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밀덕소설가[편집]

1947년 4월 12일 ~ 2013년 9월 30일

풀네임 Thomas Leo Clancy, Jr. 미국의 유명한 군사소설 작가, 세계 모든 밀덕후들의 성인이자 귀감, 동시에 수많은 전쟁과 대형 사건을 예언한 예언가.[1]

1.1 설명[편집]


1947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2]에서 태어났다.[3]

어렸을때부터 군사, 무기체계에 심취했으며 군을 동경하여 ROTC를 신청한 적도 있지만 시력이 나빠 탈락했다. 이후 보험 설계사로 생계를 꾸리면서 밀덕후의 외길을 팠다. 그리고 완전히 무명의 아마추어 상태에서 발표한 첫 작품인 '붉은 10월'에서부터 대성공을 거두었고 뒤이어 낸 '붉은 폭풍(Red Storm Rising)'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첩보, 밀리터리 스릴러 장르 소설가로 확고한 지위를 획득했다. 무기체계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테크노 스릴러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소설 데프콘 역시 톰 클랜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톰 클랜시의 소설 상당수는 영화화되어 역시 성공을 거듭했으며 컴퓨터 게임 원작자로도 활동한 바 있다.[4]

비록 소설가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해당 소설들을 쓰기위해 모으는 자료의 양과 정확성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 펜타곤과 CIA, 정부 기관 등에서 초빙해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톰 클랜시가 내부자료가 아닌 공개된 데이터만 분석하여 시나리오를 짠다는 방증은 과거작에서 붉은 폭풍에서 F-117 대신 YF-19가 등장한다는 점과 F-22 묘사 등에서 드러난다. 미 국방부에서 고의로 언론 플레이했던 자료를 참조한 것. 사실 공개된 자료만 분석해서 이 정도의 현실성있는 예측을 해낸다는 점이 톰 클랜시가이 본좌급 분석력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민간인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이미 준 '업계'인물.

특히, 소설 'Debt of Honor'의 마지막 부분에, 일본 여객기 조종사가 미 국회의사당에 비행기를 몰고 자살돌격해 대통령 포함 거의 전원이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문에 9.11 테러 직후 현장에 초빙되어 뉴스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톰 클랜시는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 적은 내용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실행 가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라고 답변했다. 하여간 그 이후, 미군에서는 헐리우드 작가들을 초빙해 '상상 가능한 미 본토 공격방법을 모두 시나리오화해서 제출하라'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소설의 앞부분에 자동차 안전 문제로 인해 미.일 간에 엄청난 통상마찰이 발생하는 내용도 등장한다(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토요타 리콜 사태). 여기에 레인보우 식스 로그 스피어를 통해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 테러 사건도 예언하고[5]고스트 리콘을 통해 남오세티아 전쟁까지 예고했다. 이제 톰 클랜시의 소설 내용 가운데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일은 미국과 러시아의 ICBM 폐기와 러시아의 NATO 가입, 주일 미군의 철수, 한반도 통일, 예루살렘의 종교 중립지대화 정도.이건 진짜 불가능할 것 같은데

유명 소설로는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섬 오브 올 피어스, 베어 앤드 드래곤, 스플린터 셀(톰 클랜시는 기획만 하고 소설은 다른 사람이 집필함), 붉은 폭풍, 레인보우 식스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붉은 10월과 패트리어트 게임, 섬 오브 올 피어스는 영화화되었다. 소설의 경우 잭 라이언존 클라크가 거의 정규 캐릭터로 등장하고있다. 네트워크에서의 범죄나 가상현실에 대해 다룬 넷포스 시리즈, 첩보물 성격이 강한 OP 센터 시리즈도 있다.

사실 엄청난 대필작가로 잭 라이언 시리즈 외의 작품은 톰 클랜시의 이름이 단독으로 붙은 책이라도 최소한 반은 다른 사람이 썼다고 보면 된다. 실제작가의 정체는 보통 머릿말을 쓴 사람이나 다른 방식으로 감사를 표현한 사람이다.

과거 성애묘사에 엄청나게 약해서 초기작들에는 에로신(...)이 거의 없거나 풋풋했(...)으며, 이후 작품에 성애장면이 등장하자 번역자가 번역자 서문에서 놀라움을 표하기까지 했다.

