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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소비에트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러시아 연방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국기 국장[3][4]
존속기간 1922년 ~ 1991년
표어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가 인터내셔널(1922년~1944년)
소련 찬가(1944년~1992년)
위치 동유럽,시베리아,중앙아시아
수도 모스크바[5]
정치체제 연방제, 일당제,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
국가원수 인민대표회의 의장>서기장>대통령
언어 러시아어
주요사건 (1917년 러시아 혁명)
1922년 건국
1935년~1938년 대숙청
1941년~1945년 독소전쟁
1945년~1991년 냉전
1991년 연방 해체
통화 루블
성립 이전 소비에트 러시아
멸망 이후 러시아 연방

1 개요[편집]

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6]

한국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7][8]

우크라이나어: Союз Радянських Соціалістичних Республік[9]

벨라루스어: Саюз Савецкіх Сацыялістычных Рэспублік[10]

우즈베크어: Sovet Sotsialistik Respublikalari Ittifoqi[11][12]

투르크멘어: Sowet Sotsialistik Respublikalary Soýuzy[13][14]

타지크어: Иттиҳоди Ҷумҳуриҳои Шӯравии Сосиалистӣ[15]

아르메니아어: Խորհրդային Սոցիալիստական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ների Միություն[16]

아제르바이잔어: Sovet Sosialist Respublikaları İttifaqı[17][18]

카자흐어: Кеңестік Социалистік Республикалар Одағы[19]

키르기즈어: Советтик Социалист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 Союзу[20]

조지아어: საბჭოთა სოციალისტური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ების კავშირი[21]

에스토니아어: Nõukogude Sotsialistlike Vabariikide Liit[22]

라트비아어: Padomju Sociālistisko Republiku Savienība[23]

리투아니아어: Tarybų Socialistinių Respublikų Sąjunga[24]

몰도바어: Униуня Републичилор советиче Сочиалисте[25][26]

핀란드어: Sosialististen neuvostotasavaltojen liitto[27]

영어: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28][29]

프랑스어:La Union des Républiques Socialistes Soviétiques

일본어: ソビエト社会主義共和国連邦, ソ連

에스페란토 : Unio de Sovetaj Socialismaj Respublikoj[30]

중국어 : 苏维埃社会主义共和国联盟, 苏联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국내의 모든 국가와 민족의 노동자, 농민, 인텔리겐치아, 노동자의 의지와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의적 전인민 국가이다.
- 소비에트 연방에서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한다.
인민은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기초를 이루는 인민대표 소비에트[31]를 통해 국가권력을 실현한다.
다른 모든 국가기관은 인민대표 소비에트의 감독 아래 있으며 그에게 보고할 의무를 지닌다.
- 소련 헌법(브레즈네프 헌법) 제1장 제1, 2조.

1922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32]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였다. 1991년에 해체되었다.

소련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이를테면 주요 민족 또는 땅이름)가 국가명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33]. 러시아어로 쓰면 'Советский Союз(싸볘츠키 싸유스)'가 되고 영어로 쓰면 'Soviet Union'이 된다. 가끔 무의식중에 '소련 연방'이라고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소비에트 연방 연방이 된다. 가끔 뉴스 리포터도 소련 연방이라고 부른다 응? 한자 표기의 '소련(蘇聯)'에서, 蘇는 '소비에트'를 음차한 '소유애(蘇維埃)'의 약칭이다. 옛 신문 등을 볼 때 정치면 등에 그냥 '蘇' 만 써있어도 그냥 소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 蘇, 美國에 大獅子吼! 등. 지금은 '구(舊) 소련'이라고 하기도 한다.[34] 다만 서구권에서는 경우에 따라 소련을 그냥 'Russia'로 통칭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소련 시절 군가 가사에서도 간혹 자국을 러시아라고 표현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스푸트니크)을 쏘아올린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에 생명체(개 라이카)를 보낸 나라이자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유리 가가린)와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발렌티나 테레시코바)를 배출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알렉세이 레오노프)을 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에 착륙(루나 9호)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우주 정거장(살류트 1호)을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최초 성애자 우주덕

1인당 국민소득도 절대 서방 세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1990년 당시 약 9,300달러 정도였으며,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절반 정도인 약 5,800달러 정도였다. 거기다가 사회주의 국가여서 명목상으로는 부의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에 실제로 삶의 질은 서유럽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부분[35]이 보장되었다. 또한 무상의료가 실질적인 형태로 구현된 인류 역사상 유일한 국가였다. 실제로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의료를 유료서비스로 바꾸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러시아인이 속출하였다. 나중에 상황이 좀 안정되면서 오늘날의 러시아도 무상의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별도의 세금을 추가로 납입하며 약제비는 개인 부담이다. 소련 시절의 무상의료 제도는 별도의 세금 없이 의료 및 약제비까지 모두 무료였다.

실패로 끝나버린 기획이지만 소련에 대한 기억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65%의 러시아인이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다."라는 질문에 긍정하는 답변을 내어놓은 것을 보면 러시아에서 소련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소련은 저 북쪽 동네가 아니다! 스탈린집권기를 제외하고는 당에 대한 비판도 어느정도 허용되기까지도 했다. 북한은 세상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천하의 개쌍놈

2 역사[편집]


테트리스로 보는 러시아의 역사.[36]가사[37]



슈퍼 마리오 게임에 비유하여 간략화한 소련의 역사.[38]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사임 선언. 이미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상실했고, 독립국가연합이 결성된 상태에서 소련은 가입국 없는 이름 뿐인 타이틀이었고, 서기장이 사임함으로써 공중분해되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이후, 10월 혁명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급속도로 팽창할 것을 우려한 열강들이 잔존한 황제파, 즉 백군을 지원하며 적백내전이 발발한다. 초반에는 일부 중심도시를 제외한 영토 전역을 상실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 볼셰비키가 승리를 거두면서 1922년 12월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한다.

레닌의 뒤를 이어 최고 지도자가 된 이오시프 스탈린은 공업생산 목표를 제시하며 이제 막 발전하고 있는 농업국가인 소련을 공업국가으로 바꾸기를 원하였다. 스탈린은 "우리는 서방에 비해 50년 뒤쳐져 있습니다. 이제 그 격차를 10년 내로 따라잡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결과적으로 단기간에 서구권을 위협할 만큼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혹독한 인권 탄압과 눈물어린 희생이 감추어져 있었다. 스탈린은 초고속 공업화를 위하여 농업을 모조리 집단농장화하였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시베리아나 서부 러시아에 있는 굴라그에 강제로 끌고 갔다. 공업화와 함께 정치적으로는 대숙청을 감행하여 반대세력과 죄없는 국민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그야말로 철권독재를 했다.

