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pikicast394458900.jpg

1 (단순히)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편집]

일본어: 親日派[1], 親日家[2], 親日[3]
중국어: 亲日派[4], 哈日族[5]
영어: pro-Japanese, Japanophile[6]

말 그대로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7]. 일본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일본 문화를 동경하거나 일본, 혹은 일본인에 친근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일빠와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서양인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경우가 많고 일본뿐만 아니라 동양이라면 다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자포네스크 참조. 일본에 출장오거나 일본으로 유학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사회에서 살면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8].

1.1 주의할 점[편집]

1번의 친일과 2번의 친일파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위험한 일이다. 2번 항목의 친일파를 긍정 혹은 찬양하면 일빠혐한초딩과 같이 천하의 개쌍놈들이 분명하다. (1번의 친일을 겸하든 겸하지 않든 상관없다) 하지만 1번 항목에만 해당하는 친일파들은 어디까지나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좋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2번 항목의 친일파들과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단순히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국형 일빠와 같은 부류들로 싸잡아서 비난하고 배척하는 식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2번 항목의 인물들이 저지른 매국행위는 평생 지탄 받아야 할 일이나, 2번 항목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낙인 찍어 천하의 개쌍놈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혐한초딩들의 재일 한국인 매도질과 같은 수준이며,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2번 항목의 뜻으로 쓰이는 바람에 1번 의미론 거의 쓰지 않으며, 1번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왠지 모르게 2번 항목으로 오해받는 일이 다반사. 사실 2번 항목 때문에 친미파친러파, 친북파 같은 친X파도 어감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반대로 친한파는 어감이 더 좋아졌다. 보통 지일파(知日派) 등 지X파로 대체하는 듯. 근데 지X파와 친X파가 같은 의미가 아니라 좀 어폐가 있다. 지한파 자처하면서도 혐한짓하는 인간들도 많으니...

1.2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편집]

일빠(1.1번 항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틀린그림찾기 물론 무조건 (일본 우호파 = 일빠)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일본/문화 거의 대부분

1.3 웹 사이트[편집]

1.4 실존 인물 및 관련 단체[편집]

1.5 관련 작품[편집]

1.6 캐릭터[편집]

대부분 일본작품이다?

2 일본의 식민지배에 동조하거나 옹호하는 사람(종일파, 매국노)[편집]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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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민족행위처벌법 (제3호) 제1장 죄[19]

제1조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정부로부터 작을 수한 자 또는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치하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좌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습작한 자
중추원부의장, 고문 또는 삼의되었던 자
칙임관이상의 관리되었던 자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비행기, 병기 또는 탄약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일본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제5조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이상, 훈 5등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법의 공소시효경과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
제6조 본법에 규정한 죄를 범한 자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7조 타인을 모함할 목적 또는 범죄자를 옹호할 목적으로 본법에 규정한 범죄에 관하여 허위의 신고, 위증, 증거인멸을 한 자 또는 범죄자에게 도피의 길을 협조한 자는 당해 내용에 해당한 범죄규정으로 처벌한다.
제8조 본법에 규정한 죄를 범한 자로서 단체를 조직하는 자는 1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문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논점으로 글을 작성하였으므로, 글 자체가 앞뒤가 안맞거나 논점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진적으로 고쳐나가고 있지만, 읽을 때 주의를 요합니다.

2.1 개요[편집]

Yiwanyong.JPG
사진은 대표적 친일파 최종보스 이완용
親日派
중국어: 漢奸[20]
영어: Race Traitor, Collaborator

살려두면 사회에 해롭고 죽어도 도움따윈 0%인 폐기물들
그냥 천하의 개쌍놈들이자 역적들

한마디로 나라를 자칭 '선린 우호국'에 팔아먹은 놈들, 그리고 이들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놈들[21],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이들의 만행을 극단적으로 찬양하는 놈들.

원래 의미는 1번 항목의 말 그대로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이나, 친일파하면 대부분 이쪽의 의미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실제로는 일본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매국노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22].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친일파"의 의미는 일본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 아닌, 비시 프랑스의 경우처럼 식민지배 당시 일본 제국에 협력한 반역자들침략자의 앞잡이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용어를 부일 협력자(附日協力者)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23]. 중국어도 마찬가지로, 중국어 위키의 친일파 항목을 열람하면 분명하게 한국에서 쓰이는 친일파와 같은 의미인 한간(漢奸)과 친일파를 구분짓고 있다. 일본에 피해를 입은 많은 국가들 중 국가반역자와 일본 우호파를 혼동하는 것은 한국뿐인 셈.

즉 위의 1번 항목과 2번 항목은 분명히 구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친일파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규탄, 암살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아시아권 국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손가락질을 받는 존재. 친일파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발간되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24].

여담이지만 백괴사전에도 친일파는 진지하게 적혀저 있다

2.2 친일파 명단[편집]

다만 생활고로 인해서 어쩔수 없이 친일파가 되거나 반성을 하거나 몰래 독립유공자를 지원한 사람은 ★로 표기한다.
특히 골수 친일파는 볼드체 로표기한다.

추가바람

2.3 친일파의 태동[편집]