한국 시각 2013년 10월 2일 부고가 떴다. 전세계 밀덕후에게 꿈과 희망을 줬던 톰 클랜시 선생께서 사망. 향년 66세.기사

아들은 현재 게임 개발쪽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잘하면 게임 업계에서 볼 수 있을지도?

1.2 기타[편집]

정치성향은 골수 공화당원. 대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이 열심히 싸워서 공산당을 조졌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와 같은 취지의 말을 하기도 한다.[6] 그러나 정통 보수우파라 조지 W. 부시나 딕 체니같은 네오콘은 상당히 싫어하는듯 하다. 한번은 미국은 아랍권 국가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7]

그리고 무엇보다 톰 클랜시가 대단한 것은 지구상의 수많은 일반인들 중에서 출입증없이 백악관국방부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여담으로 영화 액트 오브 밸러 엔딩 크레딧을 보다보면 톰 클랜시의 이름이 있다. 영화의 소설판도 톰 클랜시 이름을 달고 나왔다.

미국의 소설가 더클라스 케네디는 자신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빅 픽처에서 톰 클랜시는 소설가가 아니라 미국 국방부의 홍보인에 불과했다고 신랄하게 까기도 했다.

1.3 작품 관련 여담[편집]

잭 라이언 시리즈를 영화한 작품중 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해리슨 포드를 잭 라이언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로 손꼽았지만 정작 톰 클랜시는 너무 늙어보인다고 벤 애플렉을 지지하였다.

스타 트렉 리부트에서 제임스 T. 커크 역을 맡은 크리스 파인이 네 번째 잭 라이언 역을 맡아 잭 라이언 : 섀도우 리크루트라는 영화를 찍었다. 2013년 12월 개봉(미국). 20대의 '젊은' CIA 분석가 잭 라이언이 러시아의 미국 테러 음모를 막는다는 얘기로, 원작 설정은 씹어 먹고 새로운 캐릭터 프랜차이즈로 리부트하려는 목적이 뻔히 보인다.

디스크월드의 인격신들중 하나인 전쟁의 아이들중 의 이름이 클랜시인데, 이는 톰 클랜시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7살의 로리 캐릭터로 딱딱한 모자와 망아지 클럽 뱃지를 달고 있다.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를 통해 알려진 용어로 비정부단체의 힘에 의한 핵무기 소유를 의미하는 "로그 스피어(Rouge Spear)"라는 단어가 있는데, 설정상으로는 미 국방부의 핵무기 사고 분류 용어지만 이 용어는 톰 클랜시의 창작으로 실제로는 그런 거 없다.

유비소프트가 스플린터 셀을 제작할 때 이제는 스플린터 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삼안 고글을 본인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뭐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후에 인정했다.

1.4 톰 클랜시의 이름이 들어가는 게임목록[편집]

톰 클랜시의 이름이 들어가는 게임들도 꽤 많이 출시되었다.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스플린터 셀 시리즈, 고스트 리콘 시리즈, 엔드워, H.A.W.X 등등...일단 톰 클랜시라는 이름이 들어간 게임들의 특징이라면 나오는 게임들 중에서 미국이 개발하고 있었거나 개발중인 군사기술이 꽤나 상세히 나온다는 점. 특히 고스트 리콘 어드밴스드 워파이터 시리즈는 미국이 개발하려고 했던 랜드워리어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냈다.

엔드워는 이전에 나왔던 게임들(스플린터 셀, 고스트 리콘, 레인보우 식스)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RTS게임. H.A.W.X.는 고스트 리콘의 스핀오프 작품. 고스트 리콘의 공습요청때 나타나서 도와주던 전투기 파일럿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플라이트 슈팅 게임. 시대상으로 고스트 리콘 어드밴스드 워파이터(2012년)부터 엔드워(2020년) 사이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덧붙여 에이스컴뱃 시리즈를 대놓고 노렸다(…). 이렇게 작품이 많기 때문에 이름이 들어가는 게임의 로열티와 게임 세계관 정리를 하기 위해서 유비소프트는 톰 클랜시의 지적재산권을 사들였다. 그래서 톰 클랜시 세계관을 쓰는 유비소프트 게임들 중 몇 개는 톰 클랜시의 감수/시나리오를 사용하지 않았다.