서구권의 열강들이 세계 대공황으로 휘청거리는 사이 공산 소련과 나치 독일은 나란히 약진했고, 스탈린은 초기에는 반공을 외치는 독일에 맞서 서유럽 국가들과의 안보동맹을 추구했으나 일이 잘 안 풀리자[39] 되려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는 나치 독일과 폴란드를 양분하고 핀란드를 침공하여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는 등 잘 나가다가 1941년 독일에 의하여 크게 뒤통수를 맞는다. 소련군은 대숙청으로 잉여가 된 군 지휘 체계로 인해 초반에 크게 밀렸으나, 북부의 레닌그라드, 중부의 모스크바, 남부의 스탈린그라드 등 주요 도시들을 사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전황은 반전되고, 결국 베를린을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2700만에 달하는 인민들이 희생되었긴 하지만. 이 전쟁을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고 하는데, 약 5년간 전쟁하느라 공업과 농업의 기반이 전부 날아가버려서 재건하는 데 또 인민이 갈려야 했다(...). 무슨 믹서기도 아니고

하지만 승리의 열매는 달았다. 2차대전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공산국가는 전세계에 소련과 몽골, 그리고 얼마 후에 소련에 편입될 탄누 투바가 끝이었으나, 2차대전의 승리로 동독을 포함한 동유럽을 전부 집어삼켜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고, 아시아에서도 북한과 중국, 베트남 등에서 잭팟이 터져 세력을 크게 넓혔다. 이어서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켜 공산권으로 바뀌면서 두고두고 미국의 골치를 아프게 만든다. 그 어마어마한 공업생산력과 군사력에 힘입어 소련은 마침내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초강대국이 되었고, 공산진영의 대표국가로서 약 50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 모든 곳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력과 보이지 않는 대결을 반복하였다. 통칭 냉전이라 불리는 시기 동안 한반도베트남, 앙골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온갖 지역 국가들이 이념 대립의 대리전장이 되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NATO와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로 확실하게 개발살을 내버리려고 양 진영의 주요 도시에 항상 ICBM을 겨누고 있었다.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국가들에게 강대한 군사력과 매혹적인 이념으로 무장한 소련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에 내재된 효율성 부진으로 인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으며 전면적 대립보다는 데탕트, 공존 경쟁이 추구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말, 이란 제국이 붕괴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인도-아라비아해의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대소 봉쇄를 시작하였다.

최초로 시도된 것은 식량 봉쇄였다. 소련의 농업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화로 박살난 이래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의 대대적인 농지 개간과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량자급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이는 소련의 농·축산업 체계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러시아 제국 시대까지만 해도 중유럽을 먹여살렸던 과거[40]와는 정반대로 소련은 미국에서만 매해 2500만 톤이 넘는 곡물을 수입해야만 했으며, 이 막대한 수입량을 다른 곳에서 대체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카터 행정부는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수출 중단으로 인해 소련으로 흘러가던 막대한 곡물들이 시장에 풀리자 식량 가격이 대폭락하여 미국의 농가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으며, 일시적인 식량 위기를 벗어난 소련은 폭락한 국제 곡물 가격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통해서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41]

또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등의 각종 무기를 지원했다. 교외를 장악한 반군이 소련 손아귀의 도시들과 거점들을 포위한 상황에서 소련군이 교통하기 위해서는 항공편을 사용하여야 했는데, 미국의 물밑지원으로 상당한 무장력을 갖춘 반군이 게릴라전으로 헬기 전력에 대항하자 소련은 빠져나갈 방법도 찾지 못하고 그저 돈만 쏟아부을 수 밖에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전면적인 경제 봉쇄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막대한 재정 출혈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함으로서 원자재 수출로 간신히 명줄을 연장하던 미약하디 미약한 소련 경제를 붕괴시키는 단초를 만들었다.

브레즈네프의 초장기 집권은 그의 사후 권력을 이어받을만한 실력자들이 함께 폭삭 늙어버렸으므로 이후 유리 안드로포프콘스탄틴 체르넨코가 1년씩 해먹고 바로 죽어버리는 혼란기가 찾아와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후 젊은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등극하여 여러 문제를 보고 1985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시행했다. 그러나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가 터지면서 결국 소련의 경제는 회생 불가까지 가버렸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글라스노스트는 소련 체제 하의 온갖 비리와 범죄를 드러내어 공산주의 이념과 체제 자체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한번 시장의 고삐가 풀리자 인플레이션을 막아낼 방법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의 혁신 정책은 원래의 의도는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소련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초래했고, 억눌려 있던 민족주의가 발흥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발트 3국 등지에서 처음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탈퇴와 민족국가로써의 자주독립,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환원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보수파가 1991년에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소련의 붕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쿠데타는 민중의 저지로 인해 실패로 끝났으나, 쿠데타 진압으로 정치적 스타가 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밀약을 맺어 독립국가연합을 만들고 소련을 탈퇴함으로서 소련을 해체, 붕괴시켰다. 소련이 가진 모든 권리와 의무는 러시아 연방이 계승하였으며, 이후의 상황은 러시아 연방 참조. 하지만 소련은 심슨에선 다시 부활했다. 베를린 장벽, 레닌과 함께

소련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큰 국가였다. 소련이 성립할 때 기존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폴란드와 핀란드가 뚝 떨어져 나갔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서쪽 지역도 폴란드에게로 넘어가버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면서 영토의 상당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소련이 보유한 영토는 몽골 제국이 보유했던 영토와 맞먹을 정도의 크고 아름다운 광대한 크기였다. 지금도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은 경제적 가치가 꽤 높은 편.

그러나 소련 붕괴 전후로 불거진 민족갈등과 소련시절의 행정구역 변경과 민족이주의 영향으로 인해 소속되었던 공화국들 간 영토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전쟁도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소련에서는 원래 러시아 주민들이 살던 곳을 행정 문제 등으로 인하여 다른 공화국의 영토로 만들어 버리거나 각 공화국의 경계설정를 민족적 구분같은건 개의치 않고 인구에 맞추어서 설장을 하거나 (스탈린 시절에는)여러 민족들을 타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으며[42] 이후에는 러시아 주민들을 지역개발등의 이유로 민족갈등을 고려하지않고 타 공화국으로 이주시키는 짓도 했기 때문이다.[43] 물론 소련 입장에서는 설마 우리가 망하겠어?라는 생각을 했고 그건 서방 세계도 마찬가지였다지만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당시 소련은 초강대국이라 외부의 위협은 미국 밖에 없으며 자원도 많고 내부통제도 잘 이뤄지고 있는데 누가 망한다고 생각했을까?

3 정치 구조[편집]

3.1 헌법[편집]

블라지미르 일리치 레닌을 필두로 하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에 의해 완수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은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타도하고 억압의 사슬을 분쇄하여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확립하고 새로운 유형의 국가, 즉 혁명적인 업적을 수확하며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기본적인 도구인 소비에트의 국가를 창건하였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전 세계적 역사적인 인간성의 전환은 시작되었다... (후략)-소련 헌법(브레즈네프 헌법) 전문(前文).

