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映画

일본은 흔히 애니메이션특촬물 대국으로 유명하지만 극영화에서도 만만찮은 공력을 보유하고 있다. 60년대 유럽미국에서 등장한 소위 뉴웨이브 감독들이 일본 사무라이 영화나 문예 영화에 열광했던 것이 좋은 예다. 참고로 연간 영화 제작 편수만 따져도 인도와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 세계 3대 영화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20세기 초반에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메이저 영화사, 닛카츠가 설립됐을 정도. 당시 미국에서도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영화사는 극소수였다. 1958년엔 관객 11억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점점 하락하여 1970년엔 2억 5천만 수준으로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1억 중반대로 관객수는 인구가 1/3 수준인 한국과 비슷해졌다. 한국은 2012년에 연간 관객수 1억 9천만 기록. 그러나 일본의 표값이 비싼 관계로 관객수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시장은 한국의 2배 규모로 세계 3위의 영화 시장이다. [1]

그런 평가에 걸맞게 실제로 매년 엄청난 편수의 영화들을 찍어내고 있으며, 아카데미 영화제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적지 않은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09년에 오쿠리비토(굿 '바이)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

일본 영화의 걸작으로는 단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가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 본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걸작이기도 하며, 서부극, 범죄물등 장르 영화에 끼친 혁신성으로는 가히 《시민 케인》을 형용해도 좋을 정도. 또한 세계적인 사무라이 붐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픽사의 《벅스 라이프》는 기본 얼개를 이 작품에서 오마쥬했다.

그 밖에도 오즈 야스지로(1903.12.12~1963.12.12)나 미조구치 겐지(1898~1956)같은 흑백 예술영화 거장들을 비롯한 예술 영화로도 알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내 영화 시장 역시 무척 두텁게 형성된 편인데, 일단 저작권 개념이 많이 자리 잡은 상태라 한국이나 중국처럼 불법 동영상이나 DVD로 인한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렌탈 시장의 수요도 꾸준히 있는 편이어서 부가적인 2차 시장도 굉장히 수요가 높다. 영화 편당 드는 관객 수는 한국보다 적은 편이지만 1인당 기본 관람료가 1,800엔 선을 유지중이다. 환율에 따라 한화로 18,000원에서 23,000원 정도. 물론 여러가지 할인제도나 극장별 할인을 실시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신 개봉영화를 1,000엔 이하로 보는 것은 불가능. 도쿄 시내 햄버거 가게의 시급이 대략 900엔 정도이니, 아르바이트 2시간 하면 영화 1편 볼 수 있어서 싼 것처럼 보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전체를 아우러 보면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많이 비싼편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 역시 지대하여 시네콘이라고 불리는 멀티플렉스 극장만큼 독립영화, 비주류영화 전용 소극장관도 어떻게든 유지를 하고 있다. 운영 자체는 그럭저럭 규모 있는 기업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또한 한국처럼 특정 블록버스터 화제작에 과도한 쏠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큰 파이를 수많은 작품들이 비교적 고르게 나눠갖는 등 시장이 상당히 괜찮게 형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 만화계와 마찬가지로 영화인들에게 있어서도 일본의 수익구조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영화팬들은 오늘날의 자국 영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작품성을 갖춘 감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선전하던 과거에 비해 80년대부터 가벼운 상업성 영화나 아이돌 영화들이 범람하면서 일본 영화계의 전체적인 질이 낮아진 탓이 크다. 그리고 일본 영화 제작 구조상의 문제와 스폰서들의 압박도 큰 편이라 어지간한 명감독이 아니고선 감독들이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우며, 그 때문에 애매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방송사들이 영화 제작시장에 뛰어들면서 TV드라마의 극장판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는데 검증된 작품의 영화화는 확실한 수익모델이 될 수는 있지만 방송사와 스폰서의 압박을 견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1985년부터 일본 영화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가 붕괴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의 압박으로 2002년에는 자국 시장 점유율이 27.1%까지 추락하는 몰락을 겪었다. 동일 시간대에 한국 영화는 1999년 《쉬리》 이후 중흥기를 맞으며 이후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나들어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인들이 부러워 했을 정도. 이러한 추세를 바꾼 것이 만화 원작의 블록버스터들이 대거 제작된 2006년부터 다시 21년 만에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으며 2012년에는 65.7%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해외 흥행은 참패한 국내 제한의 흥행이고 원작 만화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영화의 화법이 아닌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화법을 펼친다는 비평도 있다.

