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RMS_Titanic_3.jpg

RMS[1] Titanic[2]. 1912년 4월 15일에 최초이자 최후의 처녀항해 때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비운의 여객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일 것이다. 하도 거대해서 별명이 불침선(The Unsinkable)에 "이 배는 하느님도 침몰시킬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 스펙[편집]

Titanic_side_plan_1911.png

선적: 영국
모항: 리버풀(Liverpool)

선박 특성 #

  • 총 톤수: 46,328 GRT[3]
  • 배수량: 52,310t
  • 전체 길이: 269.1m
  • 전체 폭: 28m
  • 최대 속도: 23노트 (43km/h)[4]
  • 굴뚝 수: 4 (단, 끝의 하나는 장식 및 환기용)
  • 마스트 수: 2
  • 통신 시스템: 밤에는 3,200km까지 연락 범위 확대.
  • 무선호출 부호 : MGY
  • 재질: 강철
  • 기관: 스카치식 보일러 24기, 보조 5기, 레시프로 4기, 통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 혼성 3축, 프로펠러 3기[5]
  • 출력:46,000HP(설계) – 59,000HP(최대출력)
  • 최대 탑승 가능 인원: 3547명 (승선객, 승무원 모두 포함)
  • 선실수
    • 1st-class(1등실) 416
    • 2nd-class(2등실) 162
    • 3rd-class(3등실) 262
    • cabin area(전용실, 갑판실 등) 40

3 건조[편집]

20세기 초에 조선업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하란드 월프 사의 회장인 피리 경이, 런던메이 페어의 저녁 식사 모임에서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이즈메이 사장에게 3척의 대형 여객선의 건조 계획을 말한 것이 타이타닉 호 건조의 발단이었다. 설계는 토머스 앤드루스가 맡았다.

화이트 스타 라인사는 블루리본[6]으로 불렸던 북대서양 여객선들의 속도 경쟁에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느긋하고 쾌적한 여행에 중점을 두는 회사였다. 하지만 타이타닉은 속도부터 설비의 호화로움까지 모든 것에 중점을 두어 설계되고 있었다. 안전에도 신경을 써 설계에 방수구획을 도입하였다. 선체는 방수 격벽에 의해 16개의 구획으로 구분되었고 그 중의 2구획(뱃머리의 경우 4구획)이 침수해도 침몰에 이르지 않는 구조였다. 게다가 격벽은 제어실의 원격 조작으로 즉시 폐쇄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수대책의 도입으로 타이타닉 호는 '불침선' 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실제로 설계상의 구조는 지금 기준으로도 안전한 편. 그러나 갑판 아래 선체가 전부 방수구획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 갑판을 통해 구획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서 선체에 큰 손실이 발생하여 다량의 해수가 유입될 경우 도미노처럼 다른 구획까지 차례차례로 침수될 수도 있는 구조였으며 실제로 최초이자 최후 항해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타이타닉 호는 올림픽 호와 거의 동시에 건조가 개시되어 대계단이나 식당의 장식, 식사의 메뉴나 객실의 서비스 등 외관에서나 내장 면에서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마치 타이타닉 호가 전무후무한 초대형 선박인 냥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올림픽 호(1910년 10월 20일 진수)가 클래스의 대표 선박으로 타이타닉 호(1911년 5월 31일 진수)와 브리타닉 호(1914년 2월 26일 진수)라고 하는 2척의 자매선과 함께 올림픽 클래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타이타닉 호의 사진으로도 종종 올림픽 호 사진이 사용된다!

여담으로 타이타닉호와 자매선들은 최초로 배 안에 수영장을 설치해 놓은 여객선들이었다고 한다.

3.1 설계의 변경[편집]

오른쪽이 타이타닉 호, 왼쪽은 자매함이자 타이타닉이 속한 올림픽 급[7]의 1번함 올림픽 호.

그러나 앞서 항로에 투입된 올림픽 호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타이타닉 호의 설계에 반영한 결과 몇 군데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예를 들면 A 갑판의 1등실 전용 산책용 갑판(Promenade) 앞부분에 유리창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북대서양의 추운 바람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외관상으로 두 자매선을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위 사진은 전술한 유리창이 설치되기 전의 모습. 그 밖에도 올림픽 호는 B갑판의 창가 전체에도 산책용 갑판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타이타닉 호의 설계도에서는 산책용 갑판 대신에 창가 전체에 1등 선실을 새롭게 마련하도록 변경되었다. 그 결과 1등실의 수가 올림픽 호보다 더 많아졌고 전용 산책용 갑판에 면한 스위트룸이 도입되었다.

자매선이니만큼 애초의 중량은 거의 비슷하게 설계되었지만 이상의 이유로 타이타닉의 객실 수가 증가, 최종적으로 타이타닉 호의 등록톤수는 올림픽 호의 45,324톤보다 1,004톤 커진 46,328톤으로 늘어났다. 타이타닉 호가 올림픽 호를 넘어 당시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탓이다.

4 시설[편집]

4.1 층별 구조[편집]

총 11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보트 갑판 - 최상층으로 구명보트들은 모두 여기에 나열되어 있었다. 맨 앞쪽에는 선교와 조타실이 있었으며 선장&간부(상선사관)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앙계단의 최상층과 체육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넓은 산책로를 가지고 있었으며 1등실, 2등실, 상선사관 등 저마다 산책로의 영역이 정해져 있었다. 1등실 산책로의 경우 외관을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구명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A갑판 - 산책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거의 모든 영역이 1등실 전용이었고 1등실 객실들과 라운지, 흡연실, 독서실, 그리고 야자수 코트가 놓여져 있었다. 산책 갑판이라는 이름답게 승객들은 기나긴 산책로가 놓여져 있었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앞쪽의 산책로에는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 B갑판 - 선교루 갑판이라고도 불렸다. 객실은 1등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떤 객실들은 개인 산책로를 보유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카페도 있었다. 이 갑판에는 선두와 선미 위쪽도 포함되어 있는데 선미는 3등실 산책로로 쓰였지만 선두는 당연히 안전문제상 선원 외 출입금지였다. 그러니까 97년판 영화에서 "나는 세상의 왕이다!" 하는 장면과 "날고 있어!" 장면은 페이크(...) 다만 실제로 가봤다는 생존자의 이야기도 있긴 한데, 당연히 선원 눈을 피해 슬적 들어갔다 나온 정도다. 영화처럼 굴었다간 선루와 선교 당직자가 못 볼리가 없다.
  • C갑판 - 배에서 선두, 선미와 분리되는 지점이자 하얗게 칠한 곳이 시작하는 지점으로 3등실의 산책로로 쓰이고 선두와 선미로 각각 이어지는 요갑판과 이어져 있었다. 선두는 주로 선원들의 숙소로 쓰였고 선미는 3등실 전용 휴게실과 흡연실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1등실 객실들과 2등실 도서관이 있었다.
  • D갑판 - 3개의 넓은 공공시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등실 대합실, 1등실 식당과 2등실 식당이 있었다. 3등실을 위한 트인 공간도 있어 밤만 되면 신나는 연회가 열렸다. 1등실, 2등실, 3등실 객실들과 화부들의 숙소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방수격벽이 위치해있던 가장 높은 갑판이기도 했다.
  • E갑판 - 주로 1등실, 2등실, 3등실 모두의 객실들과 선원들의 숙소가 차지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로드' 라고 불리던 아주 긴 복도가 있어 선원들과 승객들이 오고 갈 수 있었다.
  • F갑판 - 객실은 3등실이 대부분이었지만 2등실 객실과 선원들의 숙소도 있었다. 3등실 식당은 여기에 있었다. 또 1등실 승객들을 위한 수영장과 터키탕도 있었다.
  • G갑판 - 수면 위에서 가장 낮은 층으로 선원들과 승객들의 객실이 있는 가장 낮은 갑판이었다. 스쿼시 코트도 있었으며 우편 저장소도 여기에 있었다. 대다수의 영역이 보일러실이 있는 최하 갑판과 겹쳐있어 선미와 후미가 각각 따로 떨어져 막혀있었다.
  • 최하 갑판 - 주로 창고가 대부분이었다.
  • 탱크 톱 - 보일러실과 기관실이 위치해 있었다.

5 항해와 침몰까지[편집]

5.1 출항과 항해[편집]

타이타닉호의 침몰 시점 : 1912년 4월 14일-15일 밤[8]
타이타닉호의 침몰 지점 : 영국령 뉴펀들랜드 해안 동쪽 400마일(640km) 해상으로 추정.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Southampton)으로부터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E·J·스미스 선장과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서 2,200명 이상이 승선하였다. 배가 항구를 떠날 때 실수로 정박되어 있던 뉴욕 호의 정박용 밧줄을 끊어버려 둘이 충돌할 뻔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셸부르(Cherbourg)과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미국뉴욕 항구로 향했다.