소련의 헌법은 총 4번 개헌되었으며 이들 중 러시아 연방 공화국 시절의 헌법(1918년 헌법)을 제외하고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1922년 이후) 헌법만 치면 3가지이다. 헌법은 소련 최고회의에서만 개헌이 가능하다. 보통 일반인이 알고 있는 철의 장막 소련을 규정하는 헌법은 1936년 헌법부터이다.

  • 1918년 헌법
  • 1924년 헌법
  • 1936년 헌법(스탈린 헌법)
  • 1977년 헌법(브레즈네프 헌법)

초기 헌법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국제사회주의에 입각한 내용이 기본이었으나, 1936년 헌법은 스탈린주의(일국사회주의)에 입각하였다. 대표적으로는 본래 각 공화국들은 소련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웠으나, 1936년 헌법에서는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로 바뀐다는 점.[44][45]그리고 소련에는 스탈린의 판데모니움이 건설된다. 물론 소련의 헌법과 법률은 지속적으로 조금씩은 개정되었다. 위의 4가지 구분은 아예 헌법을 갈아치운 것. 당연히 제헌절도 다르다.

3.2 소련 최고회의와 장관회의[편집]

각각 국회정부에 해당한다. 소련 최고회의[46]소련 장관회의 항목 참조.

3.3 소련 공산당과 서기국[편집]

소련은 소련 공산당[47]의 일당독재체제였기 때문에, 국가 권력기구와 별도로 당내 권력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련 공산당의 최고의결기관은 소련공산당 대회(Съезд КПСС/Congress of the CPSU)이다. 여기서는 당의 기본 노선을 설정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КПСС/Central Committee of the CPSU) 위원과 중앙위원 후보를 선출한다. 당 대회는 1년에 4회 정도 개회되며, 개회되지 않을 때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상무를 전담한다. 중앙위원의 임기는 5년이다.

당 중앙위원회는 보다 실권을 가진 인원들로 압축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48]을 구성하며, 이 정치국의 실제적인 업무를 전담할 추리고 추려 10여 명의 서기들로 구성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Секретариат ЦК КПСС)이 구성된다. 한마디로 이 서기국의 수장인 서기장당연 소련 내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는 것. 이런 소련의 정치 구조를 벤치마킹이라고 쓰고 '그냥 베낀'이라고 읽는중국이나 북한 같은 국가의 시스템도 사실 똑같다. 대학 교양과목으로도 쉽게 배울 수 있는 1949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권력 구조를 나열할 때, 괜히 인민대표회의가 정점인 국가권력과 공산당 서기국이 정점인 당 권력 표가 괜히 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주석보다 당 총서기가 더 권력이 강하다.

대강 당 중앙위원회 위원 이상의 실세들이 소련의 국가 권력기구인 소련 최고회의나 장관회의의 직책을 알아서 권력순대로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게 그거다. 브레즈네프 시대부터는 서기장이 최고회의장을 겸임했다. 그런데 그 이전, 즉 스탈린 시대나 흐루쇼프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만일 소련 최고회의장인데도 이 정치국에 속한 인물이 아닌 경우, 권력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4 역대 소련 통치자들[편집]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 통치자들이다. 이름과 집권 기간.

블라디미르 레닌 1917~1924
당내 권력투쟁기 1924~1927
이오시프 스탈린 1927~1953
집단 지도체제 1953~1957
(게오르기 말렌코프) 1953~1955
(니콜라이 불가닌)[49] 1955~1957
니키타 흐루쇼프 1953~1964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964~1982
유리 안드로포프 1982~1984
콘스탄틴 체르넨코 1984~1985
미하일 고르바초프 1985~1991

참고 : KGB

5 군사[편집]

소련군 참조.

6 소련 구성국[편집]

구 소련 구성 공화국 목록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몰도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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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 당시 행정구역일람. 굵은 선 안쪽이 소련 당시의 영역이며, 분홍색 지역은 러시아 연방 공화국으로, 그 이외의 색의 지역은 현재 독립된 국가들로 귀속되었다. 한반도가 없는것같은건 착각인가?

연방 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을 이루는 지역 단위 중에는 '공화국' 이라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었다.[50] 각 공화국들은 별도의 헌법, 의결기구, 그리고 각 공화국별의 공산당을 소유했으며, 이들의 의원들이 상위 기구인 소련 최고회의 혹은 소련 공산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소련의 권력기구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러시아인이었고, 헌법상으로 보장되는 소수민족의 권리는 소련 초기에는 안습일 정도로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공화국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 СФСР(SFSR) -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 새 헌법에 따라 1936년부터는 소련의 유일한 SFSR였다. 정식 명칭으로 부르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51]. 1936년 이전에는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52]도 존재했지만, 1936년에 그루지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세 개의 SSR로 분리되었다.

  • ССР(SSR)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명 가맹년도 특이사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원년(1922년)멤버 1934년에 수도를 하리코프에서 키예프로 이전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53] 원년(1922년)멤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54] 1924년 러시아 공화국령 투르케스탄 및 구 부하라 한국과 호라즘(히바) 한국의 영역을 합쳐서 성립, 가맹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24년 러시아 공화국령 투르케스탄 및 구 부하라 한국과 호라즘 한국의 영역을 합쳐서 성립, 가맹[55]. 1930년에 수도를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이전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29년 우즈베크 공화국에서 분리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년 러시아 공화국에서 분리. 수도는 알마아타(현 알마티)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년 러시아 공화국에서 분리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년 자캅카스 공화국 해체로 가맹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년 자캅카스 공화국 해체로 가맹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년 자캅카스 공화국 해체로 가맹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40년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 지방과 우크라이나의 몰다비아 자치공화국을 합쳐서 성립, 가맹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40년 독립국 라트비아를 흡수, 가맹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40년 독립국 리투아니아를 흡수, 가맹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40년 독립국 에스토니아를 흡수, 가맹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40년 겨울전쟁으로 얻은 카렐리야 동부에 세워짐. 1956년 러시아 연방 공화국의 자치 공화국으로 흡수되면서 소멸. 현 카렐리아 공화국.

이 공화국들에는 연방을 탈퇴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으나 1936년 헌법 이후부터는 그런 거 없었다. 연방 가맹국도 아닌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과 따로 놀려다가 프라하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자. 한편, 소련은 유엔에서 투표할 때 3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유엔에 가입시켰다.소련은 모든 공화국의 별도 가입을 원했다. 그랬더니 미국은 소련이 그렇게 한다면 미국이 보유한 모든 주의 별도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해서 소련은 그 계획을 철회하고 소비에트 연방 정부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수준에서 멈추기로 미국과 합의한 것 [56]
독립국가가 아니면서 유엔에 가입한 나라로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이외에 인도필리핀도 있었다.[57] 물론 이 나라들이 지금은 전부 독립하였으므로 현재 유엔에서 사실상 두 표 이상을 가진 나라는 없다.

