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세[편집]

초기엔 만화영화(망가에이가)라는 용어를 썼으나, 애니메이션 산업이 커진 이후에는 외래어 아니메(アニメ)라는 말로 애니메이션을 통칭한다. 해외 팬들이 이 단어를 그대로 가져가서 Anime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 내부에서는 자체적으로 '재패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평론가 이마무라 다이헤이는 저서 <만화영화론(漫画映画論)>(1941년 발행)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기원은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책인 '에마키(絵巻)'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마키란 폭이 좁고 긴 종이에 글과 그림을 그려 넣어 둘둘 말아 놓은 것을 말한다. 읽을 때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펴 가며 읽는다.

9세기 헤이안 시대에는 주로 불전이나 중국 고사를 제재로 한 것이 그려졌으나 점차 국풍문화화가 진행되면서 일본 고유의 모노가타리나 설화가 그려졌다. 모노가타리나 설화 에마키는 주로 귀족의 아녀자들이 즐겼는데 그들이 직접 읽는 것이 아니라 시중드는 여인들이 옆에서 낭독하며 읽어주는 형식이었다. 오늘날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자기 전에 읽어 주는 그림 동화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림도 보고 귀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니 현재 우리가 즐기는 애니메이션의 기본 형식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에마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통 형식에 따라 TV판, 극장판, OVA로 나뉜다.

TV판은 TV에서 방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TV 시리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25분 러닝타임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 방영한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저프레임과 정적인 화면을 위주로 순간의 임팩트를 강조하는 트릭을 많이 부리는데[1], 일본 만화의 연출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많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독창적인 요소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 시즌당 오프닝과 엔딩은 1개지만 타이업 마케팅이나 연출상의 문제로 2~3개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때문에 외국인의 입장에선 자주 바뀌는 오프닝 엔딩이 호불호가 갈리는 편. 스토리를 실컷 보여주다가 느닷없이 중간에 오프닝이 나오는 식의 연출이나, 아예 생략해 버리는 전개방식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물론 OVA 등에서도 이런 연출을 하는 경우는 많으나 타이업이라는 마케팅이 활발한 TVA의 특성상 TVA에서 자주 사용되는 연출법.

중간광고가 허용되는 일본의 방송 환경상 절반인 10분 가량 진행 후 광고를 넣기 위해 중간에 흐름을 한 번 끊는데, 이때 흐름을 자연스럽게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이캐치. 일본 애니를 보면 스토리 잘 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프닝이 나와 끊어먹는 것도 있다.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로 승화시킨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TVA 특유의 연출이지만 이에 영향을 받아서 중간광고가 없어서 아이캐치가 필요없는 OVA나 심지어는 극장판에서도 이 연출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연히 불법 립핑되어 인터넷에 공유되는 영상은 광고를 컷하기 때문에 불법이든 합법이든 다운로드 방식이 대세인 국내에선 이게 왜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

참고로 일본 TV 애니메이션은 이 아이캐치를 전후로 앞부분을 A파트, 뒷부분을 B파트라 부른다. 또한 B파트가 종료된 뒤 엔딩곡과 다음회 예고 사이에 짤막한 스토리 분량을 집어넣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C파트라고 부른다.

OVA(혹은 OAV)는 영상 매체에 담겨 판매 혹은 대여되는 일본 특유의 애니메이션으로서 한 편의 길이는 TV 시리즈와 비슷하나 전체 분량은 유동적이다. 일반적으로 TV에서는 방영되지 않지만, 최근에는 광고 목적으로 방영되기도 한다.

극장판은 극장에서 상영할 목적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이다. 자금과 공이 많이 들어가므로 일반적으로 위의 세 가지 형식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일본에선 영화판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간혹 실사판 영화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평가를 높이는 데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의해 개척되면서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명기를 이끌었으며, 우주전함 야마토 붐 때부터 80년대 정도까지가 제작 편수 면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였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콘 사토시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OAD는 제작 과정 자체는 OVA와 비슷하나, DVD 단품 판매가 아닌 원작이 있는 작품(대부분 만화라이트 노벨)의 단행본의 신간과 합본으로 판매되는 방식을 뜻한다. 2010년대 들어서 부진해진 OVA의 대체 유통방식이며, OVA처럼 장편[2]보다는 한두화짜리 단편 위주로 제작되고 있는 상태다. 그 외에도 목적과 상영 시간별로 분류는 다양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90년대 후반까지 대부분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이었으나, 1997년을 기점으로 후반부 작업이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3] 최근에는 3D, 이펙트 등 많은 효과들이 추가되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작화는 종이에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작화까지 디지털화된 스튜디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그림은 종이에 직접 그려서 스캔 과정을 거친다.

