의 기관지가 대체로 요렇게 생겼던데"라는 식으로 말이다. 한글은 문자의 디자인자체가 음성학적 과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3.5 한글의 기원에 대한 논란: 다른 문자를 직접 계승했거나 적어도 큰 영향을 받았다?[편집]

한글(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해서는 조선 시대부터 근대까지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였다.

3.5.1 파스파 문자 영향론[편집]

세종실록에는 '字倣古篆(글자는 '古篆'을 본땄다)'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인 해석은 '고전 전서체의 상형 방식(또는 글씨체)을 본땄다'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한국학 교수인 개리 레드야드(Gari Ledyard)는 고전(古篆)이 몽고전자(蒙古篆字), 즉 원나라의 공용문자였던 파스파 문자('Phags-pa script)를 가리키는 것이라 주장했다.

480px-Phagspa-Hangul comparison.svg.png

한글의 자음 ㄱㄷㅂㅈㄹ는 각각 발음이 비슷한 ꡂ [[k]], ꡊ [[t]], ꡎ [[p]], ꡛ [[s]], ꡙ [[l]]을 단순화한 형태이며, ㄱ, ㄷ, ㅂ, ㅈ에 획의 변화를 가해 유기음 ㅋ, ㅌ, ㅍ, ㅊ을 만들었고, ㄷ, ㅂ, ㅈ에서 한 획씩 지워 비파열음 ㄴ, ㅁ, ㅅ을 만드는 식으로 한글의 자음이 제작되었다는 이론이다.

고 유창균 교수, 미국의 게리 레드야드 교수나 몇몇 몽골인 교수등이 이 설을 주장한다. #

단, 게리 레드야드는 한글은 파스파 문자의 영향과 독자적 요소가 혼합되어 탄생되었다는 입장이다. 즉, 자음은 파스파 문자에서 따왔으되 ㅇ과 모음은 세종의 창작이라는 것.

3.5.2 그 외 학설[편집]

창작자가 세종이라는 것은 틀림없으나, 옛 전자를 모방하였다는 구절을 가지고 인도의 범자나 한자의 전서체(도장팔때 쓰는 모난 글자)가 기원이라거나, 심지어는 창틀 모방설이 나오기도 했다.

1940년대에 처음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안동본이다. 이 안동본이 위서라느니 하는 말이 있었으나 완전히 같은 내용의 상주본이 최근 다시 발견된다.

일본에서 신대문자라는 한글과 비슷한 문자가 있어 한글은 이것을 모방한 것이라는 설, 가림토라는 고대문자가 있어서 한글은 이것의 모방이라는 설은 한일 유사역사학계에서 나온 떡밥이며, 현재 학계에서는 논의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로 여겨지나, 인터넷 돌다 보면 볼 수 있을 것이다.왜정시대 때 일본에서 한글의 위치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전소설인 불가사리전에는 불가사리의 시체에서 등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야기.

그 이외에 한자 기원설, 구결과 같은 전통 차자표기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학계에서 다루어지는 떡밥이다. 대부분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부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한자나 차자표기가 부분적으로 꽤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의외로 국어학계에서 꽤 유명한 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주변 나라의 모든 기존 문자들을 모아서 그 장점을 참고했을 것이니 아이디어 수준의 영향은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3.6 해례본의 창제원리 설명[편집]

공식 설명서인 해례본의 내용을 보자. 찌그레기들 믿지말고

3.6.1 자음[편집]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 정음 28자는 각각 그 형상을 본떠 만들어졌다.
初聲凡十七字。 초성은 모두 17자이다.
牙音ㄱ象舌根閉喉之形。 아음(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고,
舌音ㄴ象舌附上腭之形。 설음(혓소리)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고,
脣音ㅁ象口形。 순음(입술소리) ㅁ은 입의 모양을 본떴고,
齒音ㅅ象齒形。 치음(잇소리) ㅅ은 이의 모양을 본떴으며,
喉音ㅇ象喉形。 후음(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ㅋ比ㄱ,聲出稍厲,故加劃。 ㅋ은 ㄱ보다 소리남이 약간 더 거세므로 획을 가하였다.
ㄴ而ㄷ,ㄷ而ㅌ,ㅁ而ㅂ,ㅂ而ㅍ,ㅅ而ㅈ,ㅈ而ㅊ,ㅇ而ㆆ,ㆆ而ㅎ,其因聲加劃之義皆同,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ㅇ→ㆆ→ㅎ도 소리에 따라 획을 더한 뜻은 모두 같다.
而唯ㆁ爲異。半舌音ㄹ,半齒音ㅿ,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無加劃之義焉。 그러나 오직 ㆁ은 달리 했다. 반설음 ㄹ, 반설음 ㅿ도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으나[16] 형태는 다르게 해, 획을 더한 뜻은 없다.

말하자면 자음은 발음 기관을 본따 기본자를 만들고 그 뒤에 가획을 하였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체자라는 녀석들이 있지만 그 문자 형태의 기원은 발음 기관의 상형에 있다는 것을 정의해두고 있다.

Velar-nasal-1.jpg
Alveolar-nasal-1.jpg
Bilabial-nasal-1.jpg
아음(연구개음), 설음·치음(치경음), 순음(양순음)을 발음할 때 조음기관 사이에서 폐쇄가 일어나는 부분을 각각 강조한 것. 조음점의 포인트가 잘 잡혀 있어 한글이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음과 설음은 혀를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것인데, 당시에 MRI 따위의 기계가 없었음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수준. ㅅ이 이의 앞모습을 본뜬 것인지 옆모습을 본뜬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참고로 ㅅ을 이의 앞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 한글의 ㅁ·ㅅ과 한자의 口(입 구)·齒(이 치) 안 쪽의 ㅅ 모양은 상형 원리가 완전히 같다.

3.6.2 모음[편집]

자음과 달리 모음 부분의 설명은 꽤 난해한 편이다.

中聲凡十一字 중성은 모두 11자이다.
ㆍ舌縮而聲深,天開於子也。形之圓,象乎天地 ㆍ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子時에 열린 것과 같이 맨 먼저 만들어졌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본떴다.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地闢於丑也。形之平,象乎地也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丑時에 열린 것처럼 두 번째로 만들어졌다. 평평한 모양은 땅을 본떴다.
ㅣ舌不縮而聲淺,人生於寅也。形之立,象乎人也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寅時에 생긴 것처럼 세 번째로 생겼다. 일어선 모양을 한 것은 사람을 본떴다.
此下八聲,一闔一闢 이 밑의 여덟 소리는 하나는 합[17]이고 하나는 벽[18]이다.
ㅗ與ㆍ同而口蹙,其形則ㆍ與ㅡ合而成, ㅗ는 ㆍ와 같으나 입이 오므라지며, 그 모양은 ㆍ와 ㅡ가 어울려 이룸이며,
取天地初交之義也 하늘과 땅이 처음 어우르는 뜻을 취하였다.
ㅏ與ㆍ同而口張,其形則ㅣ與ㆍ合而成, ㅏ는 ㆍ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그 모양은 ㅣ와 ㆍ가 어울려 이룸이며,
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 우주의 작용은 사물에서 나지만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지는 뜻을 취하였다.
ㅜ與ㅡ同而口蹙,其形則ㅡ與ㆍ合而成, ㅜ는 ㅡ와 같으나 입이 오므라지며, 그 꼴은 ㅡ와 ㆍ가 어울려 이룸이며,
亦取天地初交之義也 역시 하늘과 땅이 처음 어우르는 뜻을 취함이라.
ㅓ與ㅡ同而口張,其形則ㆍ與ㅣ合而成, ㅓ는 ㅡ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그 꼴은 ㆍ와 ㅣ가 어울려 이룸이며,
亦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 역시 우주의 작용은 사물에서 나지만 사람을 기다려 이루어지는 뜻을 취하였다.
ㅛ與ㅗ同而起於ㅣ ㅛ는 ㅗ와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19],
ㅑ與ㅏ同而起於ㅣ ㅑ는 ㅏ와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
ㅠ與ㅜ同而起於ㅣ ㅠ는 ㅜ와 같으나 ㅣ에서 시작되고,
ㅕ與ㅓ同而起於ㅣ ㅕ는 ㅓ와 같으나 ㅣ에서 시작된다.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가 기본자이며 그 기본자는 각각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으므로 이 역시 상형자이다. 동양철학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며(평평하며) 사람은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삼재에 대응되는 기본자를 바탕으로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물론 이 대목은 그 만든 이유를 철학적으로 풀이하고 있지만 철학은 모두 빼고 보도록 하자. 국어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양철학은 어렴풋한 그 무엇일 뿐이다.

