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유럽의 국가
독일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G7
1. 독일 2.미국 3. 영국 4. 이탈리아
5. 일본 6. 캐나다 7. 프랑스 8. 유럽연합(비공식)
G20
1. 미국 2. 중국 3. 인도 4. 일본 5. 독일
6. 프랑스 7. 영국 8. 이탈리아 9. 브라질 10. 캐나다
11. 러시아 12. 오스트레일리아 13. 멕시코 14. 대한민국 15. 터키
16. 인도네시아 17. 사우디아라비아 18. 아르헨티나 19. 남아프리카 공화국 20. 유럽연합
유럽연합 (EU)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헝가리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몰타 키프로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알바니아 벨기에 불가리아 캐나다 크로아티아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터키 영국 미국
독일어 Bundesrepublik Deutschland / Deutschland
한국어 독일연방공화국(獨逸聯邦共和國) / 독일(獨逸)
문화어 도이췰란드련방공화국 / 도이췰란드
영어 Federal Republic of Germany / Germany
프랑스어 République fédérale d'Allemagne / Allemagne
네덜란드어 Bondsrepubliek Duitsland / Duitsland
일본어 ドイツ連邦共和国 / ドイツ(도이츠)
중국어 德意志联邦共和国 / 德国(더궈)
폴란드어 Republika Federalna Niemiec / Niemcy
헝가리어 Német Szövetségi Köztársaság / Németország
터키어 Almanya Federal Cumhuriyeti / Almanya
이탈리아어 Repubblica Federale di Germania / Germania
스페인어 República Federal de Alemania / Alemania
그리스어 Ομοσπονδιακή Δημοκρατία της Γερμανίας / Η Γερμανία[1]
스웨덴어 Förbundsrepubliken Tyskland / Tyskland
핀란드어 Saksan liittotasavalta / Saksa
라트비아어 Vācijas Federatīvā Republika / Vācija
리투아니아어 Vokietijos Federacinė Respublika / Vokietija
에스토니아어 Saksamaa Liitvabariik / Saksamaa
러시아어 Федеративная Республика Германия / Германия[2]
히브리어 הרפובליקה הפדרלית של גרמניה / גרמניה
에스페란토 Germanio / Germanu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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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3]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BRD)
건국일 1949년 5월 23일[4]
면적 357,021㎢
인구 82,652,256명 (2014년)
수도 베를린
정치체제 연방공화제, 다당제, 양원제
국가원수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정부수반 수상 (앙겔라 메르켈)
명목 GDP 3조 7,470억 달러[5]
PPP GDP 2조 9,320억 달러[6]
수출 1조 3,370억 달러[7]
공용어 독일어
국교 없음
화폐단위 유로[8] (€)
수교현황 남한:1955년 / 북한:2001년
모토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정의와 자유)
국가 도메인 de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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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유럽과학력이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국가로서, 러시아에 이어 유럽 제 2의 인구감소대국이다. G7의 임원이며, 2010 G20 서울 정상회의의 참가국이다. 사실상 유럽연합의 경제를 책임지는 나라. 유럽중앙은행의 본사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시계바늘 방향순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동남쪽에 오스트리아[9], 서남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서북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미국, 일본에 맞설 수 있는 몇안되는 능력을 가진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EU 체제를 이끄는 실질적인 주도국이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수도는 베를린. 독일은 서북쪽의 북해와 동북쪽의 발트해와 접해 있다.

독일에는 여러 운하가 있는데 그중에서 독일 북부에 있는 킬 운하는 지금까지도 잘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강 사이 사이를 연결한 마인-다뉴브 운하는 환경 파괴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카를스루에 대학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하며 마인-다뉴브 운하를 예시로 든적이 있다. 다만 킬 운하로 와전되는 경우도 종종있는 듯 하다.

2 역사[편집]

2.1 나치 독일에 대한 입장[편집]

두 차례 대전과 분단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았음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등 매우 교훈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다만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현재 최강국인 미국을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과 여전히 강대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러시아등에게 밉보지 않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독일이 과거 식민지로 삼았던 탄자니아, 나미비아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저지른 학살, 인권탄압 등에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사과나 보상을 안 하고 있다. 결국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때 유럽의 전쟁 피해국들이나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전쟁, 침략 등은 사죄하고 있지만, 힘 없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침략이나 학살과 인권 탄압등에 대해선 사죄와 보상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10]

그리고 친위대의 전쟁범죄는 비난하고 군대로 인정하지도 않는 반면 국방군의 전쟁범죄에는 쉬쉬하고 오히려 "전부 어쩔수 없이 끌려갔던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주변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국방군도 대규모 전쟁범죄에 어느정도 가담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냉전시기 다시 독일에 군대를 재구축해야 했던 필요성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독일인들이 나치에 대해서 긍정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은 듯하다. 예로 들어 1995년부터 1999년까지 국방군이 동부전선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다루는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는 국방군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참전용사로부터 거센 항의는 물론, 테러까지 행해졌다. 1950 ~ 1970년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서 역으로 나치를 비판하다가 주변인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11] 대표적인 예가 전후 6년만에 등장한 사회주의 제국당(SRP)인데, 이 정당은 서독에서 친위대와 독일군 출신들이 모여 합법적으로 나치즘을 계승할 목적으로 만든 당이었다. 나치의 정강 정책이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심지어 북부 독일 일부에서는 25%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하여 나치깃발이 다시 휘날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하니 흠좀무. 결국 헌법수호청은 1956년, 이 정당에 해산 명령을 내리고 후속 내지는 대체정당 금지도 선고하였다. #

그러나 연합군 측에서도 나치 친위대가 아닌 독일 국방군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자.

아무튼 현재, 법과 제도, 교육에서는 나치즘에 대한 인정과 반성을 계속해서 한다는 것이다. 유산에는 재산도 있지만 빚도 있는 법이다.

나치나 히틀러 우호 발언뿐만 아니라 나치 휘장, 하켄크로이츠를 공중(公衆)에 내비치는 것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 역시 법에 위반된다. 그래서 독일어 위키백과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일부 나치 관련 문서는 편집제한 문서로 묶여 있으며, 토론란에도 키보드를 잘못 놀리면 감방 갈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히틀러와 파시즘 경험이 치욕스럽고 끔찍했는지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Verfassungsschutz)이 정치인, 공인들을 상대로 사상을 검증하여 조금이라도 나치즘, 파시즘스러운 발언을 했다간 공직 인생은 그대로 말아먹게 된다. 제2의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것. 이는 외국인에게도 예외는 없어서 나치 등을 소재로 삼아 독일을 비하하면 독일 법에 저촉된다. 한국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서도 독일 여행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아예 이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팔만 잘못 올려도 당장 잡아간다. 이러다보니 몇몇 독일인들은 독일이 애국심을 가지면 좋게 끝난 적이 없다며 국가의 상징들을 혐오하기도 한다. 이건 독일이 딱히 개념이 충만하다기보다는 전 국민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것에 가깝다. 독일 내 곳곳에 박물관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조상이 이렇게 천하의 개쌍놈들이었으니 절대 이렇게 되면 안 되고 후세에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철저히 한다.[12]

그러나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가 오히려 당시 상황을 객관적이고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여지까지 없애버렸다는 내외적인 비판도 있다. 현재 독일 정부와 국민들의 나치즘이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자세는 흑역사로 묻자에 가깝지, 이걸 계속 곱씹어보겠다는게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아예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말고, 굳이 해야 한다면 그냥 '절대악'쯤으로 치부하자 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 자체가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말 잘못하면 바로 매장 분위기니까...
실제로 독일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나 태도는 일본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를게 없어서 과거는 과거일뿐 자신들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전쟁 후 배상이 홀로코스트 위주로만 진행되었고 그것도 동유럽이나 식민지배 국가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13]배상 다했으니 이제 그 얘긴 그만합시다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이미지 메이킹을 워낙 잘해서 손해가 막심했던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독일이 전후 배상은 깔끔히 다하지 않았었나"라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가끔 올라오는 독일 정치인의 홀로코스트 추모 참석 사진 한두장에 찬양 모드로 들어갈 정도로 이미지가 좋다.[14]

독일은 통일당시 동프로이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했다. 이는 소련과 폴란드가 통일 독일을 국가로 승인하는 전제조건으로 영토포기를 내세웠기 때문인데, 그 정도로 주변 국가들이 독일 통일에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기도 하지만 영토까지 포기하는 피해도 감수하면서 통일을 이루려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물론 당장의 국가의 존립을 위해 소련에게 밉보일 수 없었던 사정도 있긴 했지만.[15]

'알자스 로렌에서 메멜까지'라는 가사가 실린 국가 1절은 공식 행사에서는 안 부르고 하였으나 월드컵 경기 중 관중들이 떼창을 해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
종종 다시 네오 나치가 창궐해서 폭력을 하고 다니는데 경찰이 검거에 실패했다거나 하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 심지어는 경찰이 눈이 멀었다고 할 정도다.