일본 경제가 오랜 불황을 겪으면서 아니메 업계는 충성도 높은 오타쿠층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들을 주로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 가요계가 아이돌판이 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일본 가요계도 경제 불황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음반 판매량은 갈수록 줄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음반 판매량은 비교적 줄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느는 현상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오타쿠층을 노린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장기간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이 주류였다면[4] 현재는 길어봐야 2, 짧게는 1쿨도 되지 않는 작품이 주류가 되어 있다. 상술했듯이 업계 자체가 불황이어서,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3쿨 이상의 애니메이션은 한 번 망할 시 회사가 뿌리채 훅 가 버릴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실패했을 경우 적은 부담으로 거기서 바로 접을 수 있고 흥하면 2기, 3기로 이어지는 패턴이 많아진 것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수입원이 장난감이나 캐릭터 상품처럼 이래저래 기획과 자금이 필요한 것들에서 그냥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DVDBD로 바뀐 것도 같은 이유이다. 덕분에 최근에는 캐릭터나 자극적인 소재 등에 의존한 굵고(?) 짧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전체 분량이 10~11화 정도로 1쿨에도 못 미치거나 아예 한 편의 러닝 타임이 5분밖에 안 되는 것들까지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짧아진 덕분에 동인계에서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유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동인지를 그리고 있는 지금은 인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동인지를 완성해서 팔 무렵에는 이미 그 애니메이션이 종영되고 새로 방영을 시작한 다른 작품으로 인기가 옮겨가 있기 때문이다. 동방 프로젝트, 모바마스, 칸코레 등의 게임 장르들이 동인계에서 흥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점으로, 애니메이션 장르에 비해 호흡이 길고 안정적이라는 소리다.

2 재패니메이션[편집]

일본 애니메이션을 미국 쪽에선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국에서 쓰는 일도 있다.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말은 본래 일본 애니메이션을 영어더빙하여 북미에 방송되고 있는 버전을 일컫는데, 일본(Japan)과 애니메이션(Animation)의 합성어이다. 다만 이 말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하하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판단은 알아서.

3 그림체의 변천[편집]

그림체 쪽으로 들어가면, (만화 쪽도 아울러) 그 시작은 명백히 서양문화의 유입에 있었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디즈니의 작품들을 바로 베껴온 그런 것은 아니고, 초창기 영화 기법의 일종으로 20세기 초 애니메이션의 탄생 직후 건너와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세계를 구축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1917년작. 일본 만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부터가 디즈니 등의 미국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차용된 그림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일종의 선전수단으로서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 흑역사 아닌 흑역사도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이 융성하면서 일본 만화의 장단점을 재배치하여 2차, 3차로 변이된 작품이 등장하는 등 사람마다 갖가지 그림체를 들고 나왔지만, 그 이질적인(가장 유명한 것으로 '눈깔괴물'이 있다.) 그림체가 대표하는 특성은 '서양인'이었지 일본인이 아니었다. 그 그림체들이 매우 흔해지고 인식적으로 안정된 이후에야 그 그림체로 일본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캔디캔디 등이 히트칠 즈음엔 한국에서도 '일본인들은 키와 눈이 작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키 크고 코 높고 눈이 큰 서양식 두상을 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으나, 이후 그러한 특성이 강렬한 일본문화로 부각되자 '눈 큰 그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라고 부정하고 보는 부류가 생기기 시작했다.(대표적인 예로 망가는 벗어버려가 있다.) 그러나 결국 한국 내 다수의 오타쿠층도 눈이 큰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다만 위에서 서술했듯 눈이 너무 큰 캐릭터(일반적으로 모에 같은 경우)는 상업적으로도 오타쿠를 노리는 쪽이 많으므로 너무 그런 쪽으로만 치우치면 대중과의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들 알다시피 일본 내에서도 오타쿠에 대한 시선이 썩 좋지는 않기 때문에...

미국의 그림 스타일을 흡수·해석해서 일본식 그림체의 영역을 넓히는 인물들도 있다.(니시무라 키누 등) 최근엔 미국에서도 일본식 그림체를 그리는 사람도 있고, '동양인에게 거부감 없는 미형 그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 경계선이 점점 희미해지는 편.

4 연출과 기법[편집]

최초로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든 토에이는 원래 디즈니에 준하는 형태의 연출과 기법을 선보였으나, 데즈카 오사무가 덤핑으로 TV 애니메이션을 납품하면서 뱅크신을 활용하고 리미티드 기법을 도입하는 등 오만가지 편법을 활용한 돈 절약 수법을 선보였고 이후 TV 애니메이션들은 이런 절약 수법이 거의 표준이 되었다. 또한 TV 애니메이션의 양적 성장을 이룩하여, 미국과는 달리 TV 위주로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런 절약 수법을 쓰면서 그림이 아니라 카메라가 움직이는, 즉 영화의 패닝과도 같은 수법을 선보였으며 전체 그림 수는 적게 쓰는 대신 개별 컷의 장면 구도는 정성을 들이는 수를 썼고, 이런 기법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준처럼 자리잡는다.

이렇게 TV판의 저예산 속에서 찾아낸 연출 방식과 기법들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제작 환경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기도 했고,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제한을 역으로 활용해 오히려 박력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이나 여타 국가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특함을 지니게 되었다.