급진개화파인 갑신정변 사람들, 그리고 온건개화파인 김홍집 내각들(이완용, 박영효 등은 제외)을 가리킨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1항목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이 시기의 친일파들은 먼저 개화를 이룬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조선의 개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파악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은 세력이 열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으며, 수구 세력과 결탁하고 조선에 강압적인 지배력을 펼치기 시작한 청나라보다 호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인 미-영-러-청-일 중에서 가장 국력이 약해 보여서, 다른 열강에 의지하여 개화를 할 경우 그 나라에 종속되거나 그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것 같았으나, 일본의 경우 후발 주자에다가 약해보여서, 비교적 대등한 관계에서 도움을 받고, 개화(산업화)를 완료하고 난 후에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도 쉬울 것 같아 보였다. 물론 후일의 역사에서 그것이 오해였음이 밝혀졌지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본성을 헤아리지 못한 못했던 어리석은 판단이었으며, 이 중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실체가 드러나자 후회하고 반일 성향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영효 같은 경우 처럼 지일파가 친일파 그것도 매국형 친일파로 변한 경우도 있다.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처음에는 단지 왜인이라고 묘사하더니 나중에는 왜놈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여운형도 젊은 시절 러일전쟁 중에 일본의 선전에 속은 것을 반성하고 항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친일 개화파였던 김옥균 역시, 지금은 일본의 힘을 빌려 개화를 추진하지만, 나중에라도 그들이 우리의 주권을 침탈하려고 하면 언제든지 맞서 싸울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안중근을 포함한 그 시대의 조선인들은 당시만 해도 일본이 조선에게 합병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해주는 게 없는 무능한 조선 왕실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게 당시 민심이었다. 더욱이 당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 국가들에게 신나게 갈라 먹히는 것을 본 조선인들 사이에 서양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극에 달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일본은 아시아 대표를 자처하고 동양을 서양으로부터 보호하는 성전(聖戰)을 치룬다고 선전하였으니 이에 매료되는 게 당연했고, 대부분의 조선인들도 이를 믿고 있었다. 심지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을 이렇게까지 '선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조선인들의 현실 인식의 한계로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당시 조선인 지식인들의 사상이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결(高潔)하고 순수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개화기의 친일파들을 까기에 좀 그런 것은, 급진은 물론이고 온건 개화파들도 나중에 일본을 등에 업게 되는것도 있고, 이 시기의 그런 개화파들은 일본의 힘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 있던 김홍집 정권 하에서는 나라를 위한 근대 개혁들이 펼쳐졌으며[28]아관파천 이후 살아남았던 김홍집 정부 인사들도 일본이 나라를 먹는 것에는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참고로 조선 말고도 베트남이나 인도나 여러 나라에서 일본을 아시아 형제, 좋은 이웃 나라로 봤다가 지배 당하고 나서야 그게 죄다 개꿈임을 알아 버린 경우도 있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판보이쩌우호찌민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처음에 일본을 호의적으로 접근하다가 나중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본질을 알게되면서 극반일로 돌아서 일본을 좋게 보던 이들을 꾸짖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2.4 통감 통치기[편집]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 등 본격적인 매국노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로 대한제국의 지배층인 경우가 많으며, 일제에 주권을 팔아넘기는데 협조하여 부귀영화를 누린 경우이다. 참고로 이완용만 나라를 판게 아니라, 조선왕족들도 일본에게서 은사금을 수여받는등 나라를 적극적으로 팔았다.[29]

경술국치 당시 총독부에서 76명의 조선인(관료, 공족)들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조선귀족)했는데 이를 거부한 이는 한규설, 유길준 등 소수에 불과했다. 이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완전히 저버린 천하의 개쌍놈들. 조금의 동정의 여지도 가치도 없는 부류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을때, 밤을 새워 큰 잔치를 열어 기쁨을 만끽했다고 한다.(제목: 敍爵者(서작자)의 喜悅(희열)-매일신보 출처)]한 나라의 관료로 국가의 녹봉을 먹고 일하는 자들이 에휴...ㅉㅉ

2.5 일제 강점기[편집]

스스로의 출세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들이 많다.

다만, 당시 상황이 독립의 희망이 없었던 때인 만큼, 단순히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친일을 한 것만으로 매국노의 의미로서의 친일파로 분류할 수 있냐는 반론도 있다. 나라 안에 속속들이 일본의 행정력이 침투해 있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교육을 받고 관리 노릇을 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30] 일제에 부역한 것 자체만으로 무조건적 친일파로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이런 점이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시기가 바로 일제 강점기 말기. 즉, 전시 체제 시기다. 이 부분에 대해 학계에서는 '생계형으로 어쩔 수 없이 불명예를 남긴 경우도 고려해야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점때문에 이런 논리를 펼치는 많은 사람들(주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상당수)은 이 논리를 과거사 부정이나 정당화에 악용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비록 34년의 지배가 프랑스보다는 길었다지만, 수백년의 식민지배와 대기근에도 굴하지 않고 영국과 정말 지독하게 끝까지 맞서 싸웠던 아일랜드 공화국의 예가 있다는 것은 망각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사례를 두고 이에 재반론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북아일랜드, 즉 얼스터 지방이 영국계 주민들의 식민지배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모르고 말하는 무지의 소산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에서 권위높은 학자인 서중석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가장 부정적 영향을 끼친 요인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경찰출신들과 일제강점기 말 내선일체 운동에 적극 가담한 지식인들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현재, 기존의 학계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기준을 놓고 정하고 있다. 첫 번째는 '지속적, 반복적, 적극성'등 여부를 놓고 보는데, 여기서 '생계형'에 대해 극명하게 나뉘게 된다. 여기서 '지속성','적극성','반복성'이 결여되어 생계형으로 제외된 대표적인 인물은 소설가 이효석과 시인 정지용이다. 두 번째로 '선(先)항일 후(後)친일은 친일파로 기록하되, 선(先)친일 후(後)항일은 다른 문제로 독립운동'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다.#1#2 이 기준에도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해방 전에도 친일에 앞장서서 조선인 자살돌격자 등을 칭송했으며, 해방 후에도 전두환 등의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내용의 온갖 손발이 오그라지는 시를 지어 바쳤던 미당 서정주가장 대표적인 악질 친일반역자이면서 단 한마디도 사죄의 뜻을 나타내지 않았던 춘원 이광수[31]가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친일파에 관해 문제가 되는 것이 이른바 '자치론자'이다. 이광수야 좀 막나갔지만 당시 조선에 체제하는 많은 이들이 자치론의 성격을 띠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치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치론이란 기본적으로 일본의 현재 통치를 긍정하면서 그 안에서 자치를 하고 차츰 민족의 역량을 늘려나가자는 것인데 이 흐름에 있던 많은 이들 역시 최종적인 단계로 독립을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립이 요원해보이는 상황에서 가능한 정도만이라도 민족의 힘을 기르자는 것인데 기본 전제의 특성상 어느 정도 일본에 협력하는 체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수행한 많은 이들이 간단하게 친일파로 통칭되고 있으나 생각해보면 이를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32][33]

2.6 해방 이후[편집]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려는 시도로 반민특위가 만들어지기고 활동하기도 했으나, 미군정의 무관심과 친일파와 그들과 결탁한 정치인들에 의해 실패하였다[34].

