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스파게티 웨스턴물을 찍을 당시 중년의 모습


현재 노년의 모습

1 소개[편집]

이름 Clinton "Clint" Eastwood Jr
생년월일 1930년 5월 31일
출생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신장 194cm
데뷔작 1955년 Revenge of the Creature
감독 데뷔작 1971년 Play Misty for Me
자녀 슬하 2남 5녀(첫째 kimber eastwood 1964년생, 막내 morgan eastwood 1996년생)

영화배우영화 감독. 그리고 스파게티 웨스턴의 상징.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중 하나로, 60년대에는 서부영화로, 70년대에는 《더티 해리》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90년대부터는 드라마성 강한 영화들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다. 연기자로서도 개성을 인정받았고, 영화 감독으로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등 거장 대접을 받고 있다(정작 배우 신분으로 골든 글러브나 아카데미를 수상한 적은 없다...). 또한 인기 덕에 정치쪽에도 잠깐 발을 디뎌 캘리포니아주 카멜시[1]의 시장을 지냈었다. 《체인질링》에서는 직접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미스틱 리버》 등의 음악도 역시 직접 작곡했다.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과는 달리 하락곡선 없이 계속 상승일변도의 인생을 살고 있다.

1950년대 초에는 영화계에서 단역을 전전했지만, 1959년에 주연을 맡은 서부극 미드 로하이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장기 시리즈가 되면서 스타가 되었다. 그러다 세르조 레오네와 함께 한 무법자 3부작(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이 성공하면서 특급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무법자 시리즈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그는 처음에 시큰둥했다고 한다. 미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이름 모를 감독이 영화 찍으러 오라고 하니 시큰둥할 수 밖에.... 하지만 그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인해 헐리웃에서의 인지도가 올라가서 그의 앞길이 열리게 된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 무렵이다.

6~70년대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 다수 출연하여, 이름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실력좋고 고독한 무법자 캐릭터가 마치 페르소나처럼 여러 영화에서 그의 연기와 함께 차용되었으며, 자신이 감독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그 무법자 캐릭터를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집대성을 이룬다고 평가된다.

이스트우드에게 미국 정통 웨스턴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서부극의 대부 존 웨인이 "피자나 먹으려고 이탈리아로 갔냐?"라고 비아냥댔다. 그러자, 그는 "피자는 미국에서도 먹습니다. 그럼 당신은 햄버거만 먹나 보군요?" 당차게 반격했고 웨인은 먼저 헛소릴 한 게 걸려서인지 쓴웃음지으며 물러났다고 한다.(...) 참고로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 1972년작)를 만들고 난 후에 이스트우드는 존 웨인에게 함께 영화를 찍자고 했지만, 웨인에게 이스트우드가 너무 폭력적인 서부극을 만든다며 거절당했다. 웨인은 자신이 유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최후의 총잡이에서 남의 등짝에 총쏘는 장면을 찍도록 지시를 받자 거절했다. 그러자 감독 돈 시겔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면 했을 텐데라며 약을 올리자 웨인은 엄청 화냈다. 《평원의 무법자》에서는 이스트우드가 그야말로 진짜 나쁜 역할로 나오는데 형법상 나오는 죄는 다 저지른다.

여러모로 영화판의 엄친아 중에서도 특급 엄친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찍었다 하면 명작이 나오는 감독이라는, 하나만 이루기도 어려운, 엄청난 운과 노력과 재능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를 오른 남자. 심지어 영화 제작사마저 가지고 있다. 그의 방대한 경력과 다방면의 활동을 보고 싶으면 IMDb를 참고

영화 감독으로서도 부지런하기가 실로 최강으로, 1971년 데뷔를 한 이후로 약 30년간 감독작을 한 영화들 사이에 텀이 3년을 넘긴 적이 없다. 거의 매년 크랭크인을 하는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나이가 80세가 넘었음에도 2011년 신작 J.에드가를 완성했다. 정말 흠좀무. 평론가들도 이스트우드의 영화라면 대개 만장일치 급으로 좋은 평가를 줄 정도니 진짜 감독 중에서도 상급.

70살이 넘은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는 아예 감독겸 주연을 도맡아 했다. 특히 《그랜 토리노》는 배우 인생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약속을 번복하고 배우로도 계속 활동했으면 하는 팬들의 바람도 있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이번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란 이름의 영화에 배우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깃발,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후 두번째로 만든 전쟁(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미국에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는 흥행을 거두면서 아직 죽지 않는 노장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브래들리 쿠퍼의 열연과 이스트우드의 거칠면서도 덤덤한 연출이 전쟁에 찌든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2 정치적 측면[편집]

열성적인 공화당원으로도 유명하다. 할리우드 등 미국 영화계 인사들이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인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경우이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거의 모든 할리우드 인사들이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쪽으로 방향을 잡은[2] 상황에서도 꿋꿋이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을 지지한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였으며 2012년 선거에도 공화당 후보인 밋 롬니를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에 참여하였다. 밑에 언급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의 선거전은 당시 전 미국의 화제가 될 정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열린 태도를 견지한다. 《아버지의 깃발》 제작 당시 시나리오 중 공화당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어서 이를 걱정하는 스태프도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개인의 성향을 강요할 순 없다며 넘겼다고. 그야말로 정통 우파. 《더티 해리》같은 영화를 보면 마초적 보수적 주인공이 노골적이라는 평가도 많지만 하이눈 오마주라든지 여러 장면을 봐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평도 꽤 된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는 되레 여태 보여지던 마초적 이미지를 스스로가 반성하는 듯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정통 우파 이미지를 보려면 위에 언급한 《그랜 토리노》를 보면 된다. 실제로 그는 반전주의자이며 이라크 전쟁크게 반대했다. 조지 워커 부시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 참여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으며[3] 자신도 같은 나이라면 똑같은 일을 했을 거라고 숀 펜이라크 전에 반대하기 위한 바그다드 방문을 변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낙태 선택 찬성과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 그의 정치성향은 그의 언급대로라면 자유의지주의에 가깝다.