참고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시초는 디즈니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세운 UPA(United Productions of America)이다. 풀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을 반으로 나눈 12프레임으로 작품을 만들어 제작비를 낮추는 공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 바로 이 회사. 일본은 자본력의 부족으로 인해 이 공법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거기서 프레임을 더 줄여서 8프레임, 심지어 6프레임까지도 낮춘 애니메이션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리미티드 기법은 TV용으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극장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기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자금난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고프레임의 작품을 보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5 선정적 요소 및 기타[편집]

일본은 고령화와 저연령층 인구의 감소로 인해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 예전부터 예견되어왔다. 때문에 아동용의 틀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거기에 성인 취향의 코드를 넣은 오타쿠 대상 애니메이션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5] 완전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사도 몇 군데 남아 있긴 하지만, 이것도 '보는 사람이 먼저 없어질 것인가, 만드는 사람이 먼저 없어질 것인가'를 논하는 처지고 신규 제작 편수는 급격히 줄어든 상태이다.[6] 그 반면, 한국의 경우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어 일본과 대비된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이 변해서 선정성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그림체의 발전과 기술의 개선, 그리고 판매를 위한 상술 등등의 이유로 선정적 요소가 옛날보다 부각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심야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이 생긴 뒤로 TVA들의 선정성이 대폭 강화되었다. BD 등으로 무보정판을 팔아먹는 상술이 성행하게 된 것도 높은 시청률을 기대할 수 없는 심야 애니메이션은 광고로 얻어지는 수익보다 광매체 판매 수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7][8] 최근에는 TVA의 수요마저도 한계에 부딪혔는지 극장판을 만드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선정성과는 다른 문제지만 소재거리가 다 떨어져서 이미 예전에 쓰인 적이 있는 소재를 신작인 것처럼 은근슬쩍 내미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2001년에 나온 탑블레이드와 똑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2009년에 방영한 메탈베이블레이드가 대표적이다.[9]

현재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는 제작위원회 시스템 역시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제작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음반사, 완구 업체, 광고 대행사 등 복수의 스폰서들이 공동 투자를 위해 만든 서류상의 조직인데, 극장판 제작에 쓰이던 이 시스템이 TVA로 들어오면서 애니메이션 등의 연간 제작편수 증가 및 미디어 믹스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열악한 제작환경, 시장의 획일화라는 문제점도 생겨나고 말았다. 스폰서들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한 해에 제작되는 작품의 수가 증가했지만 업계 종사자에 대한 복지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애니메이션의 수익은 모두 제작위원회에게만 돌아가므로 애니메이터들의 입장에선 급료는 그대로에 일거리만 늘은 셈이었다.

그리고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시켜 안정을 꾀하는 대신, 제작사가 스폰서들에게 지나치게 휩쓸려 과거에 성공했던 작품들을 답습하기만 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사례가 줄어들게 되었다. 게다가 미디어 믹스에만 신경쓰느라 정작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10]

일본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등의 분야에는 현실과 다소(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동떨어진 요소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11]
특히나 무대의 제약이 매우 적은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것이 매우 크게 작용하여 이러한 판타지적 요소의 여부가 오덕일반인의 경계를 나눈다. 어떤 사람들은 판타지적 요소에 현혹되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씹덕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상상력은 존경할 만한 수준인데 그 상상력이 현실을 뭉개버리는 것이다.

6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편집]

6.1 1940년대 : 전쟁의 시대[편집]

일본 애니메이션의 창시는 시모가와 헤코텐(下川凹天), 기타야마 세이타로(北山淸太郞)에 의해서인데 이들은 모두 만화가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미국 애니메이션이나 일본의 옛날 이야기나 우화에서 소재를 따온 것, 계몽적인 것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나 전쟁 중의 작품에는 온통 전쟁색이 짙은 것 일색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두 편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1945년 개봉작)이고, 또 하나는 전쟁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판타지 애니메이션 <거미와 튤립>(1943년 개봉작)이다.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은 모모타로라는 꼬마가 귀신을 퇴치한다는 <모노타로 이야기>를 빌어 일본의 낙하산부대가 연합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전투적인 장면의 묘사보다는 서정적인 면을 강조한 섬세한 작품이다.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이후 일본 만화계의 거장이 된 데즈카 오사무가 이 작품을 보고 만화가를 결심했다는 후문과 함께 걸작이라는 평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거미와 튤립>은 비 오는 어느 날 한 마리의 귀여운 무당벌레거미 아저씨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튤립 아줌마가 살짝 보듬어 주며 비와 거미로부터 살아났다는 단순한 스토리로 되어 있다. 전쟁색이 하나도 없어 군부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명작이다.

전쟁이 끝나자 애니메이션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모든 작품들이 전쟁이라는 테마를 벗어 던지고 보다 밝은 성향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 또한 그때까지는 없었던 인형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했다.

6.2 1950년대 : '토에이 동화' 스튜디오의 시대[편집]

전후 최대의 사건은 1956년에 '토에이 동화'(東映動画)라는 회사가 발족된 일이다.

"나는 동양의 디즈니가 되겠다"라고 선언한 그 회사의 사장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듬해 도쿄에 철근 콘크리트로 된 3층의 규모로 건물 전체에 에어컨이 작동하는, 당시로는 상당히 호화스럽고 첨단을 걷는 스튜디오를 준공했다. 거기에 수많은 애니메이션계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오늘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타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하야오도 이 스튜디오에 종사했었다.

'토에이 동화'는 <새끼 고양이의 낙서>(1957년 개봉)와 최초의 컬러 애니메이션인 <백사전>(1958년 개봉)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는 중심축이 된다. <새끼 고양이의 낙서>는 제목대로 새끼고양이가 벽에 낙서를 하면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남의 집 벽에 자동차와 기차를 그려 넣는 고양이와 그걸 바라보는 , 그리고 집주인 이 등장하는 13분짜리 단편이다.