실은 이런 떡밥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해례본의 설명 자체, 특히 모음 부분의 설명이 아주 어렵다.

현재까지는 해례본의 문장 하나 하나가 어떤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 명쾌하게 해석되고 있지 못하다. 자형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이 구체적인 분석의 바탕이 되는 당시의 언어학적 이론에 대한 이해, 여기에 다시 이 언어학적 이론의 바탕이 되는 동양철학적 맥락 부여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들이 이들을 전부 통합해서 세밀한 부분까지 깔끔하고 꼼꼼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학자들은 철학적 부분에서 막히니까 그 쪽은 논외로 하고 과거 동양철학 쪽에서 훈민정음의 내용을 이해하려던 학자들은 언어학적 분석을 논외로 하니 말이다.

이렇듯 해례본의 모음자 해설이 현대의 음성학적 서술과는 상이한 부분이 있으므로, 당시 모음자의 음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외국어 전사 자료를 동원하곤 한다. '사성통해', '번역박통사', '사성통고', '해동제국기', '조선관역어' 등 당대 중국어, 일본어, 유구어 학습서, 혹은 조선어 음차 표기가 실려 있는 중국 서적들에 나오는 표기를 참고하면 당시 한글의 모음자 발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례본의 모음자 설명에 이런 뜬구름 잡는 듯한 철학적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위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설축(舌縮)', '설소축(舌小縮)', '설불축(舌不縮)', '구축(口蹙)', '구장(口張)'과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데, 각각 '혀가 오그라짐', '혀가 조금 오그라짐', '혀가 오그라지지 않음', '입(술)이 오므라짐', '입(술)이 펴짐'의 의미다.

그런데 설축, 설소축, 설불축의 '축(縮)'은 현대 음성학에서의 "혀의 전후 위치(전설 모음~중설 모음~후설 모음)", "혀의 상하 높이(고모음~중모음~저모음)" 그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기준이다. 그리고 '구축', '구장'은 그나마 "원순 모음"과 "비원순 모음"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20] 'ㆍ, ㅡ, ㅣ'는 구축에도 구장에도 포함되지 않으므로 모든 모음을 원순과 비원순으로 나눌 수 있는 현대 음성학의 기준과는 역시 차이가 있다 하겠다.

대강 '설축'은 혀가 깊이 오그라드는 후설 중모음(ㅗ), 중설·후설 저모음(ㅏ·ㆍ),[21] '설소축'은 혀가 덜 오그라드는 중설·후설 고모음(ㅡ·ㅜ), 중설 중모음(ㅓ),[22] '설불축'은 전설 고모음(ㅣ)을 의미하는 듯하고,[23] '구축'은 원순 모음, '구장'은 비원순 모음인 듯하다. 그러나 논저마다 당대 모음들을 모음 사각도로 배치한 결과가 판이한바, 아직 딱 떨어지는 정설이 없다…. 당대 음가에 대한 음성 자료가 없고 문헌만 존재하는 형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 그런데 국어사 전체를 놓고 보면 한글 창제 이후의 국어 음가 추정은 그나마 쉬운 편이다. 한자를 이리저리 끌어다가 표기해 둔 고대 한국어의 음가는 정말 답이 없다. 고대 한국어 참조.

일단 훈민정음의 모음 설명에 근거하여 현대 음성학에 부합하는 모음 사각도를 그려 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고 생각된다. [[ ]] 속 국제음성기호는 추정치. 물론 추정치이니만큼 완전한 정설은 아니다(이 사각도와 달리 ㅡ가 [[ə]]였고 ㅓ가 [[e]]였다는 견해도 있다).

한글 vowel.png

아닌 게 아니라, 혀가 제일 안쪽으로 오그라진 설축, 덜 오그라진 설소축, 완전히 펴진 설불축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는 한다. 이 각각의 세 부류에 모음 기본자인 ㆍ, ㅡ, ㅣ가 천, 지, 인의 순서대로 배치되는 것. 즉 혀를 안쪽으로 오그렸다가 차차 펴면서 내는 음가를 기본자로 삼은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늘이 자시에 먼저 열리고, 땅이 축시에 열렸으며, 사람은 인시에 생겼다는 성리학적 자연관이 반영된 듯하다.) 그 후 ㆍ에서 입을 오므리면(구축) ㅗ, 입을 펴면(구장) ㅏ가 되며, ㅡ에서 입을 오므리면(구축) ㅜ, 입을 펴면(구장) ㅓ가 된다. 여기까지가 점 하나씩을 더한 초출(初出). 그 다음으로 점 둘씩 더한 재출(再出)자인 ㅛ, ㅑ, ㅠ, ㅕ가 있는데, 이는 구축과 구장을 거친 초출자 ㅗ, ㅏ, ㅜ, ㅓ 앞에 반모음 y[[j]]가 더해진 이중모음이므로(해례본 설명에도 'ㅣ에서 시작되고'라고 나온다.) 사각도에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

ㆍ는 본래 당시 국어 모음 체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음양 이론을 무리하게 대입했기에 만들어진 인위적 모음(!)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에 ㆍ모음이 소멸된 것은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는 것. 이에 따르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 중세 국어의 단모음은 'ㅏ, ㅓ, ㅗ, ㅜ, ㅡ, ㅣ[[a, e, o, u, ə, i]]' 여섯 개였다.[24][25] 이 여섯개 중 'ㅏ, ㅓ, ㅗ, ㅜ[[a, e, o, u]]'를 일종의 음양 대립으로 보아 ㅣ를 중심 모양으로 양 옆으로 점을 찍어 양성 모음 ㅏ[[a]]와 음성 모음 ㅓ[[e]]를 상정하고, ㅡ를 중심 모양으로 위아래로 점을 찍어 양성 모음 ㅗ[[o]]와 음성 모음 ㅜ[[u]]를 상정하였다. 그 다음 남은 'ㅡ, ㅣ[[ə, i]]' 중 ㅣ[[i]]를 중성 모음으로 설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ㅡ[[ə]]를 음성 모음으로 설정하고 나니, 이에 대응하는 양성 모음이 없는(…) 것. 그래서 인위적으로 ㆍ[[ʌ]]를 가정하고 이를 양성 모음이라고 해석했다는 견해인데, 이게 옳다고 본다면 아무래도 새로 글자를 만드는 시점이었으니 그나마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상 가능하다시피, 표기가 한 번 고정되고 나면 새로운 음소나 기호를 덧붙이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 물론 이 역시 확고한 정설은 아니다….

솔직히 중간중간 나오는 오행이나 삼재같은 개념만 무시하면 그냥 간단하게 음운론이거나 글자 사용하는 매뉴얼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긴 한데 사용법이 아닌 내부 구조까지 이해하려면 결국 언어학적 분석과 함께 그런 동양철학의 개념이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 기본자까지는 어찌어찌 설명한다 해도, ㅗ, ㅏ, ㅜ, ㅓ의 초출자에 담긴 의미가 매우 어렵다. 하늘(ㆍ)과 땅(ㅡ)이 어우르고… 우주(ㆍ)의 작용이 사람(ㅣ)을 기다려 이루어지고… 무슨 말인지?

그 중 특히 모음에서 철학적 설명이 많은데, 이는 아마 자음에 비해 분석이 용이하지 않아 그런 듯하다. 실제로 모음에 관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 진 건 X선을 이용해 구강 구조를 관찰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그에 반해 X선 그런 거 없던 15세기에는 알다시피 신하들 입 벌리게 해서 연구했다. 언어학적으로 설명이 힘들 수밖에.