공개석상에서 그 유명한 공화당 안티 마이클 무어가 우리 집에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무어가 참석했었다고.(…) 흠좀무. 물론 농담조가 강한 말이어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무어도 웃어 넘겼다. (사실 무어의 성향은 좌파와도 충돌하는 면이 있다.)

2012년 8월 30일,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연설했다. 연설의 내용은 롬니 후보 지지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난. 마치 앞의 빈 자리에 오바마 대통령이 앉아 있는 것처럼 삿대질을 하는가 하면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실패다. 이제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된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 빈 의자 디스 퍼포먼스에 대한 풍자가 미국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 날 하루 폭발적이었던 덕분에 이스트우딩(Eastwooding)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사용 방법은 빈 의자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것. 그리고 이 디스연설에 대해 현지 시각으로 31일, 오바마 재선 캠프 측에서 트윗으로 "The President"라고 팻말이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오바마의 뒷모습을 올리며 디스대응을 했다. 이와 함께 오바마는 "개인적으로는 클린트의 팬"이라고 밝히며 (클린트의 공격에 상처를 입었냐는 질문에)"그것 가지고 상처 입으면 대통령 말고 딴 일 찾아야지요"라고 응수했다.

3 사생활[편집]

보수주의 공화당의 당원이지만, 자유분방한 사생활으로 유명하다. 원래 조강지처인 매기 존슨(Maggie Johnson)과는 1960년대부터 별거했는데, 그 이후 이혼도 하지 않고 그는 애인과 동거하고 있었다. 그중 한명이 촬영하다가 눈이 맞은 손드라 로크(Sondra Locke). 로크는 자신도 유부녀였으면서도 이혼도 하지 않고 마찬가지 처지인 유부남인 이스트우드와 동거했고 (1975~1989), 이스트우드는 1984년에야 조강지처와 이혼했으나 적어도 10년간은 불륜상태로 지내온 셈. 로크는 이스트우드의 권고로 불임수술까지 했다고 밝혔는데, 그동안 이스트우드가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격분하여 그와 관계를 청산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크와 이스트우드는 사이가 벌어져 나중에는 로크가 이스트우드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끝이 안 좋은 셈. 더 황당한 건 둘은 '무법자 조시 웰즈', '건틀릿', '더티 해리 4편' 등 여러 영화에서 같이 작업한 사이였다.

이후에 이스트우드는 영국의 배우 프랜시스 피셔와 동거하고, 또 다른 TV기자인 디나 루이스(Dina Ruiz)와 눈이 맞아 결혼한다. 이 결혼은 꽤 오래가는가 하더니 2013년 10월 이스트우드가 결국 이혼소를 제기하여 파탄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어떤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중 각자 크로스로 눈이 맞아 스와핑 상태에 이르러러 이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여러 여인으로부터 낳은 7명의 자녀가 있으며, 막내 모건은 디나가 낳은 자식이다. 무려 이스트우드보다 66살 어린 1996년생이다.

4 트리비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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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선 휴 잭맨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또 클린트 이스트우드, 휴 잭맨 둘 다 공교롭게 제임스 본드 배역을 제안 받은 적 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의 연합군 미션 중 플린트 웨스트우드라는 조종 가능한 히어로 유닛이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더티 해리의 패러디.

제임스 본드슈퍼맨의 배역을 제안받았지만 천만다행히도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거절했었다.

백 투 더 퓨처 3》에서 서부시대로 가게된 마티 맥플라이가 가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맨 처음 그가 영화배우로 데뷔하려하자 영화사 사장은 그에게 당신은 너무 못생겨서 배우는 될 수 없어! 라고 했다나 뭐라나... 정확하게는 치열이 마음에 안든다고 했던가. 당시 같이 오디션에 나온 사람이 버트 레이놀즈였는데, 레이놀즈는 연기를 못해서 딱지를 맞았다. 레이놀즈는 이스트우드에게 "연기는 배우면 늘지만, 너는 어떻게 하냐"고 위로했다고...

고릴라즈의 1집에는 타이틀곡으로 동명의 노래가 수록되어있다.[4]

5 영화 목록[편집]

5.1 주연 영화[편집]

5.2 감독 영화[편집]

  1. 바로 근처에 미국 최고의 골프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페블 비치(Pebble Beach)를 비롯해서 많은 골프장과 멋진 해안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17 Miles Drive, Big Sur, Monterey 등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2. 그렇지 않아도 친 민주당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인데다, 조지 부시의 장대한 삽질들을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다.
  3. 인터뷰에서 "난 극우들이 공화당에 한 짓은 정말로 자폭적이라고 본다, 완전히 멍청하다." 원문은 "I think what the ultra-right wing conservatives did to the Republicans is really self-destructive, absolutely stupid"
  4. 2집에는 'Dirty Harry'라는 노래도 있다.
  5. 비밥계의 본좌 찰리 파커(별명이 버드 혹은 야드버드) 일대기를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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