지극히 짧은 작품이지만 고양이가 너무 많은 기차를 그려 교통이 혼잡해지자 그림 속에 경찰이 불쑥 나와 교통정리를 하는가 하면, 구경하던 쥐가 고양이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그림 속의 기차를 사고 사라지는 등, 고양이가 그린 이차원의 그림4차원으로 변하고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훗날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초가 된다.

한편 <백사전>은 중국의 민화 <백사전>을 제재로 한 러브스토리 애니메이션이다. 중국 송나라 허선이 귀여워했던 백사가 아리따운 여인인 백랑으로 환생하여 만나게 되는데 이 둘의 파란만장한 인연이 박진감 넘치게 진행된다. 베네치아 아동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으로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니아들 사이에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6.3 1960년대 : TV만화극장영화의 시작[편집]

1960년대는 그야말로 TV 만화시대가 열린다.

그 서막을 알린 것은 1963년부터 시작된 <철완 아톰>이다. 이 작품은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가 월간 잡지 <소년(少年)>에 14년간 연재하던 만화였는데 데즈카가 애니메이션 업계 진출을 목표로 '무시 프로덕션'을 만들게 되어 그곳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되어 평균 시청률 40% 이상을 올리는 대히트 시리즈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인간의 감수성을 지는 꼬마 로봇 아톰의 활약상을 그린 이 작품은 일본 어린이들에게 과 희망을 안겨 주었고 인종차별과 과학기술 문명의 문제도 함께 제시해 일본의 어린이들로 하여금 인류의 근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도록 만들었다.

어린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통쾌한 공상과학물 <철완 아톰>은 다방면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우선 캐릭터 산업을 불러일으켰고, 프로덕션 체제를 출판 만화 중심에서 TV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변하게 하였다. 이때 일어난 캐릭터 산업과 프로덕션의 체제변화는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시초가 되었다.

<철완 아톰>의 인기가 높아지자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다수 제작 발표 되었다.

이 시대의 극장용은 1968년 '토에이 동화' 촬영소에서 시작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이다. 소년 호루스가 거인 모그로부터 '태양의 검'을 받아 사람을 괴롭히는 마수와 대결하는 이야기로써 일본 고대 원주민아이누족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면서 무대는 북유럽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악마 여동생 힐다의 복잡한 심경과 갈등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동양의 디즈니'가 되려던 '토에이 동화'는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저력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주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타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하야오가 손을 잡고 3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들여,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을 목표로 하여 매진했기 때문이다. 감독의 특유한 스타일, 독창성과 창의성, 작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과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은 이후 오시이 마모루로 이어진다.

6.4 1970년대 ~ 1980년대[편집]

6.4.1 타카하타 이사오[편집]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1974년 방영), <엄마찾아 삼만리>(1976년 방영), <빨강머리 앤>(1979년 방영) 등의 TV용 시리즈물과 <팬더와 아기 팬더>(1972년 개봉), <차린코 치에>(1981년 개봉), <반딧불이의 묘>(1988년 개봉)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러한 여세는 도시에서 회사 다니던 어느 여자가 휴가 때 시골에 내려갔다가 그 곳에서 살게 된다는 <추억은 방울방울>(1991년 방영), 삶의 터를 잃은 너구리들이 요술을 부려 인간 사회에 도전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년 개봉), 이시이 히사아치의 4컷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홋케쿄 옆집의 야마다군>(1999년 방영) 등의 90년대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양맥인 다카하타와 미야자키 가운데 다카하타는 미야자키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것은 기자회견장의 인터뷰나 해외로 수출될 때 주로 미야자키가 대표로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카하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2대 감독은 물론이고 70~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짊어진 거장으로서 고유한 작품세계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

미야자키의 작품이 인류애나 환경문제를 비롯하여 '지구 전체를 생각하는 장대한 테마' '기상천외한 모험극' '초인간적 능력을 지닌 주인공' 등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다카하타의 그것은 '바로 내 이웃의 이야기' '일본적인 정서' '판타지의 거부' 등의 설명이 필요하다.

'바로 내 이웃의 이야기'의 경우는 <홋케쿄 옆집의 야마다군>과 같은 작품이며, '일본적인 정서'는 전쟁고아가 되어 굶어 죽은 남매를 통절한 내용으로 그린 <반딧불의 묘>에서 엿볼 수 있다. <반딧불이의 묘>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서 요즘도 8월 15일 패전기념일이 되면 TV에서 늘 방영되곤 한다.

'판타지의 거부'는 거의 전 작품에 흐르고 있는데 다카하타의 지론은 "현재 우리들 주변에는 게임이나 TV, 영화 등 판타지가 일상에 너무도 근접해 있다. 판타지에 심취하여 그 세계로부터 사랑과 용기 그리고 감동을 받거나 곤란한 문제를 해결 한 뒤 쾌감을 맛보는 것은 작품을 보면서 얻는 것이지 현실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라는 식이다. 판타지는 오히려 현실의 감각을 상실케 한다는 입장이다.