출항 당시 쌍안경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다(...) 때문에 견시[9]들이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사고 초기에는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실제로 동일한 환경 속에서 당시 쌍안경을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이것조차도 무용지물이었다. 실험 결과 그냥 검은 원만 보였다고(...) 애당초 당시의 차가운 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칠흑같은 밤에 파도도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여러 악조건이 겹쳤기에 쌍안경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악조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됐으면 그만했어야지

출항 오전부터 빙하가 돌아다닌다는 위험한 소식이 선박 사이의 무선통신으로 경고되고 있었으며 적어도 타이타닉 호는 4월 14일 6통의 경고를 통신으로 받았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들은 승객들의 통신 발신 업무에 쫓기고 있었고 이 계절의 북대서양의 항해에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화물선 캘리포니안 호가 무선을 보낼 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통신사 필립스가 "닥쳐요! 지금 그쪽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고요!" 라고 일침을 놓았고 캘리포니안 호의 통신사 에번스는 빡쳐서 무전 스위치를 끄고 잠이 들었다(...) 문제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가 캘리포니안 호였는데 하나뿐인 통신사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구하러 오지 못했다. 이 설에 따르자면 겨우 통신사의 불친절함 때문에 1,500여 명이 죽어간 참사가 일어난 것이 되는데 사실 이 주장에 대해서 사건 직후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간 에번스는 '그런 정도 문제 가지고 화를 낸 건 아니다' 고 증언한 바가 있다. 애초에 통신장비를 갖춘 선박의 통신사는 24시간 근무를 하도록 되어있었고 당연히 혼자서 24시간 근무가 가능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를 1인만 탑승시킨 캘리포니안 호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 다만 당시의 해운 관행상 이런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안 호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때 억울하게 캘리포니안 호의 선장만 비난받기도 한 적이 있다. 당시 에번스는 빡쳐서 무전을 끄고 잔 게 아니라 그냥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5.1.1 탑승자들[편집]

  • 1등실에는 총 329명의 부유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급한 사정보다는 즐기려고 승선한 승객들이 많았다. 객실은 최상층인 보트 갑판부터 갑판 E(상갑판)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며 호화 호텔 수준이었고 개인 목욕탕이 있었다.
  • 2등실에는 총 285명의 중산층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1등실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배들의 1등실에 견줄 만한 많은 편리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흡연실(갑판 B), 레스토랑(갑판 B), 도서관(갑판 C), 상점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 3등실에는 총 710명의 가난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주로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승선한 승객들이었다. 객실은 2등실과 마찬가지로 갑판 D부터 갑판 G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시설은 1등실과 2등실만 못하고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다른 배들에 비해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10] 배에 탑승하기 전에는 검역을 걸쳐서 전염병이나 /벼룩을 확인했고 여자와 남자는 배의 앞머리와 뒷머리에 각각 따로 떨어져 승선했으나 가족 단위일 경우 같이 승선할 수 있었다.
  • 선원들은 총 885명이 타고 있었다. 항해사, 갑판 선원, 기관사, 화부, 기관 선원, 요리사, 레스토랑/카페 점원[11], 우편 점원, 음악 연주가[12], 그리고 보증으로 탑승한 관계자들[13] 등등 여러 종류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물론 월급과 대우도 직종에 따라 달랐다. 여성 승무원은 23명이 타고 있었다.

5.2 충돌[편집]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레지널드 리와 함께 견시를 보던 갑판 선원 프레더릭 플리트가 전방 450m에 높이 20m 미만의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했다.[14] 출항할 때 쌍안경을 사용할 수 없었고 빙산의 10분의 9는 숨어있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플리트가 빙산을 발견하고 종을 몇번 울린 후 급히 선교에 전화로 보고했고 6등 항해사[15] 제임스 무디가 조타실에서 그것을 받고 1등 항해사 윌리엄 맥매스터 머독에게 보고했다. 보고와 비슷하게 빙산을 확인한 그는 바로 좌현전타[16]를 명령하고 텔레모터(원격 조정 장치)를 "전속 후진"로 돌려놓아 기관실에 지시한 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보일러실의 방수격벽이 닫힐 것을 알리는 알람을 울렸다.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는 지시에 따라 왼쪽으로 키를 최대한 돌렸으며 기관실에서도 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배의 회전반경이 너무 크고 빙산과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충분한 회전과 감속을 하지 못했다, 결국 우현은 빙산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접근하여 정통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우현측면이 빙산과 충돌하였다. 충돌 이후 1항사 머독은 우현전타[17]를 지시하여 빙산으로부터 벗어나는 한편, 방수격벽 폐쇄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빙산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아 텔레모터는 '정지'에 놓였고 이후로 타이타닉은 영원히 움직이지 못했다.

"속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으면 빙산과의 충돌은 회피할 수 있었다" 라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었다.

아랫쪽 승객들은 큰 충격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윗쪽 승객들은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으나 잠에서 깨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은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났다.

하지만 6번과 5번 보일러실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화부들은 물을 피해 도망갔다. 조타실과 망루에서는 빙산의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충격을 느끼고 올라온 사람들이나 갑판 위에 있었던 승객들은 오히려 즐거운 분위기였다. 3등실 승객들은 올라나와 얼음 조각으로 축구(...)를 했으며 1등실도 다른 건 아닌지라 어떤 사람들은 기념으로 위스키에 쓸 얼음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우현에는 수면 아래로 약 90m에 걸쳐서 손상이 생겼다.[18] 이 과정에서 5구획에 걸쳐서 엄청난 해수가 배 안으로 들어왔다. 방수격벽탓에 배 전체에 물이 들어차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이타닉은 2구획(뱃머리로 부터는 4구획)까지 물이 들어오면 침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나 뱃머리로 부터 5구획 이상에 물이 차면 그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타이타닉의 격벽은 위의 E갑판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 선체가 부력을 잃고 앞으로 기울어지며 잠기는 와중에 해수는 격벽을 넘어 차례차례로 다른 구획까지 흘러 들어갔고 이는 배의 침몰을 가속했다. 이후 뱃머리에 실린 물로 인해 배는 서서히 앞으로 기울었고 뱃머리가 해수면 아래로 점점 들어갔다.

횡단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화이트 스타 라인 사의 회장이자 배의 이사 브루스 이스메이가 그대로 전진할 것을 지시하고배가 쇄빙선이냐... 선원들은 이를 그대로 따르는 병크를 저질렀기 때문에 침몰이 가속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19]

침몰에 이를 정도의 손상을 받은 원인으로 "정면이 아닌 측면에 빙산이 충돌해 피해가 가중되었다" 라고 하는 설도 있다. 만약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정면에서 충돌했으면 침수한 방수 구획은 일부의 좁은 범위(타이타닉 호의 방수 구역 내)에 머무르는 것으로 끝나고 침몰을 면할 가능성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충돌을 회피하려고 키를 돌려 어중간하게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 피해를 가중했다. 당시의 낮은 제강 기술로 인해 당시 최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던 선체의 강철에 불순물인 황과 인이 많이 섞여있었는데 많은 인 성분은 균열을 만들고 황은 이러한 균열을 더 확산시키고 낮은 망간 비율은 강철의 탄력성을 낮추어 메진 성질을 더 크게 한다. 참고로 현대의 질 좋은 강철은 망간과 황의 비율이 200:1이지만 타이타닉 호의 선체에 사용된 고급 강철은 겨우 6.8:1 수준이었다. 황과 인은 각각 4배, 2배 더 많았다는 게 밝혀졌다.

또한 금속 자체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는데 금속은 온도가 낮을수록 용접 부분이나 금속 그 자체가 충격이 가해졌을 때 파괴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이를 '취성' 이라고 하는데 연성[20]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타이타닉 호는 침몰 당시 북대서양[21]의 차가운 해수를 가로지르며 항해하고 있던지라 취성 파괴가 일어나기 쉬운 조건이었다. 당시의 야금 기술의 한계로 영하의 기온 속의 빙산은 건조시 사용된 강철보다 단단했으며 외부적 조건(낮은 온도)에 의해 금속의 특성이라는 악조건이 겹쳐 배가 파손당하기 쉬운 상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선체를 접합하는 데 사용했던 이음못(리벳)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타이타닉 호의 잔해에서 채취한 이음못 48개를 분석한 결과 이음못에 유리 성분의 슬러그가 높은 비율로 섞여있었고 이로 인해 이음못이 메진 성질을 가져 쉽게 금이 간 것이다.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는 이쪽을 밀고 있는데 여기서의 내용에 따르면 선수 부분은 곡선이다 보니 리벳 머신으로 박을 수 없어서 강철 리벳 대신에 인력으로 때려박을 수 있는 연철 리벳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헌데 테스트용으로 만든 연철 리벳은 10,000psi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고(타이타닉이 충돌할 당시의 충격에 의한 압력은 14,000psi로 추정하였음) 실제 타이타닉의 선수 부분의 리벳은 테스트용보다도 훨씬 약한 수준이었고 그 때문에 충격으로 리벳이 박살나면서 생겨난 틈으로 침수가 되었다고 한다.

타이타닉 선장 스미스는 해수의 배수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그저 침몰을 늦출 뿐 막을 수는 없었다.

4월 15일 0시 15분 조난 신호 CQD를 발신, 인근 선박에 구조를 요청했다. 불과 20km 정도의 거리에 정박중인 화물선 캘리포니안호가 있었지만 1명밖에 없는 통신사가 위에서 나온 것처럼 취침중...이라 연락을 받지 못했다.[22] 대략 90km 떨어져 있던 여객선 카르파티아 호가 응답해 전속으로 구조로 향했지만 배의 최대 속도가 17노트(약 34km)에 그쳐 카르파티아 호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4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3 탈출[편집]

스미스 선장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다르게 탈출 명령을 내렸다. 우선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으며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머독이 구명보트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승객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탈 생각조차 안했는데 나무로 만든 조그만한 보트보다는 차라리 260m의 강철로 만들어진 여객선이 훨씬 안전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할 듯. 게다가 날씨 때문에 귀찮아했던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배에서 가장 부자였던 존 제이컵 아스터도 아내에게 "여기가 저 조그만한 보트보다 안전해" 라고 말했다고 한다.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하고 선장은 승인했다. 1등 항해사 머독은 더 이상 여성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남자를 태우는 것을 허용하는 등 비교적 남성에게도 관대한 대응을 했지만 라이톨러는 "여자와 어린이 먼저" 를 "여자와 어린이" 으로 받아들여 철저히 여성과 어린이만 구명보트에 태웠다[23] 이게 현장에선 도리어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정원이 덜 찼음에도 성인 남자라는 이유로 탑승이 거부되거나 우현에 비해 보트를 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부작용을 일으켰다. 좌현에서 보트를 탄 성인 남성은 보트에 선원이 한 명 뿐이라는 여성 승객의 이의로 인해 선원 대신 타게 된 요트 선수 정도였다.