전 국방군의 장례식 같은 행사는 생각보다 거창하고, 그 시절의 전투 등 일부 업적은 나치 혐의로 비난받는 일이 있더라도 기념하는 것도 있다. 만약 그렇게 빡쎄게 배제하고 싫어한다면 전 독일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티거라는 이름의 약국을 운영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16]


희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RTS 게임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 보면 그렇게 경멸해야 할 대상임에도 독일인들은 100이면 99는 죄다 독일군으로 플레이한다. 경멸하는 거 맞나?[17] 아닌 게 아니라, 미니어처 계열에서도 독일군 미니어처 중 구하기 힘든 모델은 독일제를 구하는 편이 쉽다. 아예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병기들만 주로 생산하는 개인 회사도 있다.

3 정치[편집]

독일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79 2012년, 세계 13위[18]
언론자유지수 10.24 2013년, 세계 17위[19]
독일의 역대 대통령
14대 15대 (현직)
크리스티안 불프 요아힘 가우크 (현직)
독일의 역대 총리
7대 8대 (현직)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현직)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민주헌법이라 칭해지는그리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를 만들어낸 바이마르 헌법을 만들어냈다. 신성 로마 제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방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방제 정치 제도는 해당 분야에서 매우 선진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식 정당명부제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고.

현재 독일은 양원제, 내각책임제로 허수아비 연방대통령(Bundespräsident)과 연방상원(연방참사원, Bundesrat)을 두고 실세인 연방총리(Bundeskanzler, 2013년 현재 Bundeskanzlerin)와 연방하원(연방의회, Bundestag)가 실제 정치를 하고 있다.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당(CDU/CSU), 사회민주당(SPD), 좌파당(Linke)[20], 동맹 90/녹색당(Grüne)이 주요 정당이며 연방하원에 의석이 없는 소수정당으로 아차상[21]자유민주당(FDP), 2013년 총선에서 갑툭튀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 카피레프트를 지지하는 해적당(…)[22],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민족민주당[23]도 있다.

연방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중임할 수 있다. 연방대통령은 연방하원 및 각 주 의회에서 추천한 자로 구성되는 연방회의에서 선출하며, 선출 즉시 모든 당적을 버리고 취임한다.[24] 내각책임제 국가라 대통령에게 큰 권한은 없지만, 연방하원에 연방총리 후보를 추천하고 임명하며, 연방총리의 제청에 의해 연방장관을 임면하고, 연방총리의 필살기인 하원해산 요청에 응해 해산(및 조기 총선 실시)을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실제로는 거의 총리의 요청을 그대로 승인하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나마 연방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법률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강력한 역할로는 거부권 행사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권한도 함부로 실행하지 않고 대부분은 의회를 통과한 그대로 승인해주고 있다. 어쩌다 거부권 행사를 하면 그게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결정이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이니 말 다했다. 결국 실권은 거의 없고 거의 외국 귀빈이나 국민들에게 덕담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연방상원은 총 69석으로, 각 주의 인구에 따라 최소 3석에서 최대 6석까지 부여된다. 그런데 사실 입법기관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연방상원의 의원은 연방주에서 파견하기 때문. 따라서 연방상원이 아니라 연방참사원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행정부가 입법에 관여하는 셈인데, 따라서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이라도 연방주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부결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도 여기만 통과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만 않으면 입법이 완료된다. 특이하게도 각 주마다 하나의 의견을 내야 해서, 헤센 주에 배정된 5개 의석에서는 무조건 찬성 5표 아니면 반대 5표만 나와야 한다. 즉, 베를린에 오기 전에 미리 주 의회에서 어떤 의견을 낼지에 대해 의견을 맞춰서 와야 하는 것.

연방총리는 연방하원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연방하원 선거를 하면 그 다수당에서 총리가 나오는 시스템. 물론 이론상 다수당이 아닌 다른 당들이 일제히 연합해서 그 중에 가장 큰 당의 대표를 총리로 추대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긴 한데 독일에서는 여태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제1당이 다른 작은 당(주로 제3당, 가끔은 제2당)과 교섭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뒤 제1당 당수가 총리로 추대된다. 그러면 총리가 연정 파트너가 된 당의 당수를 부총리로 지명하고 연정 협상에서 결정된대로 자기 당과 부총리의 당에 장관직을 배분한다. 독일 총선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인 2표를 행사하는데, 제1투표는 지역구 의원에게 주는 표이고 제2투표는 비례대표 정당에게 주는 표이다. 하원은 지역구 299석, 정당명부제에 의한 비례대표 299석으로 598석이 정원인데, 여기에 독일 선거제도의 묘미인 초과의석이 등장한다. 일단 제1투표의 결과대로 지역구를 배정하고 제2투표에서 5% 이상의 득표를 한 정당만 모아서 그 비율에 따라 각 주별로 작성된 비례대표 명부에 따라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한다. 그런데 항상 비례대표 명수만큼의 지역구 의석이 나와야 하므로 녹색당처럼 지역구에서는 죽을 쑤고 비례대표에서 대박을 내는 경우에는 지역 비례대표 명부에서 모자라는 지역구 의석을 추가로 채워준다. 반면에 기민당/기사당, 사민당처럼 지역구에서 대박을 내는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석도 그대로 가고 지역구 의석도 그대로 간다. 따라서 비례대표보다 더 당선된 지역구 의석이 넘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독일 연방하원의 초과의석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 선거에서는 과반을 넘기는 정당이 거의 나오지 않는지라 연정이 당연시된다. 심지어 예전에 기민당+기사당[25]이 단독 과반을 이뤘을 때도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단독과반은 이례적인 경우에만 나오기 때문에 향후 총선 이후까지 고려했을 때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면 타협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발상이었기 때문. 연정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까 아예 어떤 연정들은 이름까지 있다. 여태까지 있었던 소연정은 흑황연정(기민당+기사당과 자민당), 적황연정(사민당과 자민당), 적록연정(사민당과 녹색당) 대연정[26]은 전부 흑적연정(기민당+기사당과 사민당) 뿐이었다. 하지만 이론상 다른 연정의 등장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는 있다.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으로 꾸리는 이른바 신호등 연정(Ampelregierung)(...),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27]의 적적록 연정,[28] 기민당+기사당, 녹색당, 자민당의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29] 등도 가능한 조합이긴 하며 실제로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2012년 2월 17일에는 대통령인 크리스티안 불프가 사의를 표하고 물러났다. 2008년에 니더작센의 주지사 직을 역임하던 중 자택 구입에 불법 사채를 쓴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전임자인 호르스트 쾰러[30]에 이어 두 번째로 임기 중 불명예 퇴임한 독일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후임으로는 2010년에 불프와 경합하다 낙선했던 무소속 정치인 요아힘 가우크가 유력시되었고, 2012년 3월에 개최된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찬성 991표로 80.4%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3.1 군사[편집]

사실 독일이 군사력 키울려고 외계인 고문을 한다 카더라

독일은 2011년 7월 1일 징병제를 폐지했다. # 공식 명칭은 징집 유예지만 유럽인들의 성향이나 징병제의 비효율성 등 여러모로 봤을 때 독일이 다시 징병제 국가가 될 확률을 거의 없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자신들도 고통받은 독일인들로서는 나치 독일과 연관성이 깊은 징병제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시행하고 싶지 않은 제도가 되는 셈.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대에 남은 병력도 평화유지군에 도움을 주는 임무 위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현역 군인으로 징집된 인원들은 늘 징병제 폐지 과정이 그렇듯 지원자에 한해서 직업군인으로 전환되며 전역을 원하는 인원은 순차적으로 전역을 한다. 또한 대체복무로 해왔던 사회봉사요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집공고를 실시했다.

4 경제[편집]

  • 중국과 일본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는 세계 수출 1위를 한 적도 있었다. 현재도 경상수지는 세계에서 제일 많다.
  •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는 거의 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미장원이나 식당에 가도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서비스업의 무덤, '서비스의 사막 독일' 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조목조목 따지면 툴툴거리면서도 들어주는 점만은 칭찬할 만하다. 일본처럼 공손하게 말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츤데레 성향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도 있다. 또한 매춘이 합법화된 얼마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국가대표 기업 항목을 보면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배된더러운 덕국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DHL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가 있는 등 선진국답게 고루고루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1 최저임금[편집]

독일엔 최저임금이 없었다. 전체 노동자의 25%가 이웃 프랑스의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고 있을 정도로 90년대 이후 심각한 임금 침체를 겪고 있는 중. 기사 참고 현재는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전체 일자리의 1/5이 450유로 월급이 안 되는 미니잡(mini-job)이다. 미니잡은 소득세 면제 및 의료 보험에 들 필요가 없어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며, 고용주도 각종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900유로 월급에 한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미니잡으로 2명을 고용하는 것을 훨신 선호한다. 저소득층의 소득세는 겨우 14%이기 때문에,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월급의 1/4에 달하는 의료보험료. 참고로 미니잡은 의료보험을 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31] 정확히는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런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를 통해 해결한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이나 백수들이 돈 못 번다고 의료보험에서 제외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수는 전체 국민의 0.2%에 불과하다.