  • АССР(ASSR) -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약칭 자치공화국)
소속 공화국 자치공화국
러시아 고르노-알타이[58], 다게스탄, 마리, 모르도비아, 바시키르, 부랴트, 북오세티아, 아디게야[59], 야쿠트, 우드무르트, 추바시, 카라차이-체르케스[60], 카렐리야[61], 카바르디노-발카르, 코미, 타타르, 투바, 하카스[62]
그루지야 아자르, 압하스
아제르바이잔 나히체반
우즈베크 카라칼파크

(소련 붕괴 당시 기준)

헌법에 따라 (명목상의) 자치 권한을 부여받은 공화국들로, 러시아 연방 공화국같이 땅덩이가 워낙 크거나 캅카스 지역처럼 복잡한 민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개념은 소련 붕괴 후에 SFSR과 SSR이 독립국으로 찢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는데, 다만 ASSR 개념은 그 후에도 '자치공화국'이나 '자치구' 등의 개념으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물론 공산당 1당 독재 시절에 마구잡이로 그어놓은 경계선 때문에 체첸이나 남오세티야, 나고르노-카라바흐 같이 결국 전쟁 등의 유혈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만.

  • АО(AO) - 자치주
소속 공화국 자치주
러시아 유대인 자치주
그루지야 남오세티아
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
타지크 고르노-바다흐샨

소련 붕괴 당시 기준이다. 위의 각주에서도 알 수 있듯, 소련 붕괴 직전에 러시아의 3개 자치주가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되어 러시아에는 유대인 자치주 하나만 남았다.

7 소련의 인구[편집]

7.1 민족[편집]

1991년 7월의 소련 인구는 2억 9,304만 7,571 명으로, 당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였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의 인구가 폭풍성장하여 3억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2015년 현재는 옛 소련 구성국들의 인구를 모두 합해도 미국에 3위를 추월당해 4위권이다.

소련은 다민족국가로, 민족 수가 150개 이상에 달했었다. 1989년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소련 인구의 51.4%인 1억 4516만명이었으며,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인(4419만명), 우즈베크인(1670만명), 벨라루스인(1004만명), 카자흐인(814만명) 순이었다. 별도의 자치지역조차 없었던 독일인과 유대인[63]도 각각 204만명, 138만명이나 되었다. 참고로 고려인은 약 50만명.

대략적으로 보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을 포함한 동슬라브 민족이 70%를 차지했다. 12%는 튀르크계 민족, 기타 10%였다. 근데 2011년 통계에 따르면 구소련에 해당하던 15개국 인구 총합은 2 억 8,767 만 4,254명 가량으로 오히려 줄었다.

7.2 종교[편집]

Christ_saviour_explosion.jpg
1931년, 소련 공산당에 의해 폭파당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주교좌 성당인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모습. 현재에는 1990년대에 러시아에 종교의 자유가 회복된 뒤 다시 재건되었다.

소련은 공산주의로 인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종교란 종교는 모조리 극심한 탄압을 수도없이 받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당시에도 여전히 정교회는 존재했으며[64] 헌법상으로도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많았을 뿐. 거기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종교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에는 종교인도 툭하면 굴라그에 잡혀가거나 죽는 일이 빈번했으며, 위의 사진처럼 교회나 성당이 공산당 주도로 파괴당하기도 하고, 국가적인 무신론은 홍보나 전파가 권장되면서 종교 포교는 불법으로 쳐서 잡아가는 등 심각한 차별이 만연했다. 따라서 출세나 좋은 배경을 원하는 국민들은 차별을 피하기 위해 종교인이 되기를 꺼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등[65] 소련에서 형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고 해서 종교 탄압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면 심히 곤란하다. 다만 시기에 따라 종교 탄압의 강도의 차이는 있었는데, 레닌-스탈린 초기 시기까지는 종교에 대해 극심한 탄압을 자행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대조국전쟁 초반 소련이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국가적 단합을 위해 잠시 러시아 정교회를 장려하기도 했다. 물론 정교회 이외에 개신교나 타 종파의 경우는 그런거 없었고[66] 그러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다시 간헐적인 종교탄압과 박해로 돌아가는 등 오락가락 하다가 고르바초프 시대에 들어서서야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 소련 말기의 종교 분포는 무신론 60%, 러시아 정교회 20%, 이슬람교 10%. 개신교 7% 등.

7.3 언어정책[편집]

블라디미르 레닌은 본디 민족의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67] 이런 레닌의 사상은 언어 정책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우선 자신의 문자가 없는 민족들과 쓸 문자가 없어 자신들 종교의 문자인 아랍 문자를 쓰는 민족들에게는 슬라브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표기하기 힘든 문자인 키릴문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자를 언어에 맞게 변형하여 제공해주거나, 고유의 문어 전통이 확립된 지역에는 그들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학교 교육도 민족어로 진행시켜 주었고, 여러모로 민족어 발전에 큰 도움이 된 때가 이 시기.[68]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고 망했어요.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의 소수민족인 사람이었지만, 엄청난 러시아빠였다. 이 사람이 내세운 범러시아주의와 러시아 민족주의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민족어 교육에 약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우선 1920년대 말, '라티니자치야(Латинизация)'라는 이름으로 아랍 문자를 사용하던 언어권(아제르바이잔어, 우즈베크어 등)에 라틴 문자를 보급하였고, 라틴 문자를 사용하던 언어들도 1939년경이 되면 키릴문자로 죄다 전환시켜 버린다. 조지아어아르메니아어같이 고유의 문어 전통이 있는 언어나 독일어, 이디시어 같은 언어에는 그렇게까지는 못 했지만 나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다른 지역에게는 그냥 키릴문자를 강요한다. 학교 교육에서 러시아어 교육이 강화 되었고 관공서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러시아어 비중이 높아졌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여기에 각 가정은 아이에게 민족어를 가르칠지 가르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정책을 발효했다. 얼핏 봤을 때는 선택권을 주면 민족어 교육면에서는 좋을 것 같지만 어째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더 많이 배우러 갔다는 게 함정[69]. 그러나 이런 강력한 러시아어 사용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족어를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학이나 언어 교육의 매개어는 여전히 민족어 비중이 높았고, 민족어 교육 시수도 그렇게 낮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6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소수민족이 비동화 그룹[70]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사회경제적 조건이 급변하기 시작하여 비동화그룹의 인구가 차츰 동화그룹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때문에 현재도 소련 붕괴 이후 민족어 교육이 크게 강화 되었지만 여전히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회화가 가능하다. 대신에 아직까지도 토착민들은 토착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71]

8 소련의 국기[편집]

러시아 제국의 하양, 파랑, 빨강의 가로 3색기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 폐지되었고,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되고 1년 뒤인 1923년, 붉은 바탕에 노란색(혹은 금색)의 낫과 망치, 오각의 별 무늬가 그려진 깃발이 공식 국기로 채택되었다.[72] 빨강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혁명을, 낫과 망치는 노동자와 농민을, 오각의 별 무늬는 "혁명을 위한 오대륙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을 상징한다고 한다.