타이타닉 호가 참사가 된 원인 중 하나는 구명보트의 부족 때문이었는데 당시의 영국 상무성의 규정을 보면 여객선은 여객 정원만큼 구명보트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 당시 규정에서는 978명, 그나마도 배의 배수톤수 기준이었다! 또한 미관, 비용 등의 이유로 인해 화이트 스타 라인사는 최종적으로 타이타닉 호에 1,17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보트만 준비하는 병크를 저질렀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맨 처음 구명보트를 하선할 때에는 많은 승객들이 탈 수 있어도 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언비어가 선원들 사이에 떠돌았다. 정원 65인승의 보트에 70명을 태우는 실험을 했는데 배는 뜰 수 있었지만 추진과 균형 잡기가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타이타닉의 설계자인 조선기사 토머스 앤드루스를 포함해 관련자들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또한 급작스런 사고에 당황한 선원들은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황급히 구명보트를 하선했다. 게다가 그 누구도 배가 침몰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기에 갑작스런 상황에 선원들도 정원이 얼마인지 헛갈렸고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안전 교육도 (아마도) 예배 때문에 취소되어 전혀 하지 않았다.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보트들이 정원을 채우지 않은 채로 바다에 내려졌다. 만약 정원이 완전히 채워졌다면 반이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배 밑 보일러실에서는 화부들과 기관선원들이 물이 보일러에 접촉해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증기와 해수를 배출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기관실에는 기관사들과 기관선원들이 계속해서 동력을 공급했다.

배수를 시작하고 얼마 후 5번 보일러실에서 첫 번째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화부와 기관선원 몇 명이 펌프질을 하다가 6번 보일러실의 석탄 저장고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익사한 것. 이건 밑에도 있는 항해 중에 있었던 의문의 화재 때문에 격벽이 약해져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화부장이었던 프레더릭 배럿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또 한편 우편 직원들은 침수하는 우편물 저장고에서 우편물을 물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그리고 하갑판에 남아있던 몇몇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물이 복도 구석구석에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다.

5.4 대피와 혼란[편집]

12시 45분쯤 구명보트 7호가 28명을 태우고(정원은 65명...) 처음으로 내려졌다. 곧이어 55분에 좌현에서 구명보트 6호가 7호와 마찬가지로 28명을 태우고 내려졌다. 여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빙산에 부딪히고 있었을 때 조타 당직자였던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 빙산을 처음 목격했던 견시 프레더릭 플리트[24], 그리고 훗날 "가라앉지 않는 이(Unsinkable)" 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마거릿 몰리 브라운도 있었다.

구명보트는 좌현과 우현 양쪽에서 하나둘씩 내려지기 시작했다. 허나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내려졌다. 구명보트 5호는 41명이 탔고 3호는 32명이, 8호는 39명이 탔고 1호는 겨우 12명(정원 40명)밖에 타고 있지 않았다.

혼란이 점점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약간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여성은 구명보트 10호와 배 사이에 떨어져 끼었다가 구조되었다.

어떤 승객들은 구명보트에 타기 위해 줄을 타거나 뛰어들기도 하였다. 물론 이 와중에 부상자들도 생겨났다. 이제 승객들도 상황의 심각함을 어느 정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한편 무선사 잭 필립스와 해럴드 브리드는 계속해서 모스 신호를 보내고 하늘에는 계속해서 로켓이 발사되었다. 캘리포니안 호에서도 이것이 조그만하게 보였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선박이 목격되었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선박은 후에 포경선으로 밝혀졌으며 자신들에게 뭔가 트집을 잡으려던 해안 경비대로 착각하고 도망갔다고 한다.

상황이 지속되고 배가 서서히 기울어짐에 따라 혼란이 훨씬 더 가중되었다. 이제 대다수의 승객들이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깨닫고 공황에 빠졌다. 아직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희망을 거는 사람들도 약간씩 있었다.

이때 수많은 3등실 승객들이 여전히 배를 헤메고 있었다. 여러 구역이 철창으로 막혀 제한되어 있었고 배가 미로처럼 복잡했기 때문에 탈출에 지장을 빚었으며 일부 승무원들은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승객들의 통제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거기에다가 3등실 승객들 중에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승객들도 많았다.

이 상황해서 여러 3등실 승객들은 그냥 탈출 시도를 포기한 채 자신들의 숙실이나 식당, 복도 등에 남아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수백명의 승객들이 식당에 남아 묵묵하게 탈출지시를 기다리거나 같이 모여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존 에드워트 허트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배 밑으로 내려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3등실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인도해 도와주기도 했다.

1시 30분쯤에는 배의 앞머리가 잠기기 시작하고 혼란은 계속해서 가중되었다. 구명보트도 이제 정원에 어느 정도 맞추기 시작했다. 구명보트 11호는 정원을 다섯명 초과해서 내려졌고 배에서 펌프질로 빠져나오는 물이 들어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피했다. 13호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문제를 가까스로 피했으나 밧줄에 문제가 생겨 옆에서 함께 내려지던 15호 바로 위에 내려져 깔리기 일보직전까지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바렛을 포함한 선원들이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잘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명보트 14호가 내려지려 하자 공황에 빠진 승객들이 필사적으로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다. 이에 14호를 맡은 5등 항해사 로우는 혼란을 저지하기 위에 허공에 대고 총을 쐈다. 5분 후에는 구명보트 16호가 내려졌는데 여기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간호사였던 바이올렛 제솝은 후에 자매선 브리타닉이 침몰했을때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구명보트가 하나둘씩 내려짐에 따라 이제 후미로 몰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1시 45분에는 구명보트 2호가 내려졌다. 이때 몇몇 외국인들이 타려 했지만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권총으로 위협해 쫓아냈다. 존 제이컵 애스터는 어린 아내를 태우고 아직도 빈 공간(40명 중에 25명이 타고있었음)이 많은 것을 보고 타도 되냐고 물었으나 라이톨러에 의해 거절당했다.

접이식 보트 C가 2시 정각에 내려지기 직전 두 사람이 몰래 탔는데 한 명은 가족을 구명보트에 미리 태운 승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회장이자 배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였다. 그는 이 때문에 돌아와서 욕을 꽤 먹었으며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도 사퇴했다.

마지막 구명보트(선교 위에 비상용으로 있었던 접이식 보트 2개는 제외)는 접이식 보트 D로 2시 5분에 내려졌다.

이 와중에 배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있었다.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스트라우스 내외는 금슬 좋은 노부부였는데 남편인 이사도라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도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하녀 엘렌에게 자신의 모피 코트를 건네주고 자기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에 남아 남편과 함께 죽었다.[25]

철강업자 벤저민 구겐하임은 현지처와 하인을 보트에 태운 뒤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했다. 턱시도로 갈아입은 그는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 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5.5 최후의 순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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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5분, 접이식 구명보트 2개를 제외한 마지막 구명 보트인 접이식 보트 D가 떠났다. 선장은 남은 선원들에게 모두 제 살 길을 찾으라고 했으며 배를 포기하겠다고 선포했다. 남은 사람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살기 위해 발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 남은 사람들은 접이식 보트 2개를 기다리거나 바다로 뛰어들거나 선미로 달려나갔다. 배가 기울며 프로펠러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2시 10분에는 바닷물이 최상층인 보트 갑판까지 다다랐다. 그때쯤 체육관 바깥쪽 휴식터에서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악단이 구슬픈 찬송가를 마지막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어떤 곡이 연주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력한 곡은 'Nearer, My God, to Thee' 와 'Autoume' 이다).

선장은 확성기를 쥔 채로 선교에 들어가 그대로 그곳에 남았다고 하며 배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은 채 그림을 응시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2시 15분에서 17분 사이에는 배가 보트 갑판을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배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통신사 잭 필립스와 조수 해럴드 브리드는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구조 신호를 보낸 후 침수되는 통신실에서 빠져나왔다.

남은 접이식 구명보트 두 척은 파도갑판 위를 떠다녔는데 접이식 보트 B는 뒤집힌 상태에서 여러 명이 매달려 있었고 접이식 보트 A는 뜨긴 했으나 물이 반쯤 찼다. 이때 몇몇 사람들(아치볼드 그레이시, 2등 항해사 라이톨러, 잭 테일러 등)이 환기구 때문에 빨려들어갔지만 다시 보일러실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오면서 물 속으로 빠져나와 뒤집어진 구명보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굴뚝 1이 선교루 쪽으로 쓰러지면서 (아마도 애스터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을 덮쳐버렸고 그 여파로 생긴 파도가 접이식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쓸어내렸다. 잠시 후 중앙계단의 유리 돔과 창문이 파도에 의해 깨져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배가 급속도로 기울면서 가라앉기 시작하자 온갖 종류의 배 내부 물체들(가구, 그릇, 보일러 엔진 등)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굉음이 발생했고 이는 배의 침몰을 가속시켰다. 배가 더 기울어지자 잡을 것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 또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갑판을 타고 미끄러졌다.