저축된 돈도 없는 최하층으로 진입한 빈민을 위해 기초수당인 Hartz IV가 존재한다. 2014년 기준 1인 가구 382유로, 2인 가구 706유로로 심지어 대한민국보다 낮은 상황이다.[32] 다만 3인 이후 가구부터는 자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성년자 자녀 기준으로 3인 가구 967유로, 4인 가구 1228유로를 받게 되어서 대한민국보다 한화 5만원 가량 높은 수준이 된다. 이 외에 추가로 임대주택와 난방비 보조금액 소액이 나오나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는 수준의 금액이며 당연히 대도시에 거주시 주택 수당으로 주택비 납부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무의미해진다. 사실 Hartz IV를 수령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번이라도 정부에 손을 벌렸다면 은행신용도는 최하로 내려가서 제 1 금융권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점. 간단한 창업을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경력 단절로 인해 정규직 입사도 힘드니 당연히 미니잡으로 직행. 독일의 빈민층의 고착화는 유럽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독일 전국에서 140만 명이 시간당 5유로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33] 거기에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독일인들이 도저히 오지 않을 시급에 부려먹으며 세금을 아끼려 정부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업장이 속속 발각되고 있으며, 그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통계는 더 암울한 수준까지 내려가리라 독일 정부에서 예측중.

동독 지방정부에서 시간당 55센트(약 800원)직업을 강제시킨 충격적인 일이 지난 몇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하기 싫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당이 끊기니 어쩔 수 없이 저런 곳에 가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오는 수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독일 정론지 벨트지의 취재 결과, 시급 400원에 알바생을 고용하던 호텔까지 발견되었을 정도 역시 선진국

독일 정치인들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를, 옆 나라 프랑스의 낮은 고용률을 이야기하며,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의 고용률은 프랑스보다 무려 10%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는 영국의 고용률은 71.7%로 독일과 동급이다. 사실 독일의 고용률이 영국의 고용률을 추월한 것은 2010년에서나 이루어진 최근의 일이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이라 일자리가 많았다는 이상한 소리를 단번에 논파하는 자료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고용률은 당시 이탈리아에 국내총생산을 추월당했던 영국보다도 10% 가량이나 낮았던게 현실. 현재 독일의 고용률은 미니잡에 힘입어 2005년 이후 폭등한 결과로 내실이 별로 좋지 않다.

2013년 총선 이후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 연정 협약서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전국 시간 당 8.5유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이 도입 결정된 이후 오히려 그동안 많이 주었다며 주던 시급을 2017년부터 적용 예정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내리는 만행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독일내에서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4.2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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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대졸이상/고졸이하의 임금 격차
이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황과 반대로 대졸자 연봉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슷하며,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이웃의 프랑스보다 최소 만 유로가량 높다. 대졸자와 비대졸자간의 소득격차가 아일랜드에 이어 서유럽에서 2위.분명 대한민국의 학력별 임금 격차가 OECD 최고일 줄 알았다가 평균을 밑도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34][35] 근데 서유럽에서 2위라는 건 조금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청년고용률이 시망 중의 시망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독일보다 높다는 건 참 뭐라고 해야할지(...)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교 학위가 없는 계급을 독일에서는 Arbeiterkinder 즉 노동자로 칭하는데, 노동자 계급의 자녀 중 단 9%만이 대학교 진학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도 대물림이 되는 경향이 유럽내에서도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독일. 독일 여자의 32%는 최종 학력이 중학교(하웁트슐레) 졸업 이하다. 사실 이쯤 되면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 것이 나라의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되는게 정상.

상대적으로 높은 대졸자와 기술 숙련자의 연봉 차이가 독일 내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미용사의 평균 연봉은 15,787유로, 트럭운전기사의 평균 연봉은 28,534유로로, 겨우 22세 먹은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평균 초봉이 40,000유로대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게 낮은 금액. 참고로 저 40,000유로는 본봉 기준이며 수당이나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은 통계다.기사참고 우리나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트럭운전사 평균 연봉은 2,850만원, 대학교 학부 졸업생 초봉은 4,000만원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에 적용되면 대학 경쟁률이 지금의 10배로 오를 기세

13,000유로부터 53,000유로까지는 같은 24%의 소득세를 내기에 이들간의 생활 수준 격차가 좁혀지기가 절대 쉽지 않다. 북유럽보다는 덜하지만 어느정도 서민증세를 하고 있는 셈. 53,000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53,000유로 이상의 소득분에 대해서는 40%를 가져가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촘촘하게 모여있다. 덕분에 퍼진 정도가 낮아 소득격차는 한국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니계수로는 0.297.# 실제 서민들끼리의 차이는 당연히 크다. 연봉 1,300만원 받는 사람과 5,300만원 받는 사람의 세율이 같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무튼 일을 시작해 10~15년 경력을 쌓아도 대학교 학부 졸업생의 초봉을 못 따라잡는 나라는 서유럽에서도 독일이 사실상 유일.

청년실업 문제와 구직시장에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미스 매치 현상이 이슈화 되면서 독일의 직업교육을 본받자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는데특히 경제지를 중심으로 확실히 독일의 청년고용률 자체는 매우 높은 편이나 그렇게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고 이런 면을 보면 빠른 진로의 결정이 사회계층화를 강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듯.

더 자세한 통계는 OECD/교육지표 항목도 참고.

4.3 자산[편집]

독일의 서민이 가진 재산은 유럽에서도 적은 편. 장기간 바캉스를 즐기며 주택 구입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독일인의 특징이 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휴가를 비슷하게 가며 자가주택비율만 독일보다 10%가량 높은 영국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2.25배, 더 긴 바캉스를 즐기면서 자가주택비율은 독일과 비슷한 프랑스 서민의 재산은 독일의 3배나 되는 상황이다.크레디트 스위스 Global Wealth Report

서민 재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노후에 연금을 받지 못하면 일자리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들은 결국 다시 한 달 450유로가 안 되는 미니잡에 뛰어들고 있다. 노년층의 자살률이 영국의 5배나 달하고 있는 것이 현 독일의 주소다. 정확한 수치는 조금 다르다.참고 기사

※다만 자살율과 재산 사이에 반드시 직접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프랑스의 노년층 자살률도 독일 못지 않으며 저 기사에 인용된 그래프를 보면 자산보유율이 유럽보다 넘사벽으로 높은 일본의 노년 자살률이 독일보다 높게 나왔다(...)

서유럽 국가들의 자산 평균값/중간값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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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국가들의 자산 상위 20%/하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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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빈부격차는 서유럽내 최고 수준이다. 진짜 부자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돈과 자산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팩트. 한국보다도 많이 나쁜 수준이니 감이 팍 오리라 믿는다.

2014년 독일 최대 경제연구소인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져 유로존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ECB의 조사 결과에서도 독일은 주요 유럽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자산이 낮았다. 근데 오스트리아도 상당히 낮은 걸 보면 독일어권 종특? 스위스는 또 아닌지라 애매한 부분이 있다.#

4.4 연금[편집]

연금제도도 유럽 내에서는 최하위로 전체 연금 수령인의 50% 이상이 한달 700유로(100만원)가 안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아니 독일은 대체 세금을 어디다 쓰는거야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경우 유로화 위기 이후 삭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620유로의 기초노령연금을 보장[36] 중인 것과 심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복지 선진국들은 가정주부에게도 어느 정도 금액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나 북미의 캐나다등에서는 매달 실수령 100만원 근처가 나온다.

남유럽의 이탈리아도 유로화 위기 이후 삭감되었지만 2014년 기준 기초연금이 1달 540유로#이다. 근데 기초연금과 전체 수령액 자체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인의 41%가 매달 1,0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았다고 한다. # 스페인은 15년간 세금을 낸 연금 수령인들에게 550유로를, 독일과 함께 최하위 케이스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조차 30년간 납세한 연금 수령인들에게 매달 500파운드를 보장해 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기초노령연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간 실수령 기준 연간 2,400만원 가량이며[37] 2위인 호주는 2,100만원이 나오고 있다.

독일 하위계층의 노년문제는 상당히 심각한데, 정말 최악의 케이스를 가정해 비정규직인 미니잡으로 취업해 45년간 연금을 부으면 월 140유로 수령(...).# 물론 마음만 먹으면 맥도날드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채용이 되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지만 독일의 황당한 연금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예다. 이웃나라인 프랑스는 납세를 한 적이 없어도 620유로를 보장해주는 판에... 괜히 독일에서 30년 이상 연금을 부은 수령액의 결과가 700유로(100만원)도 안되는게 아니다.