2.7 현재[편집]

친일파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2.7.1 직업형 친일파[편집]

말 그대로 알바. 일본 극우 세력들의 돈에 넘어가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민족주의 회의론과 논란 이전에, 이들은 애초에 민족과 상관 없이 그냥 관심 끌어서 책을 팔거나 정신적인 질환이 있어서 한국을 상습적으로 모욕하는 어딘가 핀트가 나간 미친 자들이다.

주로 일본의 문물을 찬양하고 일제강점기 시절이 미개한 조선인들에게 문명의 이득를 가져다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35]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종자들로, 가끔씩 그 주장이 언론의 지탄을 받지만 어떤 연유인지 아직 맞아죽지 않고 살아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완섭, 오선화 등이 대표적.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2.7.2 씹덕후형 친일파[편집]

15 3.JPG

이런 놈들을 보고 정상인들은 답이 없는 패륜자라고 부릅니다.

이들도 특수한 경우로 친일파가 된 경우인데,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문화 등을 좋아해서 오타쿠가 된 사람들 중 일부가 일본을 광적으로 좋아하다 못해 일빠 기질이 아주 강해져 타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통 순수하게 일본이 좋아서만이 이유가 되는 경우는 드물고 한국에 대한 적대감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독립이 늦게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았으면 일본어를 쉽게 배워서 그 많은 일본의 콘텐츠를 자유로이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등의 황당한 발언이 가끔 나온다. 조상님들이 하늘에서 피눈물 흘리실 듯. 일빠들이 이런 형태로 진화하면 밑의 관심병형 친일파와 함께 친일파 블로그들을 주도한다. 전반적으로 일본 문화를 동경하는 와패니즈적인 성격이 강하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지 않는 저들입장에서 안타까운(?) 한국의 현실에서도 JLPT/JPT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36]그저 자신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밖에 안된다. 정말로 일어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 혹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에게 심각한 결례이다. 물론 자격증 없이 독학으로 배우는 사람에게도 실례이다.

이런 유형의 친일파들 중에는 미성년자나 젊은 사람의 비율이 높아서 그냥 중2병이 좀 안 좋은 곳을 스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들어서 본격적으로 주화입마하게 되면 다른 유형의 친일파로 암흑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꽤 위험하다 할 수 있다. 반대로 중노년층일수록 반일혐일, 일까가 거시적으로 많은 편인데 공교롭게도 이들의 부모님들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일제의 압제를 심신으로 겪었고 그 자식들이 그들에게서 태어났던데다가 부모님들의 과거사를 생생히 들었던 세대들이었고 그 당시 반일 및 반공노선을 굳건히 추구하였던 이승만 정권시절을 겪었던 편이라 이들로 갈수록 친일보다는 반일, 혐일, 일까가 거시적으로 많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유독 일본산 상품이나 초밥이나 생선회 같은 일본음식에 대해서는 의외로 호의를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개인취향이자 미각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렇다고 이들을 친일성향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적용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딜가나 일부 꼴통은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을 근거로 모든 덕후를 개념없는 씹덕후로 몰아부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7.3 수구꼴통형 친일파[편집]

이딴 놈들도 정상인들은 답이 없는 패륜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친일행위는 극도의 반공 흑은 반북 심리에 기초한다. 보통 극우제노포비아 성향을 띄기 때문에 외세에 극히 배타적인게 일반적이다. 좋은 예로 극우단체로 유명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등을 들 수 있겠다. 이렇듯 극우라고 친일파와 묶는것은 극좌라고 무조건 종북주의자로 묶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하지 말자 어차피 친일이 아니라도 충분히 막장이다.

이들은 생계형 친일파와 주장이 비슷하기도 한데, 주로 뉴라이트 계의 인사들이다. 주로 조선총독부와 일본 극우파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면서 그것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 주장한다. 이를테면 식민지배가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시켰다던가(참고로 이건 식민지 수혜론으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다르다.), 친일파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 좌빨이라든가.

심한 경우는 독립운동가들를 테러리스트로 몬다거나[37]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최근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로 자리잡았지만, 문헌에 따르면 당시의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스스로를 테러리스트를 직역한 공포주의자라고 호칭했을 정도로 이 단어가 악한 근본주의 살인마들을 뜻하는 말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좀 토론의 여지가 있는 주제다. [38] 실제로 교과서에서도 뉴라이트에서 발간한 자칭 대안 역사교과서에서 항일테러 활동을 했다고 써 있는데 금성출판사도 항일테러라고 써있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정말 욕하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여기에 첨가해서 과거 극우반공주의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한승조가 대표적으로 이 부류에 속할 수 있겠다. 그는 일본 우익 신문지 산케이 신문의 자매월간지 '정론'에 실린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한일병합을 재평가하자'는 글을 기고했는데, 여기서 그는 '일본의 지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제의 역할을 했단느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그는 '(일본군 위안부가) 그렇게 많은 사례가 아니었는데, 굴욕을 당했다는 노파를 내세워 몇 번이나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고상한 민족의 행동이 아니다'라고 말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비하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반 세기가 흘렀는데도 이들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똑같아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도 한승조는 반공독재정권에 찬양하며, 이들세력과 같이 활동하고 있다!

사실 서구의 네오나치 같은 경우 이와 비슷한 사상적 흐름을 타기도 한다. "그래도 히틀러볼셰비키에 대항해 싸웠잖느냐"며 합리화하는것.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동맹도 삼국 방공협정이었다. 그러므로 반공활동을 하면 일단 자기편으로 간주하는것. 그러므로 한국에만 한정된 케이스는 아니고, '적의 적은 우리의 아군'이라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2.7.4 관심병형 친일파[편집]

천하의 개쌍놈들

말 그대로 그저 재미로 관심 받고 싶어서 하는 부류. 사실상 인터넷에서 친일 행각하는 대다수가 이런 부류이며, 정말로 친일파라기보다는 단순히 관심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그냥 무시하자.