2시 18분, 물체들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굉음이 더 커졌다. 그러던 중 보일러실이 침수하면서 잠깐 깜박거리다가 완전히 정전되었다. 잠시 후 바닷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선체는 2번째와 3번째 굴뚝 사이의 신축 이음을 중심으로 금이 가면서 굉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쪼개졌다. 동시에 굴뚝 3과 환기구인 4가 부러졌다.

영화에서는 엄청 스펙터클하게 묘사됐지만 사실 이걸 본 사람은 소수인 데다가(폭발은 약간 보였다고 한다) 그나마 생존자 중 라이톨러가 회사가 망하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제대로 보지 못해서인지 "절대 동강나지 않았다" 고 말했기 때문에 영국 상무성은 "동강나지 않고 침몰" 이라고 결정내렸다. 1985년 로버트 밸러드에 의해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지만... 이윽고 뱃머리 부분은 잠기고 배 뒤쪽은 바다로 다시 일직선이 되었으나 곧바로 다시 기울어 점차 23도에 가까워졌다.

마침내 운명의 시각 2시 20분, 배와 해수면 사이의 내부 압력이 같아지자 타이타닉 호는 물을 뿜어내며 23도로 낮게 서서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다가 완전히 침몰했다.

이때 구명보트들은 빨려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선미는 꽤 느리게 침몰했고 큰 파도같은 것도 없었다고 한다(후술하듯이 배 조리장 찰스 조그힌은 머리도 젖지 않았다).

5.5.1 영웅들[편집]

승객들을 구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 충분히 구명정에 탈려고 하면 탈 수 있었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품위 있게 죽은 영웅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만약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이들 중 일부는 영화 타이타닉에도 등장한다. 타이타닉(1997) 항목의 실존인물 항목을 약간 참고할 것.

  •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에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에 남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조타실 문을 잠그고 침수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설과 다른 선원들과 함께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물에 휩쓸려 가라앉았다는 설 등 여러 가지의 설이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목격되기 직전까지 구조에 힘썼다고 하며 끝까지 배에 남았기에 모범적인 선장의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이준석 , 그리고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좌초사고의 선장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분이다.
참고로 스미스 선장은 낮은 계층 출신이었으나 그 기품과 카리스마 덕분에 화이트 스타 라인의 고객 중에도 오로지 스미스 선장의 배만을 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1911년에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회사측의 설득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항하기로 한 것이 바로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였다. 항해사 절반 또한 죽었다.
20세기 초까지 생존한 인물이었던 탓에, 짧으나마 생전 모습이 기록된 동영상이 존재한다. 사망 1년 전, 타이타닉의 자매선 RMS 올림픽의 선장으로 재직 중 찍힌 영상으로, 저위도 지역 혹은 더운 기후에서 근무할 때라 흰색 하정복을 입고 있다.
  •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선과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흡연실에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1등실) 승객들도 있었다.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윌리엄 스티드는 과거에 헤이그 특사를 도와준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배와 함께 죽었다.
  • 조지프 G. 벨을 포함한 많은 기관사/기관부들과 화부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 그러니까 배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배의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상선사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했다.[26]
  • 월리스 하틀리의 8명의 악단은 배가 침몰하기 불과 10분 전까지 곡을 연주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빈 후 헤어졌으나 비극적이게도 모두 죽었다. 왈리스 하틀리의 시신은 바이올린이 몸을 묶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바이올린은 2013년 10월 19일 영국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90만 파운드(약 15억 5,000만원)에 판매되었다.
  • 토머스 바일스 신부는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사람들의 구명보트 승선을 도왔다. 그리고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죽을 운명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갑판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다가 죽었다.
  • 추리소설가 잭 푸트렐도 이 배에 탔다가 36살 한창 나이로 죽고 말았다. 탐정 벤 두젠 시리즈를 내며 인기를 끌던 터,미발표된 원고 6편을 가지고 배에 탔다가 원고도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저민 구겐하임은 자신은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현지처와 하녀를 보트에 태우고 선원의 구명조끼를 거절하고 턱시도로 갈아입은 뒤 자신을 따르는 하인과 함께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 고 하며 마지막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딸 페기 구겐하임이 여기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콜렉션한 예술 작품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 뉴욕에서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노부부 스트라우스 부부는 금슬이 좋은 노부부였다. 이지도르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자 그의 부인인 아이다 스트라우스도 선원의 구명보트 승선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한태는 더이상 필요 없다며 하녀 엘렌 버드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준뒤 자기 대신 구명보트에 태운 뒤 남편과 함께 죽었다.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지도르 스트라우스가 승선을 거부한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던 지인이 노부부가 함께 승선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함께 승선하라고 권유했지만 이시도르는 "나는 다른 이가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네" 라고 말하며 승선을 거부하였다.
참고로 이때는 아직 배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타기보다 배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였지만 아이다 스트라우스는 엘렌에게 모피 코트를 건네며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라고 말했으므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 두 명의 통신사들도 선장이 이만 물러나가도 좋다고 한 후에도 끝까지 남아 전파를 보냈다. 이 중 해럴드 브리드는 살아남았지만 잭 필립스는 죽었다.
  • 남편이 금광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떼부자가 된 1등실 승객 마가렛 몰리 브라운은 구명보트에서 가장 앞장서서 노를 저었으며 생존자를 구조하자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지만 보트를 맡고 있던 조타수 히친스(충돌 당시 배를 맡고 있기도 했다)의 기를 죽여놓았다.
  • 3등실 승무원 존 에드워드 허트는 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길을 잃어 헤메는 3등실 승객들을 배 밖으로 안내했다.

이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 끝까지 남아 운명을 함께하거나 구명보트에 탑승해 열심히 생존자들을 도왔다.

5.6 구조[편집]

배에 남아있던 1500여 명의 사람들은 차가운 북대서양 한복판에 버려졌다. 배가 침몰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온갖 비명과 아우성이 구명보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다.

가장 적은 탑승수인 12명을 태운 1번 보트에 탑승한 화부 헨더릭슨은 현장에 돌아가자고 요구했으나 더프-고든 부부와 배를 맡은 선원 시먼스가 반대했고 나머지는 말이 없었으며 결국 무산되었다. 5번 보트의 3등 항해사 허버트 피트만 또한 현장에 돌아가려 했으나 몇몇 사람들이 이에 반대해서 무산되었다. 6번 보트에서는 마거릿 몰리 브라운 또한 현장에 돌아가서 사람들을 구하자고 요구했고 사람들도 이에 동의했으나 배를 맡은 조타수 로버트 히친스는 사람들이 배를 끌어당길 것이라며 거절했다.

한편 현장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약 50m) 4번 구명보트에서는 완전히 침몰 전 헤엄쳐온 3명이, 침몰 후에는 5명이 헤엄쳐와 구조되었고 (1명 사망) 접이식 보트 D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헤엄쳐온 한명을 구조한 상태였다.

현장에 바로 있었던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서는 30명이 넘는 사람들(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 아치발드 그레이시, 잭 테일러 등)이 메달리고 있었는데 주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노를 저으며 느리게 벗어나야 했다. 이 중 구출되지 않은 한 남성은 "알겠소. 행운을 빌고 하느님의 축복이 있길 빌지요" 라고 했다고 한다[27].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점점 줄어들면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14번 보트의 5등 항해사 해롤드 로우가 구명 보트들을 재편성한 뒤 지원자는 남기고(선원 7명, 승객 1명) 다른 사람들을 다른 구명보트로 옮겨 구조에 나섰으나 영하 2도의 차가운 바다에 있던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대부분이 30분 안에 죽었고 4명만이 그곳에서 살아남았다.[28] 저체온증 이전에 심장마비로 몇 분 이내에 사망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사망자 중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배가 침몰될 때 제대로 내려지지 못하고 파도 위를 떠다니던 접이식 보트 A와 B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지옥 같은 경험을 겪고 있었다.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는 보트 안에 있는 공기가 불안정해지고 파도까지 일어서 모두가 서서 구명보트의 균형을 맞춰야 했고 몇명은 이 전에 얼어죽거나 이 과정에서 힘이 빠져 물에 빠져 죽었다. 물이 찬 접이식 보트 A에서는 반이 얼어죽었다. 이 두 접이식 보트에 남은 생존자들도 다른 구명보트에게 구조된다.