위에서 인용된 부분은 훈민정음해례본의 제자 원리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여기에 여러 가지 부가 설명들과 적용 용례들이 추가되어 있다. 일단 그런 부분들 중 어학적인 내용에 직접적으로 대응되지 않는 것들은 국어학자들에게는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위에서처럼 철학적인 풀이를 무시하고 언어학적인 측면만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언어학적 분석과 철학적 해석이 어떻게든 관련을 맺은 상태에서 제자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철학적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그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것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과학문(언어학, 국어학)의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애써 무시하는 것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할 경우에 많은 부분들이 적절하게 이해되긴 하지만 여전히 100% 언어학적인 설명만으로 제자원리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어학계에서도 제자 원리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까지 완벽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제자 원리에 대해서 아직도 미해결된 부분이 일부 남아 있다. 각종 떡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이다. 단, 이런 미해결된 부분이라는 것은 발음기관의 상형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발음기관의 어떤 모습을 어떻게 시각화한 것인가? ㅅ이 치열을 나타낸 것이냐 이빨의 단면을 나타낸 것이냐 등과 같은 문제. 초성자(자음자)와 중성자(모음자)를 구성하는 기본자들과 거기에 부가되는 각각의 획이 언어학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는가 아닌가 등의 세밀한 부분에 관한 문제. 기본자에 부가되는 획이 특정한 음운적 자질에 해당하는 것인가 그것과는 다소 다른 청각적인 상대적 세기에 해당하는 것인가, 모음을 구성하는 기본자나 그 기본자들의 결합방식이 어떤 음운론적 해석에 대응되는가와 같은, 정말 전문가들이나 관심 있어 할 문제들. 박사 논문에나 나올 이야기이므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넘사벽급인 문제들이다.

해례본에 대한 좀더 통합적이고 정밀한 이해가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여러 떡밥이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나름대로 제자원리에 대해 해석을 해 놓은 것에 대해 맞았다, 틀렸다고 확인해 줄 사람이 없다. 세종대왕이 다시 살아나 "이러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었도다."라고 말해 주지 않는 한, 각각의 연구들은 어느 한 견해가 다른 견해들에 비해서 더 그럴듯할 수는 있지만, 다른 견해들이 그 견해에 의해 완전히 반증될 수는 없다.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에 대한 연구는 주어진 텍스트를 바탕으로 텍스트 이면의 생각을 재구성해내는 작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3.7 디자인의 변화[편집]

현용 한글은 모양이 어느 정도 미학적으로 재구성 되었으나,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은 정말 동그라미, 세모, 네모, 선, 점 이라는 단순한 구성으로만 되어 있고 여기에 딱 구분이 갈 만큼만의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극도의 추상적인 디자인 또한 미학에서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표음 문자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글의 탄생 - 문자 라는 기적》(김지아, 김기연, 박수진 옮김)에서 이 간단한 모양은 무식한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같은 번거러운 서예 도구를 쓰지 않고도 문자를 쓸 수 있도록 하려는 뜻이었다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적거리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문자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하려는 뜻에서 만들어진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한글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서서히 변천해 왔다. 장식적으로 변하고, 모양이 다양해지며 한 자모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건 어떤 문자건 마찬가지다. 소문자 a만 해도 통용되는 모양이 두 개다.

  • ㄱ: ㄱ은 본래 수직으로 꺾어진 모양이었으나, 궁서체 등에서는 7과 비슷하게 휘어진 모양을 가지게 된다.
  • ㅋ: ㅋ은 본래 ㄱ의 안에 수평선이 더해진 모양이지만, ㄱ 위에 수평선을 더한(가타카나의 ラ와 비슷하다) 모양도 나타났다.
  • ㅌ: ㅋ과 비슷하게, ㄷ 위에 가로줄을 긋는 형태가 생겨났다. 특히 이는 북한에서 애용하는 듯하다(문화어 참고).
  • ㅅ: ㅅ은 본래 좌우대칭이지만, 궁서체에서 사람 인과 비슷한 좌우 비대칭 형태가 나타났다.
  • ㅈ: ㅈ은 본래 3획이었으나, 7처럼 된 ㄱ에 2획 형태가 나타난다.
  • ㅊ: 본래의 ㅊ은 ㅈ의 위에 점을 찍은 모양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점이 수직선, 수평선 등으로 바뀌었다.
  • 점이 선으로 바뀜: 모음, 자음에는 본래 점을 사용했으나 대부분의 점이 짧은 선으로 바뀌었다.

3.8 군용 목적[편집]

조선 시대에는 군용 암호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인에게 한글을 알려준 사람을 기밀 유출 혐의로 처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4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개념적 혼란 현상[편집]

재미있는 것은 현대 한국인들은 한글과 한국어를 자주 헷갈린다는 점이다. <영어와 한글>이라든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시기 전에 우리 민족은 중국어로 말했었나요?>[26]라든지, <이 노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해 주세요.> 라든지. 그야말로 착각이 난무한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사용에서 문자가 차지하는 무게가 그 만큼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문자인 한자의 비중이 큰 중국어에서도 중국어를 中文이라고 한다든가, 베트남에서는 반대로 언어 이름(國語; Quốc Ngữ)으로 문자를 부른다든가 하는 예가 있으며, 독자적 문자로 유명한 아르메니아조지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적어도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는 자신들만의 문자가 있는 경우에 언어와 문자는 서로 뗄 수 없는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이해되는 것. 그러니까, 각종 도서, 게임 등등의 매체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은 한글판(한글패치)이 아니라 한국어판(한국어패치)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한글화라는 표현이 자주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올바른 표현이라고 보긴 어렵다.(한국어화가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화"라는 명칭이 굳어진 이유는 해당 항목 참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알파벳(또는 로마자)(문자)과 영어(언어)한자(문자)와 중국어(언어), 가나(문자)와 일본어(언어)등의 관계를 보면 된다. 혹은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hello'는 영어를 로마자로 쓴 거, '헬로'는 영어를 한글로 쓴 거, '안녕'은 한국어를 한글로 쓴 거, 'annyeong'은 한국어를 로마자로 쓴 것이다.

이 문단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점과 같은 개념으로, 가령 '남대문'을 Namdaemun이라 표기하는 것을 영어식 표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역시 틀린 표현으로, 로마자 표기라고 불러야 맞다. '영어식 표기'란 남대문을 South Big Gate 같은 식으로 표기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또는 한국인들은 보통 "한국"을 직접적으로 명시하는걸 꺼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한국어 화자는 한국인에 대해 설명할 때 "한국인"이 아니라 "우리"라고 표현한다. 한국어라는 말도 한국어를 객관화한다는 점 때문에 한국인들이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근데 보통 우리말이라고 하지않나

흥미롭게도 일본에는 한국어를 '한글어'로 표기하는 예가 많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NHK의 한국어 강좌는 '한국어 강좌'도 '조선어 강좌'도 아닌 '한글 강좌'다. '한글어'는 명백하게 잘못 쓴 단어다. 이렇게 쓰면 일본 내에서도 '한글어 같은 건 없다'고 놀림감이 된다. 이는 '한국어'라고 표기할 경우 북한 계열의 단체(대표적으로 조선총련)에서 '조선어'로 표기하라는 항의가 들어오고, '조선어'라고 표기할 경우 반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제3의 대안을 찾은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화어에서는 '한글'이 아니라 '조선글'이라고 하기 때문에 '한글어'라는 명칭도 엄밀히 봐서는 중립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혹은 '한국어'와 '조선어' 양자를 절충해서 '조선한국어'라고 하거나, 영어에서 따온 '코리아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NHK의 국제 단파 방송 NHK Radio Japan의 한국어 방송은 공식적으로 '코리안 서비스'라고 칭한다. 한편 VOA 미국의 소리나 RFA 자유아시아방송 등 자유세계의 방송들은 '한국어'라고 부르는 반면, CRI 중국국제방송이나 VOR 러시아의 소리 등 공산권이거나 공산권이었던 지역에서는 '조선어'라고 칭한다. 다만 인민일보에서는 대한민국 표준어판에선 '한국어', 중국조선어판에서는 '조선어'라고 칭한다.

