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Internet.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TCP/IP)을 기반으로 하여 전세계적으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를 일컫는 말. 정보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중 하나이며 통신수단, 문명의 이기이자 양날의 검으로도 불린다.


인터넷은 인간이 발명해 놓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최초의 발명품이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실험이다.

- 에릭 슈밋[1]



외국 인터넷에 대한것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영상.[2]

1969년 미국 국방성(펜타곤에 있는 미국 연방정부 부처)에서 군사목적으로 만든 UCLA와 스탠포드 대학 등이 보유한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ARPANET를 시초로 지금은 상대방을 만나지 않아도 컴퓨터 한 대와 랜선, 그리고 돈만 있으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21세기 최고의 가상 공간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기간 인터넷 통신망을 구축해 국내 초고속 인터넷망의 기초를 닦았지만 외국에 다녀본 사람이 아닌이상[3] 아무도 그런 거 신경쓰지 않는다. 과연 클로커 2000년 무렵에 케이블인터넷ADSL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초고속 인터넷이 크게 보급되었다. 특히 ADSL이 인터넷 보급에 큰 역할을 했는데,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첫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배순훈 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도 여러 책들을 통해 미래에는 정보화와 인터넷이 큰 역할을 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고 인터넷 활성화를 위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의 인사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었고, 전국의 관공서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후에 빌 게이츠와 손정의 조차도 자국에서도 이렇게 공공시설을 비롯해서 전국의 모든 지역에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 않았는데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http://youtu.be/e8KOngT6sKg
관공서에 인터넷이 설치되려면 인프라의 설치가 선행되어야 하고, 관공서는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사는 웬만한 지역에 모두 있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서 그 인프라를 이용 민간인들도 인터넷을 설치하기가 쉬워져 보급이 촉진된다.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 메가패스등의 인터넷 제공업체가 생기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4] 당시에는 IMF 시절인지라 정보통신 산업으로 경제를 다시 살리는 게 중요정책 중 하나였다. 벤처열풍, 국민PC 등등.

컴퓨터 기술과 정보통신의 기술의 최종발전체이긴 하지만, 정보 공유는 물론이며 소통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곳이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왜냐하면 수많은 악플과 병크, 찌질이들이 인터넷 어딘가에 남모르게 돌아다니고 있는 데다가, 불법 공유로 인해 오프라인 콘텐츠 시장이 개발살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역기능이다. 그리고 위의 대표적인 역기능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 중독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인터넷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인터넷 없이는 컴퓨터를 도저히 못할 정도로 현재 들어와서는 인터넷이 오히려 컴퓨터를 지배해 버린 상태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서 리그베다 위키도 생겼고 위키니트도 생겼고... 반달도생겼다.

그냥 설레발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다. 만약 인터넷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최초로 '사람 및 단체가 아닌' 것이 상을 받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인지 노벨 위원회도 일단은 후보이지만 받을 리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중.

뿐만 아니라 귀가 안들리고 말을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는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라디오가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라면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인터넷이다.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대단한 발명품이긴 해도 세탁기에 비하면 아직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이 적다고 한다. 1999년, 영국에서 독방에서 100시간 생존게임 실험을 한적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만으로 생활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나왔다. 이게 1999년에 나온 실험 결과다.# 인터넷의 엄청난 대중화를 예견했다고 볼수 있다.

이보다 앞서서 널리 퍼진 PC통신으로는 무려 30년 전인 1980년대에 퍼진 프랑스미니텔이 대표적이나, 이 성공이 역설적으로 인터넷 보급을 막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결국 2012년 6월 30일 서비스 중단. # 항목 참조.

2 나라별 인터넷 속도[편집]

Countries with the highest average internet connection speed as of 2nd quarter 2014 (in Mbps)
The statistic shows the countries with the fastest average internet connection speed during the second quarter of 2014, measured in Megabits per second. During that quarter, internet connections in the Netherlands averaged a connection speed of 14.3 Mbps. The global average connection speed was 4.6 Mbps.

Average connection speeds are higher in Asian countries; South Korea leads with an average connection speed of 23 Mbps almost 10 Mbps higher than Japan. This is a growth of more than 140 percent to the first quarter of 2013.