1.5 집필작 목록[편집]

2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 배우 및 가수[편집]

| 클랜시 브라더스 멤버
패디 클랜시 톰 클랜시 토미 메이컴 리엄 클랜시
이름 톰 클랜시(Tom Clancy)
본명 토머스 클랜시(Thomas Clancy)
출생 1924년 11월 29일, 아일랜드 카운티 티퍼레리 캐릭 온 수어
데뷔 1956년 1집 앨범 'The Rising of the Moon'
소속 한국 아이돌 그룹과 같은 소속사 개념은 없음. 레이블은 다수.
종교 천주교(세례명: 토마스)

1924년 10월 29일~1990년 11월 3일.

아일랜드 티퍼레리 주(County Tipperary)의 캐릭 온 수어(Carrick-on-Suir)에서 1924년에 태어났다. 4남 7녀 가운데 차남으로, 형은 패디 클랜시(1922~1998), 동생은 보비 클랜시(1927~2002), 리엄 클랜시(1935~2009).

아일랜드 포크 음악 그룹인 클랜시 브라더스 멤버로 활동했던 아일랜드의 가수이나, 처음 연예계에 나왔을 때는 엄연히 배우였다. 실제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도 연기판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멀쩡히 돌아가던 그룹이 해체되기도 했을 정도.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아주 젊었을 때는 형 패디와 함께 IRA에 소속되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직업에 독립운동가가 있는 것은 이 때문. 패디와 톰은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1947년 캐나다로 건너가 온갖 노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던 패디와 톰은 1951년 미국으로 넘어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뛰어들게 된다. 물론 이 때는 절대 가수는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배우로써.

이 때 패디와 톰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 다이앤 해밀턴(Diane Hamilton)이라는, 뭐라고 직업을 나타내기는 미묘하지만 요즘으로 따지자면 PD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가가 있었다. 이 PD는 1955년 아일랜드의 고전 포크송들을 채록하기 위하여 아일랜드로 건너갔다. 그리고 아일랜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시골 사람들이 부르는 민요들과 바이올린 연주곡들을 녹음기로 녹음해 와서는, 미국에서 패디 클랜시가 사장으로 있던 트래디션 레코드(Tradition Record)를 통해 앨범으로 만들어 발매했다.

그런데 이 '시골 사람들' 가운데에는 다름아닌 패디와 톰의 남동생인 리엄 클랜시와 여동생인 조안 클랜시, 페그 클랜시가 있었고, 또한 리엄 클랜시의 절친이었던 토미 메이컴과 그 어머니 세라 메이컴이 있었다. 졸지에 형들을 제치고 막내가 처음으로 음악계에 데뷔한 셈.

이 앨범은 지금도 구할 수 있고 심지어 다음 뮤직에서 팔기까지 하는데, 막상 들어 보면 그냥 시골 사람들 노래하는 걸 녹음해 놓은 거라 반주도 없고 굉장히 소박하다. 그러나 리엄 클랜시와 토미 메이컴의 데뷔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듯.

그리고 토미 메이컴은 이 해 말에, 그리고 리엄 클랜시는 이듬해인 1956년에, 역시 연기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패디와 톰, 리엄과 토미가 서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토미 메이컴이 인쇄소에서 일을 하다가 2톤짜리 철제 프레스에 손이 깔리는 대형사고를 당하게 된다. 흠좀무.

아무튼 이 사건 직후, 각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던 패디, 톰, 리엄, 토미가 의기투합하여 앨범을 하나 녹음을 하여, 패디 클랜시가 운영하는 레이블인 트래디션 레코드를 통해 발매를 하게 되었다. 물론 결코 공식적으로 가수로 데뷔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취미로. 모두 14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공통점은 모두 아이리시 레벨 송(Irish rebel song), 즉 아일랜드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는 반영가요라는 것이다.

이 앨범의 제목은 <The Rising of the Moon>. 이것은 문자 그대로 급조 그 자체여서, 악기 소리라고는 패디 클랜시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만 들린다. 토미 메이컴이 아일랜드 전통 관악기인 틴 휘슬드럼을 비롯한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당시 메이컴은 손을 거의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급조한 앨범인데도 엄청나게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당시 이 4명은 전혀 음악계에 뛰어들 생각조차 없었고 그냥 재미에 가깝게 만든 앨범이었는데도 이런 흥행을 기록한 것. 1959년까지 3년간 이 4명은 철저하게 연기판에 집중했지만, 1959년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판에 뛰어들 시도를 하게 된다.