5 제작자와 제작시기가 명시된 유일한 글자?[편집]

전세계에서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려진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는 생각이 국내에는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파스파 문자도 티벳 승려인 파스파(팍파)가 1268년에 티벳 문자를 본따 창제한 것이고, 태국 문자람캄행 대왕이 1283년에 창제하였으며, 인도 동부의 산탈리어올치키 문자는 Pandit Raghunath Murmu가 1925년에 제작하였고, 이눅티툿어의 음절 문자는 선교사 제임스 에반스가 1840년에 창작한 문자인 등 찾아보면 적지 않다. 그리고 점자도 있고. 키릴 문자도 창제자와 그 동기가 뚜렷한 문자다. 키릴과 메포지라는 두 형제 선교사가 슬라브 지역에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서 만든 문자다. 이러한 이유로 동방 정교회에선 키릴과 메포지를 위대한 성인으로 모신다.

이외에는 위키백과 한국어판문자를 발명한 사람 목록이나 영어판List of inventors of writing systems을 참조. 정말 많다. 물론 개중에는 라틴 문자의 단순 변용이나 속기법을 위한 변용인 경우, 혹은 단순한 시도에만 그치고 널리 퍼지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지만 그걸 빼고 보더라도...

단 이중에서 문자의 창제원리가 문서화되어 남아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외에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Pandit Raghunath Murmu 역시 자신이 창제한 문자를 직접 이용해 Ol-chemed나 Parsi-Poha 등의 입문용 저서를 쓰기도 했는데 이 저서들이 창제 원리 역시 소개하고 있는지는 불명. 단, 올치키 문자의 제자원리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로 보았을 때 (글자의 이름에 대응하는 형상들을 추상화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마 올치키 문자 역시 어떤 형식으로든 제자원리가 문자화되어있을 개연성이 크다.

6 비한국어 사용지역에서의 한글 이용[편집]

인도네시아에 사는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찌아찌아족 교사를 한 명 섭외하여 초등학교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한글로 적힌 찌아찌아어 교과서인 <바하사 찌아찌아>를 교육한 바 있다. 찌아찌아어 항목 참고. 2012년에는 추가로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주와 말라이타주가 한글을 표기문자로 도입했다. 솔로몬 제도 항목 참조.

일본 쓰시마 섬에서 전해지는 아비루 문자일본어 오십음도 체계를 약간 변형된 한글로 표기하는 체계이다.

7 외국어 표기법[편집]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점이 '한글은 발음 기호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다. 한글은 발음 기호가 아니고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식 문자이다. 따라서 외국어를 표기하는 것도 최대한 외국어 발음을 근사하게 모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들이 최대한 의사소통에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차피 boy하고 '보이'조차 음가가 같지 않는 등 외국어를 그대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spin을 놓고, '사실 이 발음은 스삐인에 가깝다'고 쓴다든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필요하다. 정확한 발음을 알리고 싶다면 발음기호를 쓰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clover를 누구는 크로바라고 하고, 누구는 클로바, 클로버, 크로버, 클러버, 클러바…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쓰면 곤란하다. 표준어를 제정하고 의무교육에서 맞춤법을 배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어 사용자라면 다른 한국어 사용자가 쓴 글이나 발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골리앗오렌지이라고 쓰고 누구는 걸라이엇어린쥐이라고 쓰면 곤란하다. 처음 듣는 사람은 두 개가 같은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게다가 인터넷 등 색인화되고 검색화된 정보가 많은 세상에서 이는 치명적인 낭비가 될 수 있다. 단적으로 final fantasy를 검색할 때, 파이널 판타지로 할 것인가 화이날 환타지(또한, 파이날 판타지 등등등…)로 할 것인가로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어를 표기하는 것이므로 명백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표기에는 문제가 있다. 가령 바닷가재를 뜻하는 lobster의 공식 표기는 '로브스터'다. 하지만 lobster는 누가 들어도 '로브스터'보다는 '랍스터' 또는 '랍스타'에 가깝다('로브스터'로 옮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참고). 또 된소리 표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본래 발음에서 동떨어진 표기를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표준 표기법과 다른 표기라고 해서 무조건 틀렸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8 단점[편집]

한글의 단점은 바로 비슷하게 보이는 글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홍'과 '흥'은 작은 글씨에서는 잘 구별되지 않고, '것'과 '깃', '를'과 '틀', '의'와 '익' 등도 얼핏 보면 비슷하다. 서적이나 신문, 방송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그대로 나오는 오자들도 대부분 저렇게 비슷한 글자들로 인한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을 '이멍박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렁'으로 잘못 입력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보낸 방송국도 있었다.

이 단점은 OCR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27], 한국어 화자들이 주로 접하지 않는 외래어의 표기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때도 있다. 한국어 화자들은 '훨'(ㅎㅝㄹ)윈드를 '휠(ㅎㅟㄹ)윈드'로 잘못 읽기도 하고 홋(ㅎㅗㅅ)카이도를 '훗(ㅎㅜㅅ)카이도'로 잘못 읽기도 하고 삿포로(ㄹㅗ)를 '삿포르(ㄹㅡ)'로 잘못 읽기도 하고 '퀄(ㅋㅝㄹ)리티'를 '퀼(ㅋㅟㄹ)리티'로 잘못 읽기도 하며, 실제로 휠윈드, 훗카이도, 삿포르, 퀼리티 등으로 잘못 적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홋(ㅎㅗㅅ)카이도, 삿포로(ㄹㅗ), 퀄(ㅋㅝㄹ)리티는 올바른 표기가 아직 일반적이지만, 훨(ㅎㅝㄹ)윈드/휠(ㅎㅟㄹ)윈드의 경우 아예 휠(ㅎㅟㄹ)윈드로 정착하고 말았다.

또한 '쫓(ㅉㅗㅊ)다'를 '쫒(ㅉㅗㅈ)다'로 잘못 적는 경우도 많이 보이는데, 이것도 '쫒(ㅉㅗㅈ)'과 '쫓(ㅉㅗㅊ)'의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음성적으로 비슷한 자음을 문자상으로도 비슷하게 적는 한글의 장점(유기음(ㅋ, ㅌ, ㅍ, ㅊ)은 무기음(ㄱ, ㄷ, ㅂ, ㅈ)에 획을 더해 나타냄)이 오히려 단점이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끊다'와 '끓다'는 분명히 뜻도 발음도 다른데, '끊'과 '끓'의 전체 모양이 비슷하다 보니 글로 적을 때 둘을 무심코 혼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예: 기름없이 튀기고, 끊는 물 없이 데치는 ‘스마트오븐’).

잉크가 번지거나 복사가 선명하게 되지 않으면 정확히 어떤 글자를 의도했는지 알아보기 힘들어지기도 한다(특히 홋/훗, 홍/흥, 퀼/퀄과 같이 획이 빽빽한 경우).

이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한글의 글자 크기가 지금처럼 작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5세기의 한글 글자 크기는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컸다.

한글에 비슷하게 보이는 글자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 바로 야민정음이다.

9 풀어쓰기[편집]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갖는 한 가지 애로사항은 바로 '모아쓰기'이다. 낱자로만 본다면, 알파벳과 비슷하여 개념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이것을 모아쓰고 발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음절을 표기하지 않는 언어 체계에서도 사전에서 단어마다 음절을 구분해주는 경우는 많다. 영어에서 absentee를 ab·sen·tee로 표기하듯이 말이다.[28] 또 일반적으로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자음으로 음절을 정의하는 한글의 모아쓰기의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할 수 만은 없다. 오히려 자음과 모음은 언제나 같이 발생한다는 규칙을 예외없이 적용했으므로 언어학자들 입장에선 더 정리정돈된 표기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의 입장과 그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음절을 표시한 것이기는 하나, 그 음절은 한국어에만 통용되는 자의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한 음절인 것이 외국인에게는 두 음절 이상으로,(야=이아, 여=이어, 요=이오, 유=이우) 혹은 반대로 외국인에게 한 음절인 것이 한국인에게는 여러 음절로 들리는 구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어단어 'hour' 의 경우 한글로는 '아워' 혹은 '아우어'로 2~3음절로 나누어 표기하지만 영어에서는 하나의 음절로 취급한다. 언어학자들에게는 그 언어의 음절 표시를 명확하게 해 주니 편하고 좋겠지만,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지는 셈이다.