소련 국기는 총 네 종류가 있는데, 본래 1923년 6월에 지정된 국기는 붉은 바탕에 소련의 국장(Coat of arms)을 그려넣은 형태였다가, 4개월 만인 당해 10월에 낫과 망치, 별 문양을 포함한 국기로 변경되었다. 이후 1955년 8월 망치의 손잡이와 낫의 길이가 미묘하게 바뀌어 본문 서두의 모습이 되었고, 1980년 8월에는 바탕을 좀 더 밝은 색으로 칠했다는데 겉보기에는 그게 그거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국기의 뒷면에는 낫과 망치와 별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각 공화국 국기도 마찬가지). 사실 이것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아서 뒷면에서도 낫과 망치와 별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공산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국기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면서 공식 폐지되었다. 그러나 낫과 망치를 뺀 붉은 바탕에 노란 별이 그려진 국기는 현재에도 러시아의 공식 국기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며 승리의 날 행사 등에 사용되고, 소련 시절의 국기 역시 상징물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적색 바탕에 낫과 망치 등의 상징이 담긴 형태는 그 당시에도 공산주의 혁명가들 사이에서 유서깊은 깃발이었고, 1903년에 결성된 소비에트 공산당 역시 이미 당기(黨旗)로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는 소련뿐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나 옛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 베트남 등에서도 체제의 상징물 혹은 국기로 사용되곤 했다.

반면 미국이나 대한민국, 자유진영 서유럽 국가 등에서는 소련이 존재했던 시절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거나 금기시된 국기이기도 하였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적대관계, 적성국가의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에 정서상으로도 금지하였고 넓게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상징성에서도 포함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적대관계이자 친북 성향의 적성국가로 규정한 점 때문에 북한의 인공기 등과 함께 한국 내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국기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 때 소련이 참가하게 되면서 대회기간 한정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가 1990년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이 때부터 공식 사용이 허용되었다.

9 소련 국가[편집]

1944년 채택되어 1977년 개정되었다. 항목 참고.

10 경제[편집]

스탈린 이후, 특히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시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선진국 수준으로 꽤 살만한 국가에는 속했다. 특히 50~6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당시 기준으로 못해도 미국의 2배 이상 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미국인들이 진지하게 소련 위협론을 논했다. 흐루쇼프의 평화 공존이 제시된 것도 체제경쟁에서 적어도 꿀리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조국에 비해 이러저러한 문제점은 많이 제시되었지만 전반적인 체급은 튼튼했다. 비록 경공업이 빈약해 생필품 부족이 빈번했고 식량 역시 미국, 아르헨 등지로부터 막대한 양을 수입했지만[73][74][75] 중공업/화학공업이 튼실하여 공업 생산량은 세계 5분의 1이나 되었다.1인당 GNP 역시 저성장으로 고생하던 시기의 1990년 기준으로 9,300달러로 당시 기준에서 중진국과 선진국의 사이[76] 정도의 소득은 되었다. 1인당 소득이 서방측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세계 3위에 달하는 인구 덕에 국민총생산(GNP)은 87년까지 세계 2위(1985년 당시 국민총생산 2조 2천억 달러), 88년에 일본이 추월해(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91년까지 3위였다. PPP는 1991년까지 2위를 유지했다.

다만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는데, 80년대 후반 당시 소련은 공식적으로 루블 환율을 0.6 대 1 수준에서 유지했었고 이는 당시의 암시장 환율에 비하면[77]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수치였다.[78][79] 하지만 서방과의 물가나 빈부격차 차이, 국민총생산 및 국내총생산 계산에서의 공산주의 체제의 불이익 등도 고려하면…

경제성장률의 경우 스탈린,흐루쇼프 시절에는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계획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경제가 침체되었다. 1986년 이후 자료마다 다르지만 -2~2% 수준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경제성장률도 낮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훨씬 높았다. 사실 소련 해체 이후의 경제상태가 워낙 개막장이라 묻히는 것이지 소련 말기의 경제 상황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11 과학기술/산업[편집]

소련은 국가가 계획경제에 의거해서 과학기술을 중점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에[80] 기초과학, 우주과학기술, 군사공학기술은 세계 최고였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기술산업을 유지하는 비용이 소련의 경제를 압박했다.
중공업은 우랄 콤비나트등 막대한 군수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발전시켰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미국과 쌍벽을 이뤘다. 당장 화성,금성,수성에도 탐사선을 보내고 소련 붕괴 직전까지 부란이라는 우주왕복선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러시아도 많이 이어받았지만 소련에 비하면...안습

12 남북한과의 관계[편집]

처음에 소련은 김일성모스크바로 날아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한의 이승만 정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상국의 무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남침을 위한 재정과 무기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오시프 스탈린은 처음에는 미국과 충돌해서 좋을 게 없다고 보류하였지만 결국 김일성의 간곡한(...) 부탁에 남침을 승인하여 북한에 남침 재정 및 무기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81]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한의 풍부한 농수산물과 북한의 풍부한 광산물을 소련 앞에 바치겠다며 남침의 의지를 굳건히 드러내었다.[82]

휴전 이후 대한민국과 소련은 상호간 적대세력으로 대치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이 1955년 UN에 처음 가입하려 했을 때도 소련은 UN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이를 반대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980년 소련에서 개최하였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 소련 규탄시위가 벌어지게 되면서 양국간의 적대관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소련이 1988 서울 올림픽에 공식 참가하여 선수단을 서울특별시에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통보하고, 소련 정부도 1988 서울 올림픽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적 항공기의 소련 영공 통과를 승인함에 따라 양국간의 관계는 적대지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1990년 대한민국과 소련간의 국교가 수립되었고[83], 1년 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게 되면서 계속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1945년 당시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하고 소련의 공산화 계승과 나라를 세울 시조(始祖)의 우상숭배화를 위해 소련을 우호국으로 지정하였으며 1950년 6월 25일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와 탄약을 가지고 남한을 침략하여 6.25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자체는 결국 휴전에 그치는 결과만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북한과 소련과의 우호관계는 지속되었다.

국제사회에 있어서도 북한은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미국에 적대하는 입장에서 있어서도 맞장구를 치는 입장을 보이는 등 소련을 우호적으로 지지하였으나 1956년 스탈린 격하 운동과 8월 종파사건으로 관계가 한동안 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동맹 국가였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소련이 1988년에 열리는 대한민국의 서울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북한은 소련에게 대한민국에서 열리고 미국이 참가하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소련은 결국 서울에 선수단을 파견하여 1988 서울 올림픽에 미국과 한 자리에서 참가하게 되었다.[84] 2연속 반쪽 대회를 극복한 건 덤. 그리고 1990년 대한민국과 소련이 외교 관계를 맺게 되자 강력히 반발하기도 하였으며[85]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소련 시절에 비해 관계가 상당히 소원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중국에 의존을 하고 있는 편.