4.5 반론[편집]

하지만 독일인의 실제 소득 및 생활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반론의 여지도 있다. 우선, 독일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저렴하다. 물론 난방/전기/수도 요금은 상당히 비싸지만, 공산품과 식료품의 경우는 인근 프랑스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확실히 저렴하며, 경제사정이 안좋다는 이탈리아 등에 비해서도 물가가 낮고 안정되어 있다. 또한 공교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나쁘다고는 하지만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급여제도도 이전 세후 소득의 60~67% 수준에서 최장 960일까지 지급될 정도로 잘 보장되기 때문에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낮다. 따라서 큰 돈 들 일이 없으니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

독일 국민 특성상 사치를 싫어하고, 높은 소득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휴가기간 중 여행이나 다니고, 차나 좋은 걸로 바꿀 수 있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그래서 월세일지언정 집과, 적은 급여라 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만 확보된다면 일반적으로 적은 월급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며, 실제로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생활수준 차이는 다른 서유럽 선진국과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는 차가 포르쉐이냐 제아트냐의 차이? 대략 1,500~3,000유로의 세후 소득만 보장되면 일반적인 독신~4인 가족이 생활하는 데 지장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위키 본문에서 언급된 김나지움을 가지 못한다 하여 반드시 취업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직은 김나지움이 아닌 레알슐레를 나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미니잡 역시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한 나쁜 제도가 아니라, 소득세율이 높은 독일에서 소득세를 피하면서 부가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은 가구당 소득세를 부부 합계로 납부한다. 1인 기준 53,000유로 이상 소득을 납부해야 두번째 세율구간에 진입하지만, 부부의 경우는 그 2배에 달하는 10만유로까지 연봉을 받아도 24% 세금만 낸다. 단, 배우자가 전문의라서 10만유로를 넘는 연봉을 받는다면, 월 400유로 미만의 임시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파트타임이나 임시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부나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로 활용된다. 보통 주당 10~16시간 미만 선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미니잡 시급이 결정되므로, 이것을 풀타임 급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편. 단 이는 독일 남부의 부자지역의 기준이 그렇고, 베를린만 가도 400유로를 주면서 40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물론 위에서 예시든 것처럼 45년동안 미니잡으로 사는 경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일단 그 기간동안 미니잡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예시라 하겠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역시 정상적인 노동을 일정기간 충족하는 경우를 전제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위의 미니잡 관련 외부링크기사 역시 말미에 수치가 과장되어 해석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평균 연금액은 533유로이나, 이는 연금액만 가지고 계산된 것이며, 실제로 미혼인 노령여성의 평균 수익은 1,188유로이며, 부부의 경우 평균 2,248유로를 벌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연금액 자체가 낮은 것은 사실. 사실 이렇게 된것도 이유는 있는데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출산율이 2.0명(서독이고 동독이고 가릴거 없이!)을 밑돌기 시작하고 이게 2010년대까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65세 이상인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나가자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독일정부에서 연금제도를 개편해 많이 내고 덜받는 식의 구조로 전환되어 버린 것.

또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바로 통일이다. 서독과 동독이 합쳐지고 이제 겨우 25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병크가 터지면서 독일 경제를 시궁창에 몰아넣은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로, 근로자들의 능력과 생산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통화를 무조건 단일화하면서[38] 동독 지역의 임금이 폭증[39]실업률은 50%까지 폭증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보장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것은 당연하고... 간단하게 생각하자. 오늘날 8000만 독일인 중에 4분의 1일인 1500만은 나머지 3/4에 비해 국민소득이 65%에 불과했었다. 극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할 경제 통합 과정 역시 날림으로 진행되었다.[40]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만만치 않게 남아있는 셈.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경제 격차는 여전히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91년에서 03년까지 통일 비용이 대략 1조 7000억 유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00조. 물론 화폐가치를 고려해야 한다)인데 이중에서 50% 가까이가 사회보장(연금, 노동시장, 의료보험)에 소요되었다.[41] 이러한 복지 지출의 급증에 이어 통일 직후 독일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실업률이 10%까지 올라가고 재정지출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국가 파탄을 방치할 생각이 아닌 이상 어떤 식으로든 개혁은 필수적이었다. 실업급여를 필두로 사회보장을 빡세게 깎고 대규모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펼친 것도 대충 이 시기. 재밌게도 이러한 정책을 이끈 것은 보수 정당이 아니라 수십 년만에 정권을 잡은 독일 사민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메르켈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러한 기조는 이어가고 있고. 물론 실업자의 상대적 빈곤율이라든지 비정규직의 급증 등 부작용으로 인해 반발과 비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며 상술했듯이 최저임금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선회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사실상 독일이 유럽을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시경제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옆나라 프랑스에 비교하면 국민 삶의 질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사실 프랑스가 대단히 관대한 사회보장정책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인 탓도 있다.[42][43]

5 사회[편집]

애국심이 문제가 되는 듯하다. 이미 독일 전체가 비뚤어진 애국심을 가져서 애국이라더니 결국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현대 독일은 교육 과정에서 애국심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국을 우리민족, 조국 등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꺼리도록 한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전범국이니깐 국까가 되셈"하는게 아니고 "평화로운 독일인으로서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어울리는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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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인구[편집]

2013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독일의 출산율은 1.42로 세계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45]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다.[46] 참고로 영국은 출산율 1.90, 프랑스는 2.08으로 선진국 중에선 선방하고 있는 편.[47]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나면 독일의 인구 및 GDP는 유럽연합 내 1위에서 3위로 떨어질 게 확실시 되고 있다. 네덜란드, 폴란드에서 이 상황과 전망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독일계 미국인이 미국 백인 중 가장 많은 인구비를 차지하고 있다.[48]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도 종종 미국인으로 착각 받는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영국계가 다수를 차지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다르게 독립 당시 제헌 회의를 할 때 독일어를 공용어로 쓸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는 도시전설이 있을 정도다.[49]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영웅으로 대통령까지 된 아이젠하워도 독일계. 'Eisenhauer'에서 'Eisenhower'로 고치긴 했으나 Eisen만 봐도 독일계인 걸 알 수 있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록펠러[50]도 독일계다. 야구판에선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워렌 스판, 존 스몰츠, 빌리 와그너,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이 독일계이며, 이 외에 수많은 미국 백인들이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 헐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미국 백인 배우들의 절반 이상은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해도 무방한데, 대표적인 예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머니가 독일인이다.[51]

독일계 러시아인 역시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노프 왕조는 독일인의 후손.

독일계는 이름을 보면 아 이 사람 독일계구나!하고 대충 어느 정도 알 수 있다.[52] 산 이름을 딴 -버그(-berg), 사람이란 의미의 -만(-man, mann)[53]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토마스 만이 대표적.) -워, 어(-er, uer)로 끝나는 이름 중 대부분이 독일계이거나 독일 출신 유대인들이다. 독일 귀족들은 색깔 이름을 성으로 썼는데, 브라운(Braun), 바이스(Weiss), 슈바르츠(Schwarz) 등이 있다. 동양식으로 풀어 쓰면 각각 葛, 白, 黑에 해당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V2 로켓 개발의 주축이었다가 전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출신 미국 물리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은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중간에 von이란 칭호만으로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은하영웅전설의 등장 인물에도 귀족 출신과 평민 출신에 맞게 이름을 쓰려고 힘쓴 흔적이 있다.

5.2 이주민 문제[편집]

이주민의 증가와 구 동/서독 간에 미묘한 감정대립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터키계 이주민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 실업자가 됐음!"이라고 화내는 젊은 양아치들을 중심으로 네오 나치가 생겨났다. 나치는 그냥 관심 끌기 위한 떡밥으로 이름만 빌려쓴 단순한 양아치 집단이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인도, 동남아시아, 아랍 등지의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인종, 민족의 이주민들로 고생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는 달리, 독일은 거의 터키계 이민자들이 300만 이상으로 압도적. 이는 독일 전체 인구의 3~4%에 달하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이 식민지가 많은 영국, 프랑스와 대항하기 위한 동맹자로서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와 손잡은 이래 우호관계가 지속되어 터키인들이 독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의 외교정책의 근간이었던 3B정책, 베를린 - 비잔티움 - 바그다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것. 지금도 독일은 터키의 유럽에서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서, 유명한 터키의 여행지의 설명문이 자국어 다음에 먼저 독일어로 되어 있고 그다음에 영어로 되어 있다. 터키어 알파벳에도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터키인들의 유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2년 당시 독일로 유입된 터키의 축구선수인 일한 만스즈나 마찬가지로 독일 태생인 하미트, 하릴 알튼톱 형제, 메흐메트 에키지는 터키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하칸 찰하노글루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택해서 터키 국적으로 뛰고 있는 반면 똑같이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54]이나 메흐메트 숄 아예 독일 국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전반적인 분야에서 터키인들의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아예 터키 쉬페르 리그 갈라타사라이 SK가 한때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분데스리가로 갈려다가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독일어판 언사이클로피디아의 독일 국기의 붉은 부분에 아예 터키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이렇게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계소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진국 중에서도 유별나게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국력의 보존을 위해서 많은 이민자를 원하는 반면 국민들, 특히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구 동독 지역 사람들은 이러한 추세에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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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으면 여기로

