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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陳重權, 1963년 4월 27일 ~

1 기본 약력[편집]

한국의 미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혼적 미학연구'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독일로 유학 중 일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고 과정에서 슬하에 자식 한명을 두고 있다. IMF로 인해 독일에서의 박사과정을 포기 후 귀국한후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논객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네티즌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2001년, 월장 사태다.

2001년 부산대학교 여성 웹진, 월장이 예비역(복학생)들을 대학의 적이라는 창간호 기획기사를 낸다. 해당 내용은 예비역들은 매춘, 음담패설등을 일삼으며 똥군기를 당연한듯 여긴다는 내용이었고 수많은 남성 네티즌의 공분을 산다.

이에 월장 멤버들은 사태 수습을 포기하곤 교수에게 구조요청을 날리지만 해당 교수가 이를 거부[1]하여 루저의 난과 비슷한 형태로 월장 사태가 진행 되었다. 결국 남녀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진 상황에서 진중권은 문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군대에 대해서 가열찬 비판을 하는 글을 게시했고 중간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여성 주류 사이트등에서 월장을 지지하는 지식인의 글이라며 진중권의 이름을 달고 뿌려져 본의아니게 이름을 날리게 된다.

평론가로서 이름을 떨친 것은 월간문화지인 인물과 사상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라는 글을 게시하면서이다.

이후 자잘한 활동을 해오다 2005년, SBS 라디오에서 진행한 '진중권의 SBS 전망대'라는 방송을 타고 평론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그를 논객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2008년즈음부터 왕성히 활동을 시작한 트위터 활동과 각종 시사토론프로그램 참가로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지, 평론가로서 활동을 그만 둔 것은 결코 아니다.

2007년디워 비평, 2008년인터넷 실명제비판, 2011년임재범 나치 코스프레 비판, 2014년명량 비평등으로 대표되는 시사와 문화전반에 평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1.1 교육자로서의 경력[편집]

귀국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빙교수로 활동 하였으며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등의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진중권을 비판하는 측은, 진중권은 '언제나' 정식으로 고용된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2] '진중권의 경력은 허세다. 알고보면 별거 없다'라는 식의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2012년 동양대학교가 정식으로[3] 교양학부 부교수로 고용하게 되어경력에 대한 비난은 사라졌다.

2 출판경력[편집]

첫 저서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사를 다룬 책 중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사실상 처음 나온 것으로, 90년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미학'이라는 분야를 대중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문학계의 명저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첫 출간된 94년부터 현재까지 적어도 50만 부 이상 팔렸다는 것이 정설.

이후에 그가 쓴 책들 역시 전반적으로 구어체를 사용하며 접근 수준이 높지 않아 현재도 대학에서 미학 강의시 입문용 교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처음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추구하는 UAT(Ubiquitous Art & Technology) 분야에 관심을 갖고 관련 해외 서적들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으며, 그 역시 미학을 통해 현실 문제나 대상을 해석하는 데 응용하는 등 해당 분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정말 몇 안되는 국내의 학자이기도 하다.

3 공개 토론회 참가[편집]

2005년부터 각종 토론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왔다.
덕분에 미학부분의 명사이자, 왕성한 저술활동을 벌였음에도 평론가보단 논객의 이미지가 강하다.

2012년 정식부교수 임용후에도 논객으로 활동을 접지 않은데다, 각종 공개토론회의 메인으로 참가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직업을 논객/전문 토론회참가자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나오는 중이다.

3.1 저서[편집]

4 여담[편집]

  • 이토 준지와 닮았다.진중권 쪽이 좀더 턱이 길긴 하지만... 덤으로 두사람은 생년까지 1963년으로 같다.
  • 자동차 및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비행기를 가지고 있다고.
  • 2013년 6월, 길냥이를 주워와 애묘인이 된다는 말이 돌았고, 얼마후 진집사 타이틀을 얻었다. 고양이에게 붙인 이름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트위터의 글자수제한 때문에 대개 루비라고 줄여 부른다.
  1. 구체적인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해당 교수가 남자라는 설, 혹은 창간호 나온거 보곤 월장을 포기했다는 설등이 있다.
  2. 교수도 여러가지 분류가 있고, 겸임교수나 외래교수, 강사등은 정식고용이 아닌 것으로 구분된다
  3. 진중권 본인도 이부분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취직한다"는 트윗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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