친일 주제의 블로그나 역사 갤러리 등에서 종종 발견되며, 전성기는 2000년대 중후반 인조이재팬이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인조이재팬에 일본 측에서 올린 혐한 자료를 답습하는 방식으로 창궐하였다. 주요 레퍼토리는 단순한 혐한성 화제 외에도 국사 교과서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사관의 문제점 비난 등이 있다. 이러한 자료와 소재를 활용해 트롤링을 하고, 즐거워한다. 앞서 적었듯, 무시하자. 남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못난 짓을 하는 비참한 사람들에게 굳이 관심을 적선해서 더 병이 도지게 할 필요는 없다. 네이버 뉴스에 소셜댓글이 활성화 된 이후, 관심병형 친일파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간혹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서 오는 일본인'인 듯한' 사람도 있지만 네이버 me나 네이버 아이디를 가지고 혐한인 척하는 관심병자들이 많이 보인다. 비공감도 눌러주지 말고 답글도 달아주지 말자. 관심병자에게는 무관심이 약이다.

2011년에는 인천 부평에 산다는 '장주원'이라는 가명을 쓴 일명 인하대지망생 또는 애니전문가로 불리웠던 소년이 블로그에 친일을 조장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샀던 적이 있다. 부평동 청소년 범죄인증사건 참조.

2012년 9월 인터넷에 태극기를 불태운 흔적의 사진을 올린 13세 김 모군이 친일카페 운영자이자 개인 블로그에도 일장기일본을 지지하고 옹호하며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모독하는 글귀를 올려서 논란과 파문을 일으켰다. 현재 이 소년은 밀양경찰서에서 사건진위를 조사중이다. 친일카페 청소년 범죄인증사건 참조.

2.7.5 중국의 친일파[편집]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일본에 협력한 중국인들이 있었으며, 왕징웨이가 중국의 친일파 중에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중화민국 정부와 중국 국민당은 왕징웨이의 정권의 고위층 등의 한간(漢奸)들에게 사형이나 이에 버금가는 중형을 선고했으며[39], 만주국의 고위층의 대부분은 소련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수감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압송되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는 등 비참한 말로를 맞이 했다[40].

2.7.6 미국의 친일파[편집]

미국 정치가였던 더럼 스티븐스가 대표적 친일파이다[41]. 그는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에 감사해야 하며 은덕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여 재미 한국인들의 비난을 받아왔다가 1908년 재미 독립 운동가 전명운, 장인환에게 방법저격 당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윌리엄 시볼드[42]],토니 마라노[43]와 같은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친일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친일 성향을 보이거나 일본의 주변국이 느끼기에 일본의 편들 든다는 뉘양스가 담긴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많이 있다.

2.7.7 기타 각 국가의 친일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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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생각해볼 점[편집]

2.7.8.1 보수 = 친일파? 혹은 "친일독재"?[편집]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청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보수 세력들은 전부 친일파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시절 친일파 청산 문제가 대두하자 보수측에서 "친일 청산은 과거사와 싸우자는 것", "친일 논란은 친북세력의 공작"이라고 물타기 비판하면서 '보수란 사람들은 전부 친일파다!'라는 고정관념이 일정 자리잡히게 되었다. 또한 보수 세력중의 일부인 뉴라이트의 경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들 중 극단적인 사람들이 식민지 수혜론, 즉 "조선은 일본의 통치로 발전했으므로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뉴라이트가 한국 보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기에, 보수 = 친일파로 보는 시각이 조금 더 견고해 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80년대 한국 운동권 진영에서는 전두환5.18 민주화 운동 강경진압과 광주시민 학살에 묵인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대한민국을 친미/친일 기득권이 장악한 '반식민지'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으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정식 국가가 아니라 미국/일본이 조종하는 괴뢰정권이자 신식민지"로 규정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NLPD를 참고하자.

다만, 무조건 '보수 = 친일파' 공식을 들이대며 보수진영을 비난 내지는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예를 들어,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직후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였다. 사회주의자에 대한 백색테러를 옹호했으며, 이 때문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그를 좋지 않게 본다[44]. 그리고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민족단체인 광복회는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편이다[45]. 대한민국어버이연합심지어 혐일 성향이 짙다. 반대로 김옥균 등의 개화파는 당시 시각으로 진보 진영에 속했으며 이완용흑역사긴 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새누리당김무성 등 처럼 일가친척 중에 친일파가 있는 경우는 새정치민주연합 정동영, 신기남 등도 마찬가지이며, 반대로 김구나 윤봉길의 후손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한국 보수 진영 중에 친일파가 일정 부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무조건적인 '보수 = 친일파' '진보 = 반(反)친일파'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옳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독재자 정권을 비판할 때 "친일독재"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뒤에도 후술하겠지만, 당시 독재정권에 협력한 친일파 출신/후손들이 있는 것은 일정부분 사실이며, 공통분모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 독재정권 자체가 '친일'이었나에 대한 문제는 다르다. (친일파들을 처벌하는 것에 부정적이긴 했지만) 제1공화국은 극단적인 반일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화 시도에 맞서 이승만 라인을 선언하고, 쓰시마 섬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6.25 전쟁 당시 일본이 대한민국 측에서 돕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놈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는 즉시 총부리는 일본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민족정기 회복'을 이유로 반일 감정을 일부러 조장하기도 했다[46]. 왜색 검열은 독재정권 시기에 활발했으며, 오히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시기에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개방되었다.

다만 박정희 정권은 약간 애매한데, 우선 박정희 본인이 만주국 군관 경력으로 비판받기도 하며,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김종필의 제2의 이완용 드립과 청구권 문제와 배상금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비판받기도 하며, 독도 밀약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독도를 넘겼다"라고 주장하며 '친일정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일본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한일협정 당시 김종필은 "독도를 일본에 넘기느니 차라리 폭파시켜버리겠다"라고 일갈했으며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의 중재안도 거부했다.