5.3 교육[편집]

독일의 대부분의 학교는 주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이며 각각의 주마다 다른 교육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공립학교 이외에도 공교육과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종교재단의 사립학교들이나, 수준이 더 높은 IB나 영국의 A-Level을 가르치는 학비가 매우 비싼 귀족학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공립 대학의 경우 학비를 안 받거나, 받더라도 한국돈으로 80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 물론 이는 선별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가능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독일의 어린이들은 만 6살부터 의무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초등학교는 4년제로 읽기, 쓰기, 산수와 같은 기초교육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스포츠 과목을 배우는 외에도 공동체학습과 질서의 준수 등을 습득한다. 이밖에도 합창, 배구, 악기 다루기 같은 특별활동시간도 주당 2시간 정도 있으며 하루의 수업시간은 반나절 정도 된다.[55]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되는데, 진학 가능한 학교의 종류는 3가지가 있다. 9년 과정의 김나지움(인문계 학교), 6년 과정의 레알슐레(실업학교), 5년 과정의 하웁트슐레(직업학교). 연방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진학자의 비율은 김나지움 33%, 레알슐레 27%, 하웁트슐레 24%, 게잠트슐레[56] 및 발도르프슐레 10%, 기타[57] 7% 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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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한번 물갈이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수준 자체가 우리나라와 비교시 다르다고 보면 되며, 실제 독일 일부 주의 김나지움의 수업 수준은 미적분을 고1 때 배우기 시작하는 등 우리나라보다 1-2년이 빠르다. 이러한 정책은 4학년 이후에 벌써 진로가 상당 수준 결정되는 것이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성적은 1등급에서 6등급까지로 매겨지고(1등급은 매우 좋음, 5등급 이하는 낙제) 김나지움 졸업반 때는 2개의 주요과목을 선정하는데, 1점이 최하점, 15점이 최고점으로 매겨진다. 학기 말에 5등급이 2개 있거나 또는 6등급짜리 과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예외 없이 유급된다. 그리고 두 번 유급되면 세 번째는 없다. 졸업장도 없이 학교에서 쫓겨난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를 취득하지 못하여 독일대학교 입학자격 자체가 없었다. 다만 독일어권 이공계 최고학부인 취리히 연방공대(ETH Zürich)는 고등학교 졸업장(아비투어)이 없어도 본고사만 통과하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다만 취리히 연방공대는 아인슈타인 당시까지는 지잡대였다가 아인슈타인 덕분에 명문대로 올라섰다는 말도 있다.) 1895년 10월 아인슈타인은 그래서 입학시험을 치뤄 수학과 물리학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받았지만 다른 과목들이 발목을 잡아 낙방하고 말았다. 그는 1년간 아라우(Aarau)의 고등학교를 다녀 독일의 아비투어에 해당하는 마투라(Matura)를 취득한 후인 1896년 10월에야 ETH에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나지움은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아비투어(Abitur)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 된다. 이 증서는 해당인이 전인교육을 받았으며 앞으로 어떠한 전문 교육도 받을 능력이 있다는 증서이다. 이 증서를 받은 사람은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 분야 대학에 아무런 제약 없이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며 자격은 평생 유효하다. 레알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미틀러레라이페(Mittlere Reife)라는 학력 증서를 받게된다. 이 증서를 가진 사람은 곧바로 대학 진학은 못하지만 일반 교양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무직이나 행정직(예를 들어 은행원, 경찰, 공무원, 비서, 이공계 기능직 등의) 직업을 배운 후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증서이다. 레알슐레 졸업 후 김나지움에 편입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하거나[59] 2년간의 직업교육 뒤에 파흐호흐슐라이페(Fachhochschulreife)를 취득하여 파흐호흐슐레로 진학할 수 있다. 하웁트슐레는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시험에 성공적으로 합격하면 하웁트슐압슐루스(Hauptschulabschluss) 증서를 받게 되는데,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학력은 소지하고 있다는 증서이다. 이 증서는 직업을 배우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물론 하웁트슐레 졸업 후 레알슐레로 편입하여 미틀러레 라이페(Mittlere Reife)를 취득할 수도 있다.

레알슐레와 하웁트슐레는 졸업하고 나면 일반 기업과 직업학교에서 이원화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 과정을 마치고 각 지방의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직업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정식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이후 원하는 학생들은 마이스터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나면 졸업시험을 치르고 종합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교는 일반 종합대학(Universität), 파흐호흐슐레(Fachhochschule)[60], 음악대학(Musikhochschule), 미술/예술 대학(Kunstakademie) 등으로 나뉜다.

독일의 고등교육정책은 1999년에 시작된 볼로냐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독일의 전통적인 학위과정이었던 9~10학기의 디플롬과 마기스터 과정이 점차 폐지되고 6학기의 학사와 4학기의 석사과정이 도입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파흐호흐슐레와 종합대학의 차이는 전보다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파흐호흐슐레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종합대학의 석사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또한 유럽 전역에서 ECTS라는 통일된 학점제도를 도입하여 유럽 대학간의 교류가 더욱 수월하게 되었다.

종합대학(Universität)에서의 학업은 전통적으로 이론적이고 학문적 부분에 집중되어있으며, 박사과정 및 교수자격취득(Habilitation)은 기본적으로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61] 파흐호흐슐레는 좀 더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대부분 직업실습이 학위과정에 의무로 규정되어있다. 음악, 미술 등의 순수예술 분야의 실기교육은 종합대학에서 이뤄지지 않고 [62] 각각 음악대학, 조형예술대학 등의 단과대학에서만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유학생들에게 똑같이 학비를 받지 않고 물가가 싸서 생활비 부담도 적기 때문에 독일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생활비는 모든 집값, 세금, 음식비, 교통비, 보험비, 심지어 유흥비까지 전부 합해도 한 달에 150만원이면 충분하며, 지역 물가, 개인 생활방식에 따라 100만원 이하로도 충분히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홈스쿨링은 범죄 행위로, 당국에 적발된 경우 부모는 벌금형에 처해지며, 아이는 공립학교에 강제 통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홈스쿨링 하기 위해 미국, 영국 등지로 망명하는 가족이 생겨나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을 정도. 독일 정부측은 "공동체에서 어울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며 공교육의 의무를 강조하는 입장. 반면에 이와 같은 독일 교육 정책에 대해 '국가주의의 잔재'라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또한 학교폭력 문제나 교육 방법론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지적이 있는데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에 대한 보호는 공권력으로도 한계가 명백하며 교권과의 충돌 문제가 있고[63], 또한 홈스쿨링이라 해서 아이가 이상한 교육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고[64] 제대로 교육시키되 집에서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막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5.4 과학기술과 노벨상[편집]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가 독일이다. 이러니 독일의 기술력이 ㅎㄷㄷ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작정 노벨상 수상자와 기술력이 정비례한다고 보긴 힘들지만. 나치 시대 때문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닐스 보어를 위시한[65] 고급 인력들이 대거 미국과 소련으로 빠져나갔고,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몰락해 버린 데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막강한 기술저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문화[편집]

독일에서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어린아이에게 혈액형을 함부로 물어보면 안 된다. 독일에서 혈액형을 묻는 것은 일종의 부모와의 혈연관계를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아이의 혈액형을 병원에서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아이의 혈액형을 모른다. 사실 성인에게도 혈액형을 물어봐서 좋을 것 없고, 어차피 독일의 특성상 말도 안 되는 혈액형 성격설로 농담을 삼을 일도 없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 게 좋다. 혈액형 성격설은 해당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우생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독일은 20세기 중반에 우생학으로 아주 크게 병크를 친 적이 있고 현재는 그것에 대해서 뼈저리게 반성하는 나라이다. 자기들마저 치욕스러워하는 우생학의 흑역사를 외국인 입장에서 얘기해서 좋을 것이 전혀 없다.