6.4.2 미야자키 하야오[편집]

일본 만화의 원조가 데즈카 오사무라면 애니메이션의 원조는 미야자키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하여 다카하타 감독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도왔고, 1978년 TV용 시리즈인 <미래소년 코난>으로 감독 데뷔한 이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진출한다. 첫 작품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년 개봉)이며 두 번째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 개봉)의 대히트로 '미야자키 아니메'라는 장르를 구축하게 된다.

다카하타와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성공을 거둔 그 다음해(1985년)이다.

제 3 탄은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 개봉)이고 제 4 탄은 중년들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던 <이웃집 토토로>(1988년 개봉)이다. 이 작품이 성인들로부터도 호응을 얻게 되면서 미야자키는 국민적 애니메이션 영화 작가로 추대된다.

바로 이듬해에는 마녀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제 5 탄 <마녀 배달부 키키>(1988년 개봉)을 발표했고, 이후 제 6 탄 <붉은 돼지>(1992년 개봉), 제 7 탄 <귀를 기울이면>(1995년 개봉) 외전 1편 <Chage & Aska - On Your Mark>(1995년 개봉) 제 8탄 <모노노케 히메>(1997년 개봉), 제 9 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 개봉) 외전 2편[12] <고양이의 보은>(2002년 개봉) 제 10 탄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년 개봉) 제 11탄 <벼랑 위의 포뇨>(2008년 개봉) 제 12탄 <바람이 분다>(2013년 개봉)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6.4.3 타카하타와 미야자키의 관계[편집]

1968년, '토에이 동화'의 제 1탄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연출한 다카하타와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를 나와 A프로덕션(現. 신에이 동화)이나 TMS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회사들을 옮겨 다니게 된다. 그러다 '스튜디오 지브리'로 독립하게 되는데 그 사이 두 사람은 TV용,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

두 애니메이터는 분명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형성해 나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서로에게 좋은 비판가이자 응원자였다. 흔히 다카하타는 이론적이고 비판적인데 반해 미야자키는 이론보다는 감성과 실력으로 작품을 그려 나아간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가령, 다카하타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년 상영)과 미야자키의 <이웃집 토토로>(1988년 상영)의 '숲'의 묘사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인간과 이웃해 있는 을 축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미야자키의 <이웃집 토토로>가 1950년대 일본 시골의 정겨운 숲으로 묘사되어 있다면 다카하타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숲은 아름답지만 현대의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다카하타의 작법은 미야자키에게 영향을 미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같이 숲과 환경을 다룬 <모노노케 히메>에 의식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6.4.4 토미노 요시유키[편집]

지브리의 두 거장들과 함께 이 시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달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감독이 바로 '건담의 아버지' 로 불리우는 토미노 요시유키 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로봇과 그 파일럿의 이야기를 다룬 거대로봇물이며 저연령층 대상 작품이 많다는 이유로 앞의 두 감독들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야자키와 함께 70~80년대의 애니메이션 붐을 이끈 또 하나의 주역이었으며 또한 본격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사회비판과 체제의 모순에 대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64년, 데츠카 오사무 의 무시 프로덕션에 입사한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3년 후인 1967년에 회사를 나오고 1972년, <바다의 트리톤> 의 감독을 맡으며 디렉터로 데뷔하게 된다. 용자 라이딘무적초인 점보트3의 연이은 성공에 이어 그는 1979년에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 기동전사 건담을 만듦으로써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동갑이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년기를 보낸 토미노 요시유키는 상대적으로 불우했던 성장 환경 탓에 하야오보다 한층 더 극좌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지니게 되었고 이러한 그의 면모는 퍼스트 건담지온 공국을 통해 군국주의전체주의를 가감없이 비판하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전의 거대로봇물이 단순히 강력한 로봇으로 을 무찌르는 단순한 얼개였다면 점보트3, 건담, 이데온 등의 충격적인 전개와 어두운 배경은 이후 수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쳐 리얼로봇물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주류로 접어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린 이들 거장들 덕택에 재패니메이션은 이후 90년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되고, 아래에서 설명할 안노 히데아키 등의 신세대 감독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6.5 1990년대[편집]

90년대에 들어서면 차세대 신인감독의 화려한 데뷔와 함께 일본 에니메이션계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차세대 주자는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1997년 방영)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공각기동대>(1995년 방영)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다.

6.5.1 안노 히데아키[편집]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에바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대작이다.

'에반게리온'은 독일어로 '복음'또는 '절대 진리'를 뜻하는 말로 작품 중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한 생체로봇인데 '에바'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있다. 에바는 일본을 침략한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몬스터와 싸운다. 에바는 여러 의미에서 기존의 로봇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지닌다.

전술한 대로 인간의 생체 메커니짐을 지닌 로봇이라는 점과 리리스(유태 신비주의자에 의하면 리리쓰는 아담의 첫 번째 부인으로 아담에게 버림을 받자 홍해로 날아가 사탄의 네 번째 처가 되었다고 함.)를 복제한 점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조종사의 어머니의 혼이 내장되어 있어 조종사와 어머니의 혼이 동화될 때 인간의 혼을 지닌 로봇으로 탄생된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작품이 인기를 끈 것은 이 에바가 구사할 수 있는 로봇으로서의 기술이나 전투력이 아니라 에바를 조종해야만 했던 14세의 내성적인 소년 신지의 내면심리와 정신세계를 치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지는 늘 혼자 세상과 맞선다. 고독하며 우울하다. 모든 것들이 그를 고립으로 몬다.