이때 바닷물에 있었던 사람 중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은 조리장인 찰스 조그힌이었는데 뒤집어진 접이식 보트 B에 매달렸다가 자리가 다 찼다며 거절당했지만 위에서 누군가가 먼저 죽어서 자리가 남자 끌어올려져 살아남았다. 그렇게 오래 버티며 살아남은 이유는 침몰 중 술을 잔뜩 마셨기 때문. 무려 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선미 끝에 매달려 있다가 배가 완전히 침몰함과 동시에 그냥 물 위로 떠올랐는데 머리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29]

새벽 3시 55분에 카르파시아 호(선장 아서 로스톤)는 침몰한지 1시간 30분뒤에 도착했고, 약 4시간 30분 동안에 20개의 구명보트에 타고 있는 생존자들을 구조했다(5명은 구명보트에서 죽었다). 8시 30분에 마지막 생존자를 구조한 후 속도를 줄이고 현장으로 돌아가 다른 생존자들을 찾았으나 시신들은 파도에 쓸려가서 거의 보이질 않았고 흩어진 잔해들과 시신 1구밖에 보이질 않았으며 이때까지 물 속에 살아있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더 이상의 수색은 포기하고 뒤늦게 사고 해역에 도착한 캘리포니안 호에게 생존자를 더 찾아달라고 한 뒤에 3일 후 뉴욕에 도착했다.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와 사망자 비율[30]

분류 탑승자 생존률 사망률 생존자 사망자
1등실, 어린이 6 83% 17% 5 1
2등실, 어린이 24 100% 0% 24 0
3등실, 어린이 79 34% 66% 27 52
1등실, 여성 144 97% 3% 140 4
2등실, 여성 93 86% 14% 80 13
3등실, 여성 165 46% 54% 76 89
1등실, 남성 175 33% 67% 57 118
2등실, 남성 168 8% 92% 14 154
3등실, 남성 462 16% 84% 75 387
승무원, 여성 23 87% 13% 20 3
승무원, 남성 885 22% 78% 192 693
어린이 총합 109 51% 49% 56 53
여성 총합 425 74% 26% 316 109
남성 총합 1690 20% 80% 338 1352
전체 총합 2224 32% 68% 710 1514

여자와 아이들 먼저 규칙에 의해 남자들은 생존률이 여성과 아이들보다 훨씬 낮다. 3등실의 사망률이 월등하게 높다. 일부 승무원들이 3등실 승객들의 출입을 제한한 것도 있었고 3등실 선실이 구명보트에서 가장 떨어져 있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인 데다가 출입이 제한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그러나 1등실이라고 마냥 다 살아난 것은 아니다. 1등실에서는 헬렌 알리슨이라는 당시 2살짜리 여자아기가 구조되지 못했는데(구조되지 못한 이유가 엄마를 찾아서라고...) 이는 1등실과 2등실에서 구조되지 못한 유일한 어린이였다. 그녀의 오빠인 당시 11살의 허드슨 알리슨은 구조되었다. 2등실에서 어린이 구조율은 100%였다. 반면 3등실에서 구조되지 못한 어린이는 구조된 수의 거의 두배에 가까웠다(1,2등실 어린이까지 합친 총 어린이수와 비교시 절반에 가깝다.).

사망 원인의 대다수는 영하 2도의 수온으로 인한 저체온증이었다. 물 속에서는 공기 중보다 체온 저하 속도가 훨씬 더 빠르며 영상 20도의 해수에서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한 북대서양 바다는 여객선이 통행하는 바다 가운데 가장 수온이 낮은 바다로 영하의 바닷물에서는 10분 내외로 목숨을 잃는다. 남성과 2등실, 3등실 승객의 사망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2등실 남성 승객 중 92%가 사망했다.

며칠 후 시신 수습을 위해 매케니 베넷 호를 포함한 몇몇 배들이 출항했다. 총 328구의 시신이 바다에서 수습되었는데, 그 중 119구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연고자가 없는 시신, 그리고 선원들의 시신(바다에서 죽은 선원은 자신의 고향인 바다에 장사지낸다는 전통이 있다.)은 영국 근해에서 수장했다. 그런데 시체를 놓을 공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선원들 뿐 아니라 3등실 승객들까지 바다에 장사 지내지기도 했다(...) 돈 없어서 죽었더니 죽어서까지 이 고생 수습된 시신들은 캐나다의 핼리팩스에 묻었다.

참사의 원인을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 빙산 경고 메시지가 선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항로를 바꾸지 못했다. 게다가 배는 당시 전속력으로 가는 중이었다.
  • 쌍안경 열쇠도 항구에 두고 왔고 달빛도 없었는 데다가 파도까지 잔잔해서 견시들이 맨눈으로 식별하기 매우 어려웠다.
  • 게다가 빙산의 대부분은 바다 밑에 있기 때문에 알아냈을 때는 늦었다.
  • 조타수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깐동안 우현 전타와 좌현 전타를 헷갈려 했다.
  • 리벳 또한 불량이었다.
  • 게다가 충돌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배인 캘리포니안 호의 유일한 통신사는 타이타닉 호의 통신사에게 일침을 들은 후 침몰 당시 자고 있었다.
  • 3등객 승객들이 탈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나중에는 대부분 어떻게든 나오긴 했지만 이미 상당수의 구명보트가 떠난 상태였다.
  • 구명보트의 정원이 탑승객들의 절반밖에 안됐다.
  • 정원을 초과해도 모자를 판에 많은 수의 구명보트가 꽉 채우지 않은 상태로 보내졌다.

그야말로 악조건의 연속(...) 아 망했어요

6 사고 이후[편집]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문명의 진보에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2년 후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확실하게 확인사살된다. 타이타닉호의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영국 상무성의 조사에 따르면 1,513명에 달해 2015년 현재까지도 '자연재해로 인한 세계 최악의 해난사고' 아무래도 빙산을 사람이 만들거나 한 게 아니니까 이다. 생존자는 711명에 불과.

  • 최악의 해난사고로는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로 1만여명의 독일 피난민을 태우고 독일로 가던 중 발트해 연안에서 소련 잠수함에 의해 침몰 8~9000명정도가 사망한 사고이고, 그외에도 전쟁중 발트해에서 침몰한 고야호 침몰사고 1945년 한국인 5천명 이상이 죽은 우키시마호 사건 같은, 4천명 이상이 죽은 1987년 12월 필리핀 도나 파즈 호 침몰사고등이 있다

타이타닉 사고를 계기로 선박의 안전성 확보를 국제 조약의 형태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1914년 13개 주요 해운국 회의에서 '해상에서 인명의 안전을 위한 국제 조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 통칭 SOLAS)' 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31] 당시 선박에 적용되는 안전규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냐면 지금까지도 해상법에 있어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영국법에서도 구명보트의 설치 기준은 선박의 정원이 아닌 배수톤수에 맞춰져 있었을 정도. 화물선은 몰라도 여객선에서는 구명보트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미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선박에 무선 통신 장비가 의무화, 무선 통신이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세계의 보험역사에도 의미가 있는데, 선박사건 최초(?)로 보험에 가입한 생존자와 사망자에게 금액을 보상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은 영국의 로이드 보험사에 손해보험을 들었는데 배가 침몰하면서 로이드는 보험금으로 140만 파운드를 지급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25억원 정도인데 1912년 당시 화폐가치를 적용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지급된 것. 어마어마한 보험금 때문에 타이타닉 침몰 사고가 보험사기라는 음모론이 나오게 된다.#1#2이 사건의 수해자 당시 보상금액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흠좀무

6.1 발견[편집]

1985년 미국 심해탐험가 로버트 밸러드(Robert Ballard)는 뉴펀들랜드 680킬로미터 지점에서 최초로 타이타닉호 잔해를 심해카메라로 촬영했으며, 미국과 영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심해 잠수정을 이용한 선체 파편 인양 작업이 성사되었다. 수심 약 4000미터에서 발견된 두 동강난 선체는 각각 600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약 20% 정도가 침몰 과정과 그 후의 과정에서 유실되었다. 배의 앞쪽 부분은 비교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뒷쪽 부분은 선체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훼손이 심했으며, 잔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배의 모든 굴뚝은 침몰 과정에서 유실되었고, 망루는 선교루를 향해 쓰러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옷은 발견되었으나 유해는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아마 조류로 인해 흩어졌거나 바닷물의 유기물에 녹아 없어진 듯하였다.

처음에는 모두 다 기뻐했지만 누군가 시계를 보고서 "그러고 보니까 침몰했던 시각 20분 전인데"라고 하자 분위기가 싹 바뀌어 하나같이 침묵했다고 한다. 발라드는 배를 발견하고 한동안은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으며, 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 또 배에서 단 한 개의 유물도 건지지 않았다.

사족. 사실 타이타닉을 찾기 위해서는 미 해군의 원조가 필요했었는데 당시 관련자들은 미군의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군이 조건으로 내건 1960년대 바다에서 감쪽같이 증발한 두 척의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스콜피온과 쓰레셔를 찾아내야만 했다. 결국 찾아냈고 짧은 시일이나마 미군의 원조를 받아 타이타닉의 잔해를 찾아낸 것이다. NGC에서 관련 다큐를 방영해준 적도 있다.

1993년 9월에는 미국 조선 전문가 윌리엄 가츠키(William Gartzke)가 당시 기록을 근거로 타이타닉 호 침몰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해석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배가 빙하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나게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증언했는데 그 소리는 저급 강철판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신호였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건져올린 선체 파편을 연구한 결과 충돌시 휘지 않고 부서지는 질이 낮은 강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다면 침몰을 막았거나 침몰시간이 지연되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타이타닉은 당시 사용되던 최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다. 단지, 당시 제조기술이 너무 낮아 최고급 강철판 역시 황의 함유량이 너무 많았고 덕분에 낮은 온도에선 휘어지기보단 부셔저버리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어판 뉴턴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현재 배의 대부분이 뻘에 파묻히고 있는 중이고 얼마 안가 완전히 묻힐것이라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위키백과의 항목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이는 몇몇 사용자들이 두 개 다 편집했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역사와 위키)

6.2 타이타닉 자매선들의 운명[편집]

타이타닉의 자매함 올림픽호와 브리타닉호 역시 뒤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브리타닉호는 원래 타이타닉호보다도 화려하게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건조되자마자(위에도 있듯 1914년 2월 26일 진수) 1차대전에서 병원선으로 징발되어 활동하던 중 1916년 독일 해군이 설치한 기뢰(추측)를 건드려 침몰하였다. 구명보트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살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스크루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구명보트 두 대가 빨려들어가 30명 가까이가 죽었다.