6.1 언어[편집]

전반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며,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한다.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대답은 해주는데 목소리가 모기 소리가 된다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덤으로 독일은 학교에서 라틴어는 물론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나라이다.[66] 게다가 학교에서도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구동독지역은 러시아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다. 터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독일에서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터키어만 써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다. 일단 웬만한 깡촌이 아닌 이상 관공서부터 터키어를 사용하는 터키인 공무원이 있고, 터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고, 터키 물건을 취급하는 슈퍼마켓과 카페트 가게도 있으며, 심지어 터키에선 관광지에서나 파는 물담배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스크도 곳곳에 있고. 이쯤 되면 독일이 아니라 그냥 터키다. 프랑스어도 많이 가르치고 있으며 북부에는 덴마크어, 프리지아어사용자가 일부 존재한다. 동부에서는 소르브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도 거주하고 있다.[67] 심지어는 구소련에서 이주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독일계 후손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68]

7 행정구역[편집]

7.1 주요 도시들[편집]

대부분이 구 서독 지역에 몰려 있다. 10위권까지만 봐도 구 동독지역은 한군데(그나마도 한 곳은 두 개로 나눴던 거 합쳐서)고 20위권 까지보면 그나마 라이프치히(작센, 52만 명)와 드레스덴(작센, 52만 명)이 들어가는 형편이다. 특히 라인-루르 지방은 인구 30만 이상의 대도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독일 최대의 도시권이다. 51위까지 봐도 거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도시들이 21개로 이쯤 되면 거의 도배 수준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곳이 바덴-뷔르템베르크니더작센인데 겨우 4개씩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루르 지방에 대도시가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8 외교 관계[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포로로 끌려온 독일군을 꽤 대우해주었다고 알려져있는데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렇게 좋은 수준은 아니었다. 민간인들까지 잡아들여서 정원이 2~30명인 막사에 100명씩 집어넣거나 막사나 움막도 없이 그냥 구덩이에 몰아놓고 치료도 해주지 않아서 질병이 돌아서 수백명이 죽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2차대전 당시 포로 사망율은 미군 포로 수용소가 가장 낮았고 소련과 일본군과 비교하자면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무장친위대 소속으로 미군에게 포로로 잡힌 적 있었던 귄터 그라스,티거 에이스였던 오토 카리우스도 위와 같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8.1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편집]

과거 제1,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국제 사회는 물론 폴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전쟁을 치뤘던 유럽의 인접국가들은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고립되기도 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철저한 과거 청산과 반성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의 대외 관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프랑스, 영국과 더불어 유럽연합의 지도국으로서 정치,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유로존 긴축재정 대상국들과 갈등을 겪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에선 # ## 독일을 나치에 빗댄 만평이나 합성사진도 나오는등 반독감정이 심하다. 특히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이 그리스에게 1620억 유로를 빚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70]

2011년 5월 말에는 장출혈성 대장균(Enterohaemorrhagic Escherichia coli, 약어 EHEC)이 함부르크와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등 북서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6월 둘째 주까지 확인된 감염자만 3000명에 육박하고 그 중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세균은 독일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되었고,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보균자가 확인되는 등 한창 떠들썩했다.

새로운 형태의 변종 세균이라 독일 보건 당국도 병원체 확인에 다소 시간이 걸렸는데, 초기에는 오이토마토 같은 유기농 채소에 묻은 거름이 문제라고 해서 이들 야채의 소비가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6월 11일에 보건 당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니더작센 주의 한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새싹 채소가 발원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7월 초엔 유기농 채소 업체가 수입한 이집트산 씨앗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발병 초기에는 이 세균이 스페인에서 수입한 오이와 토마토에서 나왔다고 하자 스페인 보건장관이 우리는 상관없다고 공식 발표하는 등 독일과 스페인 사이의 농산물 무역 분쟁까지 번질 뻔하기도 했다.

발병 후 한 달 가까이나 확실한 원인과 발원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스페인산 채소의 수입 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했다. 당연히 두 나라 채소 재배 농가들은 우거지상이 되었고, 유럽 농업담당 위원은 농가 피해액의 약 70% 가량을 보상하기 위해 자금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8.2 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편집]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독일도 엄연한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보다 제국주의 대열에 늦게 뛰어드는 바람에 물 좋은 해외 식민지들을 확보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 총리도 식민지 침략은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으나 당시 제국주의의 대세에 따라 식민제국주의에 뛰어들어 적지만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탄자니아, 토고, 카메룬, 남태평양의 비스마르크 제도, 뉴기니 섬 북부 지역 등을 식민지로 삼았다. 심지어는 중국 칭다오도 식민지로 삼을 정도[71]

그러나 현상 유지론자였던 비스마르크가 해임되고 빌헬름 2세 황제가 적극적인 해외 침략을 밀어붙이면서 그 무리수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가지고 있던 나미비아, 탄자니아, 토고, 카메룬 등 해외 식민지들을 영국과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게 뺏기면서 독일은 식민지 없는 서유럽 열강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식민지 지배기간도 짧았던지 과거 식민지였던 탄자니아, 토고, 나미비아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독일어가 잘 안 통한다.[72]

비록 세계대전의 패배자로 묻혀서 그렇지 독일도 제국주의의 과오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가 하면 탄자니아에서도 독일 지배에 대항하는 현지 흑인들의 무장 반란을 잔인하게 유혈 진압한 전례도 있었으며 이외 다른 식민지 지역에서도 인권 유린이나 무임금 노동 등 각종 식민지 탄압들을 자행했다.[73] 게다가 유대인이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 사과하는 것과 달리 과거 식민지였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해서는 독일은 과거사 사과나 피해보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등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 독일의 관계는 불편하기 그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사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냉전 때 토고에서 바나나를 수입하여 그 대가로 경제지원금을 주기도 했고 가끔씩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등 유명 관광지에서 독일 관광객들이 종종 관광을 즐기러 와 외화를 뿌리고 가기도 한다.하지만 다른 유럽 열강들에 비해 식민지 지배기간도 짧았던지라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다른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토고, 나미비아, 탄자니아, 카메룬 등 옛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74]

8.3 한국과의 관계[편집]

냉전 시기 한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주로 서독이었고, 당시에 노동자로서 건너간 한국인들이 꽤 된다. 프랑스와 더불어 주요 유학 행선지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 학문에도 독일 학문이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예로 법학.

BBC 조사 결과 대한민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65%(…) 반대로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17%에 불과했다.#, # 2012년 조사에선 부정적 46%, 긍정적 18%로 소폭 개선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유럽이나 기타 백인국가에서 한국의 인식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그것과 차이가 거의 없다. 북한의 이미지탓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유럽의 일반인입장에서는 생판 모르는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보단 맨날 핵실험한다 협박질하는 북한이 더 뉴스에서 자주 볼수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조사에서 독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4년 조사를 봐도 독일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국가는 조사 대상인 16개국 중 독일, 캐나다, 영국, 프랑스의 4개국이다.

다니엘 린데만은 한국 방송에도 출연한다.

9 국가 상징[편집]

9.1 국호[편집]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쓰면 "der Deutschen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영어 단어인 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이런 원어명과는 달리 나라마다 조금씩 편차는 있어서 가령 프랑스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 폴란드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75], 핀란드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 어? 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한국에서 부르는 독일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한자음역으로 들어온 것이 정착한 것이다. 개화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덕국(德國, 정확히는 德意志(덕의지))오덕국 은 일본 등의 표현도 쓰였으나 지금 이 표현이 쓰이는 경우는 독일의 기술력과 관련되어 독일을 부를 때 인터넷에서 쓰인다. 또 다른 중국식 음역으로 일이만(日耳曼)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76] 등 많은 국가들이 자국어 명칭에 가까운 한국어 발음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미국, 영국 등과 함께 어지간해선 원어명으로 불리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80년대 교과서에서 원어발음에 따른 도이칠란트를 밀기도 했고, 이원복 교수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도이칠란트 표기를 고집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의 명칭사용은 독일로 굳어져 있다. [77]이 이유는 발음의 경제성 원리 때문인데, 원어명의 독음이 5글자(도이칠란트)로 너무 길어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 적은 품이 드는 독일이 더 선호되는 것이다.근데 왜 오스트리아는 오지리라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이름이 너무 오지잖아

9.2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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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는 흑, 적, 금 3색으로 구성된 '연방기'이다. 이와 함께 국장인 독수리가 붙어있는 버전이 있는데, 이는 연방정부의 부처에서만 사용되고 민간과 주 정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검정은 인권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카더라. 독일어판 위키백과는 1813년 해방전쟁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한 뤼트초프 의용군의 군복색에서 이 3색이 왔다고 설명한다.[78]프로이센의 소장(Generalmajor) 아돌프 폰 뤼트초프 아래로 모인 독일 전역의 의용병들은 저마다 다른 군복이나 사복을 들고왔기 때문에 여기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옷을 검정으로 물들였고, 여기에 금빛 놋쇠 단추를 달고 소매를 빨간색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 3색이 가졌던 의미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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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속의 어두움에서 피의 살육을 지나 자유의 황금 빛으로."

1848년 통일 후 처음 지정되었으나 폐지되고 1919년 제정이 폐지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재지정되었으나 1933년 아돌프 히틀러 독재정권인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폐지, 하켄크로이츠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가 1945년 나치 정권의 패망하자 1949년 다시 동-서독일의 국기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동독은 1959년 이 국기에 호밀 이삭, 망치, 컴퍼스가 그려진 국장(國章)을 추가하여 서독과 구분하였다.[79] 1990년 10월 3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면서 동독의 국기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될 당시 이를 환영하던 몇몇 동독인들은 독일연방공화국 국기를 대신해 동독 국기에서 문장이 있는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 낸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80]

참고로 국기의 "금색"을 금색(Gold)이 아니라 노란색(Gelb)이라고 하는 건 독일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모양이다. 나치들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흑적금 국기의 금색을 노란색, 겨자색, 똥색(..) 등으로 부르며 비하했기 때문이라고.