10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가?[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판단하는 언어학자들이 더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글이 창제된 것은 1400년대의 일로, 현대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수를 자랑하는 문자들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전에 만들어진 문자이며, 짧은 시간안에 몇몇의 학자들이 조직적으로 연구하여 만들어진 체계적인 문자라는 부분이 여러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이다.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이나 훈민정음 기록문화유산 등재 등의 사례로 인하여 마치 유네스코가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유네스코의 세종대왕상의 정식 명칭은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으로 문맹 퇴치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비용 부담과 전제 왕권의 군주가 직접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창제했다는 점에서 정해진 이름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국제 기구가 문맹 퇴치와 무관한 이름을 붙여 줄 리 없다. 또한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지 훈민정음 자체가 아니다. 문자를 만든 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만들어 문자의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고 그 이론의 논리정연함도 세계 언어학자들이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에 기록 자체의 가치가 인정 받은 것일 뿐이다. 만약 알파벳이나 가나도 해례본이 존재했다면 같이 등재되었을 것이고 아니면 그렇게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의 가치가 오직 해례본이 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보는 것 또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니 조심하자. 한글에 해례본이 없었거나 또는 알파벳에 해례본이 있다고 쳐도 우리들의 얘기와 언어학자들의 관심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유네스코는 모든 말과 글이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소중한 인류 유산이라 여기고 특정 문자나 언어 자체를 세계유산, 기록유산, 공용어, 무형유산으로 지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유네스코가 공식적으로 '한글은 이제부터 우리가 인정하는 세계공용문자다'라고 공표한 것은 아니니 거기에 집착하지는 말자.

여담이지만 이 밖에도 한글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 알게 모르게 상당히 퍼져 있으니 판별하며 수용하자.심지어 교과서에도 있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과학 잡지 디스커버리 1994년 6월호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the world's most rational alphabet)'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The king's 28 letters have been described by scholars as "the world's best alphabet" and "the most scientific system of writing." They are an ultrarational system devised from scratch to incorporate three unique features."

다만 다이아몬드는 언어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감안해야 할 부분. 시카고 대학교의 지금은 작고한 제임스 맥컬리 교수도 한글을 찬양했다. 한국인들도 별로 신경 안쓰는 한글날을 매년 학생들과 기렸다고. 특정한 문자 체계에 대한 일부 언어학자들의 긍정적인 관심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영국의 역사 다큐멘타리 작가 존 맨은 자신이 쓴 Alpha Beta(번역서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남경태 옮김)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그리고, 영국의 언어학자인 제프리 샘슨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 가운데 하나다.

라고 말했다.

또한,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Institute of Polynesian Language and Literature) 소장 스티브 로저 피셔는 자신의 저서인 A History of Writing(번역서 <문자의 역사>(박수철 역)에서

한글은 알파벳보다 우월하다.
한글의 문자체계는 세계 유일하다.
개량이 아니라 언어학적 원리에 의한 의도적인 발명의 산물이다.
한글은 다른 모든 문자로부터 독립적이고, 완전하다.

라고 설명했다.

11 한글이 없었다면?[편집]

흔히,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 어려운 한자를 배우느라 진땀을 흘렸으리라는 요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라틴 문자를 받아들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경우를 봐도 알듯이 만약에 한글이 창조되지 않았다면 한국어도 근대 이후에 미국의 영향을 받아 라틴 문자로 표기되었을 가능이 높다. 심지어 한자 종주국 중국조차도 한때 라틴문자(알파벳)을 사용한 언어교육을 실험한적이 있다. 국공내전 당시 중국 공산당을 묘사한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연안 팔로군 시절 일부 학교에서 한자를 완전 배제하고 라틴문자로만 중국어를 교육하는 실험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은 이를 포기하고 한자를 간략화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가타카나를 쓸수도 있었다. 일제 침략기 일부 이런 시도가 있긴 했다. 그러나 한국어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가나 문자의 뚜렷한 한계로 곧바로 폐기되었다. 대만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타이완어 가나. 해방 후 북한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키릴 문자를 썼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한문과는 달리, 한국어는 한자로 온전하게 표기할 수 없는 언어이다.

한자와 한글이 한 글자씩 대응하도록 한자음 표기도 염두에 두고 창제된 한글 대신에, 라틴 문자가 한국어의 표기 자모로 사용되었다면, 한자와 라틴 문자의 그 이질성 때문에 한자가 지금보다 오히려 덜 사용되었으리라고도 상상해볼 수 있다.오오 실제로 베트남이 그렇다. 물론 19세기 말에 한자 배척운동이 있기도 했지만 라틴 문자를 사용하는 관계상 한자와의 혼용은 무리이고, 그로 인해 상당수 단어가 한자어임에도 현재 베트남에서 한자어가 유래가 된 단어의 원래 한자가 무엇인지는 관련 연구자들 외에 일반 언중들은 거의 모른다(혹은 관심없다). 河內市가 어디야?

그리고 라틴 문자와 한자가 혼용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만 해도 표음 문자와 표의 문자가 같이 쓰이는데 이는 가독성 때문이다. 특히 한국어의 경우 한자 단어의 수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가독성을 고려하여 한자도 같이 쓰였을 수 있다.

물론 라틴 문자보다 한글이 한국어를 더 표기하기 적합한 것은 당연하므로 한글 창제를 다행으로 여길 이유는 충분히 있다. Choesohan ireoke geureul sseul ireun eopseunikka marida. (최소한 이렇게 글을 쓸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예시

예를 들어, 음절 길이의 경우 모아쓰기 방식의 한글과 달리 라틴 문자는 일정하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한글의 경우 음절의 길이가 한 토막으로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 반면에, 풀어쓰기인 라틴 문자의 경우에는 음절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특징이 있다. 음절에 CV(초성자음+모음), CVC(초성자음+모음+종성자음), CVCC(초성자음+모음+종성자음1+종성자음2)등 임에도 음절 형태가 한 글자로 고정되는 한글에 비하여, 라틴 문자같이 풀어쓰기를 할 경우에는 음절의 길이가 일정치 않아서 문장의 길이가 더 길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일본의 음절문자인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한글처럼 한 음절로 일관되게 표기하기에는 불완전한 면이 있어서 모라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しゃ, しゅ, しょ 같은 경우에는 모라의 개념으로도 설명이 애매해진다.[29] 한글의 경우 음절 문자인 가나 문자보다 한층 더 엄격하게 음절을 정렬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한글이 없어서 일본의 가나 문자를 들여왔다면 라틴 문자보다 더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이|렇|게|글|을|쓸|일|은|없|으|니|까|말|이|다|
choe|so|han|i|reo|ke|geur|eul|sseul|ir|eun|eop|seu|ni|kka|mar|i|da|