올림픽호 역시 병력/물자 수송선으로 징발되어 1차대전에 참전하는데 독일의 유보트(SM U-103)를 선체로 들이받는(!) 충각 전술로 격침(...)시키는 희한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차세계대전에서의 상선이 군함을 침몰시켜버린 유일한 기록이다). 전후 올림픽호는 다시 호화 여객선으로 돌아왔으나 항공기의 발달로 호화 여객선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특히 올림픽호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호화 여객선의 주요 기관이 터빈기관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구식 왕복엔진을 주 동력원으로 한 탓에 속력이 느렸고 배 또한 1910년 건조 당시부터 끊임없는 사고로 인한 선체 노후화가 있어 결국 1934년에 퇴역, 35년에 고철로 처리되었다.

원래 항목에는 귀부인의저택이 되었다가 2000년에 크루즈 선사로 유명한 로열 캐리비안 사가 구매하여 자사의 크루즈선인 밀레니엄호의 부속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배 자체로서의 올림픽이 아니라 1934년에 배가 폐함 처분될 때 철거된 올림픽 호의 인테리어 파트, 특히 부설 레스토랑의 목제 내벽을 가리키는 것[32]이 아니면 1969년에 퇴역해서 장기간 수상 레스토랑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아일랜드에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올림픽 호의 1, 2등실 승객용 셔틀 선박인 SS 노매딕의 이야기가 복합된 착오라고 보인다. 수정바람.

여담으로 바이올렛 제솝(Violet Jessop)이라는 간호사가 3자매함 모두를 타봤는데, 1911년 올림픽호에서 영국 해군 순양함 HMS 호크와 충돌사고를 겪은 것을 시작으로, 1912년 타이타닉 침몰때도 생존했고, 1916년 브리타닉호가 침몰할때도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구조되었다. 이런 불운에도 불구하고 건강히 살다가 83세로 1971년에 사망.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다

6.3 타이타닉 2의 건조[편집]

2013년 2월 27일자 이후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타이타닉 2가 만들어져서 항해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 내용. 호주의 억만장자인 클라이브 파머가 소유한 블루스타 해운에서 중국 국영조선회사인 창장조선항운그룹에게 타이타닉2의 건조를 맡겨 중국의 진링조선소에서 건조할 예정이며 배는 2016년까지 완성되어 예전에 타이타닉이 항해했던 사우스햄프턴-뉴욕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족들이 생각하기에는 타이타닉으로 고인드립을 치는 블루스타 해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듯.. 했으나 유가족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부정적이지 않았다. 혹시나 이게 블루스타 해운에서 타이타닉하고 외관만 같은 배를 만들 뿐인데 괜히 언론에서 타이타닉2라고 설레발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위에 링크된 기사에 포함된 동영상의 54초 부분의 뒤를 잘 보면 정중앙에 블루스타 라인이라는 회사 이름과 함께 좌우 양쪽 사이드에 TITANIC II라고 선명히 적힌 글씨를 볼 수 있다. 빼도박도 못하게 타이타닉 후속 인증 이거 영 무서워서 사람들이 타겠나 원

7 여담[편집]

  • 수에즈 운하에 이 배가 너무 커서 안 들어가 확장 공사를 해야 했다는 말도 있지만 과장으로, 1904년 러일전쟁때 러시아 군함들도 수에즈 운하보다 커서 희망봉을 돌아야 했고, 수에즈 운하의 확장은 이러한 선박의 대형화 추세 때문이지 타이타닉 호 한 척의 통행 때문은 아니었다.
  • 통신부호 SOS가 타이타닉에서 유래됐다 하는데 실은 루머로 타이타닉 사고 6년전에 이미 규정된 통신부호다.자세한 것은 SOS 항목 참조.
  • 어떤 선원은 자기 아내가 화이트라인사 로고가 새겨진 뜨개질을 하다가 엉켜버렸는데 이에 아내가 불행한 징조라면서 말려 가지 않았다고 한다. 수석 항해사 헨리 와일드는 출항 전 가족에게 뭔가 불길하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이후 배와 함께 죽었다.
  • 침몰 전 배와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병에 걸려 죽어가던 제시라는 여자아이가 꿈에서 큰 배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월리라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소녀가 꿈에서 보았던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월리 하틀리가 이끄는 악단은 끝까지 연주를 계속하다 배와 함께 죽었다.
  • 출항하던 날 갈매기가 단체로 배를 쫓아왔다고 하던데 이는 뱃사람들에게 안 좋은 징조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다른 배와 아슬아슬하게 충돌할 뻔한 일도 있었고 항해 와중에 석탄 저장고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나기도 했다.
  • 1898년에 작가 모건 로버트슨(Morgan Robertson)이란 <무용지물(Futility)>이란 단편 소설을 쓰는데 내용이 "'타이탄' 이란 초호화 여객선이 대서양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다가 빙하와 충돌하여 대형 인명사고를 낸다" 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탑승객 숫자와 구명 보트 수, 출발 항구, 사고 원인과 사고 지점, 배의 규모와 사고 시기가 14년 뒤에 실제로 일어난 타이타닉호 사건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훗날 로버트슨은 '비행기가 한 도시를 폭격한다' 는 내용의 단편 소설도 썼는데 그로부터 30년 후인 제2차 세계대전진주만 습격 사건이 발생하여 그의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흠좀무.
  • 타이타닉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는 밀리비나 딘(Millivina Dean) 여사로 타이타닉 침몰 당시 태어난지 9주밖에 안 된 최연소 승객이기도 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오빠는 아버지의 침착한 대처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끝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고 이후 사우샘프턴에 거주했다고 한다. 노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타이타닉 침몰 당시 갖고 있었던 가족의 유품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97년판 영화의 제작진들과 타이타닉 탐사협회가 생활비를 지원해준 적도 있다. 그러던중 2009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 타이타닉 탑승자 중에는 동양인도 있었다. 중국인 8명 혹은 10명과 호소노 마사부미라는 이름의 일본인 공무원 1명이 있었는데[33] 이중 중국인 6명과 일본인 1명이 구조되어 생존률은 꽤 높았던 편이었다. 호소노 마사부미는 '여자와 아이를 우선으로 구한다' 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구차하게 보트에 탑승하려 했다고 해서 귀국하고도 갖은 욕을 먹었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불운하게 죽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탑승한 보트 근처에 더 이상 여자와 어린이가 없어서 탑승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죽을 마당에 살려고 발버둥치는 걸 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후 출간된 여러 관련 서적에서도 도시전설급으로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는 빠지고 비난을 받았는데 80년대 조선일보에서 기고를 자주 하던 이규태(1933~2006)는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거나 타이타닉 영화[34]가 TV에서 방송될 때마다 일본인의 민족성 운운하면서 호소노를 까곤 했다.

7.1 타이타닉과 관한 도시전설[편집]

거의 모든 대형 사건들이 그렇듯 타이타닉도 몇 가지 괴담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가장 유명한 괴담 중 하나는 불행하게 죽은 이집트 공주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걸 소유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다가 어느 고고학자에 의해서 어느 여객선에 실려갔는데 그 여객선이 바로 타이타닉이라는 것.

그밖에 선박 번호 390904를 거울로 뒤집어 보면 'NOPOPE' 가 되며 이는 아일랜드 선박 노동자들이 가톨릭에 대한 반감으로 꾸민 짓이라는 음모론도 있고[35] 애초부터 선박사가 보험사기로 꾸민 짓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프리메이슨 음모론이 빠질 리가 없다(...)

물론 괴담과 음모론이 다 그렇듯이 근거는 없다. 하지만 보험사기 음모론, 즉 타이타닉호가 올림픽호랑 바꿔치기했다는 음모론은 그나마 이들 중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8 각종 문화/매체에서[편집]

사실 이러한 선박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알음알음 터지고 있지만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 유독 많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함선과 사고 경위 자체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함선 자체도 당시 기준 최첨단+최고급+최대급 함선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던 함선이였는데 그 관심이 식기도 전인 처녀항해에 사고가 거하게 터진 데다가 규모가 큰 만큼 사건 규모도 큰지라 세간에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인지도를 확보한 까닭이 크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문화/기술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당시 20세기 초의 서구 사회(특히 대영제국)에 빅엿을 먹인 것도 있고 항해와 침몰 과정에서 생긴 일들이 상당히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 되었고 각종 문화와 매체에 등장하거나 오마쥬되어왔다.

타이타닉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거나 취미로 두는 사람들도 있다.