9.3 국가[편집]

국가(國歌)는 독일인의 노래의 제3절이다. 1·2절은 국가로 지정돼 있지 않다. 특히 1절은 나치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독일인들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않으니 주의. 상세한 설명은 독일인의 노래를 참고할 것. 동·서독 분단 당시에는 서독에서만 단독으로 불렸던 국가였으나[81] 1990년 10월 3일 동서 독일이 통일되면서 통일 국가로 지정되었다.

10 창작물에서의 독일[편집]

일본 성우 카키하라 테츠야도 원래는 독일 출신이다. 한국 유명인 중에서 차두리는 유년기만 독일에서 보냈고 하하 역시 독일 출신이다.

우라사와 나오키가 독일을 유달리 좋아한다고 한다. 철완 아톰 지상최강의 로봇을 리메이크한 PLUTO의 초반 주인공을 독일 출신 로봇인 게지히트로 했을 정도. 하나자와 카나도 독일을 좋아한다고 한다.[82]

타입문 세계관의 토오사카 가의 사람들은 독일인인 키슈아 젤레치 슈바인오르크에게 사사했기에 독일어로 주문을 외운다. 토오사카 토키오미는 스웨덴인과 하프, 토오사카 린은 쿼터이다. 그 외에 아인츠베른도 독일계라 독일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주문에 쓰이는 독일어 중 문법에 맞는 것은 없다.