인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어마어마한 결정이 이 어린 소년에게 주어지고 신지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불안한 개체로 남게 된다. 신지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그리고 현실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20, 30대의 오타쿠 문화를 추구하는 매니아층에 깊이 파고들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조는 1980년대부터 차용하기 시작한 '심리학적 변수'를 완성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를 경계하고 어머니의 혼=모성을 부각시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대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이러한 '심리학적 변수'를 캐릭터에 적용시켜 상품화하는 경향이 짙어졌고 그것에 수용자들도 중독되어 가고 있다.

6.5.2 오시이 마모루[편집]

한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주로 기계의 반란, 컴퓨터의 반항 또는 새로운 권력의 통제를 화두로 삼는다. 바꿔 말하면 사이버 문명의 공격성과 그것을 만든 인간의 욕망을 연관시켜 사이버문명의 폐해를 비판하지만 미래권력은 어쩔 수 없이 사이버문명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안노 히데아키처럼 그 또한 구체적인 설명방식을 회피하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열려진 이야기 구조를 선호한다. 작품에 깊이가 있으며 철학적이다. 그의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 모두 오락보다는 진지한 철학적 질문에 경도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진화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등등. 오시이는 우리가 결코 안전하지 않고, 결코 평화롭지도 않고, 결코 선하지도 않은 인간과 야수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이지만 초기의 작품은 현실과 꿈 사이 부조리한 융합을 자주 묘사했었다. 거대한 물고기 그림자가 벽을 기어다니는 폐허의 거리, 그 거리에서 방황하는 어느 소년과 소녀의 만남, 그리고 그 소녀가 안고 있는 알을 둘러싼 작은 사건을 그리고 있는 <천사의 알>(1985년 제작)이 그것인데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에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매우 관념적이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그의 작품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오시이 마모루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9년 방영)를 시작으로, 인기만화가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중 일부분을 발췌하여 만든, 일본 사이버 펑크물의 대명사 <공각기동대>(1995년 방영) 등은 개인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기계의 융합, 분열을 잘 그리고 있다.

안노 히데아키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오시이 마모루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1995년 도쿄국제영화제의 판타스틱 영화제 부문에서 입상한 <공각기동대>는 오시이의 본격적인 국제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는데 이미 전작들로 주목받던 그는 <공각기동대>의 제작비 중 3분의 1을 영국의 애니메이션 배급사인 '망가 엔터테인먼트'의 자본으로 충당했고,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동시 개봉하여 화제를 모았다.

오시이의 독특한 연출스타일은 아기자기한, 혹은 뮤지컬 타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익숙했던 서구인들에게는 낯설고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그는 단번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애니메이션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실적이고도 환상적인 배경묘사는 자체 개발한 DGA(Digital Generated Animation)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홍콩 현지 로케이션을 통해 배경지역을 작품에서의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에 맞춰 촬영된 필름으로 출력한 뒤 AVID 편집기로 편집한 결과이다.

완성도 높은 내용과 참신한 기술은 <인랑>, <아바론>으로 일어져 호평을 받았다. <공각기동대> 속편으로, 전편에서 다뤘던 인간과 로봇 사이의 경계에 관한 질문과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주제를 그린 <이노센스>(2004년 개봉)도 칸느 영화제에 출품되어 '미래에 대한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탁월한 그래픽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미국의 평론가들에 의해서도 2004년 최고의 애니메이션에 뽑혔다.

6.6 2000년대 ~ 현재 : 작가주의 쇠퇴, 예술에서 산업으로[편집]

앞서 열거한 미야자키, 토미노, 안노, 오시이 등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어떤 시기를 논함에 있어서 한 두 명의 작가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작가주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애니메이션이 산업으로서 성숙하여 평준화가 되면서 한 두 명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우선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같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훨씬 싸게, 훨씬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과거에는 지브리나 가이낙스 등 극소수의 회사만이 독점하고 있던 '하이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알기 쉽게 영화로 예를 들자면 과거에 SF영화를 루카스나 스필버그가 독점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들과 동급의 SF를 만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왕립우주군에서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의 퀄리티가 한때는 신화였지만, 이제는 웬만한 회사라면 그 정도는 가뿐하게 제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경쟁의 심화이다. 애니메이션이 세계로 퍼지면서 전체 시장의 파이는 커졌지만, 대신 회사가 난립하고 애니메이션 작품수가 급증하면서 개별회사의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들어졌다.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팔리는 작품이 이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거 버블경제와 작가주의 시절에는 무슨 괴악한 작품을 만들건 작가가 왕이고 간섭 못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틀리다. 철저하게 무슨 작품이 팔릴 것인지 계산하고 시장 조사를 한 끝에 만들고 있다. TV에선 4쿨짜리 애니를 틀어제끼고, 영화관에서는 아키라천사의 알을 상영하고 있던 좋은 시절은 다 끝난 것이다. 문제는 대중이 과연 '올바른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돈 주고 사는 사람들 중에는 흔히 오타쿠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고로 주고객인 그들에게 타겟을 맞추는 애니메이션이 현재의 대세라고 볼 수 있다. 경쟁의 심화라는 것은 작화 퀄리티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오히려 작품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 그림자도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라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쓰레기가 많이 양산되면서 가끔씩은 걸작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작가의 개성이 강한 작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평준화란 무서운 것이다.