13 붕괴 후폭풍[편집]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1990년대에 그야말로 망했어요 수준의 파탄국가로 추락을 해버렸다. 1990년 당시 소련의 1인당 GNP는 9300$로 5800$에 불과하던 한국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1991년 붕괴당시 소련의 1인당 GNP는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루블이 폭락해 순식간에 6700$이 된다. 그리고 소련 붕괴 후,1992년 러시아의 1인당 GNP는 576$로 과거에 5%에 가까울 정도로 망해버린다. 물론 이후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86] 게다가 군대도 물량면에서 절반 수준이 되어버리고 냉전 시절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강한 모습은 사라진다. 또한 국가의 경쟁력도 잃어[87]자원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련 시절 세계 공업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던 막강한 중공업은 혼란기때 붕괴되고,사회적으로 무상의료 등이 사라지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하더니 평균수명을 10세나 깍아먹었다.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다만 이런 상황은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적인 눈높이 불만족에 따른 저출산이 아니라 식량 부족 등 진짜로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안 되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래 가지는 않았다. 1990년대 말 바닥을 친 뒤 푸틴의 집권과 함께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출산율이 1.7명까지 회복되었고, 이에 따라 1993년부터 2008년까지 660만 명 감소하였으나 2009년부터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20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까지 러시아는 후폭풍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것은 경제체제 변화를 얼마나 신중히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소련권 중심으로 이민을 적극 수용하고 재산업화를 추진하는 중이며, 인구 증가를 통해 내수 시장을 확충하고자 소련권이였던 국가들과의 연합을 적극 추진하는 중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는 무력 개입도 주저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그나마 양반이고, 발빠르게 서유럽 세력으로 갈아탄 발트3국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독립국들 역시 대부분 독재자의 등장과 경제부진, 내전, 전쟁으로 신음하였다. 당시 러시아도 별로 사정이 좋지 않았음에도 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에 가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소련의 붕괴는 상술했듯이 보리스 옐친의 결단에 의해 매우 빠르고 극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구성국 중에는 발트3국처럼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나라도 있었지만 벨라루스카자흐스탄처럼 딱히 반러성향이나 독립의지가 크지 않았던 나라들도 졸지에 독립해버린 경향이 있었다.[88] 구소련 붕괴 이후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련 시절의 강한 국력과 사회보장제도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느슨한 연합체제인 독립국가연합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국들 중 러시아와 사이가 별로 나쁘지 않은 몇몇 나라들은 러시아-벨라루스 연합, 유라시아 연합 등 다양한 재통합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14 대중매체에서의 취급[편집]

2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동부 전선을 다룬다면 반드시 등장한다.

  •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할리우드 영화이면서도 소련군 측을 주인공삼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루었다. 그런데 실제 구 소련 출신 참전용사들이 해당 영화를 보고 "우리가 저런 꼴로 싸우지는 않았다!"고 역정을 냈다는 말이 있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원래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이스턴 프론트 모드에서 주역으로 등장한다. 거기에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아예 배경이 독소전쟁이다. 하지만 게임의 평은... 제작사가 매카시스트 내지는 네오나치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fps 역시 동부전선이 배경이라면 반드시 등장하며, 등장하는 게임으로는 레드 오케스트라콜 오브 듀티 시리즈[89]가 있다. TPS로는 월드 오브 탱크도 있다.

  •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사의 게임 HOI시리즈에서는 배경이 배경인만큼 1936년부터 1944년까지 빠지지 않고 플레이어블 국가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국력이 국력이다보니 게임에서의 성능은 미국과 투탑급.
  • 애니메이션 걸즈 & 판처등장하는 학교중 하나이자, 현립 오아라이 여학원의 제 63회 전국 전차도 대회 준결승전 상대였던 프라우다 고교의 모티브가 되었다. 학교 이름 자체 부터 러시아의 일간지 프라우다에서 따온 명칭이고 학교의 엠블렘도 소련 국장의 패러디. 별이 가위로, 낫과 망치가 제도용 자로 바뀐게 포인트. 학원함도 키예프급 항공모함이고 보유/사용 전차들도 모두 소련제 전차들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하지만 반공정서가 팽배하던 시절 ,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중국의 대중매체에서는 쿠바, 북한과 함께 악역을 도맡다가,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로는 그 자리를 나치 독일일본 제국, 북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역으로 이 시기 이후 독소전쟁에서의 활약이 재평가받아 나쁜 나치놈들과 일제놈들을 무찌르는 선역 이미지도 덮어쓰게 되었다(...). 또 다른 클리셰는 "소련 인민들의 삶은 건실했지만 스탈린의 대숙청과 관료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망가졌다"는, 구 공산권에 대해 널리 퍼진 인식.