8.1 영상화[편집]

아무래도 이 사고가 너무나 유명해서 그런지 영상화도 많이 되었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제작되기 전 가장 유명했던 영화는 '타이타닉호의 비극(The Night to Remember(1958))' 이라는 영화로 타이타닉에 관심 있다면 찾아볼 것. 제목은 월터 로드가 타이타닉에 관해서 쓴 동명의 책(논픽션)에서 따왔다. 케네스 모어가 2등 항해사 라이톨러(주인공) 역으로 등장한다. 오래된 영화지만 연출이 뛰어나며 1997년판 타이타닉도 이 영화에서 오마주한 것이 많다. 예를 들자면 토머스 앤드루스가 흡연실에서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최후를 맞이한다던가 악단이 월리스 하틀리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돌아와서 끝까지 연주한다던가. 사실 두 영화 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인지라 구성 자체가 동일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연출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가장 먼저 나온 영화는 1912년에 배가 침몰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생존자이자 1등실 승객이었던 여배우 도로시 깁슨이 만든 '타이타닉에서 구출되다(Saved from Titanic)' 이다. 이때 사건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출연했다고. 안타깝게도 필름들이 훼손되었고 어느날 마지막 필름마저 화재로 유실되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또 1953년에 나온 영화도 있는데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게다가 1943년에 나치 프로파간다(...)로 나온 영화도 있다! 주인공이 1등 항해사인 독일인(물론 영화상 설정)으로 나오며 연출은 좋지만 프로파간다 영화이기 때문에 왜곡되거나 편파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많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당대 독일에서 성공한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를 찍은 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요제프 괴벨스에게는 이 영화와 감독이 탐탁치 않았고 이후 미운털이 찍힌 감독은 감옥에 갇힌 후 자살을 가장한 처형을 당하고 만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는 훗날 소련에서도 방영됐다(!)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라고. 또 한 가지 사실은 이 배의 배경이 아르코나 호(SS Cap Arcona)에서 찍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죄수선으로 쓰였다가 소련 잠수함에 격침당하여 무려 5000명이나 죽는 해양 참사로 기록된다. 타이타닉보다 무려 4배나 더 많이 죽었다. 흠좀무. 이 영화에서도 다른 타이타닉 관련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론이 따온 연출이 많다. 1958년도판 영화도 이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일부 첨부하였다.

그 밖에 1979년판 영화도 있고 기타 등등...

TV드라마로도 나왔다. 1996년도 2부작 드라마에서는 뜨기 전의 캐서린 제타존스가 나오기도 했고 2012년에는 침몰 100주년으로 4부작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나온 1984년도 TV영화도 있는 편. 최근 2013년 여름에 타이타닉의 건조과정을 소재로 한 '타이타닉 블러드 앤 스틸' 이 방영되었다.

타이타닉 2라는 괴작도 나왔지만 이건 카메론 감독이 만든 영화의 정식 후속작이 아니고 어사일럼 영화사가 만든 것. 할리우드에서 히트친 영화들을 속전 속결로 후다다닥 대충 베껴(?) 동인지 목버스터 영화로 만드는 곳이다. 예)퍼시픽 림→애틀랜틱 림, 트랜스포머→트랜스모퍼, 나는 전설이다→나는 오메가다, 드래곤볼 에볼루션드래곤 퀘스트(게임 원작 절대 아님!!), 스피드 레이서→스트리트 레이서, 데스 레이스→데스 레이, 파라노멀 액티비티→파라노멀 엔티티,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터미네이터스, 타이타닉→타이타닉2. 이름을 살짝 바꾸는 게 아니라 2편이라고 쓰는 건 처음인데 아마 타이타닉은 영화 타이틀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배의 이름이니까 상관없다고 둘러대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참고로 이 타이타닉 2는 엄청난 저예산답게 CG나 연기들이 역시나 괴작이다.

그리고 타이타닉 3D 재개봉에 편승했는지 2012년 4월 25일 다시 국내 개봉했다. # 충격과 공포.

8.1.1 타이타닉(영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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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997년이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은 역대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 중 가장 충실한 고증과 스케일 그리고 웅장함을 자랑한다. 멕시코에서 실물과 거의 흡사한 세트(!)를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건조를 담당한 회사였던 할랜드 앤 울프(Harland & Wolff)에 의뢰하여 실제 타이타닉 호의 설계도를 입수해서 만들었다(!!) 참고로 이 설계도는 2차대전으로 행방불명되었다가 극적으로 발견된 것(!!!) 거기에 타이타닉 호의 연회장과 식당을 장식했던 융단의 제작을 맡았던 업체 BMK Stoddard와(!!!!) 실제 타이타닉 호의 대빗(보트/닻을 달아 올리는 기둥)의 제작을 맡은 웰랜 대빗 컴패니(Wellan Davit Company)로 부터 기술 지원을 받아(!!!!) 사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감독, 괴물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8.2 닥터후의 함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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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후 시리즈에 나오는 우주함선. 물론 어원은 1.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라서 저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스페셜로 방송된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 에서 등장. 크리스마스 날 운치 있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배 이름이 사망 플래그 선주가 침몰시키고자 계획한 배였기 때문에[36] 일부러 역장을 내려 운석에 직격당해버렸고 거기에 천사 로봇의 영향으로 승객들 대부분이 몰살당한 상태로 결국 지구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만약 지구에 낙하하면 초대규모 핵융합 폭발로 인해 광대한 영역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결국 닥터의 활약으로 버킹엄 궁전 상공을 크게 가로지르며 불시착. 지구에 대피령을 내리자 애완견을 데리고 도망치시는 엘리자베스 2세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은 타이타닉보다는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와 더 비슷하다.

사족으로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생존자인 밀비나 딘 여사는 이 에피소드를 고인드립이라며 깠다.

8.3 기타 이것 저것[편집]

뮤지컬도 있다. 꽤 호평을 받은 편.

또한 애니메이션 영화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1999년에 만든 <타이타닉의 전설>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타이타닉이 사실은 침몰하지 않았으며 뭐? 거대 문어가 타이타닉을 도와 사람들도 살고 배도 살고 선장도 살았다는 역사적 왜곡까지 집어넣고 있다. 거기에 난데없이 고래 보호 캠페인을 강조하자는 건지? Nostalgia Critic도 사정 없이 깠다. 더불어 이 애니는 북한에서 하청했고 북한 쪽 사람이 공동감독까지 했다! 더 충격적인 건 북한 감독이 맡은 속편도 있다는 사실. NC가 절규한다. 안돼애애애애애애

그 외에도 2000년에 이탈리아에서 <타이타닉 : 전설은 계속된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NC는 2000년 <타이타닉 : 전설은 계속된다>를 먼저 리뷰했다. 영화를 먼저 리뷰했기 때문에 앞의 물건보다는 조금 나으나[37]랩을 하는 개가 나오고 뱅크샷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등[38] 여기도 만만찮게 미쳐있다. 이 영화는 2012년 6월 기준으로 드디어 IMDB에서 평점 1.4로 최악의 영화 1위를 찍었다.

고스트 버스터즈 2에선 타이타닉이 무사히 미국으로 온다. 물론 유령선으로... 밤중에 갑자기 나타나서 미국 항구에 도달하여 유령들이 가득 내려오자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어이없듯이 쳐다보는 것으로 잠깐 나온다. 그리고 뉴욕시장에게 타이타닉이 77년만에 미국에 도착했다고 연락한다.

미국의 해양 모험 소설가 클라이브 커슬러는 1970년대에 "타이타닉을 인양하라" 라는 소설을 썼다. 미국의 전략미사일 방위계획에 꼭 필요한 '비자니움' 이라는 광석이 소련 영토에서만 채굴되는 것이라 구할 길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타이타닉 호의 화물 중에 다량의 비자니움이 있더라... 는 설정으로 미국은 타이타닉을 인양하려고 하고 소련은 방해하는 해양 첩보전을 다뤘다. 영화화도 되었는데 결말에서는 인양에 성공하여 위에 고스트 버스터즈 2의 엔딩처럼 타이타닉을 무사히 뉴욕 항에 입항시키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소설이 나올 때만 해도 타이타닉이 쪼개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장면. 그리고 망했다(...)

TITENIC이라는 게임도 존재한다. 물론 공식 게임화라고 믿으면 골룸. 패미컴의 해적판 게임이다. 이 게임의 제작진 중 몇몇은 마스터 파이터 2, 소마리를 제작한 해적판 게임 제작진으로 추정된다. 타이틀까지도 원작 포스터를 그대로 베껴 그렸는데 정작 잭과 로즈가 갑판에서 격투활극을 찍는 해괴한 내용의 액션 게임이 되어버렸다.[39] 또한 이 게임을 제작한 제작진들은 이 게임의 포맷을 복붙해서 해리 포터 게임이랍시고 역시 패미컴 해적판 게임을 내놓았다.

Titanic : Adventure Out of Time이라는 어드벤쳐 게임도 있다. Cyberflix사에서 제작했으며 1996년에 출시되었다. 주인공은 영국의 비밀요원으로서 타이타닉에 있었던 물건들[40]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실패하고 몸만 살아서 나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집이 폭격을 받자 타임 슬립하여 1912년 4월 14일 오후 9시 30분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 세 가지를 입수하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PC게임으로 정발되었지만 영어판으로만 나왔다.

타이타닉의 재현도는 상당히 좋았으며 어떠한 물건을 손에 넣고 탈출하냐에 따라 엔딩이 갈리는 멀티 엔딩을 채택했다(총 9개).

술자리 게임으로 타이타닉이란 벌칙게임이 있다. 냄비에 맥주를 채워 바다를 만든 후 접시를 띄워 그 안에 소주를 돌아가며 붓는데 마지막으로 접시에 소주를 부어 가라앉힌 사람이 냄비의 소맥을 전부 마시는 것. 당연히 큰일날 짓이므로 함부로 먹이진 말자.

뮤지컬 헤드윅의 본격적인 공연 장소는 리버뷰 호텔로 이 호텔은 실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묵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뮤지컬 내용 중 타이타닉의 유령들(??)에게 윽박지르는 헤드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는 뮤지컬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

가끔 양덕계 커뮤니티에서 자기가 지지하던 히로인이 끝내 선택받지 못하면 타이타닉처럼 침몰했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으나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닌 편. 유일한 예외로 S.S.Kuroneko너무나도 처참했던 그녀의 최후를 기리기 위해서 반공식적으로 채택된 그녀와 그녀의 지지자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스쿨홀릭<뫼비우스의 띠>에서 쭈니군이 타이타닉 드립을 치다가 신쌞한테 걸려 뒤로 나간다 근데 뒤로 나가자마자 포세이돈호드립을 친다!!!!!!!!!!!!!