또한 1972년 일본은 중화민국을 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 수교했으며, 대한민국은 이를 상당히 아니꼽게 여겼다. 그리고 1974년 광복절에는 故 육영수 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에게 피격 사망하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90년대에 밝혀진 비화에선 격노한 박정희 입에서 동격폭격론까지 쏟아져 나올 정도로 관계는 최악이었고 제2의 을미사변이니 뭐니 하는 말이 많았으며 전국에서 조폭(...)들이 상경해서 일본에 항의하는 단지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2.7.8.2 대한제국 황실의 친일문제[편집]

친일인명사전이 막 출간될 당시, '이왕가', 즉 대한제국의 황실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의친왕처럼 적극적으로 일본 제국에 맞섰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민태자처럼 소극적이나마 일제 통치에 협력하기도 했고, 혹은 이재면 처럼 아예 친일민족반역자로 돌아선 사람도 있다. 발간 측에서는, 적극적 친일파만 수록하고, 의친왕이나 의민태자 같은 소극적 협력자들은 제외시키기로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2.7.8.3 서구권의 과거사 청산과 비교해볼 점[편집]

프랑스식 부역배 처단에 대한 블로그 글

서구권의 과거사 청산은 대체적으로 추축국 협력자들에 대해 공소시효 자체를 두지 않는다. 서구권의 과거사 청산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47]

1.추축국의 범죄적인 과거사에 대한 정당화/부정 움직임과 이를 처벌하는 법률
2.추축국에 협력했던 자들에 대한 처벌.

1번의 경우는 서구권의 많은 나라에서 홀로코스트 같은 나치의 과거사를 부정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는 공민권 박탈이나 심한 나라에서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죄로 단죄된다. 독일의 경우 나치의 과거사를 철저히 청산한 것으로 유명하며 심지어는 헌법으로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위에 나치에 대한 청산이 서 있다. 나치처럼 극단적인 주장을 가진 집단이 득세하는 일을 막기 위해, 비헌법적인 정강을 갖고 있다 판단되는 정당을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해산을 명령해 까부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의 허점을 파고들어 권력을 잡은 것이 반동나치인 것을 누구보다 아프게 피로 겪은 나라이기 때문.[48]

2번의 경우, 대국이자 문명국을 자부하고 독일을 은연중에 야만인, 훈족으로 묘사하며 깔보던 프랑스에서는 그야말로 독일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자괴감과 부끄러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독일이 나라를 뺏아가는 것을 도운 사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는데, "초법적 척결"에 의해 수천여 명이 재판도 없이 즉결처형을 당했으며 "여성 협력자"로 불리는 여자 협력자들은 죽음은 면했지만 머리를 박박 깎이고 공개적으로 린치를 당했다.[49]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해방 후 길거리로 끌려나와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이는 여자들이 묘사된다.[50] 그런데 이 장면은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고, 나치가 워낙 학을 뗀 나머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대독협력자 청산을 프랑스어로는 "에퓌라시옹 레갈(Épuration légale)"이라고 하는데[51], 총 1만~1만 천여명의 사람이 처형당했고, 9만여 명이 징역이나 공민권 박탈 등의 처벌을 받는 등 국가를 팔아 일신의 안녕을 도모한 대가는 상당히 엄혹했다. 여기까지 보면 서양의 청산이 매우 철저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여기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우선 서양의 나치 협력자 처단에는 상당한 문제가 많았으니 나치의 지배에 해방된 국가들 입장에서도 정작 나치에 협력했던 여러 협력자들은 매우 유용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그대로 점령국 정부에 기용되어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가 마크 마조워는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나치와 협력해 자기를 토벌하려던 공무원들이 이젠 신정부에 합류하여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악적인 저항을 했다고 저술하고 있다. 그리스와 벨기에에선 나치 협력자들을 그대로 기용한 정부에 저항하는 반란이 벌어졌지만 곧 진압되었다. 한국에서 나치 협력자 청산으로 유명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죽은 사람들은 정말로 나치에 협조해서 친독파 짓을 사람보단 독일 군인과 사귄 여자, 독일군에게 빵을 팔던 장사꾼 등 정말로 자기를 방어할 힘도 없는 허약한 사람들에게 주를 이루었고 정당한 재판없는 학살이 벌어졌다. 그것도 단순한 학살이 아니라 윤간, 화형, 참수, 린치가 동원된 참혹하기 이를 때 없는 일이었고 여자들에게 수간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전후 자료들은 기록하고 있다. 결국 드골은 부랴부랴 앞으로 나치 부역자들을 정부에서 처벌하겠다고 이 광란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나마 나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던 사람들만 죽은 것도 아니고 좌익 레지스탕스가 우익 레지스탕스를 반동으로 나치 부역자로 죽이거나 우익 레지스탕스가 좌익 레지스탕스를 나치 부역자로 몰아 죽이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념 대립으로 독립군끼리 서로를 친일파로 몰아 죽인 격. 알베르 카뮈를 필두로 해서 좌파 지식인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당시 프랑스 내부에서조차 청산 과정이 엄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빈민층에서 돈없고 빽없는 사람만 당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설문 조사 결과에는 파리 시민의 80%가 '나치 부역자 청산'이 부당하다고 했고 시골 지역에서도 60%가 부정적으로 보았다. 전국적으론 70% 정도 되었다.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선 정부의 연속성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상당한 숫자의 협력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일례로 프랑스 공무원 85만명 중에서 해고된 수는 6500명 수준이었으며 그나마도 내무부에 국한되어 있었고 경찰과 군대의 숙청은 없었다. 나중엔 그나마의 처벌을 받은 사람들에게조차 면죄부가 대량으로 주어지기 시작했다. 1951년 1월 5일부터 프랑스 법원은 과거청산보단 화해와 관용을 통한 국가 재건의 길이 중요하단 이유로 사면령을 내리기 시작했고 4만명의 부역자들을 4천명으로 줄여버렸고 52년엔 1600년, 53년엔 62명만 남기고 죄를 없애주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만 해도 비시 프랑스 부역을 했고 페텡에게서 훈장까지 받은 것이 말년에 드러났을 정도다. 그리고 프랑스 대중들은 이러한 사면령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르웨이도 나치에 협력한 5만 5천명 중 25명에게만 사형을 내리고 57년까지 무기수까지 다 풀어주었으며 네덜란드도 20만명이 넘는 협력자 중에서 40명만 사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50년대 초에 다 풀어주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나치 청산은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쿠르트 발트하임 항목을 보자.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는 나치 협력 공무원들의 삼분의 일 정도를 해고했으나 그나마도 국민적인 반발에 부딪혀서 축소해야 했다. 독일만 해도 행정부와 국방군에 과거 나치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롬멜과 구데리안의 전공을 찬양하는 팻말이 오랫동안 서독 연방군의 철거 반대에 잔존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나치 전범의 흔적을 없앤다고 철거된 적이 있다.