  1. 라틴 문자다.
  2. 키릴 문자다.
  3. 확대한 이것은 이삭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이를 붉은 리본이 묶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삭은 농민을 상징하는데, 러시아 제국은 서유럽과 달리 농본국가였으며 초기 혁명 이론에서도 프롤레타리아는 농민을 말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밑쪽 태양의 중심으로부터 지구와 붉은 별의 중심까지의 거리 비율은 1 : 1.5로 이는 태양, 지구, 화성의 실제 거리 비율에 맞춘 것이다. 보통 다른 국가의 국장이 동물 혹은 추상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의 국가이념을 상징한다. 지구 크기를 보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데 붉은 리본에는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표어가 연방을 이루는 15개 공화국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미국 성조기의 별 숫자처럼, 이것도 소련에 공화국이 새로 가입하면 수가 늘어난다. 따라서 처음에는 6개로 시작했다가 가장 많았을 때는 16개까지 늘었다.(마지막 언어는 '카렐리야-핀란드 공화국'의 핀란드어. 1956년에 이 공화국이 소멸하며 최종 15개) 흔히 군기 등의 깃발에서 자주 보이므로 소련군 문장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미국과 영국을 지도에서 의도적으로 교묘히 가려놓았다는 사실. 왜 그런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4. 서포터와 모토, 가운데에 필드를 둔 점, 그리고 별이 크레스트 역을 하고 있으므로 Coat of Arms의 전통적인 모양을 따르고 있지만, 서포터를 곡물로 두고, 필드에 방패 대신 지구본을 그려놓은 부분에선 나름대로 Coat of Arms의 클리셰를 깬 국장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들이 너도나도 가져다 쓰면서 공산주의 Coat of Arms의 클리셰로 자리잡았지만.
  5. 소련을 구성하는 15개의 공화국들은 각자 수도를 가졌으며, 이후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천도한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소련 붕괴 이후 14개 독립국의 현재 수도와 동일하다. 이 중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 전체와 동일하게 모스크바를 수도로 하였다.
  6. '싸유스 싸볘츠키흐 싸치알리스찌체스키흐 리스뿌블리크'라고 읽는다. 약자는 'СССР'인데 키릴 문자이기 때문에 '씨씨씨피'가 아니라 '에스에스에스에르'라고 읽는다. 보통 '에쎄쎄쎄르 줄여서 에테르'이것과는 관계없다라고 발음한다.
  7. 줄여서 소비에트 연방이라 부르며 이걸 한층 더 줄여서 소연소련이라 부른다. 두음법칙에 의해 바뀐 소리는 준말이 되어 맨 앞글자만 중간이나 뒤로 들어가면 원래 소리가 되살아난다. 그래서 '연방'이라는 단어가 '련(聯)'으로 줄게 되는 것이다. '연합'도 마찬가지. 자민련, 한총련 등의 약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8.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라고 단어 순서를 바꿔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명칭이니 쓰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등등이 뭉친 나라니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인 것이다.
  9. Радянський Союз, СРСР
  10. Савецкі Саюз, СССР
  11. Sovet Ittifoqi, SSRI
  12.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циалис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и Иттифоқи, Совет Иттифоқи, ССРИ
  13. Sowet Soýuzy, SSRS
  14.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циалистик Республикалары Союзы, Совет Союзы, ССРС
  15. Иттиҳоди Шӯравӣ, ИҶШС
  16. Խորհրդային Միություն(Սովետական Միություն), ԽՍՀՄ
  17. Sovet İttifaqı, SSRİ
  18. 키릴 문자로는 Совет Сосиалист Республикалары Иттифагы, Совет Иттифагы, ССРИ
  19. Кеңес Одағы(Советтер Одағы), КСРО
  20. Советтер Союзу, ССРС
  21. საბჭოთა კავშირი, სსრკ
  22. Nõukogude Liit, NSVL
  23. Padomju Savienība, PSRS
  24. Tarybų Sąjunga(Sovietų Sąjunga), TSRS
  25. Униуня Совиетикэ, УРСС
  26. 로마자로는 Uniunea Republicilor sovietice Socialiste, Uniunea Sovietică, URSS
  27. Neuvostoliitto, SNTL/NL
  28. (The) Soviet Union, USSR
  29. 냉전시대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인들은 이걸 United States of Soviet Russia(소비에트 러시아 합중국!)로 생각하기도 했다. 의외로 그럴듯한(...) 단어 조합이라 오늘날에도 착각하는 사람이 가끔 나온다. 유머 섞어서 천조국과 마더 러시아가 외계인을 때려잡고자 좌우합작을 한 결과라는 이들도 있다
  30. 줄여서 Sovetunio라고 부른다.
  31. 소비에트(Совет)는 '회의'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어휘이다. 정확히는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구성하는 회의를 말하는 것. 대표적인 용례로는 '국제연합 안보회의(Совет Безопасности ООН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학생회의(Совет студентов : 대학교학생회) 등이 있다. 위원회(комитет, 혹은 комиссия)와는 엄밀히 다르므로, 번역할 때 주의해야 한다.
  32. 정부 자체로만 따지자면 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는 프랑스파리 코뮌이다. 짧은 기간이고 기존 정부를 대체한 것도 아니지만 소련 성립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33. 굳이 억지를 쓰자면 미국이나 영국도 그렇다. 길게 쓰는 명칭이 아닌 흔히 줄여 쓰는 '합중국(United States)'이나 '연합 왕국(United Kingdom)' 같은 것. 다만 정식 명칭에는 America나 Great Britain, Ireland처럼 땅이름이 들어간다. 그런데 명나라나 청나라는?
  34. 여기에 신 소련으로 볼만한 조직이 없으므로 구 소련이란 표현은 틀렸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舊에는 관형사로 '지금은 없는 것' 이라는 뜻도 있다.
  35. 의식주 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생활, 여가 생활-장기 근로자의 경우에는 여름 별장도 주어졌다-과 같은 정신건강적 측면.
  36. 여기에서조차 스탈린이 사람들을 시베리아 급행열차 태웠다는게 나온다.(...) 고증이 잘못된 것이 있는데, 소련의 전차가 T-34가 아닌 나치 독일의 4호 전차다.
  37. 영어 가사의 라임을 느끼면서 읽으면 굉장히 잘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8. 등장인물은 순서대로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쇼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이다. 마지막에 성 위에서 나오는 사람은 홍차 바리스타 블라디미르 푸틴바지사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39. 동맹 대상이였던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을 못 믿는데다 폴란드의 눈치도 봐야 해서 협상에 미적지근했다.
  40.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러시아가 식량 수출국이었던 이유는 생산량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가 수입하기 위해 식량을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막대한 식량을 수출할 때도 여전히 러시아의 평민들은 굶주렸다. 식량 수입국이었던 2000년대 초반의 중국이 한국에 쌀을 판매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 가격 차이에 의한 교역이었지 미국처럼 잉여 생산력이 넘쳐나 할 수 있었던 교역이 아니었다.
  41. 유가 하락을 대소 봉쇄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유가 안정화 대책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2. 고려인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체젠인이나 크림 타타르, 불가 독일인도 타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43. 물론 이것도 인구가 받쳐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1960년대 후반에 러시아 출산율이 1.9-2.0명 대 수준으로 떨어져서(물론 소련 전체의 출산율은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일대 공화국의 출산율이 높은 덕택에 2명대 중반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시베리아 개발도 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이주를 권유하는 정책을 중단시켰다. 그렇지만 타 공화국으로 이주한 이들이 곧바로 러시아로 돌아온건 아니라서 여전히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카자흐스탄,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러시아인 비율은 상당한 편(소련 붕괴 이후에 상당수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복귀했음에도 이 정도다.)
  44. 사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진데, 미국 남북전쟁의 표면적인 원인도 남부주들의 연방탈퇴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었다.
  45. 그러나 들어간 것도 마음대로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940년에 편입된 발트 3국.
  46. 최고 평의회로 번역되기도 한다. 평의회란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자치회의를 뜻한다. 평의회를 소비에트라고 부르며, 이러한 평의회의 연방 체제가 바로 소련인 것이다.
  47. 반드시 소련(СССР/USSR)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 소련을 구성하는 각 공화국들도 각자 공산당을 가졌다. 즉, 소련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각 공화국의 공산당과 구분할 수 없다.