많은 애니메이터가 있지만 우선 신보 아키유키에 대해서 약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수의 다작을 하면서도 흥행을 놓치지 않는 그의 비결은 각본은 각본가에게 다 맡기고 오직 연출에만 주력한다는 점이다. 감독이 오만 가지 일에 다 끼어드는 시절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 감독보다는 회사 시스템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역행하는 애니메이터이다. 그가 처음에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원화, 동화, 스토리, 성우를 모두 혼자서 해내면서 높은 퀄리티의 영상물을 뽑아냈기 때문이며, 지금은 그런 식의 일인 제작은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그의 모든 작품은 스타일리쉬하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인물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의 기법은 일본의 하이쿠가 가지는 시적 전통을 애니메이션에 접목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그의 작품들은 대중적이지 않고 모두 원패턴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등장했던 그는 아직도 젊기 때문에 장차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된다. 대표작으로는 별의 목소리, 초속 5센티미터 등이 있다.

7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르[편집]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널리 수용되고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장르의 다양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도 많은 장르가 존재하며 또 장르와 장르가 섞여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다.

7.1 순정물[편집]

아직 순정물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서 있지 않지만 대개 청소년기의 순수하고도 풋풋한 사랑과 역경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을 주제로 하는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잘 생긴 남자 주인공, 귀엽고 씩씩한 여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의 출현 해피 엔딩과 같은 요소가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다.

초기에는 <들장미 소녀 캔디>(1976년 방영), <베르사이유의 장미>(1979년 방영), 처럼 순정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원작만화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암시적인 컷을 동적이며 설명적인 애니메이션에는 충실히 담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좀 더 폭넓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들장미 소녀 캔디>와 같은 '순종적인 소녀'에서 <세일러 문>의 '여전사'로 캐릭터도 변하고,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같은 '러브스토리'에서 <내일의 죠>, <사무라이 자이언트>, <어택 No.1> <거인의 별> <푸른 전설의 슛> <메탈 파이터>와 같은 '스포츠 스토리'로 표현 영역도 확대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의 설정도 단독에서 팀을 이루는 집단으로 전환, 확대되었다. <세일러 문>에 등장하는 각개 전사들은 각각의 독립된 이미지와 의상을 보여주며 차별화된 특기와 무기체계를 갖춘다. <슬램덩크>의 주인공도 혼자 경기를 할 수 없고 다양한 캐릭터와 깊은 관계 속에서 그 존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일본의 집단주의의 일면이기도 한데 이 점을 캐릭터 산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캐릭터 산업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복수로 설정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캐릭터의 출현과 캐릭터 산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포켓몬스터>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주장도 매우 설득력 있다.

7.2 거대로봇물[편집]

일본에서만 개발되어 특화된 장르는 순정 애니메이션과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로봇물의 효시는 <철인 28호>(1963년 방영)이다. 이 당시의 로봇은 무선 자동차처럼 조종 레버가 둘 달린 로봇을 무선으로 조작하는 단순한 것이었다. 그 후, <마징가 시리즈>(1972년 방영)에서는 팔다리가 분해되어 공격을 할 수 있는 '사지절단형'으로 발전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건담 시리즈>(1979년 방영)에서처럼 분해와 결합이라는 더욱 진보된 형태를 보이게 된다.

로봇물에 등장하는 주인공 로봇의 외형적 특색 중의 하나는 ''이라는 무기를 필수 무기화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외형은 외형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일종의 사무라이식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로봇의 과도한 폭력을 정당화, 미화만 할 뿐 로봇의 기계적인 속성은 감춰지고 마는 것이다. <마징가Z>에서 일보 진화된 <그레이트 마징가>(1974년 방영)에서는 로봇의 외형에 아예 사무라이의 갑옷 형태를 실루엣에 적용하여 더욱 더 일본적인 색채를 강하게 내고 있다.

그러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89>에서는 로봇을 중장비의 개념으로 설정하여 현실적인 면을 부각시키게 되었고 이어 90년대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조종한다는 기존의 개념을 없애고 조종사의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거나, 부상을 입으면 인간이 피를 흘리듯이 기름을 흘린다는 식으로 인간과 로봇의 일체화를 꾀하고 있다.

7.3 하드고어물과 하드코어[편집]

7.3.1 하드고어[편집]

하드고어란 '매우 끈적끈적한 핏덩어리'란 뜻으로 말 그대로 '사지절단', '외형파괴', '내장파열' 등의 잔인한 정서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로봇물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장르로 보는 입장과 헐리우드의 오락영화에서 근원을 찾는 입장으로 나뉜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수병위인풍첩>(1993년 개봉)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동안 강도는 점점 강해지기 마련이다.

눈에 못을 박는 장면, 창자를 먹는 장면, 손톱을 먹는 장면 등을 통해 엽기적인 것을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것인데 앞으로도 더욱더 심화될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 아시다 토요오의 <북두의 권>(1986년 방영)부터 미즈타니 다카야의 <인어의 숲>(1990년 방영), 아사카 모리오의 <인어의 상처>(1993년 방영) 등이 있다.