음절 구분도 힘들어서 한글에서 기본적으로 가능한 음절 구분이 라틴문자로는 구분점을 써야 그나마 음절이 구분되는 등 음절 구분이 중요한 한국어에는 무리가 따른다. 즉, 한글로 썼을 경우 문장을 모두 붙여써도 '최쓸' 등이 각각 독립된 음절이라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데 반하여, 라틴 문자로 쓴 문장을 붙였을 경우 어떻게 음절을 끊어 읽어야 할지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표음성이 헬게이트영어에서 매우 잘 나타나는데, 단적으로 Pothead. Pot-head(폿헤드)인지 Po-thead(포thㅣ드)인지 글자만 봐서는 알 길이 없다. 특히 resume(다시 시작하다)과 résumé(이력서)이라는 단어가 그런데, resume은 re-sume(리줌)으로 되나 résumé(레쥬메이)은 ré-su-mé가 된다.[30] 최소한 한국어는 한글 글자대로 읽어도 강세 등 어감이 낯설어질 뿐 의미 전달에는 크게 문제는 없지만, 영어는 그런 거 없다. 무조건 해당 단어의 발음을 외워야 하며, 그나마도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개판 5분 전 상황이다.[31][32] 그래서 외국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여러 어휘들을 각각의 음절로 쪼개는 방법을 따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한글에서는 음절의 기본 단위인 onset(초성), nucleus(중성), coda(종성)으로 음절 별로 한 음절 씩 끊어 표기하고 있지만, 풀어쓰기 식으로 쓸 경우 그런 음절의 구성요소에 대한 구별 없이 오직 자음, 모음으로만 표기되기 때문에 해당 자음이 음절의 종성인지 아니면 음절의 초성인지 헷갈리게 된다. 종성의 발음이 초성의 발음과 다른 한국어에서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그래서 만약에 라틴문자를 한국어로 무리없이 쓰려고 한다면 종성의 글자가 초성의 글자와 서로 다르거나 특별히 종성임을 나타내는 보조기호가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음절문자(가나, 이누이트 음절문자 등): 음절을 띄어쓰기 없이 바로 구분할 수 있지만, 자음과 모음으로 쪼개지지 않고 통으로 개음절(body)이 된다. 다만 가나 문자의 경우[33]에는 촉음이나 비음같은 경우는 뒤로 늘여져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완전한 음절문자라면 폐음절, 개음절 상관없이 하나의 글자로 축약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34]

구별할 수 있는 특성: 음절
구별할 수 없는 특성: 자음[35], 모음

예)
(개음절)(개음절)-촉음(개음절)(개음절)-비음(개음절)(개음절)

음소문자(라틴문자, 그리스문자 등): 자음과 모음이 쪼개져서 자음인지 모음인지 알아볼 수 있지만, 그냥 자음으로만 표기되기 때문에 어느 자음이 초성이고 종성인지 알아보기 힘들고 띄어쓰기나 철자법 등의 도움 없이는 음절 구분이 어려워진다. 특히 모두 붙여써서 길게 늘여놓은 단어나 문장은 훨씬 어려워지게 된다.

구별할 수 있는 특성: 자음, 모음
상황에 따라 구별하기 힘들어지는 특성: 초성, 종성, 음절

예)
자음+모음+자음+자음+모음+자음 모음+모음+자음+자음 자음+모음+자음+모음 자음+자음+자음+자음+모음+자음+모음

한글[36]: 모아쓰기라는 특유의 공간활용을 통해 자음이 초성(onset), 종성(coda)로 바로 구별되고, 또한 음절마다 일련의 공간을 주기 때문에 음절문자처럼 음절을 띄어쓰기 없이 바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가나 문자와 달리 폐음절, 개음절 상관없이 하나의 공간에 축약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별할 수 있는 특성: 초성, 중성, 종성, 음절

예)
(초성+중성+종성)(초성+중성)(초성+중성)(초성+중성+종성) (초성+중성+종성)(초성+중성)

최소한이렇게글을쓸일은없으니까말이다
choesohanireokegeureulsseulireuneopseunikkamarida
Choe·so·han·i·reo·ke·geur·eul·sseul·ir·eun·eop·seu·ni·kka·mar·i·da

즉 위의 문장도 Choe·so·han i·reo·ke geur·eul sseul ir·eun eop·seu·ni·kka mar·i·da.처럼 표기해야 한국어 기준으로 그나마 읽기가 편해진다. 사실 티베트 문자도 이러한 이유로 음절 구분 점으로 음절을 모두 구분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베트남어의 쯔꾸옥응으는 음절 구분을 더 쉽게 하기 위해 모두 음절별로 띄어 쓰고 있다.[37]

단, 완전히 로마자로 채택된 경우에는 저렇게 쓰는게 아니라 베트남어처럼 기타 부호를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한글 키보드에서 입력의 편의를 위해 특수한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데, 완전히 로마자로만 입력할 경우 그것은 별 문제가 안 되니까... 그래도 현재 한글로 쓴 문장보다는 지면을 더 넓게 차지하는 편이다.

최소한 이렇게 글을 쓸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Cösohan iróh'ge gır'ıl ṡıl ir'ın óbs'ıniġa mar'ida.
Cö·so·han i·róh·ge gır·ıl ṡıl ir·ın óbs·ı·ni·ġa mar·i·da.

일례로 미국 이민자 학생들이 스마트폰이 없을때 핸드폰에 한글이 안돼 로마자 표기법을 빌려 문자 타이핑을 했다고 한다.

12 한글 학습의 난이도[편집]

한글은 다른 문자에 비해 배우기가 쉬우며 외국인들도 단시간 안에 간단한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요지의 생각 역시 널리 퍼져 있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동화책만 읽어주어도 아이가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동화책에 적힌 형상을 연결시켜 저절로 한글을 깨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걸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표음문자 자체가 그렇게 배우기가 어려운 경우는 드물다.[38]키릴 문자그리스 문자, 아랍 문자같은 경우도 집중해서 배우면 하루만에 깨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모를 풀어쓰는 세계의 대부분의 문자와는 달리 초성/중성/종성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이루는 독특한 체계에다가, 종성의 발음이 뒷 글자에 따라 바뀌는 등,[39][40] 한글은 다른 문자에 비해서 누구에게나 마냥 익히기 쉽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마 '한자에 비해서 익히기 쉬운 글자'라는 개념이 잘못 알려지면서 '다른 문자에 비교해 보아서 익히기 쉬운 글자'로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글자 모양 자체가 간단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다른 문자와 비교해도 한글은 일체의 장식 요소를 배제하고 만들어졌음은 자명하다. 이는 한국인 뿐만이 아니라 한글을 아는 외국인들이나 외국 학자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한글이 단순해 보이는 게 그냥 그에 익숙한 한국인들만의 느낌이라고 일축하는 건 조형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글의 디자인은 몇백년 전에 만들어진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기능주의[41]적이다.

자음의 구성은 기초적인 기하학 도형인 삼각형, 사각형, 원형(세모, 네모, 동그라미)을 틀로 잡고 여기에 선, 점 만을 더하였다. 모음은 더 간단한데 기본모음 ㅏ ㅓ ㅗ 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직선과 수평선, 점을 조합해 이를 네방향으로 이리저리 돌렸다.[42] 굉장히 추상적이고 직관적인 모양이면서도, 문자를 혼동하는 일이 없이 명확한 구분이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다. 야민정음은?

이렇게 알파벳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세계 어떤 문자 체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야는 숫자마저 굉장히 예술적이다 노마 히데키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구성은 한글을 실제로 읽고 쓰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한글을 소개하는 외국 서적들을 보면 한글의 조형적 미나 심플한 디자인에 대한 언급이 거의 대부분 있다. 즉, 언급을 할 만하니깐 언급을 한다는 거다.

또한 각 글자간의 관계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 음성학적으로 비슷한 소리끼리 비슷한 형상으로 묶여있기에(양순음 ㅁ, ㅂ, ㅍ 등) 학습의 용이성 역시 존재한다. 다만 유사한 소리들이 유사한 형태를 띠는 것이 한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ㅁ, ㅂ, ㅍ에 해당되는 태국 문자 자음은 각각 บ ม ป로, 그 형태가 비슷하다. 음성학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다면 비슷한 글자가 많은 게 오히려 처음에는 더 헷갈릴 수도 있다. 아랍 문자에서 ﺏ ﺕ ﺙ(오른쪽부터 바, 타, 사)는 점 말고는 차이가 없지만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바, 타, 사 발음의 공통점이 와닿지 않아서 외우기 힘들다.

일반적인 다른 문자들이 상형 문자가 단순화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각의 발음과 모양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닥치고 그냥 외워야 하는 것과는 달리 혀와 이, 입술 등의 조음 기관을 본따서 만든 한글이 분명 외국인이 보아도 납득하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한글의 상형성에 관해서는 앞서 파스파 문자 영향론에서 소개했듯이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당대 출간된 공식 설명서인 해례본은 조음 기관을 상징화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실제로 언어학자 알렉산더 멜빌 벨이 발음을 직접 들으면서 문자를 배울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고안한 Visible Speech(보이는 음성)라는 문자도 한글처럼 조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문자였다.