In the South Korean city of Taejon, the average connection speed peaked at 59.2 Mbps in the last quarter of 2011, while in Hodogaya, Japan, it peaked at 45.2 Mbps. Along with many other Japanese and South Korean cities, Romanian city Timisoara also featured that year as one of the worldwide cities with one of the fastest average peak connection speed with some 44 Mbps.

That same year, 38 percent of internet users in Switzerland enjoyed a connection speed of over 8 Mbps, while more than 30 percent of internet users in Brazil had only access to speeds below 512 Kbps.

In the period between 2012 and 2013, average connection speeds worldwide were of some 3 Mbps and by the last quarter of 2014, global connection speed averaged just under 4 Mbps.
2014년 2분기 국가별 평균 인터넷 연결 속도 (Mbps 단위)
이 통계자료는 2014년 2분기의 가장 빠른 평균 인터넷 연결 속도와 국가이다. 초당 메가 비트(Mbps) 단위를 사용한다.
이 분기동안 네덜란드의 평균 인터넷 연결 속도는 14.3 Mbps 였으며, 세계 평균 인터넷 연결 속도는 4.6 Mbps였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평균 연결속도가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한국은 23Mbps로 일본에 비해 10Mbps 빠른 속도를 보이며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2013년 1분기에 비해서 140% 성장한 수치이다.

한국의 대전에서의 평균 연결속도는 2011년 4분기에 59.2 Mbps를 기록했었고, 일본의 호도가야에서는 45.2 Mbps를 기록했었다. 다른 한국과 일본의 많은 도시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는 44Mbps를 기록하며 가장 빠른 인터넷 연결속도를 가진 도시중 하나로 뽑혔다.

같은 해에 스위스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중 38%는 8Mbps를 상회하는 연결속도를 가진 인터넷을 사용하였으며, 브라질 인터넷 사용자중 30%의 인터넷 연결 속도는 512Kbps 밖에 되지 않았다.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전세계의 평균 인터넷 연결속도는 3Mbps였다. 그리고 2014년의 마지막 분기가 된 현재 세계의 평균 인터넷 연결속도는 4Mbps에 육박한다.

인터넷 internet connection speed by country.png

전반적으로 국외에서 인터넷 속도가 빠른 지역은 다음과 같다. 영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곳에서 전반적으로 인터넷 속도가 빠르다는 증거다.

순위 국가 Mbps
1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24.6
2 중화인민공화국 홍콩(Republic of People's China - Hong Kong) 15.7
3 스위스(Switzerland) 14.9
4 일본(Japan) 14.9
5 네덜란드(Netherlands) 14.3
6 스웨덴(Sweden) 13.6
7 라트비아(Latvia) 13.6
8 영국(United Kingdom) 12.6
9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 12.6
10 루마니아(Romania) 11.8

위 사항의 출처는#

참고로 국내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지역은 다음과 같다.

순위 지역
1 대구광역시(Daegu Metropolitan City)
2 대전광역시(Daejeon Metropolitan City)
3 경상남도 창원시(South Gyeongsang Province Changwon City)
4 부산광역시(Busan Metropolitan City)
5 서울특별시(Seoul Metropolitan City)

3 인터넷의 역사[편집]

3.1 ARPANET의 탄생[편집]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ARPA, 현재의 DARPA)에서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연구에 착수하였다.[5] 그 결과 기존의 회선 방식 보다는 패킷 방식이 안정적이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또는 EUCLA)와 스탠퍼드 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 SRI),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바버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또는 EUCSB),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 이상의 4곳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최초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인 ARPANET이 탄생하였다.

3.2 ARPANET의 탄생 이후[편집]

ARPANET은 초기에 NCP 패킷 송출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1983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TCP/IP 패킷 송출 방법[6] 으로 전환하였다. 원래 군사적인 목적[7]이었던 ARPANET에 눈독 들이는 기업이 늘면서 이 때 일반인을 위한 ARPANET과 군사용의 MILNET으로 분리되어 현재의 인터넷 환경의 기반을 갖추었다. 한편 미국 국립과학재단(NSF)도 TCP/IP를 사용하는 NSFNET라고 하는 새로운 통신망을 1986년에 구축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NSFNET는 전미국 내의 5개소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상호 접속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는데 1987년에는 ARPANET를 대신하여 인터넷의 근간망(backbone network)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3.3 WWW의 탄생[편집]