7.3.2 하드코어[편집]

하드고어가 로봇물과 상관이 있다면 하드코어는 순정물에서 나왔다고 봐도 좋다. 하드코어란 일종의 포르노그라피 애니메이션, 즉 성인용 순정물을 말한다.

순정물에는 애정표현 자체가 수수하고 단조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윽한 눈빛만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시대는 끝났다. 과감한 베드신과 키스신이 들어가게 되었고 농도가 짙어질수록 독자들은 좀 더 강력한 성적 장치를 요구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의 하드 코어에는 동성애라는 특수한 장르가 자리 잡혀져 있으며 더 나아가 여성동성애와 남성동성애까지 분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구니 도시로의 <로리타 아니메>(1984년 방영), 후쿠다 준의 <요수교실>(1990년 방영), 기타카와 텐죠의 <음수학원>(1993년 방영) 등이 있다.

7.4 공상과학물과 사이버펑크물[편집]

7.4.1 공상과학물[편집]

공상과학물은 주로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소재로 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마스다 도시오의 <우주전함 야마토>(1974년 방영)부터 시작된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서기 2199년의 미래를 그린다. 마젤란 성운에 있는 가미라스는 지구에 유성폭탄을 발사하여 방사능으로 지구를 오염시킨다. 가미라스에 맞서는 우주전함 야마토, 지구멸망까지 365일밖에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을 짜임새 있게 풀어낸 수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로봇물에서 공상과학물로 바꾸어 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 밖에 오시이 마모루의 <달로스> (1983년 출시), 야마자키 가즈오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1989년 개봉) 등이 있고 안노 히데아키의 출생지도 경력도 알 수 없는 소녀 나디아가 백 년 전 파리에서 펼치는 해양모험이야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년 개봉)도 이 장르에 속한다.

7.4.2 사이버펑크물[편집]

90년대 서구를 중심으로 컴퓨터와 기계문명이 문화의 중심이 되자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가 대두된다.

전자 통신망에 의한 가상현실 'cyber'와 무정부주의 혹은 허무주의를 내포하는 'punk'가 결합해서 나온 사이버펑크물로는 세리카와 유고의 <사이보그 009>(1966년 개봉)을 비롯하여,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 린 타로 감독의 <은하철도 999>(1979년 방영) 오토모 가츠히로의 <AKIRA>(1982년 방영), 오시이 마모루의 <천사의 알>(1985년 방영), 그리고 린 타로, 카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가 공동 감독한 <미궁이야기>(1987년 개봉), 기타쿠보 히로유키의 <노인 Z>(1991년 개봉) 등 비판의식이 넘치는 일련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특히 오토모 감독의 <아키라>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 해외로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후에 '재패니메이션'이라고 불리우는 일본제 애니메이션의 해외진출이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이버펑크물의 대부는 역시 오시이 마모루이다. 그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년 개봉)에서 일본사회와 집단주의를 꼬집으며 불안에 빠질 미래사회를 경고하고 있다. <공각기동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세계시장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장르는 상업성이 우선시되는 현대의 시장 속에서도 생존해 최근에도 <PSYCHO-PASS>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내놓고 있다.

공상과학물과 사이버펑크물은 기계화 문명이 급속도로 전진되고 있는 현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를 생각케 하는, 현재 일본애니메이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5 그 외의 장르들[편집]

이 밖에도 <드래곤 볼>(1986년 방영), <마루코는 아홉살>(1990년 방영), <짱구는 못말려>(1992년 방영)와 같은 아동용 드라마물과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하고 있는 미야자키, 다카하타 아니메물 등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외 다른 애니메이션의 상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7-6번 항목 참조.

7.6 개별 작품[편집]

8 애니메이션 순위 관련 정보[편집]

9 기타 정보[편집]

  1. 소리를 끄고 화면만 볼 경우 아예 정지화상이나 마찬가지인 장면들이 대다수이다.
  2. OVA도 TV판에 비하면 단기 에피소드지만.
  3. 후반부 작업이란 채색, 촬영 등을 말한다.
  4. 특히 4쿨(1년 정도의 방영분)이 되는 50화 전후의 애니메이션이 많았다.
  5. 대표적인 작품이 초속변형 자이로젯터.
  6.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변화로 인해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는 2008년 애니메이션 메이플스토리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단 한 편도 편성되지 않고 있다. (한일합작 제외) 물론 애니메이션 쿼터제도 한 몫 하고 있긴 하지만.
  7. 시청률이 아예 필요없다는 의미는 아니고, 심야 시간대에 방영하지 않는 애니메이션과 비교했을 때 '시청률'에 대한 제작진의 생각이 다르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논리지만 부가상품 판매를 위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8. 사실 일본의 광매체 가격이 굉장히 비싼 편이기 때문에 이런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보다 규모가 큰 미국에서도 이런 시장은 생겨나지 않았다.
  9. 허나 소재가 비슷하다고 해서 무조건 식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슷하다 하더라도 스토리텔링이나 연출 등의 부분에서 신선하게 만든다면 여전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머리를 더 싸매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10.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동쪽의 에덴, 드라마 쪽에서는 SP가 대표적. 둘 다 TV판은 극장판의 긴 예고편에 불과하다.
  11. 전 세계적으로 그렇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일본의 경우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12.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한 건 맞지만 감독은 모리타 히로유키.
랜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