  48. 원래는 '상임이사회' 정도의 뜻인 'Президиум(Presidium)'를 썼으나, 1966년부터 정치국(Политическое бюро, Полибюро)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49. 흐루쇼프가 서기장이 된 건 1953년이다. 말렌코프가 장관회의장에서 밀려나자 그 자리를 얻게 된 불가닌은, 1957년에 말렌코프, 몰로토프와 함께 흐루쇼프 축출에 실패하고 역으로 몰려 좌천되었다.
  50. 동유럽 국가 중 최상위 행정구역을 '공화국'으로 지칭한 나라로는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가 있다. 지금은 그 공화국이 다 독립 국가가 됐다. 선견지명... 이라기도 좀 뭐한게, 애초에 저런 최상위 행정구역 자체가 사실상 국가였던 단위를 더 큰 연방 국가를 만들어서 묶어놓은 것들이라 구심력이 없어지자 그냥 국가가 된 것 뿐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States에도 국가란 뜻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캘리포니아 공화국텍사스 공화국같은 주들이 미국에 연합 형태로 가입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 소련처럼 공중분해된다면 각 주들도 독립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스탈린이 연방 탈퇴를 막은 것처럼, 미국 또한 남북전쟁을 걸치며 주의 탈퇴를 헌법으로 금지했다.
  51. 'Российская Совет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약칭 РСФСР/RSFSR
  52. 'Закавказская Совет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약칭 ЗСФСР/TSFSR
  53. 소련이 존재했던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벨라루스'가 아니라 '백러시아'로 불렀다. 소련 붕괴 이후 '벨로루시'를 거쳐 벨라루스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54. 중앙아시아 5국에는 공화국 이름에 '~스탄'을 붙이지 않고 '민족명 + 공화국'으로 불렀다.
  55. 카라칼파크 자치공화국이 우즈베크공화국 소속이 된 것은 1936년이었다. 그 전에는 러시아공화국 소속.
  56. 이 부분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게 애초에 유엔은 국가들의 연합이라 미국의 주들은 가장 기본적인 가입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한다(...). 형식적이긴해도 소련은 공화국들의 연합이니... 설령 미국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미국의 주들을 유엔에 가입시켜봤자 소련의 러시아만해도 47개의 주가 있으니 그걸 가입시키면 그만이다(...). 이 부분은 나치와 소련의 전쟁당시 개발살이 나버린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게 옳다.
  57. 독립하기 전에 가입했다.
  58. 1990년 10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
  59. 1991년 7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
  60. 1990년 11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
  61. 1956년 7월 성립. 상술한 카렐리야-핀란드 SSR이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탄생했다.
  62. 1991년 7월 성립. 이전에는 자치주
  63. 독일인들은 소련 초기에 볼가강 유역에 자치구역을 가지고 있었으나 스탈린 시기에 인구의 대다수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되면서 사라졌고, 유대인들은 명목상의 자치구역을 가지고 있었기는 했지만 땅이 위낙 척박하고 추워서 정작 유대인들은 얼마 살지않았다. 그래도 유대인 자치주는 현재까지도 남아있기는 하다.
  64. 러시아에 남아서 활동하던 러시아 정교회는 해외로 망명해서 활동하던 러시아 정교회와 구분되어 "살아있는 교회"로 불렸다.
  65.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산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66. 솔제니친의 명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도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에서 혹사당하는 동료가 등장한다.
  67. 참고로 레닌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레닌은 부계쪽으로는 투르크계와 몽골계 혼혈이고 모계는 유대인 혼혈이다.
  68. 이 시기의 소련의 민족정책을 일컬어 코레니자치야(коренизация)라고 한다. 코레니자치야는 '토착화', '현지화'라는 뜻. 코레니자치야는 그 이전의 대(大)러시아주의 성향의 러시아 제국의 민족정책에 반대되는 정책이었다.
  69. 실은 함정이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 중앙어와 지방어가 병용되는 상황에서는 중앙권력이 강해질수록 중앙어 구사 능력이 계층의 척도가 되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소련처럼 중앙정부의 훈령에 목줄 걸고 사는 나라에서라면... 중앙정부 훈령을 직접 읽는 쪽이 권력을 가질지, 읽어주는 걸 듣는 쪽이 권력을 가질지는 불보듯 뻔한 노릇. 요컨데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소련 정부의 지배를 받는 이상 러시아어 구사 능력 없이는 해당 지역의 권력에도 접근할 수 없는 2등 국민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이나, 그 청소년의 부모세대로써는 당연히 러시아어 교육을 더 중시하게 된다. 그 대신, 이로 인한 전통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조부모세대는 오히려 민족어 교육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쉽지만, 교육 문제에서 실권을 가진 건 당연히 누구다? 그냥 일본어를 못하는 일제시대의 한국인을 생각해 보면 크게 안 다르다.
  70. 민족어만 사용하거나 민족어를 모국어로, 러시아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그룹
  71. 전투민족 체첸의 경우는 여기서예외로, 전체 민족 구성원의 거의 100%가 체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동시에 대부분 러시아어도 사용 가능하다다.
  72. 본래는 을 국기에 포함시키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공산주의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레닌에 의해 기각되었다.맞잖아?
  73. 당시 아르헨은 극우 군부 정권이 집권했음에도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적 스펙트럼에 비해 의외로 사이는 괜찮았다.
  74. 그리고 그래도 북한같은 동네보다는 훨씬 개념이 있어서 식량 등은 철저히 제값을 주고 치렀으며 식량을 포함해 명색이 공산권 큰 형님이라 이것저것 제2세계 국가들에게 퍼다준 것이 적지 않았다.
  75. 다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다. 단순히 타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했다는 것이 그 분야의 생산량이나 공급량이 떨어진다는걸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순수입으로만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소련보다 더 많은 식량을 수입했던 적이 더 길다
  76. 1990년에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5,800달러, 쿠웨이트, 사우디 등지의 1인당 GDP는 7,000~10,000달러 수준이었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유럽, 일본같은 서방국가들은 대체로 1인당 GDP가 1만~2만 안팎이었다.
  77. 참고로 지금은 약 35 대 1을 오간다.
  78. 루블화가 비교적 변동환율 체제화되었던 1991년 1인당 GNP는 6,700달러로 추락했다. 동시기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7,200달러다.
  79. 다만 소련의 환율로 인한 과대평가와 변동환율 체제화 직후의 루블화 가치 하락을 고려해야만 한다면 동시대 대한민국은 적절한 비교대상이 되기 어렵다. 대한민국 역시 고정환율제 국가였고 명목상으로는 변동환율을 도입했음에도 정부와 한국은행외환위기 이전까지 외환시장에 심각하게 개입해서 환율을 조작했기 때문. 당장 1991년 원-달러 환율은 평균 733.60원이었으나, 실질적으로 변동환율 체제하에 들어간 외환위기 시점의 원화가치는 일시적으로 그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2000원 수준까지 치달았다.
  80. 애초에 공산주의의 옛날 이름이 과학적 사회주의였고 유물론철학을 중시한 자연변증법이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로 과학성을 중요시했다
  81. 그래도 돈받고 팔았다고 한다.
  82.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에서도 이와 같은 대목이 나왔다.
  83. 당시 아시아에서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나라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이 전부였다.
  84. 알바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련 위성 국가들도 참가하였다.
  85. 당시 한소 수교에 대한 문건과 증언을 살펴보면 북한이 얼마나 소련에 배신감을 느꼈는지 잘 나와있다. 북한이 "이제 와서 두 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소련이야말로 조국 통일을 방해하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하고 소련은 이에 맞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세습 국가"뭐야, 맞는 말이네 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86. 붕괴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소련이란 나라는 비록 이념상 적이지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권의 종주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90년대에는 뉴스에서 소련 경제가 망했어요라는 보도가 계속되고 러시아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모델, 매춘 등으로 일하러 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게 되었고, 2000년대 후반 이후 상황이 훨씬 나아진 뒤에도 이런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87. 물론 소련도 경쟁력 자체는 꽤 밀리던 수준이였으나 러시아만큼은 아니다.
  88. 물론 비교적 적었던 것이지 저 지역들도 독립 주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89. 월드 앳 워, 블랙 옵스, 블랙 옵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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