유럽에서 나치 청산을 철저히 했느니 하는 말은 공산권에서나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말이고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한국에서 그쪽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북한에서 친일파 청산을 잘했다더라 하는 소리 급이다. 이러한 면을 보았을 때 한국 웹상이나 오프라인에서 자주 떠도는 프랑스가 나치를 청산했는데 우리는 친일파 청산을 왜 못하나?라는 말은 어폐가 있게 된다.

게다가 설사 프랑스의 나치 청산이 철저한 나치만을 청산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저걸 나치 잡았으니 그만이라고 본다면 보도연맹 학살도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빨갱이들도 잡았으니 그만, 4.3 사건과 14연대 반란사건도 빨치산도 잡았으니 그만, 이라는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혁당 사건이 왜 그렇게 비난의 대상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들의 간첩 혐의에 앞서서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와 민주주의를 능욕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대의 이용우 교수는 프랑스의 나치 청산은 우리의 교과서가 아니라 오히려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처럼 했어야 한다 운운은 마치 남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의 4,3 사건, 14연대반란사건 때처럼 '공산당 반역자들을 죽여' 국가 기강을 바로 잡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격.

게다가 서구의 친나치 처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점령기간을 떠나서 비교 대상으로 적절치 못하다. 굳이 따지자면 유럽 식민제국들의 지배 하에 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식민 제국에 복무했던 공무원, 군인들을 제대로 청산했느냐와 비교하는 것이 맞다. 저런 식의 비교는 차라리 임진왜란 당시의 순왜 문제와 비교하는 것이 더 비슷하다. 그리고 부연설명을 하자면 무력으로 독립하지 않고 한국처럼 외국에 의해 독립된 케이스나 평화적으로 독립한 케이스에는 식민 제국 부역자들은 주요 인재로 대접받았다. 인도만 해도 독립 이후 인도 제국에 복무했던 군인, 장교들을 적극 받아들였다. 인도의 초대총리가 독립운동가 네루였는데도 말이다. 무력으로 독립한 알제리의 경우에는 프랑스에 복무한 친불파들을 철저히 쓸어버렸지만 무력으로 독립하다고 꼭 철저한 청산이 있는 것이 아닌게 베트남의 호치민은 프랑스에 복무했던 사람들을, 중국의 모택동은 일본군에 협조했던 사람들을 주요 인재로 여겨서 관용을 베풀었다. 인재풀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선 그야말로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고 밑의 북한의 친일파 문제에도 나오겠지만 김일성도 전향이란 형식을 빌어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2.7.8.4 북한은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했는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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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북한 초대 행정부/내각의 구성요원들 및 이들의 항일/부일 행적을 정리한 표(출처는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의 <너무나 유치한 북한 초대 내각 친일파 득세론>) 이 링크도 참고하면 좋다.

북한은 (일단 절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보다 친일파를 조금 더 청산했다고 볼 수 있다. 매일신보 부사장과 만주국 폴란드 주재영사관을 지낸 박석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수치를 근거로 북한측이나 남한 일각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남한을 비판하며,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장악한, 한민족의 정통성 조차 없는 국가로 폄하하기도 한다.

다만 북한이라고 모든 친일파들이 처벌 받은 것은 아니며, 심지어 고위층에도 친일파를 등용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본가' 출신이었던 이종만은 일제강점말기 대화숙을 비롯해 많은 친일단체에 관여했으나 애국렬사릉에 안장될 정도로 북한에서 거물급 인물. 비날론으로 유명한 화학자 리승기도 이에 해당한다. 특히 문화,예술,연극,문학계열에서 활동했던 친일파 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고자라니 심영. 골 때리게도 김일성 일가에도 친일파가 있다. 그러므로 북한은 마치 친일파 청정국가인 마냥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친일파 청산이 부진했던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라며, 북한의 친일파 청산을 비판/폄하하는 것은 보수파들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들이 6.25 전쟁 등으로 사회참여를 했다는 점을 들어 극단적인 친일파 처단에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2.7.9 결론[편집]

일단 친일 부역자 청산 문제는 오늘날 현재에도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암종에 속한다. 반공과 국가 재건의 대의 앞에서 구렁이 담타듯이 넘어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 대구 10.1사건과 같은 사건 같은 경우 일어난것도 1차적인 원인이 '친일파' 경찰 출신들이 가장 커다란 요인이었듯이 이들 '집단'으로서의 친일세력들은 대부분 매우 부패하고, 당시 사람들에게 인식이 상당히 안좋았다. 비슷한 일이 서유럽 레지스탕스들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을 이미 앞서서 서술한 바가 있다.[52]

일단 대한민국의 초기 내각은 독립운동가 출신이 많았지만 하부 조직에 일본에 복무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잔류했고 60~70%에 달하는 공무원들과 법관들이 이미 일제 치하에 복무했던 사람들이란 통계가 60년대 언론에 의해 제시된 바가 있다. 과거 친일 경력이 있는 자들의 건국의 주역, 이어 6.25의 영웅들이 되었으니 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라는 문제로 흘러가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부역자들을 국가 재건의 대의를 앞세워서 면죄부를 준 것은 서유럽도 마찬가지였지만 최소한 서유럽이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 진행한 것과 달리 대한민국에선 이승만의 반민특위 습격을 비롯한 편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서 오히려 뿌리 깊게 남은 문제가 되었다.[53][54] 이런 친일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 6.25전쟁에서 활약하면서 과거에 대한 속죄를 확실히 했다면 모를까, 이들은 그대로 군부 쿠데타의 주역이 되어 친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공산당의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로 만들어 버렸고 반민특위같은 과거사 청산 시도도 전부 짓밟힌 채 한국은 현재에 이른다. 때문에 한심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친일 얘기가 현재진행형이다.[55][56]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한 논란에 대해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 등을 고려해 '진상규명'하는 식으로 과거사 청산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무리를 무릅쓰고 지금 하자니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 방식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7.10 신고하자[편집]

종북세력과 마찬가지로 친일파도 내용에 따라 대한민국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친일파 사이트나 블로그, 중국의 역사왜곡을 동조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보여도 국정원에 신고해 주도록 하자. 언젠가는 절대시계를 득템할지도 모른다. 다만 처벌은 종북세력에 비하면 약한 편이라고 한다.