또 만화 원작 영화가 증가하면서 실사화 블록버스터의 실패에 대한 도 커지고 있다. 만화 원작 영화 중에서 《얏타맨》(2009)이나 《SPACE BATTLESHIP 야마토》(2010) 정도만이 흥행했고 《캐산》(2004)는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전에 흥행을 실패한 《데빌맨》(2004)나 《큐티하니》(2004)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였으나 2013년 들어서 제작비가 80억 엔에 달하는 《갓챠맨》이나 제작비가 30억엔인 《캡틴 하록》(2013)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토에이나 쇼치쿠, 토호 같은 유서 깊은 영화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기존 영화사들이 촬영 스탭을 동원해주는 인력회사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 그렇다. 1960년대 TV보급과 함께 일본 영화업계의 위기가 시작됐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TV 방송국과 합작을 시작, 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숨통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영화사들이 다른 자금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송국의 지원에 기대버리면서 차츰 영화 제작의 주도권을 뺏기기 시작해 급기야 상술된 스폰서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지경까지 내몰린다. 그러니까 감독이나 각본가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영화 제작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만화가 히트쳤으니 실사영화를 만들면 팔릴 것 같다, 혹은 우리 회사 드라마의 극장판을 만들자와 같은 투자자의 발상에서 영화 제작이 가능해지는 풍토다. 다만 호러 장르에 한해서는 일본 영화의 소구력도 상당히 강력하다. 메이저 영화에 비해 감독이나 각본가의 재량이 넓게 주어지는데 보통 스폰서가 뭘 만들자고 구체적으로 고집하는 게 아니라 ' 이만큼 예산을 줄테니 호러 하나 만들어보지? ' 라는 식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공포를 워낙 그로테스크하게 잘 뽑아내는 것도 있고, 특유의 음침한 이미지와 정서가 한국 호러물과는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일단 호러 강국으로 통한다. 한국에 특히 잘 알려진 작품은 시리즈, 주온 시리즈, 착신아리 시리즈 라든지 과거 저예산 일본 호러들도 비공식 상영회로 많이 접하했으며 국내에 소개된 일본 영화들 중 공포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일본은 엽기적인 나라"라는 선입견이 더욱 두터워지기도(…).

그래도 현재 수입되는 장르의 주류는 코미디물, 멜로물, 일상물 내지 극장판 애니메이션 위주다. 기타노 다케시로 대표되는 야쿠자물도 소개되곤 하지만 기타노 빼면 국내에 알려진 네임드는 전무한거나 다름없다.그나마도 기타노 영화도 한국에선 대중성이나 흥행은 거리가 멀다. 1997년 그가 감독한 영화 《하나비》가 공식 개봉작 1호로 개봉할 당시 화제를 모았는데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법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개봉하니 관객은 텅텅 비었고 되려 취재하러 온 일본 기자가 더 많았다는 당시 영화지 월간 키노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다케시 일족의 미이케 다케시도 해외에서 제법 선전하는 감독이지만 스폰서의 간섭에 학을 떼는 인간이라 B급 컬트 영화만 줄창 만들어 대면서 컬트영화 감독으로 굳어져 버렸다. 다만 2013년에 그가 감독했던 대작 액션영화 《짚의 방패》는 13억 엔이나 되는 수익을 거둬 큰 성공을 거뒀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어른의 사정에 의해 미이케가 바라는 결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특촬물의 대국이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영화 CG는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서 일본 블록 버스터 영화는 기대를 접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원작 작품은 정말로 웬만하면 보지말자. 눈 버린다 (단, CG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드라마 장르는 예외.) 원작파괴는 기본이고 등장인물들의 재현도도 코스프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그림에 익숙해져있다가 현실로 다가왔을때의 쇼크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은 애니메이션을 버리고 영화를 얻었고, 일본은 영화를 버리고 애니메이션을 얻었다?

세계구급으로 메이저만화, 소설,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본 영화는 어째 자국만 벗어나면 영 힘을 못 쓰는 이상한 실정. 90년대 말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 그렇잖아도 기반이 약한 한국 영화계가 만화업계처럼 일본에 잠식당하리라는 엄살이 팽배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넘사벽으로 안 먹힌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나마 가장 선전한 축에 들어가는 《러브레터》의 동원 관객 수가 전국 140만 명 정도였고 이후로 전국 100만 관객을 넘긴 일본 영화가 아예 없을 정도이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전개가 느린 이유도 있고, 일본 배우들의 표현 방식이 한국인들에겐 굉장히 이질적인 탓도 크다. 개그나 위트 신에서의 정서적 괴리가 너무 커서, 한국 관객들로서는 도저히 웃음의 포인트를 캐치할 수 없다(…). 같은 아시아권인 홍콩 영화가 이미 60년대부터 꾸준히 상영했고 제법 대박을 거두던 거와 대조적이다.

게임 감독 코지마 히데오도 영화를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고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위에서도 거론되었다시피 일본 영화 자체의 한계를 느껴 게임업계로 전향했다. 오시이 마모루도 비슷한 이유로 애니계로 뛰어들었다가 명성이 쌓이고 난 뒤 간간히 만드는 정도. 그 정도로 확실히 안 좋은 실정이다. 실제로 일본 영화계의 암울한 상황은 내한했던 여러 일본영화 관계자들이 실토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오다기리 조, 니시지마 히데토시등의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일본 영화계의 힘든 현실을 언급했다.

그나마 2010년 기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는 감독이라면 고바야시 마사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노 시온,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야마다 요지, 나카시마 테츠야, 츠카모토 신야, 미이케 타카시, 카와세 나오미 정도가 있다. 다들 나이가 40을 넘어섰다는 건 잊자

1970년대에는 유럽과 합작하는, 정확히는 일본이 돈을 대고 유럽은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이른바 "국제방화"라는 묘한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여기서 방화라는 것이 국산영화라는 뜻의 일본 용어.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쓰던 용어다. 이런 국제방화들은 우리나라에도 유럽 영화로 수입되어 그런대로 흥행하기도 했다. 《라스트 콘서트》, 《필링 러브》 등이 이런 영화.

  1. 출처: http://www.mpaa.org/resources/3037b7a4-58a2-4109-8012-58fca3abdf1b.pdf 2012년 기준으로 일본의 영화 시장은 24억달러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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