1989년 3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8], CERN[9])의 소프트웨어 공학자 팀 버너스리 경(Sir Timothy John “Tim” Berners-Lee, OM, KBE)[10]에 의해 전 세계의 대학 및 연구소들끼리의 상호 연구를 잘 하려면 정보를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지 않아야 하겠나, 해서 문서뿐만 아니라 소리, 동영상 등을 망라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전문 열람 소프트웨어로 열람하는 방식을 생각해 내게 된다. 이것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의 탄생이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월드 와이드 웹 사이트는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 이며, 1991년 8월 6일에 오픈한 사이트로서 월드와이드웹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여담으로 세계 최초로 인터넷에 업로드된 이미지는 이것이다:
파일:/image 1.jpg
CERN 연구소 여성직원들 몇명이서 만든 코믹 밴드 "Cernettes"의 사진.

3.4 한국에서[편집]

한국에서는 1982년에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TCP/IP를 이용하고 1200bps 전화선을 통해 연결한 SDN이 인터넷의 시초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미국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연결된 인터넷 망이었다.그것도 자체 개발로 그리고 이 연결을 주도했던 전길남 박사는 세계 인터넷 개척자 30중 한명으로 인터넷 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1]관련 만화

# 1983년에는 UUCP[12]를 이용해서 네덜란드와, 1984년에는 미국의 CSNET과 연결했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회선 유지비가 비싸서 CSNET 유즈넷의 자료를 마그네틱 릴에 백업받아서 우편으로 한국에 가져올 정도였다고 한다. 회선비용도 부담이었지만 당시에는 전송속도가 너무 느려서 대용량 자료는 이런 식으로 전달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1986년에 IP 주소를 할당받은 이후에는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ETRI 등 초창기 인터넷을 사용하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IP와 도메인을 할당하다가, 1994년부터 KT의 KORNET, 데이콤인터넷, 아이네트의 누리넷 등이 일반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연구기관이 아닌 일반인들도 점차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서비스는 지금처럼 포탈 서비스 뜨고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광활한 터미널 화면에 프롬프트만 깜빡이는 화면이 제공되는 것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1995년부터 누리넷이 쉬운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면서 인기를 끌어 일반인 사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터넷이 사용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3시 50분 ~ 7시까지는 인터넷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유는 국내외 모든 성인사이트 풀가동 인터넷 회사들의 대다수 서버가 점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4 월드 와이드 웹[편집]

4.1 인터넷과 WWW[편집]

워낙 WWW가 대세이기에 WWW를 인터넷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WWW은 다음 세 가지의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첫번째, 통일된 웹 자원의 위치 지정 방법. 예를 들면 URL(Uniform Resource Locator). 두번째, 웹의 자원 이름에 접근하는 프로토콜(protocol). 예를 들면 HTTP. 세번째, 자원들 사이를 쉽게 항해 할 수 있는 언어. 예를 들면 HTML. 따라서 메일 등은 SMTP나 IMAP 등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WWW는 아니다.

5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편집]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하이퍼링크 (Hyperlink)이다. 앞에서 상술한 인터넷의 역사, 특히 WWW편을 보면 원래 WWW은 학술 자료 열람용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영미권의 학술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용이다. 한 자료가 얼마나 권위있냐를 따지거나 심지어 한 대학을 평가할 때도 이 인용 횟수를 따질 정도이니까. 특히 이러한 인용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 바로 구글의 페이지랭크이다. 각설하고, 이러한 인용은 책에서 각주나 책 뒤장에 몰아 실릴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하이퍼링크이다. 즉, 하이퍼링크는 애초에 인용을 전자식으로 각색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하이퍼링크를 담고 있는 것을 하이퍼텍스트라고 부른다.

5.1 HTML과 W3C[편집]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와 함께 WWW를 특징 짓는 것이 바로 HTML이라는 언어이다. 이 언어는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고 표시해주는 언어로써, 팀 버너스리가 WWW 개념의 시초가 된 엔콰이어(Enquire)를 창안한 이래로 1994년, W3C(World Wide Web Consortium)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HTML에 대한 규격을 만들어오고 있다. 최근의 HTML5 지원이니 뭐니 하는 것도 W3C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 참고로 이것이 팀 버너스리가 1991년 8월 6일 최초로 만든 웹 사이트이다.