타이타닉의 침몰일은 공교롭게도 김일성의 출생일과 일치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자본주의가 침몰하고 위대한 령도자가 탄생한 날로 결부짓기도 했다.

  1. Royal Mail Steamer(왕립 우편 기선). 당시에는 여객선의 우편 배송이 상당히 흔했다. 사실 배와 열차 말고는 국제운송수단이 딱히 없는 시절이었고.
  2. 배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거신족 티탄에서 따온 명칭이다.
  3. 선박의 등록톤수. 1GRT = 100ft³ = 2.83168466m³
  4. 길이와 폭, 속도의 미터 단위 표기는 피트 단위 및 마일 단위의 환산이기 때문에 인용 매체에 따라 소수점 단위의 차이가 존재함.
  5. 현대의 비슷한 배수량의 선박들이 보통 메인엔진 1기, 보조엔진 1기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속도를 낸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20세기 내연기관의 발달에 감탄하도록 하자. 사실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를 떠난 지 26년 후(1936년)에 경쟁회사인 큐라드 라인에서 발주해서 처녀항해를 한 RMS 퀸 메리(RMS Queen Mary)호만 해도 160,000shp 마력이다.
  6. Blue Riband, 대서양 정기 여객선들의 속도경쟁 정점으로 최단시간내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에게 부여하는 상.
  7. 타이타닉은 단일 선박이 아니라 1번함 올림픽을 네임십으로 하는 올림픽 급의 2번함이다. 3번함이 바로 브리타닉.
  8. 공교롭게도 이 날 사고 해역으로부터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모 반도 국가의 북쪽 반절을 침몰시킨 인민의 원쑤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동네 교과서도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서구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주체사상이 흥할 징조였다는 개소리를 씨부려놓았다.
  9. 배에서 선교나 마스트 등에서 직접 눈으로 배 주변을 감시하고 특이사항 등을 살피고 보고하는 당직 근무의 일종 혹은 그 당직을 서고 있는 인원.
  10. 생존자 중 이 배의 거주 환경이 자신들이 살던 집보다 훨씬 나았다는 증언을 한 3등실 승객도 있다.
  11. 주인장을 포함해서 이탈리아인프랑스인이 대부분이었다. 호화 여객선답게 영국 요리 따위는 취급 안 하겠다는 화이트 스타의 의지 단 두 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12. 8명. 전부 끝까지 연주하다가 사망.
  13.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승객이면서도 선원으로 취급받았다. 생존자는 없었다.
  14. 타이타닉 호의 높이는 배 밑바닥으로부터 굴뚝 위까지 52.2m이고 빙산은 수면 위로 1/10만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 충돌할 위험이 높다.
  15. '6th Officer로 6등 항해사라고 번역한 경우가 대부분이나 최선임자인 Chief Officer의 국내 계급 명칭이 1등 항해사이므로 영문보다 한 등급씩 밀리게 된다'라며 7등 항해사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히 오역이다, 보통은 Chief Officer나 first Officer 모두 1등 항해사를 지칭하는 말이며 이후로 second, third officer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한 등급씩 밀려서 해석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다만, 타이타닉과 같은 대형선박에 많은 업무가 있는 특수선종의 경우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Chief Officer와 first Officer가 같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는 수석 항해사와 일등 항해사로 구분하지 마찬가지로 한 등급씩 밀리는 경우는 없다.
  16. 엄밀히 말하면 명령은 우현전타인 'hard starboard'였는데 당시에 주류를 이루던 범선은 왼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키를 돌려야 했다, 이런 틸러 명령법에 따라 머독은 우현전타를 명한 것이다, 즉 당시의 'hard starboard'는 좌현으로 배를 최대한 꺽어라는 말이 된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타이타닉은 당시로서는 신식인 증기선으로 조타뱡항과 배의 진행방향이 일치했다, 다시말해 기존의 범선과 다르게 오늘날처럼 좌현으로 가려면 타륜도 왼쪽으로 꺽으면 되는 것, 그래서 타이타닉과 같은 증기선은 좌현으로 방향을 돌릴려면 머독의 우현전타 명령대로 타를 오른쪽으로 돌릴게 아니라 왼쪽으로 돌려야 배가 좌현으로 갔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이런 점들을 감안해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최근들어 당시에 조타수가 이런 조타법의 과도기에 따른 혼란으로 조타방향을 잘못 조작해서 빙산과 충돌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 링크 '배에는 좌·우회전 표현이 없다?' [1]
  17. 마찬가지로 명령은 좌현전타인 'hard port'
  18. 배와 빙산은 최대한 10초간 정도밖에 접촉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 선체의 흠집은 겨우 수 인치 정도로 손상폭을 합계해도 1m란 것이 후에 해저 탐사에서 밝혀졌다.
  19. 이 주장은 찰스 라이톨러의 손녀의 증언에서 나왔다.
  20. 금속이 외부 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유연하게 변형되는 성질.
  21. 북극해 주변이라는 소리가 있으나, 사고 지점은 북위 41° 44′, 서경 49° 57′으로 북극해와는 거리가 멀다.
  22. 이 일로 인해 타이타닉 사고 이후 무전을 상시 켜놓고 교대근무를 통해 통신사가 항상 대기하도록 하는 국제규약이 생겨났다.
  23. 동명의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나오는데 선장은 "Yes...Women and children first"라고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라이톨러는 승객들에게 "Women and children ONLY"라고 말한다.
  24. 이들 선원들은 배의 침몰 상황시 맡게 되는 임무가 지정된 보트를 맡아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것이었기에 타게 된 것이다. 뭣도 모르는 이들은 이렇게 살아남은 선원들이 비겁자라 보트를 선점해 동료들을 버리고 자신들이 탔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25. 영화에서는 물이 들어오는 선실 침대에 둘이 함께 껴안고 누워있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26. 이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고군분투 했는데 전속항해 중이던 타이타닉의 기관을 달을대로 달아있었고 여기에 차가운 해수가 닿으면 폭발할 뿐만 아니라 배에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구조를 위해 달려오는 타 선박들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사고가 난 시각이 밤이였기에 빛이 없다면 승객들의 안전한 탈출을 할 수 없었다.
  27. 1997년판 영화에서 이 사실을 따온 장면이 촬영되었다(단, 본편에선 삭제되어 미방영 장면 모음으로만 볼 수 있다). 알려진 이야기와는 좀 다르게 전복된 보트가 아닌 로즈와 잭이 매달린 판자로 헤엄쳐 오다 잭에게 제지당하자 위 대사를 남기고 순순히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간다. 아마 의도는 좋은데 잭이 쓰레기(...)처럼 보여 삭제된 듯.
  28. 첫 번째로 구조된 사람은 중국인이었다. 5등 항해사 로는 구해주자는 의견에 이 사람이 대충 죽은 줄 알고 "저런 쪽바리 구해서 뭐하게?" 식으로 말하다가 말이 심한 걸 알았는지 금방 마음을 바꾸고 구명보트를 돌려 구해줬고 이 사람은 열심히 노를 저었다. 본인도 구명보트 위에서 괜한 소리를 했다고 인정했다고.
  29. 사실 조난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체온이 상승하지만 혈관이 확장되기 때문에 그만큼 체온 손실도 빨라진다. 술 마시고 길에서 자다가 동사하는 사람들이 왜 많은지 생각해보자(...) 단기간이라면 모를까 3시간 동안 영하의 바닷물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그냥 기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술의 영향으로 신체적으로는 추위가 덜 느껴졌을 것이다.
  30. # 이는 승선객 명부에 따른 수치이며 돌발상황 등으로 인한 변화내용은 반영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31. 이 조약은 수없는 개정과 보강을 거쳐 현재까지도 효력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해상 규약 중 하나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해상 규약 역사에는 정확이 들어맞는 것이 SOLAS와 함께 가장 중요한 해상 규약인 MARPOL(선박에 의해 발생하는 해양 오염을 규제하는 규약) 역시 사상 최악의 유조선 침몰&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제정되었다. 이뭐병.
  32. 현재 영문판 위키페디아에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으나 선사가 다르며 또한 귀부인의 저택 관련은 출처 필요라는 조건이 부기돼 있다.
  33. 이 사람의 손자가 바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호소노 하루오미다.
  34. 물론 아래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A Nighy To Remember' 라고 이 주제를 다룬 고전 작품. 한국에서는 'SOS 타이타닉' 이나 '타이타닉호의 비극'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방영되었다.
  35. 웃긴 건 정작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이 대다수이다.
  36. 위에 설명된 음모론에서 따왔을지도 모른다.
  37. 여기선 최소한 침몰은 한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NC가 씹은 타이타닉의 전설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이게 저 애니보단 조금은 낫다고 언급한다.
  38. 71분으로 재편집된 영미권 버전 한정. 84분 오리지널에서는 뱅크샷은 나오지는 않으나 그에 만만찮은 작붕과 광기가 들어가 있다.
  39. 또한 잭과 로즈의 동작 중 몇몇은 KOF 시리즈쿠사나기 쿄아사미야 아테나의 모션을 몇몇 유용했다. 아마 패미컴으로 낸 KOF 해적판의 데이터를 손질한 게 아닐까 싶다.
  40. 오마 카얌이 지은 시집 루바이야트와 다이아몬드 목걸이(세르비아 비밀결사단인 검은 손의 자금으로 쓰일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그림(뒤에는 네덜란드벨기에를 통해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진로가 그려져 있다.), 볼셰비키의 명단이 적힌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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