  1. 문자 그대로 옮기면 게르마니아(Γερμανία)지만 현대 그리스어 발음으로 '예르마니아'이다. 정식국명은 '이 오모스폰디아끼 디모크라띠아 띠즈 예르마니아스'.
  2. 독일은 게르마니야라고 쓰지만 독일인은 넴치(Немцы), 독일어는 네메츠키(Немецкий)라고 한다.
  3. 도이칠란트는 독일어로 국명을 읽은 것. 독일연방공화국의 약자가 BRD이긴 하지만 일상에서는 쓰이지 않으며, 동독 사람들만 서독을 BRD(서부독일이 아니라 BRD)라고 불렀다.
  4. 서독 기준
  5. 4위. 2014년 IMF 기준, (약 3,747조 원)
  6. 5위. 2010년 IMF 기준 인도와 중국에게 추월당해 부동의 3위 자리를 뺏겼다. 사실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인구가 1억이 넘는 걸 감안하면 이것도 참 대단한 거다. 더구나 아직은 유럽 최강이니 말이다.
  7. 3위. 한화로 약 1,337조 2010년 추정치 [1]
  8. 과거에는 독일 마르크를 썼고, 마르크화의 대표였다.
  9. 오스트리아와 접한 남쪽 끝 부분은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 해당한다.
  10. 그러나 이는 이중성이라기보다는 비서구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탈과 나치에 의한 유럽문명의 유린을 별개로 보는 유럽식 관점 때문에 기인한다. 나치에 대해서는 공분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측에서도 자국의 식민지 문제에 대한 반성은 상당히 지지부진한 수준이다. 나치 문제는 연합국에 의해 나치 세력이 완전히 박살나고,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체제가 나치를 인류의 적으로 보는 국제적인 컨센스 하에 수립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성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제국주의 문제는 제국주의를 주도했던 국가들이 식민제국이 해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힘과 지위를 가지고 있고 나치만큼 철저한 부정의 합의가 이루어지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독일국방군". 볼프람 베테 지음.
  12. 反나치화. 독일어로는 Entnazifikation, 영어로는 denazification이라고 한다.
  13. 심지어 얼마전에는 이탈리아 정부와 법적 분쟁까지 벌여서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노동자 피해에 대한 배상을 끝끝내 하지 않았다. 착한 독일, 나쁜 일본 식의 순진한 이분법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
  14. 전술하였듯이 독일은 홀로코스트는 개별 보상을 열심히 했다. 홀로코스트는.
  15. 그런데 구 독일령 내에 거주했던 독일인들의 재이주 및 해당지역 내 재산 귀속문제를 두고는 현재 폴란드, 체코와 갈등 중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점에 대해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으나, 폴란드, 체코 측에서는 나치 라고하며 논의를 피하려 한다.
  16. 그러나 전차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SS 소속이어서 전과가 삭제되었다.
  17. 물론 국방군홀로코스트에 관련되긴 했지만 사실 얘네들은 나치즘이라는 사상 아래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8.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19.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다. 언론자유 최상은 0.0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20. 기존의 독일 공산당 노선을 일부 계승한 정당들. 서독 지역에서 독일 공산당은 1기 독일 연방의회에 의원을 배출하였으나 다른 정당들은 독일 공산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에 책임이 있으며 소련에 종속적이며 위헌적인 정당으로 여겼고 이 때문에 독일 공산당은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 독일 공산당은 나치 정권 시절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종전 후 연합국의 점령군에 의해 활동이 허가되었었다. 동독 지역에서는 1946년 4월 독일 공산당과 동독 사회민주당이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 동독 공산당)으로 강제 통합되었었다.
  21. 2012년까지 원내정당이었으나 2013년 총선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원내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혼돈의 대연정이 시작되었지...
  22. 2011년 9월 18일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8.9%, 15석을 차지했다! 흠좀무. 그러나 2012년부터 지지율이 급락해 총선에서 망했어요.
  23. 인종차별적 정당이다. 해산 시도가 몇 번 있었는데 상원과 하원, 헌법재판소의 손발이 안 맞아서 망했다.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한 모든 주 의회에 진출해 있으나 연정 파트너로 삼으려는 정당은 당연히 아무 데도 없다.
  24. 독일은 나치의 기억 때문에 포퓰리즘으로 당선돼 독재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큰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아돌프 히틀러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의회를 장악하면서 독재자가 된 것이었지만 독일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선동 정치인의 집권 가능성을 줄이려고 여러 곳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다만 역시 나치로 홍역을 치렀고 역시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그냥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한다.
  25.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와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은 자매정당이고 각자 활동하는 주가 구분돼 있다. 기독교사회연합은 바이에른 주에서만 활동하고 기독교민주연합은 바이에른 이외의 주에서만 활동한다. 그래서 연방하원에서는 둘이 단일한 교섭단체를 구성, 사실상 하나의 정당처럼 움직인다.
  26. 이념 격차가 큰 거대정당끼리 구성하는 연립정부.
  27. 동독 공산당의 후신.
  28. 중앙정부에서는 실제 사례가 없지만, 지방정부에서는 2014년 튀링겐주에서 적적록대연정이 이루어지며 1당이었던 기민당을 물먹인 사례가 있다. 참고로 대연정의 주도자는 2당이었던 좌파당. 이 사태가 터지자 메르켈총리와 독일 대통령이 대놓고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주총리를 줘선 안된다고 난리가 났었다.
  29. 자메이카 국기의 색상과 같아서 자메이카 연정이라고 한다(...).
  30. 2004년에 부임한 기민련 출신 대통령. 2009년에 재선되어 2선 대통령이 되었지만, 2선 된 지 1년도 안 되어 아프가니스탄 방문 중 군사 작전을 독일의 이익에 빗대어 연설했다가 신나게 까이고 자진 사퇴했다.
  31. Minijobs sind sozialversicherungsfrei, d.h., sie begründen keinen eigenen Sozialversicherungsschutz
  32. http://www.gegen-hartz.de/hartzivregelleistung.html 참고로 대한민국의 기초생활수급 수당과 비교시 1인가구 60만원, 2인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3만원, 4인 가구 163만원. 국민소득이 2배는 높은 독일이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듯.
  33. 참고로 각종 보험과 세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시간당 7.5유로를 받아야, 현재 주휴수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 된다.
  34. 하지만 이를 꼭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게,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이 '깔린 게 대졸자'라는 결과를 낳아 인재에 대한 푸대접으로 이어져 이렇게 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공밀레도 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
  35. 사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을 생각하면 대졸-고졸 간 임금격차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청년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차이가 아닐지...
  36. 기초노령연금이란 간단히 말해서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다 주는 연금을 말한다. 당연히 연금이 발달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초노령연금 외에도 공적연금으로 세대간 부양의무를 지우는 국민연금, 그 외에 사적연금으로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으로 다양한 노후보장체계를 마련하여 노후의 빈곤을 막는다. 즉 연금 수령액 전체를 통털어서 700유로인 것과 기초노령연금 500~800유로인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탈리아 같은 경우 노인들 빡세게 보장해 주면서 세금 부담 때문에 나라가 망해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둥 꼭 좋게 볼 수만은 없다.
  37.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이사를 가면 괜찮을 것 같지만, 해외 거주 시 그 나라 물가 대비해서 연금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스페인에 거주한다고 치고 세금 전부 다 떼면 1달 600유로 실수령(...). 스페인에 집이 있다면 모를까 노르웨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다만 기초노령연금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잊지 말자. 대다수의 노르웨이인들은 이것보다 당연히 많이 받는다.
  38. 헌데 당시 상황으로는 통화교환을 1:1로 안하기에도 그랬던게 당시 동독의 임금수준이 명목상으로는 서독의 1/3 정도수준에 머물렀었고(대신 그 만큼 물가는 싸긴 했지만) 동독 마르크의 가치는 잘쳐도 서독 마르크의 1/3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이 아닌 동 3: 서1으로 통화를 교환했을 경우에는 동서독의 임금 격차가 무려 1:9까지 벌어지고 거기에다가 서독의 물가수준은 동독의 물가수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런상황에서 당연히 동 3: 서 1로 교환한다면 통일후엔 그 만큼 빈부격차, 생활격차가 커진다는 얘기이니 셈이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9. 물론 그래도 임금수준이 서독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었고(대신 생산성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물가(바나나나 향수 가격같은 건 크게 싸졌고 여타 물품도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종류도 다양해졌지만 그 대신 주택임대료나 전기료, 수도요금, 식사료는 폭증했다.)는 그보다 더 올라서 동독인들이 많이 불평했었다.
  40. 여담이지만 인구는 2배 차이, 국민소득은 수십 배 차이나는 남한과 북한이 통일 과정에서 이런 뻘짓을 한다면? 아마 한반도의 운명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1. 통일연구원, 독일통일 20년 조망 :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주는 시사점 - 통일 주변환경 조성 중심 기사도 참고
  42.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유로존에서 최상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도 유로존에서 제일 높은 수준. 다만 최근들어 프랑스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많아지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2014년 5월 현재 프랑스 좌파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그야말로 좃망 수준. 부자들이 싫다고 대놓고 얘기하던 좌파 올랑드가 법인세 감세와 규제 개혁, 재정 지출 축소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우향우를 하고 있다.
  43. 물론 이게 성공할지는 정말로 미지수. 사회복지비용에서만 210억유로(한화 30조 정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각각 180억 유로, 110유로를 줄이겠다고는 하는데, 안 그래도 지지율이 시망에 국민전선보다 밀리는 막장 판국에 인기없는 긴축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까? #
  44. http://ko.wikipedia.org/wiki/%ED%8F%B4%EB%9E%80%EB%93%9C%EA%B3%B5 폴란드공 이라고 하는 인터넷에서 국가간 관계를 묘사할때 쓰이는 캐릭터.
  45. 224개 국가중 200위
  46. 현재 지구상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국가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총 4개국이다.
  47.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상당히 높다.
  48. 통계상이다. 사실 1980년대 이전 통계에서는 영국계가 독일계보다 많았다.
  49. 하지만 독립 당시 미국 백인들의 75%가량이 영국계였고, 독일계는 대략 8~9%였다. 독일계가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이후부터였다.
  50. 록펠러의 경우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가 조상이다.
  51. 아버지는 이탈리아/독일계 미국인, 어머니는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혼혈, 외할머니는 러시아인이다.
  52. 단, 이름이 독일어식이라도 독일계가 아니라 스위스계 미국인,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며 이들은 독일계 미국인과는 별도로 구분하는데, 이들도 조상들이 거주하던 곳은 독일어권이라 독일어식 성씨, 이름을 사용한다.
  53. 그냥 Mann 자체가 성인 사람도 있다.
  54. 외질이나 알튼톱 형제 모두 똑같이 젤젠키르헨(Gelsenkirchen)이 고향이다.
  55.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유럽 내 학습능력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에 충격을 받은 몇몇 주에서는 종일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56. 김나지움, 레알슐레, 하웁스슐레가 한 학교로 합쳐져있는 형태. 진보적인 정당이 집권한 몇몇 주에 도입되었다.
  57. 하웁트슐레, 레알슐레가 한 학급에 있는 경우 등.
  5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9954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 사진 링크함.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학원"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한참동안 그 개념을 설명해주면서 독일의 중학교 학생과 인터뷰 했다고 한다. 학원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은 독일 중학생은 "학교가 끝난 뒤에 왜 또 같은 과목을 배우러 다른 학교를 가죠?"라고 답변했다. "예습"이라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59. 이 부분은 각 주의 교육정책에 따라 다르고 학생의 성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60. 파흐호흐슐레는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한국의 전문대처럼 사회에서의 인식이 낮지는 않다.
  61. 예외적으로 몇몇 파흐호흐슐레가 종합대학과 협력해서 박사과정을 개설하는 경우가 있고, 하노버 미대, 베를린 예술대 등이 종합대학은 아니지만 박사과정 개설권을 가지고 있다.
  62. 종합대학에서도 예술과 관련된 과목이 있지만 이는 음악학, 미술사 등의 이론적인 과목에 한해서이다.
  63. 사후 처벌을 엄격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징역 몇십년, 몇백년을 밥먹듯이 때리는데도 범죄 발생을 막지 못하는 미국을 생각해보자.
  64. 실제로 자식을 집에서 키우면서 이상한 사상을 주입시키거나 하는 막장 부모가 있는 건 사실이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고 단순히 공교육을 불신하여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케이스다.
  65. 그나마 제일 먼저 떠오른 2명만 들었지, 그 당시 현대물리학의 기초를 놓은 물리학자들 중 절대 다수가 나치 독일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거나 놓일 뻔 했다. 물론 그들 대다수는 독일의 적성국인 미국이나 소련으로 탈출했지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독일에 남아 과학부 장관 자리에 올라서 독일 핵개발을 지휘했던 사람도 있다.
  66.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대학교에서 라틴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따로 구분했다.
  67. 소르브어는 슬라브어계 언어이고 소르브인들은 독일 정부에서 인정한 슬라브계 소수 민족이다.
  68. 1990년대에 구소련의 독일계 후손들이 독일로 많이 이주했지만, 대부분이 독일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69. 구 서독의 수도였다.
  70. 이 주장에 대해서는 관련분야 위키러들이 자유롭게 반박 또는 수정바람.
  71. 사실 당시 유럽에서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 지배에 안 뛰어든 나라는 거의 없었다. 굳이 있다면 스위스나 세르비아, 체코, 헝가리 등처럼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나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처럼 독립한지 얼마 안된 동유럽, 발칸반도의 나라들, 이외 국토 면적 자그마한 소국들 정도인데 물론 이 국가들도 식민지를 안 만들었다기 보다는 처한 환경 때문에 못 만든 것에 가깝다.
  72. 나미비아는 독일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73. 사실 이런 식민지 탄압은 식민지들을 점유하던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열강들이 다 자행했다.
  74.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은 예전보다는 많이 약해진 편이다. 지금은 러시아, 중국, 미국 등 여러 신흥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식민지배했던 유럽 국가들보다 더 커지고 있다.
  75. 라틴어 게르마니아에서 따 온 "Германия"(Gyermaniya)라고 부르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보통 슬라브어권 국가에서 독일을 부르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 "녜메트"에서 나온 것이다. 녜메트는 "벙어리"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명칭을 사용한 게르만 부족에서 따온 것.
  76. 이태리(伊太利)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77. 그 이원복도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을 전후로는 독일을 사용한다.
  78. 비정상회담의 독일인 패널 다니엘 린데만도 이렇게 설명하였다.
  79.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다. 동독 국기가 서독과 달라진 이후 동·서독 공동으로 쓸 깃발로 독일 삼색기 위에 작게 흰 오륜 마크를 추가한 것을 썼다. 오륜 마크? 중화 타이베이? 대한민국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한반도기로 대신한 것과 비슷하지만, 남·북의 국기에 공통점이 없는 한반도와 달리 동·서독의 공동 깃발은 그래도 흑적금 삼색이라는 공통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80. 참고로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여 투쟁할 때도 이와 비슷하게 국기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려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을 떼어내기도 했다. 동구권 반공 투쟁 당시 유행이라고 보면 될 듯. 과거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국기들은 전통적으로 썼던 옛 국기 위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국장을 덧붙인 디자인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81. 올림픽 등에서 동·서독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단일팀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공동의 상징물을 썼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환희의 송가를 국가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대한민국북한의 단일팀을 구성할 때 아리랑을 국가 대용으로 썼던 것과 같다. 참고로 환희의 송가는 오늘날 유럽연합의 찬가(anthem)로 쓰이고 있고, 엉뚱하게도 프랑코포니에서도 찬가로 쓴다.
  82. 그런데 인피니트 스트라토스에서 등장하는 독일국적 캐릭터는 라우라 보디비히인데 정작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프랑스 국적의 샤를로트 뒤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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