6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떡밥[편집]

보통은 인터넷의 시작을 ARPANET으로 잡는데, 이는 인터넷이 TCP/IP 기반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라는데 기인한다.또한 미국이 돈이 많아서 선전을 많이 해대서라고도 한다. WWW를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 경우에는 단순히 인터넷이 컴퓨터 상호 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웹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부터 정보 교류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WWW를 인터넷의 시작으로 보는 쪽에서는 '현재의 웹 사이트가 없는 인터넷을 과연 인터넷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한 ARPANET을 인터넷의 시초로 잡는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유럽 쪽의 의견에 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WWW보다는 ARPANET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러한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미국 VS. 유럽의 자존심 싸움으로도 번져, 소설 <천사와 악마>에도 나오듯이 미국유럽 간에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의견 대립은 꽤나 골이 깊은 편이다.[13] 이는 인터넷의 시작을 어느 쪽으로 잡는지에서부터 인터넷의 정의에 관한 문제로써, 개인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전길남박사는 ARPANET을 인터넷 기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KRNET2012년 행사 때 직접한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터넷이 ARPANET의 기술을 들여온 것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듯.

7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편집]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에서, 영국은 팀 버너스리를 소개하여 인터넷의 뿌리가 WWW임을 표명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한 순간에 논란이 종식될리가 없지만, 행사의 한 부분을 버너스리, 한 인물에게 집중하면서까지 강조를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소개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컴퓨터 네트워크(ARPANET)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은 WWW부터 시작한다라는 영국, 더 나아가 유럽 쪽의 의견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8 인터넷 혁명[편집]

인터넷의 태동은 소위 '인터넷 혁명' 이라고도 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의미하듯 인터넷 시대로의 진입은 이제껏 인류사회에 없던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외국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은 국제 전화라든가 편지 등의 수단 뿐이었고, 그마저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침대에 누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항공술의 발달 이후 태동한 '지구촌'의 개념을 더욱 현실화 시켜주었다. 때문에 농업혁명, 산업혁명과 함께 인터넷 혁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9 인터넷 관련 용어[편집]

10 관련 항목[편집]

  1. 구글 회장이신 그 분 맞다.
  2. 단, 케이블방송 과점 문제는 대한민국도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케이블 SO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그들의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IPTV, 광인터넷 등)
  3. 몇몇 나라를 빼면 외국 인터넷이 더럽게 느린걸로 유명하다 일단 위에 있는 영상을 보자 게다가 선진국 미국도 느리다. 그나마 보급도 원활하고 속도면도 양호한 일본은 별 차이 없긴 하지만, 100메가급을 즐기기 위해선 한국 인터넷 요금보다 두배이상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4. 그리고 한국최고의 인터넷제공업체를 종결낸 승리자는 메가패스KT가 되었다(...)
  5. 로런스 "래리" 로버츠(Lawrence "Larry" Roberts)는 ARPANET을 탄생시킨 공돌이과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를 기술한 이유는 전에 쓰인 문서에 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였으므로.
  6. 빈트 서프(Vint Cerf)는 TCP/IP 프로토콜 탄생에 기여한 사람으로, 래리 로버츠처럼 인터넷의 아버지라 부른다. 결국 인터넷은 누가 아버지인지 모르는 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이를 기술한 이유는 역시 전에 쓰인 문서에 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였으므로.
  7. 상술하였듯이,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이 목적
  8.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약자는 CERN인데 풀네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터인데, 원래 CERN은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이었으나 명칭을 변경하였다. 다만 약칭 CERN은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 것.
  9. CERN은 쎄른, 쎄~ㅎ은, 체른이라 읽을 수 있다는데 CERN이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독일어식 발음인 체른으로 주로 읽는 바람에 체른이 일반적이라 한다.
  10. 이 연구를 통해 대영제국훈장 2등급에 서임되어 기사 작위를 받았다.
  11. 이분은 현재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부총장으로 재임중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인터넷 개발을 주도했음에도 학계의 파워게임에 밀려 학계 주류에는 들지 못하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다 정년퇴임하자마자 게이오에서 덥썩 물어간 것. 그러나 현재 한국의 성공한 벤쳐 1세대 중 상당수는 이분이 카이스트 재임시절 키워낸 제자들이다.
  12. Unix to Unix Copy Protocol. 유닉스 시스템끼리 서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간단한 프로토콜이다.
  13. 물론 천사와 악마의 배경이 WWW를 창안했다는 자부심을 갖는 CERN이 배경이여서 더욱 부각된 면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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