  1. 원래 단어의 뜻은 같으나, 위 아래 문단에서 나오듯이 쓰이는 용례가 다르다. 그저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 정도로 쓰인다.
  2. 사실 2번의 이유 때문에 1번의 의미로 사용 될 경우에는 친일가로 구별을 한다. 한국의 지일파와 비슷한 예.
  3.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표기법.
  4. 위의 일본어처럼 원래 단어의 뜻은 같으나, 쓰이는 용례가 다르다. 그저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무리' 정도로 쓰인다. 중국어에서 친일파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 단어는 매국노와 비슷한 뜻인 汉奸(한간)이다.
  5. 합한족에서 유래한 단어로 보인다.
  6. 이 두 단어도 위와 동일하다.
  7. 하지만 2번 항목의 뜻이 완전히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2번 의미로 착각한 일본인한국인이 일본이랑 친하게 지내면 잡혀간다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혐한초딩들은 이를 이용해 한국이 반일 국가라고 날조하기도 한다.
  8. 물론 극히 일부의 경우에는 넷 우익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해서 문제가 있다.
  9. 대부분 일본 판화인 우키요에 마니아였고 일본식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그림들에 기모노를 입은 여자 등이 등장하였다.
  10. 아내가 일본인에 본인도 일본식 이름이 있다. 그의 무술 아이키도는 일본에서 배웠다.
  11. 절대 2번 항목과는 관계없다. 그저 일본문화에 우호적이라는 뜻일 뿐이다.
  12. 1번 항목과 2번 항목에 중간 쯤에 있어서 애매한 인물. 다만 일제 미화는 안 한다. 윤서인이 그린 웹툰인 조이라이드에서 경술국치 기사 보면 일본에 대해 화난다고 밝혔다.
  13. 이유는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 하지만 하회탈 문신을 생각해보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행동한 것 같다...
  14. 오리엔탈리즘 예술가
  15.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작가. 귀화하기 전의 이름은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16. 양들의 침묵 작가
  17. C급 키치영화 전문 트로마 영화사 대표 히어로 중 한 명 혹은 동명의 영화
  18. 95년 어드벤처 게임으로 꽤 어려운 퍼즐 및 길찾기로 그다지 인기를 얻지못했지만 어드벤처 매니아에겐 호평받던 게임, '남작'이란 등장인물은 2번 항목에 가깝다.
  19. 1951년 폐지되었다.
  20. 정확히는 친일파뿐만 아니라 적과 내통(內通)하는 사람 전부를 이르는 말.
  21. 개개 친일파 항목들을 보면 알겠지만, 민족 전체를 위해 개인의 오욕을 참고 후대를 위해서 고개를 숙인다는 이런 지사적인 면모와 친일파는 한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2. 그래서인지 1번 항목의 의미와 구분짓기 위해서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 반역자'라고 칭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애매한 과거청산만큼이나 한국 안팎에서 친일파라는 용어의 애매함 자체가 문제가 되는데, 친일파는 단순히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 그래서 한자로는 왜인에게 붙은 자라는 뜻인 부왜인(附倭人)이라고도 부른다. 친일파도 순도 100% 한자어인 것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23. 반면 일본에서는 물론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 정도의 뜻밖에 없는데, 친일파라는 말이 하도 한국의 언론에서 많이 쓰이다 보니 "일본에 우호적이라는 것만으로 까일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우릴 싫어하는 건가"라고 오해하거나, 나아가서 이 오해를 넷우익의 반한감정 선동에 이용하기도 한다.
  24. 여기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파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임종국의 노력이 배어있다.
  25.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26. 안중근 의사의 아들로, [[아버지]] 는 명실상부한 독립운동가 이지만 정작 아들 은 일제에 대놓고 빌붙고 나중에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과 퍼포먼스 까지 했다. 가히 호부견자인 셈이다.
  27. 국방헌금 10,000원+유한 애국기(柳韓 愛國機)' 1대 제작비 53,000원 감수포장은 안 받았나보네?
  28. 단점도 많지만 어윤중의 지세 개혁이라든지 기타 여러 개혁들은 국가를 위한게 맞다.
  29. 한국에서 왕실을 복원하자는 말이 없는 이유중 하나이며, 친일인명사전 발간 당시 조선 왕족이 포함되지 않자 형평성 논쟁이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사실 학계에서도 여러부분 논쟁이 오갔지만, 최종적 결론은 '황실도 역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친일보다는 망국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묻는것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30.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핀란드의 구국의 영웅 만네르하임도 러시아 군인 출신(우리로 치면 일제 사관학교 출신)이지만 그는 조국인 핀란드를 지키는 데 헌신했다. 더구나 만네르하임도 딱히 핀란드를 독립시키는 데 일조했던 것은 아니다. 독립하니까 가서 근무했던 것이지.
  31. 몇몇 친일파들이 오그라들어 반성한다느니 내가 개쌍놈이라느니 변명을 하고 있을 때도 이광수는 홀로 자신의 친일행위가 정말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민족 앞에 떳떳하다고 우겼다. 참고로, 이광수의 경우 전시체제 기간동안 가장 적극적이고, 매우 많은 친일문학,기사,칼럼,담화 등 발표하고 다녔는데, 이 부분에 있어 압도적으로 1위다. 오죽했으면 반민특위 보고서에서도 그를 광병적인 열렬 협력자로 규정까지 했을까?
  32. 비슷한 예로 미국에서 인디언의 권리 증진을 원했던 엘리 파커를 들 수 있다. 그는 인디언 출신으로 미국 정부의 관리로 일하면서 인디언이 정당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압제세력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를 두고 인디언의 배신자라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치론에서 적극적인 친일 협력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다.
  33. 물론 독립을 주장했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거 없고 민족 반역자가 맞다. 왜냐하면 자치론을 주장했던 이들중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독립이 안될줄 알았다라고 주장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로 이들이 독립을 최종 목적으로 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것이다. 독립을 최종 목적으로 해서 실력약성운동을 벌였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개량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에는 단 한명도 없고, 근접한 시기에도 안창호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독립을 최종목적으로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 언제인가 하면, 당연히 독립된 이후에 자신의 행적을 변명한 것이다. 만일 독립이 최종 목적이었다는 부분이 논란이 되면 평가도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독립은 어차피 요원해 보이니까 일본인에 동화되어서 잘 살아보자가 된다. 인디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한 엘리 파커 역시 인디언이 언젠가 독립할 것이니 그 준비를 하자가 아니라, 미국인으로 지내면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하자가 되는 것이다. 이전의 조선인이 앞으로 평균적인 대일본제국 신민이 되도록 노력한 이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치론자들에 대한 비교대상이 국가내 소수민족 옹호론이 아니라 비시 프랑스 등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