일단 3년 전에 발매한 급조한 앨범에서 불렀던 곡들을, 이번에는 패디 클랜시의 하모니카는 물론이고 토미 메이컴의 틴 휘슬과 드럼 반주에, 다른 세션맨들의 기타와 하프 반주까지 덧붙여 새로 녹음했다. 이렇게 해서 4명은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 그룹 이름은 '클랜시 형제들과 토미 메이컴'(The Clancy Brothers and Tommy Makem), 곧 클랜시 브라더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클랜시 브라더스는 메인 보컬과 서브 보컬의 구분이 없다. 랩? 댄서? 그거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톰 클랜시의 경우 100% 보컬 전담으로 앨범 크레디트에는 나오는데, 유튜브 동영상 중에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영상도 있다. 어쨌든 톰 클랜시의 역할은 메인 보컬.

목소리는 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낮고 걸쭉한 저음이다. 톰의 목소리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걸쭉하고 소박한 저음'. 로이킴처럼 감미로운 저음은 아니지만, 상당히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이다. 아무런 악기도 다루지 않으니 메인 보컬이라 할 만도 한데, 사실 톰 클랜시가 메인보컬을 부른 곡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따라서 다른 멤버가 메인 보컬을 부르는 곡에서는 톰은 코러스가 나올 때까지 그냥 멍 때리고 서 있거나 박수만 짝짝 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걸그룹이라면 댄스도 있고 랩도 있지만 클랜시 브라더스는 포크 음악 그룹이니 그렇게 된 것.

http://clancybrothersandtommymakem.com/wel.htm
위 링크에 들어가면 네 멤버들의 1960년대 사진을 볼 수 있다. 왼쪽 두 번째가 톰이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톰 클랜시 역시 외모로 승부하는 타입은 결코 아닌 듯. 만일 2010년대의 한국에서 데뷔를 했다면 아마 (네 멤버들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외모지상주의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머리도 크고, 키도 작고, 배도 나왔고, 게다가 이 집안에는 탈모 유전자까지 있으니...그러니 (이 장르의 가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철저한 실력파 가수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탈모는 형인 패디나 동생인 리엄에 비하면 덜한 편. 1970년대 후반 이후 패디와 리엄은 아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출연을 했는데, 톰은 그냥 다녔다. 어쨌든 아일랜드 포크 음악이라는 장르가 일반적인 대중 음악과는 달라서 가수의 외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철저하게 가수의 실력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분야이니, 한국 아이돌 가수들을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대놓고 귀요미 콘셉트를 시전하는 막내 리엄 클랜시만큼은 아니지만 은근히 귀염을 떨 때도 있다. 작은 키와 둥글둥글한 외모가 해학적인 귀여움을 유발하는 듯.

1969년 토미 메이컴이 그룹을 탈퇴하고, 셋째인 보비가 합류했을 때는 그대로 그룹에 남았다. 1971년 보비가 탈퇴하여 잉글랜드인인 루이스 킬런이 합류했을 때도 그대로 그룹에 남았지만, 70년대 들어 연기판에 다시 뛰어들면서 음악 활동에는 별로 안 나서더니, 1974년에는 마침내 연기 활동을 위해 그룹을 통째로 공중분해시키기까지 했다!

그룹 해체 이후 3년간 정말 미친 듯이 연기에 집중하다가, 1977년 다시 그룹이 복원되었을 때 멤버로 합류했다. 이 때 멤버는 패디, 톰, 보비, 그리고 조카인 로비 오코넬. 원래 동생인 리엄 클랜시를 설득했으나, 당시 리엄 클랜시는 문자 그대로 어려서부터 절친이었던 토미 메이컴과 듀엣으로 활동하며 아일랜드 음반 차트 1위에 오르는 엄청난 히트를 올리고 있었기에 당연히 거절했다. 지금 현아보고 포미닛 그만두고 원더걸스에 다시 가입하라고 그러면 하겠는가?