한편, 묵음이 없고 글자와 발음이 정확하게 1:1 대응이 되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것은 한글의 특징이라기보다는 한국어 정서법과 관련된 문제이다. 정서법에 따라 같은 알파벳을 쓰더라도 글자와 발음이 정확하게 대응되는 언어(주로 북유럽권)도 있으며, 영어처럼 철자와 발음이 따로 노는 언어도 있다. 한국어는 20세기에 표기가 정착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그런 문제가 적으나, ㅐ와 ㅔ의 구분이나 ㅚ/ㅞ/ㅙ/가 거의 발음이 같아졌음에도 표기가 다른 등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사실, 한국어의 표기법은 '소리대로 적되 형태를 살려서 적는다'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적는 그대로 읽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무튼 발음/글자 문제는 사용 언어의 문제이니 여기서는 깊게 다룰 필요가 없다.

영어권에서 동북아시아 문자를 각각 식별하는 법여러가지 소개 되는데 엿먹으라고 새끼고양 한자를 보면 일단 무서운 건 서양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러나 정작 서양 사람들이 문자로 문신 새길 때 많이 쓰는 문자 중 하나가 한자.한글에 대한 특징으로 다수의 원(이응)과 직선을 꼽으며 다른 동북아시아 문자에 비해 좀 더 식별하기 쉽다고 하고 있다. 이를 두고 획순이 많은 한자와의 비교이니 그다지 형평성은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초에 이는 어느게 낫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영어 구사자에게 한글이 어떻게 보이느냐이다. 그리고 예문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있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한글을 배우는 것과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별개이므로 혼동하진 말자. 미국 국무부 외국어 서비스 센터(FSI)는 한국어를 초고난도 언어로 분류했다고 했다. 물론 이는 비슷하게 분류된 다른 언어들(중국어, 일본어, 아랍어)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알파벳 문화권의 관점에서 가장 동떨어진 문자체계를 가진 언어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므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한국어 화자와 일본어 화자간에는 서로의 언어가 영어나 다른 서구 언어보다 배우기 쉬운 것이 당연하다.

13 한글만능론[편집]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과도한 나머지 국내에서는 간혹 '한글로 이 세상의 모든 발음(혹은 거의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도시전설에 가깝다. 한자나 가나보다 영어 발음을 좀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장된 것이다.

14 한글과 문맹률[편집]

현대 한국의 문해율은 99%이긴 한데, 이건 한글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의 교육 제도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입시위주 교육을 들면서 어딜 봐서 한국의 교육 제도가 뛰어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교육 자체의 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에 대한 것이다. 의무 교육 제도로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하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문해율이 높은 것은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이나 대만을 비롯한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이것 역시 교육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해율은 국민의 의무교육 접근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문자 그 자체의 속성에 의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45년 광복 당시 한국의 문맹률은 77.8%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1940년대 후반-50년대의 대대적인 문맹퇴치 작업과 초등교육 의무화를 거쳐서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그러한데도 70대의 비문해율은 20.2%에 달한다.#

교육과정을 볼 때 한국은 초등학교 1~2학년에 한글 기본을 깨치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건 다른 나라에서도 얼추 비슷하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대략 3학년까지만 병음과 한자를 혼용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한자를 직접 읽는다. 일본에서 초등학교 내내 한자를 배워야 하긴 하지만 이건 일본의 3문자 체제가 워낙 특이해서 그런 것.

다만 위의 비교는 정규 교육과정에 따른 것일 뿐 실제 현실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한글 습득연령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매우 빠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유아단계에서부터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통례다. 엄마들이 이용하는 유아교육 관련 카페나 상담사례등을 보면 약 24개월 정도면 대부분 부모들이 한글 읽기를 가르치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5살이 되면 약 80%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한국아동학회가 펴낸 <2001년 아동발달백서>를 보면, 만 1살 때 글읽기를 가르치는 비율이 27.3%고, 쓰기는 11.4%로 나타났다. 글읽기는 5살 정도가 되면 84.0%가, 글쓰기는 3살이 되면 52.7%가 각각 가르쳤다. 이렇게 한글 깨치기 조기교육을 하다 보니 3살 아이의 24.3%, 4살은 44.0%, 5살은 76.0%가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기 문해교육은 실제 한글이 배우기 쉬운 문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부모들이 '한글은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과다한 교육열 및 그러한 분위기가 유발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15 '한글'의 로마자 표기 및 외국어 표기에 대해[편집]

이 섹션에서는 '한글'이라는 명칭의 로마자 표기와 외국어 표기에 대해서 서술한다.

'한글'의 로마자 표기는 2000년에 개정된 문광부식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면 hangeul이지만, 그 이전부터 쓰이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han'gŭl이고, diacritic을 생략한 hangul이라는 표기가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특히 영어권)에서도 2000년 이전부터 훨씬 널리 쓰이고 있었다. 2000년 이후 정부와 국내 일부에서는 hangeul로 표기를 바꾸었지만 아직도 사용 빈도는 hangul 쪽이 월등히 많다. 실제로 영어권에서 출판한 대사전급의 영어 사전에는 대부분 hangul로 실려 있다.[43] 그냥 영어 표기는 hangul, 로마자 표기는 hangeul로 생각하면 된다('한국'의 영어 표기가 Korea, 로마자 표기가 Hanguk인 것처럼. 라틴 문자 항목 참고).
다만, 국립국어원은 영어에서도 Hangeul을 쓰자는 시안을 내놓기는 했다. 국립국어원은 한국어를 관리하는 기관이지 영어를 관리하는 기관이 아닌데, 왜 국립국어원이 영어까지 건드리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영어 hangul을 Hangeul로 바꾸자고 한다면 영어 Korea도 Hanguk으로 바꾸자고 하지 그러냐

16 기윽인가 기역인가?[편집]

많은 사람들이 기역을 기윽, 시옷을 시읏이라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또 방송에선 이걸 가지고 아나운서 등이 나와 잘못된 발음이라 지적한다. 참고로 남한에선 기역, 디귿, 시옷이라 하고, 북한에선 기윽, 디읃, 시읏이라 한다. 이는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굳이 한글이름을 한자로 적은 것에서 기인하는 문제인데, 한자로 적을 수 없는 기윽의 윽은 발음이 나름 비슷한 '역'(役)으로 적어 기역(其役)으로, 디읃의 읃은 읃과 발음이 비슷한 귿(끝)을 뜻하는 한자 '말'(末)로 적어 지말(池末)로, 시읏의 읏은 읏과 발음이 비슷한 옷으로 표기하기 위해 '옷 의'(衣)자를 써서 시의(時衣)로 적은 것이다. 이를 북한에선 이두표기로 인한 잘못으로 보고 '기윽 디읃 시읏'으로 고친 반면 남한에선 한자의 표기자체를 그대로 살렸다. 물론 이로 인한 남한학계의 반성(?)이랄까,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상당히 많다.

자음(ㄱㄴㄷㄹ...)은 단독으로 음가를 낼 수 없고 반드시 모음(ㅏㅑㅓㅕㅗㅛ...)의 도움을 받아야 발음할 수 있는데, 가장 발음하기 편한 기본모음가운데 하나인 'ㅣ'와 '으'를 통해 자음의 음가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첫소리(초성)와 끝소리(종성, 받침)에서 나는 발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이미 음성학적으로 의도된 이름들이다. 다시 말해 자음의 이름자체에 자음에서 나는 첫소리와 끝소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줌으로써 명칭의 효용성을 최고로 높이고 있는 셈이다.(이상 참고는 http://blog.daum.net/jhistory/8739150) 그런데 기역이니 디귿이니 시옷이니 하는 건 이러한 한글이름을 지은 학자의 의도를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훈몽자회』에 나온 한자의 이두표기라는 역사의 특수성만을 살린 것이라 문제가 많다.