  34.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독립운동가들 일부가 악질 친일파들을 감싸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게, 독립운동가들과 친일파들은 어느정도 선에서는 친분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김구윤치호의 경우.
  35. 다만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는 학문적인 이유로는 자주 논의되는 주제이다.
  36. 대표적인 예가 수능 일본어. 한두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1등급씩 깎인다.
  37. 다만, 김구의 경우 해방 후 좌익 인사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테러를 감행한 것은 사실이어서 평이 좋지만은 않다는 말이 있다. 같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조차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감행해 죽이기도 했을 정도라 무조건적으로 추앙하기는 무리가 있고, 어디까지나 본인의 회고록인 백범일지가 사실만을 전하지도 않는다. 애당초 자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쓴 글이다보니......... 백의사 참고.
  38. 2001년 미국 국무부가 'Terrorism'이나 'Terrorist'의 단어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테러 관련 용어의 사전적 해석을 모아보자 147개가 나왔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 자체의 중립성 및 모호함 때문에 단순히 독립투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게 부정적이지는 않다. 문맥상 사용 용도를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39. 그나마 국공내전의 여파로 국민당의 코가 석자가 되면서 제대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이때 처벌되지 않은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처벌받게 된다.
  40. 이 때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도 소련에 잡혔다가 중공으로 압송되었다.
  41. 2번 정의에도 부합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사람이다.
  42.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이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근거로 주구장창 언급하는 독도의 영유권은 일본에 있다는 주장이 담긴 러스크 서한을 만든 인물이다,
  43. 현재진행형으로 활동하고 있는 혐한 성향 와패니즈로 일본 우익 특히, 넷우익들에게 텍사스 오야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44.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김구 세력이 한국의 정통 보수라고 주장하며, 친일파들 때문에 명맥이 끊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45. 뉴라이트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46. 사실 제5공화국 때는 반일이라기 보다는 극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47. 식민지배 피해국으로서의 친일파 문제와 군사독재 같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사를 인정하는 문제는 군부독재세력과 친일세력에 겹치는 부분이 많아 직접적인 연결성이 있는 주제이고 부정주의 움직임이 양측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둘 다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48.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극우들이 극단적인 주장을 할 자유도 어쩔 수 없이 보장하지만 극우파가 그 민주주의를 활용해 자기의 주의주장을 펼치고 권력을 잡아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꽤나 아이러니한데, 한국의 몇몇 언론은 군부독재 당시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권력에 충실히 복무하다가 민주정권이 성립되면서 언론의 자유가 실현되자 이제는 그 언론의 자유를 충실히 활용해서 '아니면 말고' 식 보도로 특정인을 매장한다거나, 편향되거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을 퍼트리는 용도로 악용하며 맛나게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죽 쒀서 개 줬다.
  49. 대부분 독일군에게 몸을 팔았다는 죄목이었다. 이 때문에 전후 머리 스카프에 대한 편견이 굳어져 한동안 스카프가 금기시되었는데, 이 여자들은 머리가 자랄 때까지 박박 깎인 상처투성이 대머리를 스카프로 숨겨야 했기 때문.
  50. 이 장면에서 건조하게 설명하는 레지스탕스 대장의 어투가 압권이다. "저 여자들이 뭘 했죠?" "독일놈들과 잤습니다. 그래도 저 창녀들은 나은 거에요. 그런 반역행위를 한 남자들은 다 총살당했으니까."
  51. 참고로 위에 서술된 대독협력녀 망신주기는 '팜 통뒤(Femmes tondues)'라고 한다.
  52. '수도경찰 3년사'라는 당시 국립경찰(미군정시기 경찰 호칭)에서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민중들은 왜정 시의 경찰관이라 하여 적대시하는 원차(怨嗟)의 울분이 등등(騰騰)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경찰과 법은 '낯선 전제권력의 꼭두각시'로 증오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어느 한 지식인은 미군정 관리에게 친일경찰을 제거해 주면 한국인은 모두 공산주의를 반대할 것이라는 편지를 쓸 정도였다. 또 한가지 사례로 들어, 해방이후 극우반공주의 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던 정치인 이철승(반탁운동으로 대단히 악명을 떨쳤다.) 같은 경우도 정부수립 이후, '다른건 몰라도 악질 친일파, 친일경찰만큼은 확실히 처단해야한다!'는 입장을 피력까지 하면서 당시 대통령 이승만한테 진정서를 보내기까지 했었다.#
  53. 그 업적에 대한 평가는 따로 봐야 하지만, 정일권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쟁쟁한 인물들은, 장준하 같은 인물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탈출해서 독립군에 참가할 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의 사관학교에 들어가 일본의 천황을 위해 사쿠라처럼 질 것을 선서했던 사람들이다. 과오 때문에 업적을 무시할 순 없지만,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과오를 지적하는 게 웬 말이냐며 핏대를 세우는 것은 크게 그릇된 뉴라이트의 논리일 뿐. 과오와 업적은 별개로 쳐서 평해야 마땅하다. 업적이 크다 해도 과오는 과오다.
  54. 다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정일권은 처음에 만주 육사 출신으로, 나중에 일본육사로 진학해 졸업한 경우.
  55. 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과거사 문제를 짚고 가지 못하면 결코 '미래 발전적'으로 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정리가 안되 오늘날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정치 현실과 반대로 과거사 문제를 철저히 밝힌 독일을 한번 비교하면서 이를 비추어 생각해보자.
  56.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겉으로는 일제강점기같은 일이 없어보이고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평화롭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마치 일제강점기는 과거의 일이고 이제는 완전히 끝나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이먹고 현실을 제대로 알고서는 겉으로는 끝나보이지만 자잘한 문제점들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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