이 때 복구된 클랜시 브라더스는 풀 타임 그룹이 아니고 1년 중에 한 3번 정도만 모여서 음악 활동을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각자 흩어져 개인 활동을 하는, 요즘 걸 그룹과 비슷한 시스템을 취했다. 그런데 그 '개인 활동'이라는 게 톰은 당연히 연기고, 로비 오코넬은 솔로 가수 활동이지만, 패디 클랜시는 목장 경영이고 보비 클랜시는 보험회사 경영이다. 자세한 것은 패디 클랜시, 보비 클랜시 항목 참조.

1984년, 토미 메이컴과 리엄 클랜시 듀엣의 매니저가 긴급 제안을 하게 된다. 클랜시 브라더스가 한참 잘 나가던 리즈시절인 1960년대 라인업으로 복귀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 이 제안에 따라 1984년의 클랜시 브라더스 리유니언 투어(The Clancy Brothers Reunion Tour)가 성사된다. 네 멤버들은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고, 토미와 리엄의 레이블이었던 샤나키(Shanachie)를 레이블로 하여 앨범도 냈다. 당시 클랜시 브라더스의 레이블은 뱅가드(Vanguard) 레코드였지만, 토미와 리엄 듀엣의 인기가 하도 절정이었던 관계로...


1980년대의 톰 클랜시.

1986년부터 다시 원래 멤버들로 복귀한 클랜시 브라더스는 이후 1988년에 앨범을 하나를 냈지만, 본인들도 쓰레기라고 평가할 정도로 조잡하고, 대부분의 곡들이 예전에 정말 미친 듯이 마르고 닳도록 불렀던 곡들이라서 본인들조차도 별로 가치를 두는 앨범은 아닌 듯. 그런데 이것이 그만 톰 클랜시의 마지막 앨범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1990년 톰 클랜시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이미 투어 일정은 다 짜놓았는데 그걸 빵꾸를 낼 수는 없는 관계로, 1988년 이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리엄 클랜시가 그룹에 복귀하게 되었다. 물론 이 때는 그냥 땜빵 차원이었지만...톰 클랜시의 상태는 결코 호전되지 않았고, 11월 3일 톰은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톰 사후, 1991년 봄부터 리엄이 톰을 대신하여 멤버로 합류하였다. 톰 클랜시는 1남 5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막내딸은 1988년생으로 톰 클랜시가 세상을 떠났을 때 2살이었다. 참고로 1988년생이면 유이와 동갑이다! 애석하게도 보비 클랜시의 딸 이파 클랜시나 아들 핀바 클랜시, 리엄 클랜시의 아들 도널 클랜시처럼 가수로 데뷔했다는 이야기는 없는데, 아직 20대 중반인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톰 클랜시의 부인 조안 클랜시는 현재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1. 사실 톰 클랜시가 예언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소설을 보면 실제 사건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부분이 꽤 있다.
  2. 볼티모어 토박이이자 주에서 최고수준의 부자로 MLB의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공동 소유주 겸 투자자이기도 하다. 경영위원회 부의장이자 공보담당이란 직책을 가지고 있다. 단 경영간섭은 거의 하지 않으며 이 부분은 피터 안젤로스가 주로 한다.
  3. 그런데 자신의 작품인 '썸 오브 올 피어스'가 영화화되면서 핵공격을 당해서 사라지는 도시를 볼티모어로 영화 제작진이 각색하여 불쾌해했다고 한다. 원래 소설에서는 콜로라도 주 덴버였다.
  4. 그런데 붉은 폭풍 게임에 대해서 했던 말로 보건데 실제로는 컴맹이었던 것 같다.(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오래전 일이니 나중에는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5. 해당 미션은 Temple Gate라는 이름의 미션으로 모스크바 극장은 아니고 체코의 오페라 극장이 무대이다.
  6. 톰 클랜시가 그런 연설을 한 다음 차례로 올라간 올리버 스톤은 대학생들에게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믿지 말고, CIA같은 정부기관을 믿지 말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라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당시 청중들 속에는 FBI와 CIA의 고위 관계자도 있었는데 안좋은 표정이었다고...한참 영화 JFK의 개봉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하던 시절의 얘기.
  7. 심지어는 9.11 이후에 아랍권을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8. 참고로 이 시리즈 첫번째 작품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한국에 번역출간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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