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 음악 종류 중 하나. 보통,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과, 장단을 맞추고 북을 치는 '고수' 2명이 진행한다.

춘향가 같은 경우 완창 시간이 8시간(8분이 아니다!)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 외교관이 멋모르고 춘향전 완창을 주문했다가 8시간 내리 지속되는 공연에 차마 지친 내색도 못 하고 진땀을 뺐다는 일화가 있다.도시전설 아닌가?

사족이지만 관극시(觀劇詩)라고 해서 당시 판소리를 감상한 느낌이나 작품의 내용을 양반이 한시로 써놓은 것도 있다.

1 역사[편집]

1.1 17~18세기[편집]

판소리의 등장 시점은 조선조 17세기경이다. 처음에는 하층민, 평민 중심으로 구연되던 판소리는 이윽고 양반들의 향유물로 성격이 바뀌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활약한 이가 아래 관련인물 항목에 서술할 신재효이다. 신재효는 양반 입맛에 맞도록 판소리를 한자어로 대거 번역하는가 하면 높으신 분들의 취향에 맞추어 음담패설을 첨가하고 때로는 입맛에 맞게 내용을 마개조하기도 했다. 양반들이 안방에 앉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성량 대신 기교가 발전하는 등 창법이 바뀌게 되었다(소위 안방소리).

1.2 개화기[편집]

개화기 때의 잘 알려진 판소리 애호가로는 흥선 대원군이 있다.

레코드가 유입되면서 많은 명인들이 레코드판을 취입했다. 잘 알려진 '쑥대머리'등이 이 때 녹음되었다.

1.3 일제 강점기[편집]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관객들의 요구에 따라,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것을 불러줘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면조 서편제로 전향했다는 모양. 판소리는 점차 가극단에 의해 창극 형태로 이식되어 근대까지 이어지지만, 이 창극은 텔레비전 방송이 들어오면서 밀려났다.

현대의 판소리 항목은 아래에 따로 서술한다.

2 분류[편집]

조선 후기~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여러 분파가 함께 존재했으나, 현재는 중고제와 경제는 소실되고 동편제와 서편제의 양분 구도를 띠고 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분류는 판소리 초창기에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 서쪽으로 나뉘어 지역별 판소리 명인들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명인들이 자주 이사를 다니는 등(...) 지역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점차 유파의 특성을 이르는 용어가 되었다. 특성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들을 참조.

2.1 동편제[편집]

동편제는 섬진강의 동쪽인 구례남원 등지에서 주로 불린 유파이다. 비유하자면 '담백한 채소를 먹는 맛' 혹은 '동산 위에 달이 슬그머니 떠오르는 광경'의 느낌이라고 한다. 끝소리를 무겁게 눌러 가라앉히는 특징이 있으며, 서편제와 비교해서 기교를 거의 쓰지 않고 담백한 느낌의 창법으로 노래부른다.

전라도의 판소리 하면 서편제가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 가끔씩 동편제를 '한반도의 동부'인 영남 지역의 판소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동·서편제의 구분은 한반도의 동서가 아닌 섬진강의 동·서안이다.

구례에 가면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이 있다. 보성의 어느 것과는 달리 상당히 뽀대가 난다

2.2 서편제/강산제[편집]

서편제는 박유전이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창시하였으며, 섬진강의 서쪽인 보성, 광주, 나주 등지에서 주로 불린 유파이다. '쫀득쫀득한 고기를 먹는 맛' 혹은 '봄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광경'에 비유된다. 끝소리를 끊어 주는 동편제와는 달리 화려한 기교를 사용하며 끝소리를 길게 뺀다. 현재 우리가 판소리라고 듣는 노래들은 거의 서편제. 특히, TV에서 흔히 듣는 것처럼 끝부분을 '어어어어어어어어Maintenance script (토론)' 하면서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준다면 그냥 서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편제의 일종으로 강산제가 있는데, 이는 서편제를 만들었던 박유전이 서편제가 너무 애절하고 울먹거린다고 해서 그것을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 서편제와 동편제를 합쳐서(...) 만든 것이다. 강산제의 이름은 박유전이 생전에 살았던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강산리에서 따온 것이며, 강산은 또한 박유전의 호이기도 하다. 강산제의 특징은 서편제를 계면조가 아닌 동편제에서 주로 쓰는 조성인 우조로 노래하는 것.

그리고 박유전의 제자인 정재근의 조카 정응민은 한술 더 떠서 동편제, 서편제, 강산제를 다 섞어놓고 그것을 '보성소리'라고 이름붙였다.

보성에 가면 서편제 판소리 전수관이 있다. 하지만 보성사람들에게는 공설운동장 주차장 구석에 관리도 안하고 처박아놓고 1달에 한번 영화나 틀어주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지못미

2.3 중고제[편집]

동편제와 서편제, 두 유파와 모두 구분되는 판소리 창법을 지녔다.(유식한말로 '비동비서') 주로 충청도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했다고 추정된다. 중고제의 한자를 中古로 쓰는지, 重高로 쓰는지는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 논란거리다. 현재 전해지지 않으므로 소리가 정확히 어떠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녹음자료로는 일제시대 중고제 명창인 김창룡과 이동백의 소리가 남아 있어서 그를 통해서 추정하는 정도다. 어떤 명창은 "중고제는 쉽게 소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녹음을 들어보면 안그런 경우도 많고, 기록에 따라서는 한쪽에서는 '성량이 대단하여 촉석루에서 소리하니 10리 밖까지 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또 어느 쪽에서든 독서하듯 음의 굴곡이 많지 않고, 성량이 많이 들지 않는 소리라는 식으로 평하는 경우도 있다. 뭔 말이냐면, 같은 중고제 소리의 '성량'에 관련된 글이라도 한쪽에서는 마이크 빵빵 터뜨리는 성량이라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그냥 책 읽는 정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단편적인 기록으로 원형을 파악한다는게 불가능한 거긴 하다만….

3 현대의 판소리[편집]

현대의 판소리는 배우려는 사람도 줄고,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령자들이라서 전승이 시급하다. 그리하여, 판소리 유지의 노력의 일환으로 판소리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노력은 하고 있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임권택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가 제작되면서 일반에게 조금은 알려진 모양...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판소리 하면 무조건 서편제란 편견을 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판소리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창법은 안습되고 울먹울먹 하는 계면조 위주의 서편제만 남은 상태이므로...

뭐 그래도 계룡산의 구룡폭포 가는 길에 보면 판소리를 계승할 청소년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판소리 수련은 폭포.

경제나 중고제가 완전히 소실되고, 남아 있는 동-서 편제 중에서도 그나마 제대로 남아 있는게 서편제 뿐인데, 이 때문에 특성상 서남 방언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판소리 명인 중 호남 출신이 유난히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부러 서남 방언을 터득하는 건 이 때문. [1]

약간 다른 내용이지만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빠질 수 없는 김지하 시인이 창작판소리라고 오적이란 시를 써서 당시 한국의 고위공무원들을 싸잡아 까내렸다가 투옥된 일화가 있다.

4 대표적인 판소리[편집]

4.1 판소리 12마당[편집]

4.1.1 현재까지 전하는 6마당[편집]

4.1.2 현재 소실된 6마당[편집]

5 관련인물[편집]

  • 조통달
가수 조관우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명창. 그의 친척 또한 명창으로 유명한 故박초월(1917년 2월 20일 - 1983년 11월 26일)이다. 과거에는 남진, 이선희 등 내노라 하는 가수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대중가수인 아들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저런 방송에서 출연이 잦은 편이라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기도 하다.
    • 사실 판소리의 기원 부터가 호남 지역에서 시작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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