17 기타[편집]

한국의 경우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같은 한자에 여러 발음이 나오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편인데, 그 이유가 한글의 보급에 있다고 한다. 즉, 발음을 문자화시켰기 때문에 지역별로 혼선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 없기에 하나의 한자에 하나의 발음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18 관련 항목[편집]

  1. 가끔 성문 파열음([[ʔ]])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2. 국립국어원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에 근거한 발음.
  3. 사실상 ㅐ[[ɛ]]와 ㅔ[[e]]가 [[e̞]]로 합류한 것이 주원인. ㅐ와 ㅔ의 구분 참고.
  4. 용언 활용형의 '져, 쪄, 쳐'일 때. e.g. 가져[[가저]] ㅈ, ㅉ, ㅊ 다음의 이중 모음 참고.
  5. '예, 례' 표기 이외일 때. e.g. 계시다[[계ː시다/게ː시다]], 폐[[폐ː/페ː]]
  6. '예, 례' 표기 이외일 때.
  7. 음절 위치에 상관 없이, 표기상 자음을 첫소리로 가지고 있을 때. e.g. 띄우다[[띠우다]], 유희[[유히]]
  8. 단어의 첫음절 이외에서, 표기상 자음이 없을 때. e.g. 주의[[주의/주이]], 협의[[혀븨/혀비]]
  9. 조사일 때. e.g. 우리의[[우리의/우리에]], 강의의[[강ː의의/강ː이에]]
  10. 조사일 때.
  11. 운(중성+종성)을 기준으로 한자를 분류한 일종의 사전
  12. 세종의 총애를 받은 승려로서 세종이 승하하면서 유언으로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 뿐 아니라 우리 역사 전체를 볼 때에도 왕이 이렇게 법호를 내리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참고로 신미대사의 동생도 세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동생은 김수온이라는 유학자로 병조정랑, 지영주군사, 판중추부사, 호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제수했다고 한다.
  13. 범어(梵語), 고대 인도말, 산스크리트어를 말한다.
  14. 불교에서 인간의 모든 번뇌가 총 108가지라고 한다.
  15. 한자음에서 초성의 ㅇ은 이모(以母, 경구개 접근음)와 운모(云母, 유성 연구개 마찰음으로 추정)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16.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ㄹ은 혀 모양이 ㄹ 모양으로, ㅿ은 이 모양이 ㅿ 모양으로 된다는 건데(...), 이건 아예 말이 안 되고 그냥 설음과 치음의 기본음이 되는 ㄴ과 ㅅ을 모양의 베이스로 삼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17. 원순 모음
  18. 비원순 모음
  19. ㅣ 발음과 ㅗ 발음을 연이어 하는 발음이라는 뜻이다
  20. 위 해례본의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여덟 자 중 '합(원순 모음)'은 '구축'인 ㅗ, ㅜ, ㅛ, ㅠ에 해당하며, '벽(비원순 모음)'은 '구장'인 ㅏ, ㅓ, ㅑ, ㅕ에 해당한다.
  21. 이 세 모음은 모음조화에서 양성 모음으로 분류된다.
  22. 이 세 모음은 모음조화에서 음성 모음으로 분류된다.
  23. 이 한 모음은 모음조화에서 중성 모음으로 분류된다.
  24. 여기서는 ㅡ가 [[ə]]였고 ㅓ가 [[e]]였다고 본다.
  25. ㅡ[[ə]]는 고대 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던 모음이었는데, 중세 국어 시기에 들어 음절 말 자음(받침)을 명확히 발음해 주기 위해서 추가된 음소로 본다. 예를 들어 '먹-'이라는 어간 뒤에 '-며'라는 어미가 오면 발음이 동화되어 [[멍며]]가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해 'ㄱ'를 확실하게 발음해 주기 위한 새로운 중성적 모음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ㅡ'였다는 것. 이를 추가하면 '먹으며[[머그며]]'가 되어 'ㄱ'가 유지된다.
  26. 그런데 이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이 무엇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명확하다.
  27. 이는 동아시아 내 고유 문자 체계의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28. 영어로는 syllabification(음절화)이라고 한다.
  29.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만들어질 당시의 일본어에는 요음도 촉음도 장음도 없었기 때문에 しゃ 같은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일본어에서 요음, 촉음, 장음이 생기자 요음과 촉음은 ゃ, っ와 같이 작은 글자를 쓰고 장음은 앞 글자의 모음에 따라 あ, い, う, え, う/お를 붙이는 식으로 해결하면서 1문자 1음절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촉음과 장음은 별도의 모라를 이루지만 별도의 음절을 이루지는 않는다).
  30. 문제는 résumé으로 쓰기 불편해서 resume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명사인지 동사인지 잘 보고 구별해야 한다.
  31. r발음의 사용 유무, 모음의 발음 차이, 영국식 영어의 r발음 소멸 해당 구간을 장음화로 대체하는 현상, 미국식 영어의 -nt-(inter같은 단어들) 의 t발음 소멸 및 -tr-(water등)의 t의 유성음화 현상, -tn-의 t의 묵음화 및 불파음화 현상, 그 외에 스코틀랜드 영어, 호주 영어, 각종 여러 나라들의 영어 변이음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어 상에서도 schedule를 미국에서는 '스케줄'이라고 하고, 영국에서는 '쉐줄'이라고 발음하는 경우 등이 존재한다.
  32. 영어의 철자법 개혁이 거의 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철자법 개혁을 성급히 진행할 경우 마치 '한구거를 마치 바름대로 쓰는 거꽈' 같이 영어에서도 비슷한 혼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어원 파악이 훨씬 어려워질 뿐더러, 지역별로 발음의 차이를 감안하면 안 한 것만 못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철자법 개혁이 자칫하면 영어 특유의 강세에 따른 schwa현상 및 모음 변이현상을 무시해 버릴 수 있다.
  33. 이누이트 음절문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끝자음이 14개로 가나문자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34. 폐음절을 커버하는 문자까지 만들면 문자의 개수가 대폭 늘어나서 매우 어려워지기때문으로 보인다.
  35. 촉음, 비음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음
  36. 이러한 한글 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서 위키백과 등에서는 Featural-alphabetic Syllabary같은 특이한 명칭이 붙기도 한다.
  37. 이와 비슷하게 해외사이트에서 한국 사람의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홍길동'은 Hong gil-dong처럼 대쉬바를 붙이거나 Hong gil dong처럼 모두 띄어 쓰는 경우가 많다.
  38. 다만 태국문자, 크메르 문자(캄보디아)처럼 배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39. 이것은 한글의 자체 특성이라기보다 한국어의 특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ㄷ'으로 발음되는 'ㅅ'받침은 과거에는 그대로 'ㅅ'으로 발음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개음화나 역구개음화 같이 발음이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서 과거 조선시대 때 8종성법(ㄱㄴㄷㄹㅁㅂㅅㅇ)이 시간이 흘러 7종성법(ㄱㄴㄹㅁㅂㅅㅇ)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종성 'ㅅ'발음이 소멸하고, 7종성법의 'ㅅ'에 종성ㄷ발음이 쓰이게 되었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어원 및 표기의 혼란으로 인해서 종성부용초성법으로 되돌아온 상태다. 외래어표기에서도 7종성법의 영향으로 t발음을 'ㄷ'이 아닌 'ㅅ'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40. 폐음화(불파음화)현상 자체는 여러 언어(태국어, 광동어, 영어, 일본어 등)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한국어의 경우에는 그 현상을 K, T, P 계열 받침을 중심으로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편이기는 하다.
  41. 사실 몇백년이나 됐다해도 문자 중에서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알파벳 계열 문자 중에서는 가장 젊고, 모든 문자를 통틀어도 젊은 편에 속한다. 주류 문자중에서는 사실상 제일 젊다.
  42. 모음을 돌리는 특징은 자음자를 이리저리 돌려서 모음을 표기하는 캐나다 원주민 음절문자(canadian aborigine syllabics)와 비슷하다.
  43. 참고로 일본의 글꼴 회사 모리사와(モリサワ)는 이 hangul이라는 표기에 낚여서(?) 한글을 소개할 때 한글로 '한굴'이라고 적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Tokyo를 보고서 とうきょう 또는 東京를 복원해 내려는 거랑 다를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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